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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모임> 20141207
본문: 삼하 18:19~19:8
제목: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이 죽었다. 그의 죽음 소식을 전하는 것에 많은 구절을 할애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하셨다. 아들을 위한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을 본다. 다윗도 압살롬의 죽음을 맛보았다. 오늘 말씀에서 세 성도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윗의 생각을 전혀 모르고 전쟁의 승리 소식만 전하는 열성파, 사실파, 대적파가 있다. 모두 다윗 편에 있었지만 창자가 끊어지는 다윗의 통곡을 몰랐다. 왜 그랬을까?
1. 구속사의 시각을 갖지 못했다. 19절~22절, 요압이 구스사람에게 전하라고 했고 그가 갔다. 오늘 본문에 세 사람이 나온다. 아히마아스, 구스, 요압이 나온다. 그들은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럽게 해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구속사의 시각은 날이 갈수록 이 세상에서 구별되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인생은 외롭다. 열성파 아히마아스, 19절, 압살롬의 죽음을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를 갚아준 것이라고 한다. 압살롬을 다윗의 원수라고 칭하는 것을 볼 때 죄와 죄인을 분리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요압이 말린 것은 앞으로 아히마아스가 큰 일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적파 요압, 전쟁의 승리를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로 다윗이 슬퍼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전하며 다윗이 죽일 것을 알고 있었다. 구속사의 믿음은 없으면서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싫어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숨을 쉬고 있는 압살롬에게 요압은 아버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용서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단칼에 죽였다. 다윗과 구속사 가치관에 공감하지 않았다. 다윗의 아들 사랑은 거절되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처럼 압살롬이 그 사랑을 알기 바랬지만 그러지 못했다. 죽어도 전혀 가책이 안 드는 이 사람을 택했다. 기뻐해야 할 이 소식이 다윗에게는 비극이었고 같이 할 사람이 없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가 믿음이다. Application)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구속사적인 시각이 있는가? 그렇게 사는가?
2. 구속사적인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며 가는 길이다. 다윗이 도망가는데 시므이가 다윗에게 네가 피를 흘렸기에 압살롬에게 나라를 넘기셨다고 했다. 압살롬의 반역 때, 다윗은 맨발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가면서 평생의 친구 아히도벨의 배신 소식을 들었다. 다윗은 완전히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그 길은 예수님이 고난 받으셨던 그 길이었다. 다윗은 이 세상에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어지니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게 되었다. 아히도벨의 배신에 대해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고 하니 기도가 응답이 되었다. 자신을 이렇게 회복시킨 결정적인 공이 압살롬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압살롬 때문에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되었다. 사울을 용서한 것과 다르게 압살롬을 용서하게 되었다. 사람은 의지의 대상이 아님을 뼈 속 깊이 느끼게 되었다. 압살롬은 자신이었다. 자기 자녀가 사로잡혀 가고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을 때 사울이 죽었다. 사울의 괴롭힘은 남들이 다 인정한다. 노아의 방주에서 마지막 싸움은 자기의 싸움이었다. 압살롬은 자식이고 자신이었다. 자식이 걸어가면 내가 걸어가는 것이다. 그 자녀가 반역했으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일이다. 자식은 누구도 핑계할 수 없는 나와의 싸움이다. 다윗이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 책임감 중독이라는 글을 쓴 로저 마틴에 의하면 지배 가치에는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 라는 지배 가치가 있다. 끝까지 이성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알게 되며 이성을 통제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깊은 삶을 알게 된 압살롬에 대한 감사함이 다윗의 부하들에게는 없다. 부하들은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알지 못한다. 다윗은 그들이 압살롬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을 함께 기도해 주길 바랬다. 다윗에게 기쁜 소식이라고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가져왔다. 다윗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인간은 철이 드는 순간부터 외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이 없다. 다윗의 인생을 보니 외로움의 극치다. 구원의 과정에서 본다면 아히도벨의 계략을 따를 수 있다. 감정도 없이 압살롬이 죽었다고 전한다. 다윗이 원하는 것은 압살롬의 회개였지만 같은 마음을 가진 자가 없다. 다윗은 끝까지 압살롬을 사랑했고 압살롬은 죽었지만 사람들은 왜 역할이 정해져 있냐고 한다. 누구는 그 역할하고 싶어서 하냐? 라고 해라. 구속사의 사랑은 거창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집사님 큐티 간증), 믿음이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Application) 여러분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가? 문제 부모임을 인정하는가? 자녀에게 고통의 원인을 제거해주려고 하는가? 바라보고 있는가?
3.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신다. 다윗은 구속사적인 시각으로 탕자가 돌아오듯이 압살롬을 기다렸다. 이 모든 전쟁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기에 할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히마아스,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왔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식은 나를 위로하는 소식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이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공평한 세상을 사시지 않았다. 이 세상은 불공평해 라고 할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 최고로 불공평한 삶을 사셨다. 공평치 못한 세상에서 공평한 구원의 소식이 들리는 것이 최고의 구원 소식이다.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듣고 다윗은 생에 최고의 슬픔을 토하고 있다. 내 아들을 5번, 압살롬을 3번 부르며 다윗이 절규하며 부르짖는다. 백성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전쟁에 이겼지만 부끄러워하고 있다. 아무도 다윗에 대해 해석하는 사람이 없다. 압살롬에 대한 통곡은 회개의 부르짖음이었다. 범죄 이후에 다윗은 3명의 자녀를 잃었다. 밧세바의 아들, 암논, 압살롬이 죽었다. 부성애로 울고 죄로 울었다. 내 아들 압살롬아~, 죽었어도 살았어도 구원이 안 된 인생은 슬픈 인생이다. 죽었기에 구원의 기회가 없다. 천국에서 만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아들들이 구원 못 받고 죽어가고 있다. 생명을 초월한 부모의 자식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압살롬, 가정 파탄, 나라를 망치고 아버지의 후궁을 겁탈하고 아버지를 치려 했는데 그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다. 구속사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부모와 자식간에 서로 고소한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조금 대신하며 하나님 아버지는 결코 자녀를 잊지 않으신다. 성문 앞에서 압살롬을 기다린 다윗처럼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맞아주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 자식을 위해 통곡하는 다윗을 보면서 우리를 위해 통곡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해 보자. 입으로 열거하기 어려운 압살롬을 너는 내 아들이라고 불러 주시는 것을 생각해 보자. 초2 어린이 큐티 적용)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이, 하나님만이 나의 두려움을 피하게 해 주신다. 365번 성경에 나오는 두려움, Application) 가장 좋은 소식은 구원의 소식이다.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들려주지 않겠는가? 너는 내 아들이라는 구원의 음성이 들리는가?
4. 다같이 일어나야 한다. 요압이 협박한다. 요압의 충고는 다윗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진정한 회복은 사명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압살롬의 죽음은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는 사건이다. 아히마아스의 순종, 사실적인 구스 사람의 보고, 모두 필요했다.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에 멀었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요압, 나 또한 완전하기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명을 강요하고 있다. 다윗은 끝까지 간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은 다윗이다. 다윗과 요압은 한 번도 끝까지 편한 관계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다윗이 해결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우리가 같이 가는 다윗과 요압을 이해해야 한다. Application)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다같이 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우리가 되었다 함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가 내 아들 압살롬아 부르짖는데 모든 부하들은 구원의 시각이 없다. 구원이라는 것은 끝도 없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외롭게 한다. 구속사의 사랑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녀 때문에 힘든 사람은 이 구속사의 사랑을 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는 비결이 된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면 그 자녀를 붙여주셨는지 모른다. 오늘 어떤 경우도 너는 내 아들이라 하시는 말씀 듣고 다같이 일어나길 바란다.
범희 형의 목장모임을 마치며 한 마디: 서로가 서로를 불쌍히 여겨주는 모습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목자인 나도 부족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목장모임이 되면 좋겠다. 기도도 많이 못하고 애통함이 부족함에도 목원을 많이 붙여주심에 감사하다. 올 한해 마무리 잘했으면 좋겠다.
기도제목)
진욱: 1. 신규 사업과 회사 사업에 기름 부어주시도록
2. 신 교제와 신 결혼을 위해서
3. 곧 형 가족이 한국에 와서 한동안 같이 살게 되는데, 말씀 안에서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허준: 1. 회사 일에서 좋은 결과 꾸준히 있도록
2. 운동 꾸준히 하고 관리 잘 하도록(몸매, DIET)
3. 신 교제와 신 결혼을 위해서
4. 가족 같은 강아지가 건강하도록
승인: 1. 양육 2주 남았는데 끝까지 잘 감당하도록
2. 감사함이 적어지는데 감사기도 자주 드리도록
인규: 1. 가족들이 구원받도록
2.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3. Q.T할 수 있도록
상수: 1. 다리가 건강하도록(깁스 치료 중)
2. 하나님을 온전히 붙잡고 갈 수 있도록
3.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범희: 1. 자존심이 줄어들고 혈기 내지 않도록
2. 가족들(특히 누나)이 구원 받도록
3. 신 교제와 신 결혼을 내려놓고 기도하도록
재원: 1. 동생 전도해서 다음 주 교회 올 수 있도록
2. 큐티를 하면 그 때뿐인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3. 부모님께서 건강하시도록
박철: 1. 각성을 위해 회개할 것들이 보이는 영적인 예민함을 주시도록(직장이 계속 좋은 환경으로 바뀌면서(12시반 출근 10시 이후 퇴근, 점심과 저녁 식사비 지원 등), 살만해지니 게을러지고 있다)
2. 직장이나 주변인들에 대한 객관화가 잘 되어 대인관계나 이직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갈 지혜를 허락해주시도록
3. 주신 기회와 달란트를 나누는 삶을 위해서 전공공부(원서)를 잘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도록, 인생과 사회를 바라보는 지혜를 주시도록
4. 말벌이 방에 안 들어오고 들어오더라도 쏘이지 않도록(자꾸 원룸방에 말벌이 한 마리씩 들어오는데 아직 출입구를 찾지 못해서 발견할 때마다 살생하고 있다)
호진: 1. 다음 주일부터 1부 예배, 3부 예배와 목장모임을 계획하고 있는데 실천할 수 있도록
2. 아침 7시 날마다 큐티할 수 있도록
3. 아버지와 형의 구원을 위해 애통해 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4. 3과목 APA 논문 잘 작성하여 제출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