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11.16 주일예배
말씀 : 욥기 8:1-7
제목 : 심히 창대하리라.
어떻게 하는 것이창대한 것일까?
1) 나의 고난에 정죄하는 사람이 꼭 있다.
힘들어 하는 욥에게 그의세친구들은 인과응보의 논리로 그를 질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죄 때문에그에게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니라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엘리바스는‘하나님은 심판하는 자’, 빌닷은 ‘논쟁하는 자’, 소발은 ‘지저귀는 자’)
>>나눔 : 나는 고통 당하는 사람에게 정죄하는가?
2)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4절)
고난 가운데서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나눔: 하나님을 찾는가? 저속한 것을 찾는가?
3) 청결하고 정직해야 한다.(5절)
예수님을 아는 것이 의로운 것이다. 세상에는 진정한 안식처가 없다.
>>나눔: 말씀 묵상으로 인해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복받지 못할까 두려워 보고 있는가?
> 그날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존중하고 믿고 가는것이 창대해지는 것이다.
> 진정 감사한 것은 말씀으로 내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눔>>
하나님을 찾는가? 저속한 것을 찾는가?
A : 심적, 육체적으로 힘이 들때 말씀이 생각나지 않나 술을 마신다.
마시고 다음날엔 모든것이후회가 되며 허망함을 느낀다.
고난중에 하나님을 찾지 않고 저족한것을 찾는다.
음악을 듣거나 악기 연주에 심취한다. 휘귀음반을 수집하여
거기서기쁨을 얻으려 하고 위로 받으려 한다.
B : 회사에서 선생님들 중에 논술선생님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좀 쌩하게 행동하였다.
모든사람과 잘지내고 싶기에 그분의 행동이 불편하였다.
그 분행동이 신경이 쓰여 따로 영양제까지 챙겨다 줬음에도 나에 대한 그의 행동은 바뀌지 않자
‘그럼 나도 무시할거야!”라고 생각하며 그를 무시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동안 사람에게 잘보이려는나의 방법의 한계를 보았고
내 지혜보다는 하나님께 묻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걸 깨달게 되었다.
C : 늘 이사님이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욕을 했는데 욥기를 통해 내가 불안하면
그 불안을푸는 방법으로 이사님을 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불안을 남 탓하며 회피했던 것이다. 욥을 최악의 상태에서 하나님께 고하고 부르짓었는데
나는회사 직원들과의 단체카톡방에서 이사님을 씹는 저속한 방법으로 풀었다.
그리고 오늘 적용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것이 창대케 되는 거라고 하셨는데
‘이미욕을 해버렸네…내일부터 적용해야지..’이런 마음으로 매일 욕하고 있다.
나는 고통 당하는 사람에게 정죄하는가?
D : 내 고난에 정죄하는 언니가 있다. 우리 엄마도 알고 지낼 정도로 친한 언니인데
지금 내가겪고 있는 엄마와의 갈등을 이해해주기 보다는 언니의 잣대로만 나를 정죄한다.
그런 말들이 듣기가 싫어서 서서히 거리를 두고 있다.
반면에 내가 정죄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 동갑내기 작가가 자꾸 지각을하는 것을 보면서
잦은 지각으로 인해 늦어지는 업무처리에 내가 피해를 받는 부분 때문에 화가난다.
그 동료의 행동이 나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이싫고 본인의 일임에도
내가 좀 도와주는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에도 어이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회의중에 내가 낸 의견에 “그건 좀 아닌것 같다.”라는소리를 듣고
너무 기분이 나빠가 그 뒤로는 그 친구를 마음속으로 마구 정죄하였다.
그리고 나만의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있다.
E : 욥의 세친구를 보면서 너무 짜증났다. 대체 왜 저런 말을 욥이 듣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수요예배 때 빌닷 같은 내 모습을 보았다.
예전에 어떤 지체가 뚱뚱한 외모 때문에 고민할 때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며
내 방법들을강조하였다. 예전 목자언니에게도 남여 교제에 관해 내 세상적 지식들로 충고 했었다.
이번주에 동생 아기를 봐주다가 아기가 조금 다쳤는데 그것을 보고 동생이 나에게 뭐라고 하여
너무 화가났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체 왜 나에게 이러시냐고 욥처럼 토로하였다.
온전히 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달라고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