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 아들 압살롬아
(앞부분을 못적음...)
압살롬은 자식이고 곧 자신이다. 자식은 곧 나이다. 그런데 그 자식이 나를 반역했다. 이겨도 저도 웃을 수 없다. 압살롬의 전쟁까지 가야한다. 자식은 누구도 핑계할 수 없는 싸움.
어떤 것 때문에 좋고 싫고가 사라지는 것이 믿음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지배가치, 이겨야 한다, 통제, 이성적인 자세 유지해야 한다. 이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친다. 자식과의 문제는 이것을 다 지킬 수 없다. 끝까지 이성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전쟁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은 것. 거기까지. 다윗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하면서 압살롬이 죽었다고 한다. 누구도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외롭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 외로움을 안고 가는 것. 다윗의 인생이 외로움의 극치.
구원의 과정에서 본다면 아히도벨의 계략도 따를 수 있다. 똑같은 일도 구원, 사단의 일이 될 수 있다.
다윗은 구속사의 대표적인 사랑. 다윗은 압살롬의 회개를 원하는데 부하들은 모른다.
구속사의 사랑은 무엇인가. 믿음이란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 다윗의 부하들은 사람들 자체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다윗은 애타게 아들을 기다린다. 구속사의 사랑이다.
적용: 여러분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까? 자녀가 내 문제로 인정하십니까?
셋째, 너는 내 아들이다.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듯이 기다린다. 이 모든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기다린다. 아히바스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으면 얼마나 좋나. 모든 성도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식이 복음이다.
이 세상은 공평한 세상이 아니다. 하나님이 유일하게 공평하다. 하나님 자체가 예수그리스도로 가셔서 공평한 삶을 살지 않고 가신다. 이 세상은 불공평하다. 할 것이 없다. 좋은 소식은 공평한 소식이 아니다. 공평치 못한 삶에서 복음의 소식을 듣는 것이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압살롬을 향한 다윗에 회개는 울부짖음이다. 다윗은 세 명의 자식을 잃는다. 죽었어도 살았어도 구원이 안 되는 인생은 슬픈 인생인데 이 인생이 다윗이다. 죽었으니 구원의 기회가 없는 것이다.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 천국에서 만날 수 없는 슬픔.
생명을 초월한 부모의 자식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인데. 압살롬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다. 내가 대신 죽었다면.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다. 이런 억울함을 당하고도 초월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다. 구속사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자식을 고소하고 싸운다.
다윗이 구속사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그러나 부모는 자식을 잃어도 하나님 아버지는 자식을 잊지 않는다.
자식들을 이 땅에서 구속사의 사랑을 모르면 아버지가 사랑하는데도 무섭다.
말씀이 없으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른다. 나는 항상 이겨야 하는 마음. 하나님만이 내 두려움을 막아주신다.
적용: 가장 좋은 소식은 구원의 소식 입니까? 가족에게 구원의 소식을 들려주겠습니까?
넷째, 다 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요압의 충고는 다윗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합니다. 진정한 회복은 사명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구원의 소식입니까? 지나고 보면 다윗에게 모두 필요한 사람이다.
힘들지만 이 땅에서의 삶.
적용: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같이 가야하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우리가 되었다 함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들을 보게만 하는 것.
기도제목
진욱: 시험준비 잘할 수 있도록.
기승: 어떤 문제가 있을지 찾을 수 있도록.(요즘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승현: 한주간 잘 버틸 수 있게.
주혁: 평소에 나눔을 깊이 할 수 있도록. (최근에서야 나눔을 하기 시작하는..)
헌: 잘 묻고 결정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