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씀 *
#65279;제목 : 사랑의 도망
본문 : 사무엘 하 15장 13절 ~ 37절
아이가 너무 큰 잘 못을 했기에 때려야만 하는데 맞고 있는 것이 감사할 때도 있지만 고스란히 맞고 있는 자식을 볼 때 어떨 때 밉기도 합니다. 원수 갚음으로 맞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 많이 하신 일이 피해서 도망 다니신 일입니다. 대항 하신 것은 성전 청결 사건 등 몇 가지 되지않습니다. 이 땅에서 싸울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도망가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것이 사랑하기에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등 이런 것하고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그런 인간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원수를 위해서 생명을 내어놓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사랑의 도망이 무엇인지를 다윗의 도망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자기 방어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13절 14절입니다. 다윗은 이제 부하들에게 일어나 도망하자라고 그의 신하들과 지체들을 지금 독려 했습니다. 그동안 다윗은 멘탈 붕괴가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아들 압살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마음을 훔치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입맞춤을 해주며 마음을 얻어간 세월이 지금 4년이나 되니까 이제 압살롬이 마음을 잡았나 믿고 싶은 것이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압살롬이 마음을 잡지 않아도 다윗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반역을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다그칠 수가 없는 것이 다윗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성숙의 가시적인 증거란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 많아 보인다고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사랑이란 보이는 행동으로만 측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칭찬과 따뜻한 미소 격려 등은 계산된 친절일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편하기 위해서 은혜스럽게 계발한 기술일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방어를 내려놓고 다가간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나보다 남을 더 존중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방어를 내려놓고 즉시 나라와 압살롬에 대한 사랑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급박한 순간에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구별 했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반역이 일어나니까 누가 내편인지 니 편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니 동족끼리 서로 죽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니편 내편 할 수 없는 것이 다윗에게는 다 자기 백성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다 자기 새끼였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에게는 편이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죽지 않는 것이 다윗의 우선 순위였습니다. 이것은 압살롬을 대할 때처럼 기다릴 틈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기에 급하게 도망을 갔습니다. 이런 생각은 무슨 일을 당하고 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훈련이 되어야 급할 때 생각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씀에 힘을 알고 통치를 받는 사람이기에 이 일이 우연히 온 것이 아님을 직감 할 수 있었습니다. 밧세바 사건과 우리아의 사건에 대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칼이 내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예언을 이미 받았었기 때문에 이 일이 자기 삶의 결론 이라는 것을 즉시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묵상의 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늘 묵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로부터 도망을 가야하는가? 아들로부터 도망을 가야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마귀들이 속삭입니다. 도망가는 것은 지는 거다 너는 자존심도 없냐 넌 왕 아니냐 맞습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천년 요새입니다. 다윗은 백전 노장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했습니다. 실전 경험이 없는 압살롬을 다윗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면 압살롬이 왕이 될텐데 자기는 압살롬에게 물려줄 준비를 다하고 있는데 그 조금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 너무 안타깝지만 이것이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조금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해석하면서 적용을 보여주면서 가는 것이 성숙이고 사랑이고 성도로서 의무입니다. 다윗은 계속 압살롬의 입장에서 나라와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적용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고르고 고르신 제자들조차 3년간이나 같이 생활하고 훈련을 받고 사랑을 받았지만 위기가 오니까 주님을 저주하고 부인하고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나는데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상처를 통해서 성숙해 지는 것 같습니다. 상처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제 책 상처가 별이 되어가 나왔습니다. 별이 되려면 상처는 필수 코스라고 봅니다. 다윗은 아들의 반란으로 여러 가지를 깨닭게 되고 아주 성숙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 죽었고 큰 아들은 자기 딸을 동생 급탈했고 또 이제 그 이유로 작은 아들이 큰 아들을 죽였고 또 작은 아들은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당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이처럼 이 장면처럼 힘들겠습니까? 다윗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면 싸웠겠지만 아들이어서 도망갔습니다. 어떻게 이기지 못해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홰손 되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나의 자존심이 무었 입니까? 항상 하나남의 영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면 하나님도 다윗의 영광을 먼저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내가 달려 갈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마치려하면 나의 생명도 조금도 귀하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의 고백의 다윗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 방어입니다. 자기를 증명하고 변명하고 자기가 옳은 것 증거 하는 것 상처를 피하고자 자기를 방어하는 것이 얼마나 사랑의 노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는지 모릅니다. 성숙한 사람들은 자기 방어 없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들은 그냥 사랑을 합니다. 그런데 다윗 속의 세상에 사람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다윗은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줄 알고 자기 방어를 내려놓았습니다. 훗날에 보면 주님이 얼마나 다윗을 방어해주시는 지 보게 됩니다.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는다고 했는데 이 땅에서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그 사랑은 타락한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도망 가야될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다윗의 사랑이 아들이 우상이라서 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착각하면 되지 않습니다. 아들을 위해 못 버릴 것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불륜에서 재산 싸움에서 중독에서 도망을 가라는 것입니다. 적용해보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주체 자를 사람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으로 봅시다. 싸우지 말고 자기 방어를 내려놓고 사랑으로 도망 가야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나의 자존심이 상할지라도 공동체가 홰손되지 않는 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쉽게 내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무엇인가?
두 번째는 사랑의 도망을 할려면 환란 당한 자를 끝까지 배려하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아마도 아둘람 공동체 지체들이 신하가 되어서 지금 다윗이 가는 그 길을 따르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 16절에 다윗이 갈 때에 후궁 열 명을 남겨두어 궁을 지키게 하는 것은 싸우지 않겠다는 표시입니다. 후궁이 그래도 압살롬의 엄마뻘이니 죽을 염려가 없다고 생각해서 남겨 놓았겠지만 아직도 다윗은 사람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직도 그것은 다윗의 한계였습니다. 17절에 이제 왕이 나가서 벧메르학에 멈춰섰습니다. 이게 마지막 집이다. 떠나면서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마지막 집 같은 오늘 본문에는 중요한 지명이 나옵니다. 결정적일 때 이런 지명이 나옵니다. 그랬는데 이제 마직마이라고 생각하고 멈춰섰는데 18절에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그렛 사람 모든 블렛 사람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육백 명의 사람들이 왕 앞으로 행진하는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가드에서 온 육백 명이 같이 행진을 하는 것입니다. 왕이 되고 수많은 인재가 등용되었지만 또 다른 환란 당한 자 육백 명이 다윗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가드 사람들은 사울에게 쫓김 당할 때 도와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아둘람 공동체 육백 명 있었습니다. 가드 사람 육백 명은 블레셋 망명 갔을 때 다윗에게 은혜 받고 그때부터 이렇게 저렇게 해가지고 나중에 이스라엘에 망명합니다. 이런 사람들이었으니 굉장히 무시 받는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결정적일 때 다윗에게는 그렇게 정말 환란당한 자들이 늘 옆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사귀는 사람들의 종류가 시기마다 달라졌습니다. 어렸을 때는 믿음이 없어서 믿음의 지체가 무었 인지 몰랐었는데 내가 거듭나고 나서 보니까 그렇게 병원에서 큐티를 같이 하던 집사님들 맨 처음 구역에서 나누던 재수생 모임 이런 끊임없는 모임에서 수 없는 지체들이 내가 고난이 올 때마다 점 점 점 지경이 넓어져 갔습니다. 이렇게 지경이 넓어져야 정상입니다. 일생 신앙생활을 했는데 내가 믿음이 없다면 나는 여전히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내 구역 식구만 알았을 것입니다. 고난이 보석이라고 하는 것은 고난 자체를 해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믿음의 공동체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참 믿음의 공동체에 어려서부터 있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제가 다시 보면서 제 옆에는 늘 힘든 사람들이 있었던 거 지금은 또 다른 종류의 힘든 사람들이 제 옆에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것이 제가 어려서부터 다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녔습니다. 진짜 저는 공부하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교회를 다녔지만 내가 목회를 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시대의 어른들은 여러분 보기에도 다 착해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참 못#46124;지 않아요? 왜 그런가 하면은 정말 교회에서 보냈는데 지금은 모든 그 시간에 공부만 해요 공부만 해서 이기고 이기는 것 밖에 모릅니다. 세상은 점점 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좋은 이야기만 들은 사람들은 문화가 있어서 착할 수밖에 없는데 맨 날 이기고 이기는 것 밖에 모르기 때문에 지금의 세상은 점점 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공부 잘한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이 나이 되어서 보니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절대로 잘 살지 않습니다. 교회를 가야합니다. 그냥 교회에서 살면 됩니다. 길고 짧은 것은 나중에 늙어서 재어 보면 됩니다. 그래서 큐티를 해야 합니다. 공부 하나도 하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큐티 하면 제일 똑똑해집니다. 고기를 낚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19절 20절 봅니다. 잇대는 이방인 동시에 쫓겨난 자였습니다. 본국에서 추방되어서 법적인 지위를 모두 상실해서 이제 이스라엘 땅에서 유리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 실정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에서 다윗이 다시 돌아와서 왕국이 되었으니 거기에서 다시 망명해서 다시 이곳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이방인을 무시합니다 그러니 이쪽저쪽에서 다 무시당하는 지금 탈북자처럼 무시당하는 지금 그렇다 보니까 다윗과 같이 유랑자가 되어서 같이 가기가 쉽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데 너무나 다윗의 진가를 아는 것입니다. 적용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적용하기도 쉬운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였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다윗의 여유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광야로 들어가는 생활 속에서도 너무나도 부유한 다윗이 참된 부자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너는 압살롬에게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해라 이러면서 자기는 쫓겨 가는 사람인데 쫓겨 가면서도 자기 죄를 보는 사람들은 같이 갈 사람 돌려 보내야할 사람을 정확히 분별하면서 깨어서 끝까지 견디고 준비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3편이 이때 쓴 글입니다. 사무엘 하 읽으면서 시편 3편 읽으면 아주 이해가 쉽습니다. 주님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 많습니까? 그들이 그냥 나를 빗대어 하나님도 너를 돕지 않는다 이렇게 빈정 되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 많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같이 읽으면 이해가 쉽습니다. 시편 3편 4편 55편 41편이 이때에 쓴 것입니다. 도망가면서 정처 없이 울면서 쓴 시입니다. 나는 이렇게 이 때를 배려하면서 적용하고 가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항상 이타적으로 적용하면 배풀어 주시는 은혜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만 생각하고 내 할 일만 하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겉으로 넘어진 자 같았지만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회복되었습니다. 회복된 넘어짐은 도와줄 것이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아들 때문에 다윗이 압살롬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사랑의 도망을 하려면 이런 어려운 상황에 오래 있어야 됩니다. 어떤 집사님은 딸의 10년동안 폭식증이 있고 아들은 겉 잡을 수 없는 분노를 가지고 이제 아버지도 너무 훌룡하셔서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왜 들리지 않는지 아세요? 아들 딸이 너무 공부를 잘하고 그 분도 일류 대학을 다녀서입니다. 십년을 괴롭혀도 말씀이 들리지 않는데 드디어 아들이 일류대 입학을 앞두고 책가방을 아버지 보고 들고 있으라고 벌을 주니 분노가 치달아가지고 그것을 들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을 들고 낮아짐을 경험하면서 드디어 이제 아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거에요 어떻게 사랑으로 도망가야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면 드디어 말씀이 들리면서 나의 인생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지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책이나 방송을 접할 때도 힘든 지체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하는 정말 어떤 때는 신기하기까지 한 일이 본인에게 생겼다고 이것이 드디어 사랑에 도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복 된 넘어짐은 도와 줄 것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남을 그렇게 도와주게 되면 환란 당한 자를 배려하게 됩니다. 이러 면은 드디어 돕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나에게도 제자들에게도 그래서
세 번째는 돕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세명의 사람이 나오는데 잇대 후세 사독이 나옵니다. 첫 번째 환란 당한 자 잇대가 목숨을 걸고 돕기 시작합니다. 21절이에요. 가드 사람 잇대는 곁에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블레셋에 망명 갔을 때 잇대는 다윗에게 관심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런데 쫓겨난 나그네로 이제 명명이 #46124;습니다. 생각 못한 잇대가 이스라엘에 온 것은 하나님 때문에 왔는데 하나님의 종이 떠났는데 자기는 당연히 한 주인 섬기겠다는 것이죠 나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몰라도 하나님의 사심과 살아계심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다윗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격과 신앙을 보면서 감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잇대도 가난하고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말씀이 들리고 다윗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십자가의 복음은 그 시대에 가장 힘든 사람만 다윗 옆에 모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얼마나 내 옆에 다른 사람이 계속 모여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다윗에게 그만큼 십자가 복음은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들리지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에 장사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실수가 있었지만은 실수가 있었다고 백성들은 다 압살롬을 따라 떠났는데 잇대는 다윗에게서 하나님을 알고 배우며 예수 씨를 보고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22절에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가라 허락을 했습니다. 진심으로 알고 같이 가자 우리는 줄을 잘 서야 출세한다고 하지만 잇대가 도망가는 다윗에게 줄을 섰기 때문에 앞으로 이후에 이스라엘 군장이 되었고 자신과 가족과 부하들의 생명까지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항상 진리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한데 진실한 사람들은 진리 편에 서게 되어있습니다. 이단에 가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 욕심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속아서 가는 것이 아니고 욕심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23절을 봅니다. 모두가 압살롬에게로 갔다고 생각했지만은 그냥 아니더라구요. 다윗이 초라하게 이제 떠나기 시작하니까 대성통곡하면서 거기에 같이 합류하는 백성들이 너무나 많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기드론 시내에 탁류 어두움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마지막 집 탁류 어두움의 기드론 시내를 건넜습니다. 천년의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드론 시내가를 건넜습니다.하나님만이 산성되시고 방패 되게 하시는 경험을 이런 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다급한 상황에서 모든 백성을 먼저 건너가게 하고 이것이 얼마나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있는데 마지막에 건넜습니다. 다윗은 목동 시절 사자나 곰이 자기 양 새끼를 물어 가면 따라가서 그 야수들을 치고 양 새끼를 구해왔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걸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원래 다윗은 이렇게 택한 자인데 드디어 다윗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목숨을 걸고 나를 도와줄 사람이 생기는 것도 내가 계속 울면서 회개하고 갈 때에 도울 사람을 보내주시고 또 다음 할 일을 보내주십니다.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울면서 회개하고 가는 이 장면 23절에도 나오고 30절에도 또 나오는 것입니다. 잇대에대한 충성을 보면서 고난 과 위기가 왔을 때 충성과 우정과 사랑에 사람들이 나타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끝까지 배려하고 가는 사람인가 나의 충성과 사랑은 어떤 종류일까 나를 돕는 사람 두 번째는 말씀 인도 잘 받으며 가도록 아비아달과 사독이 돕습니다. 24절을 봅니다. 사독과 아비아달 모두 대제사장입니다. 다윗 시대의 양대 제사장 가문이 모두 다윗 편을 들었습니다. 압살롬에게 아무리 사람들이 갔어도 중요한 제사장이 다 이쪽 다윗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25절을 봅니다. 우리가 레윗 사람들이 피난을 가는데 예루살람렘 성에서 언약궤를 가지고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이 내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다윗은 궤를 도로 가져다 놓으라고 합니다. 나를 위해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얼마나 생명처럼 생각했는지 다 아시죠 그런데 죄 짓고 도망가는 광야 길에 자신이 언약궤를 가지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혜의 빛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비춰진다면 죽고 살고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언약궤는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면 돌아 갈 수 있는데 이것이 잘되지 않습니다. 다윗의 신앙이 한 단계 성숙했고 하나님이 낮추실 때 낮아지는 자는 반드시 높임을 받습니다. 다윗은 이미 언약궤를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체 말씀 자체를 의지하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가 엘리 제사장 때에는 언약궤 가져가서 부적처럼 가져갔다가 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언약궤는 부적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자체를 사랑해야 합니다. 26절에 그러나 그가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하나님이 용서 해주어도 감사하지만 그리 하지 않더라도 불평하지 않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인생 최대의 고난이 왔는데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진면목이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그를 하나님이 버리셨습니까? 다윗에게 누구보다 엄한 징계를 내리셨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 회복 시키셨습니다. 인생은 악하고 음란합니다. 연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럴 때에 불평하지 말고 정말 순히 징계를 받음으로 더 큰 고통으로 나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에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한 손아래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들을 높이시리라 29절을 봅니다 다윗을 생각하는 두 제사장의 각별함을 볼 수 있습니다. 충성을 끝까지 받혔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따로 있어도 함께 함께 있어도 따로 말과 행동을 뛰어 넘는 함께함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의 공동체가 다윗을 돕는 것이고 서로 돕는 것입니다. 적용은요 징계를 피하기 위해서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을려고 하는가 아니면 말씀 자체가 상급인가 우리는 자꾸 나한테 어려운 일이 오면 말씀으로 부적 같은 말씀 듣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미약하나 후에는 창대하리라 이런 거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이런 거 징계는 안 받고 자꾸 이렇게 징계를 피하기 위해서 말씀을 보면 되지 않습니다. 돕는 사람 세 번째는 모사인 후세가 도왔습니다. 31절을 봅니다. 이제 다윗이 자기 가장 친한 친구 아이도벨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도벨의 모략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하면 그것이 말씀인거에요. 그 사람이 압살롬 편에 갔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이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여 주세요. 32절을 봅니다. 마루턱은요 감람산의 정상입니다. 감람산 길로 가면서 아이도벨의 모략의 실패를 위해서 기도를 했는데 정상에 오르자 후세가 등장을 했습니다. 아이도벨과 후세가 나란히 등장을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즉시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시작할 때 감람산 올라가면서 기도 했더니 딱 정상에서 후세를 만났습니다. 기도하면 진실로 기도하면 즉시로 응답하심을 믿습니까? 믿기 바랍니다. 믿으시면 아멘 33절 봅니다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나하고 같이 가지 말자 34절에 압살롬에게 너 가라 내가 전에는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는데 지금은 압살롬의 종입니다. 가서 거짓투항을 하라는 것입니다. 35절에 니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사독과 아비아달 대제사장이 있다. 그들과 서로 주고 받으면서 36절에는 그 제사장의 아들들에게 뭐 있으면은 모든 소식을 그들 편에 내게 알려라 모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인간의 모략을 하나님의 모략으로 바꿀 수 있는 후세를 하나님이 허락해주신것입니다. 37절을 보면 후새도 들어 가고 압살롬도 들어 갔습니다. 충성하는 자 반역하는 자 가 같이 들어갔습니다. 이세상이 얼마나 치열한 전쟁터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회사에도 충성하는 자 반역하는 자 같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집에도 하나님 충성하는 자 반역하는 자 같이 삽니다. 어느 공동체에도 충성하는 자 반역하는 자가 같이 있습니다. 후새는 반역하는 자의 그런 작전 계획을 폐기케 하면서 다윗을 돕는데 일조 했는데 모든 세상에서 내가 회사나 사랑의 도망을 해야겠는데 반역하는 자의 권세가 너무 커서 우리가 모략을 파 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요새 유명하다는 드라마를 설교하려고 억지로 봤습니다. 그러면서 그 직장생활 남자들의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든 정도를 넘어서 처절한 거를 보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다고 하는데 많이 눈물을 흘리면서 봤습니다. 정말 우리아들들도 최고 학벌을 갔는데 너 대학 나온거 맞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거기 그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의 자녀 남편 오빠와 동생들이 그런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몸부림 치는 것을 볼 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왕 따를 당하고 왕 따를 시키고 능력 없으면 바보 취급하고 있는 사람끼리 정말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정말 인턴으로 들어간 아이들끼리도 반역하는 사람하고 충성하는 사람하고 사실은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바보 취급을 당하겠습니까? 거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들 교회는 내가 그런 치열한 직장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우리 부목사님들이 목사님은 참 모른는 것이 많다고 이러는데 목사님이 몰라서 훈련이 되지 않아 우리 부 목사님들이 해본 것이 없어서 또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은 정말 몰라 우리가 힘든지를 정말 몰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죠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정말 남자들이 얼마나 힘든 지 체휼이 되니까 시집살이를 해보니까 그게 체휼이 되어 가지고 얼마나 남자들이 밖에서 돈 버는 것에 대해서 여자들이 일어나서 경배하고 엎드려서 월급봉투를 받기 바래요 발을 다 씻겨 주고 하루 종일 24시간 밤도 없고 낮도 없어 계속 퇴짜를 놓고 이러는데 계속 당하고 오는데 집에 오면 애 보라고 나 하루 종일 애 보느라고 힘들었다고 애 하나 보면 끝이지만 남자는 몇 명의 상사들 모시고 무시와 멸시를 당하고 있는데 정말 남자들한테 엎드려 경배하기 바랍니다. 알았어요? 정말 내가 체휼을 많이 했습니다. 이번 수요일에 정 목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그 아버지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대기업에서 사람들을 내보내는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 심적인 고통 때문에 책임지는 마음으로 회사를 사표내고 나와서 거의 2년 동안 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보내는 것도 힘듭니다. 충성하는 사람 반역하는 사람 같이 있다 보니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든데 거기에서 어떻게 사랑으로 도망을 가야 되겠냐고 직장에서 어떻게 사랑으로 도망 가야겠냐고요 내가 이길려고 하면 다 돌아버립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정말 십자가로 도망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략밖에 없는데 결론적으로는 사랑으로 도망가는 것은 네 번째 사랑의 도망은 십자가 지는 사랑인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십자가 지고 부부간에서도 십자가 지고 이것이 사랑의 도망인 것입니다. 30절 봅니다 나의 죄는 옆에 있는 사람까지도 고통이 커서 머리를 가리며 울며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그렇게 쫓겨 다닐 때 머리를 감싸며 맨발로 울며 올라갔다는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아들 때문에 맨발로 울며 올라가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고통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십자가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울 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버텼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징계라고 확실히 생각이 드니 울며 울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진짜 맨발로 머리를 풀고 울면서 올라가니 이 초라한 모습을 보고 다윗의 백성들이 통곡을 같이 하면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이제 예루살렘 성도 포기하고 아들도 포기하고 자기를 도와주겠다는 잇대도 포기하고 후궁도 포기하고 아끼던 법궤도 포기하고 왕의 권리도 포기하고 결국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하나님처럼 아들을 죽게하는 그 사랑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다윗도 압살롬을 죽이는 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길인 것입니다. 사랑의 도망 길에 그냥 다윗이 우니까 백성들도 자기네 모든 고통 같이 울면서 가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섬기려는 목적으로 자신을 내어 준다는 것은 무시와 거절로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것을 백성들에게 보이며 가는 것이야 말로 사랑의 온도가 측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도 배반한 친구들과 때린 병사들을 위해 함께 돌아 가셨습니다. 성숙한 사람들의 두 가지 특징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쉬운 것이고 또 구원을 위해서 못할 일이 없는 경건이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은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정신이 맑아도 무능한 사람이고 술에 취해도 유능한 사람이 있습니디. 선지자는 지적인 것보다 하니님의 심정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렇게해서 다윗은 처절하게 울면서 가지만 우리 주님도 멀리 예루살렘을 보면서 그들의 죄로 인해 우셨고 그 누구도 겪지 못한 고통으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회사에서도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으로 도망가면 상대방이 다 압니다. 충성하는 자 반역하는 자 결국 충성하는 자가 이기는데 주의 사랑으로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고 아무도 겪지 못한 큰 슬픔과 고통을 당하게 만든 것은 우리의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사람의 실로 가공할 만한 죄는 아담의 죄로 인해 인류가 죄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내 죄로 나 뿐만 아니라 내 옆의 모든 식구들은 물론 하나님까지 눈물 흘리게 하는 죄 짓기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압살롬은 이 죄를 짓고 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다윗은 끝까지 눈물을 흘리고 가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것입니다. 왜냐하면 끝까지 압살롬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까지 다 생각을 내어 주고 다 가는데 다윗이 끝까지 압살롬 우리 아버지 나쁜 놈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그 상처가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나쁜 놈 이걸로 끝난 것입니다.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적용해보면 십자가 지는 사랑을 곳곳에서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으로 도망을 가야합니다. 내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타적으로 사랑의 덕망을 가야합니다. 정말 사랑의 덕망을 가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슬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들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딸이 대학에 들어 갔는데 한달 내내 술을 마시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갖은 공갈 협박을 다 해보지만 술을 매일 마시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어느날 열두시 넘어면 잠그겠다 부부목장 마치고 집에오고 있는데 열두시 넘어서 오지 않다가 반이 넘어서 와서 문을 잠그니 발로 문을 차면서 온동네가 떠나도록 발길질을 하는데 너무 창피하지만 저 창피하지 하면서 참았는데 온동네를 깨우고 참다참다 참고 있던 동네 사람들이 잠좀 자자고 그래가지고 할 수없이 문을 열어 줬는데 제가 그 장면을 생각해보니 이것을 어디가서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무슨 상처가 많아 술을 마시나요? 예전보다 지금이 편해서 그렇게 못#46124;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 때 누가 술을 마시겠어요. 그런데 이제 사랑의 도망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분은 딸이 이렇게 속을 썩이는데도 불구하고 그 밤에 온 동네 독종이 퍼지듯이 나를 힘들게 해도 아직도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것이 나다 엄마가 나다 이렇게 회개하면서 글을 쓴 것입니다. 내가 블레셋과 언약괘를 가졌음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자기 힘대로 행하여 온 블레셋에 독종을 발하게 한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요즘 들어 더욱 내 혈기를 조금이라도 부리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남편과 자녀들을 보며 이제 내 속의 블레셋은 거할 곳이 없는 것을 느낀다고 말씀을 보면서도 말씀대로 행하고 누리지 못하는 나를 주님이 깨우시며 이제는 말씀대로 살라고 하신다 우리는 어떤일을 당해도 모두가 자기 죄를 보면서 이렇게 가는 바로 이것이 십자가 사랑이 아니겠는가 도망 갈 곳이 없습니다. 도망 갈 곳이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로 가서 십자가에 딱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 나눔 *
천대근 목자님 적용 질문
1) 나는 이타적인 사랑으로 도망 가는가?
2) 끝까지 환란당한 사람 배려하며 가는가?
3) 나의 충성은 어떤 성질의 것인가?
장병학 형제님
목사님의 직장 이야기에 많이 공감이 갔음.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사랑으로 도망가지 못하고 내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음. 직장에서의 힘든 시간 토요일 피곤하지만 양육하며 살아나며 주일날 예배와 목장 나눔으로 살아남에 감사하고 있음.
한성실 형제님
그동안 말씀안에서 가치관이 제대로 서 있지 못했는데 세상 가치관 무너지고 말씀 가치관 들어오는 것 같다. 세상적인 성공으로 다시 나만의 성벽을 쌓는 것이 의미 없음을 알았기에 고난 속에서 절제와 인내로 적용하며 살 때 인것 같다. 그동안 쓸데없이 돈 쓰는 것에 대한 자각 없이 살았는데 돈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가르쳐 주신 지금의 고난이 돈을 지혜롭게 사용하라는 훈련의 시기인 것 같다. 육이 무너져야 말씀이 들린다고 하신 목사님 말씀처럼 지금 이 고난의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나에겐 축복인 것 같다. 이 같은 나의 약재료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고 싶다.
최진우 형제님
지금 하는 사업에 대한 고민이 많다. 하나님의 뜻 잘 묻고 지혜롭게 대처하고 싶다
황명수 형제님
일대일 양육 받고 있는데 회사 생활 하며 하려니 힘들 때가 많다. 끝까지 양육 잘 받아서 거듭나고 싶다.
나머지 분들은 한마디씩 하셔서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 기도 제목 *
천 대근
1.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느 욕심 내려 놓도록
2. 스마트폰으로 음란한 기사 보지 않도록
3. 헬스 시작해서 꾸준히 하도록
김 장순
1. 내게 일어난 이 사건이 고생의 사건이 아닌 주님 만나는 고난이 축복이 되는 사건이 되길
2. 이사 문제 잘 해결 되길
한 성실
1.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잘 묻고 가기
2. 잘 버티고 잘 견뎌내며 말씀으로 신뢰하며 인생의 가지치기 잘 하기
3. 배신 당할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만 의지하기
장 병학
1. 큐티 통해서 말씀이 들리고 회개의 영이 넘쳐나길
2. 여자 친구 눈 건강해지길
3. 팀장 욕 안하기
최 진우
1.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라도 분노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기다릴수 있기를
2. 지금 주어진 상황에 대해 말씀으로 인도 받고 판단할 수 있기를
3. 세상적인 선함이 악함을 알고 말씀으로 주시는 긍휼은 구분할 수 있기를
황 명수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의 나약함을 묻고 지혜 많이 부어 주시기를
2. 큐티를 통해서 말씀이 깨닭아 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