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사무엘하 15:13-37
"사랑의 도망"
이 땅에서 예수님이 하신것이 대부분 대항보다 피해 도망하신 일이다. 싸울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 도망가야 할 때가 있다. 사랑하기에 도망하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것 같은 인간의 사랑이 아니다.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차원이 다르다. 원수를 위해서 생명을 내어놓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생명을 내어놓는 사랑의 도망이 무엇인지 보자.
1. 자기방어를 내려놓는 것(13~14절)
다윗은 압살롬을 기다렸고 압살롬이 백성들에게 입맞춤을 해주며 4년이나 백성들의 마음을 뺏으니까 마음을 잡은줄 알았는데 드디어 반역이 일어났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사랑이 많아 보인다고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은 보이는 행동으로만은 측정하기 어렵다. 칭찬과 따듯한 미소는 은혜스럽게 개발한 기술일수 있고 계산된 친절일수 있다.
사랑은 자기방어를 내려놓는 것이다. 사랑은 나보다 남을 더 존중하는 것이다. 다윗은 급박한 순간에 중요한 일을 분별했다. 우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반역이 일어나니 압살롬은 네편 내편이 있었지만 다윗은 다 자기 백성이고 하나님의 생명이었다. 최소한의 죽음으로 막기위해서 기다릴틈이 없이, 사랑하기에 급하게 도망을 갔다. 이런 생각은 평소에 훈련이 되어야 급할때 생각이 난다. 다윗은 말씀의 힘을 알고 통치를 받는 사람이기에 이 일이 우연히 온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 알 수 있었다. 이 일이 자기 삶의 결론이라는 것을 즉시 인정할 수 있었다. 이것이 말씀 묵상의 힘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삶이다.
누구로부터의 도망인가? 아들로부터이다. 도망가는 것은 지는 것이라고 마귀가 속삭인다. 넌 왕인데 왜 도망가냐? 자존심도 없냐? 실전경험이 없는 압살롬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지만 아들이기 때문에 사랑하기에, 도망갔다.
압살롬에게 물려줄 준비를 다 했는데 그 조금을 기다리지 못한 압살롬. 너무 안타깝지만 이렇게 안되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도 그 조금을 기다리지 못한다. 이런 것을 해석하면서 적용을 보여주면서 가는 것이 사랑이고 성도로서의 의무이다.
사람은 상처를 통해 성숙하게 된다. 성숙하기 위해서는 상처가 필요하다. 상처는 나쁜 것이 아니다. 상처가 별이 되어 처럼, 별이 되려면 상처는 필수코스이다. 다윗은 밧세바 사이에 낳은 아들이 죽었고, 큰아들은 여동생을 강간했고, 또 아들이 죽임을 당했고, 작은 아들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 이러한 큰 상처를 통해 다윗은 더욱 성숙해갔다.
도대체 자존심이라는게 무엇인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내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면 하나님이 내 영광을 생각해 주신다. 다윗은 자신의 자존심과 생명보다 하나님의 영광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 방어이다.(자기를 증명하고 자기가 옳은 것을 증명하고 자기가 맞다고 주장하는 것) 상처를 피하기 위해 자기방어를 하는 것이 얼마나 사랑을 방해하는지 모른다. 성숙한 사람들은 자기방어 없이 그냥 사랑을 한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을 알았다. 자기방어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훗날에 하나님이 다윗을 방어해주신다.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고 잃고자 하는 자는 얻는 것이다.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 것은 타락한 사랑이다.
오늘 도망갈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아들을 위해서 못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중독에서, 싸움에서 도망을 가라는 것이다. 싸우지 말고 사랑으로 도망쳐야 한다.
Q)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주체를 사람이 아닌 하나님으로 보는가? 자기방어를 내려놓고 사랑으로 도망쳐야 하는 일은? 내 자존심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나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지금 자존심 상하는 일은 무엇인가?
2. 환난 당한 자를 끝까지 배려하는 것(15~20절)
후궁을 남겨두는 다윗은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었지만 아직도 사람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다윗의 한계이다. 마지막 집, 마지막 궁(벱메르학)에 머물러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멈춰섰는데 생각지도 못한 환란당한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하게 되었다. 가드 사람들은 사울에게 쫓김 당할 때 도와준 사람들이다. 다윗에게 은혜를 받고 이스라엘까지 망명을 온 사람들이라 무시 받던 사람들이었다. 결정적인 때에 다윗에게는 늘 환란당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 교회다니면서 사귀는 사람들이 시기마다 달라진다. 끊임없는 모임에서 지체들이 많아지고 점점 지경이 넓어지게 되었다. 일생 신앙생활을 했는데 내가 믿음이 없다면 아직도 내 구역 식구밖에 몰랐을 것이다.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믿음의 공동체에 어려서부터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내 옆에는 늘 힘든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것이다. 크면서 또 다른 힘든 사람이 생기는 것이 축복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이기고 이기는 것 공부밖에 몰라서 교회를 안 나온다. 교회에서 좋은 얘기만 들은 사람들이 착하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악해진다. 공부잘한다고 평안해지지 않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가야한다. 그냥 교회에서 살면 된다. 길고 짧은 건 늙어서 대보라. 그래서 큐티를 해야한다. 공부 안해도 어려서부터 큐티하면 제일 똑똑해진다. 고기를 낚는 법을 배우게 된다.
19-20) 본국에서 추방당한 자였던 잇대, 블레셋에서 망명했기에 탈북자처럼 이쪽 저쪽에서 다 무시받고 유랑자가 되어서 같이 가기가 쉬웠다. 그래서 적용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하기 쉬운 것이다. 쫓기는 상황에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다윗의 여유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로 돌아가는 다윗이 상대를 돌려보내는 것이다. 진짜 참된 여유가 있고 참된 부자인 것이다. 쫓기는 상황에서도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은 같이 갈사람 돌려보낼 사람을 분별하면서 끝까지 배려한다.
이렇게 잇대를 배려하고 항상 이타적인 적용을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해주신다. 하나님께서 후대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항상 하나님만 생각하고 내 할일만 하면 된다. 다윗은 이렇게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회복되는 넘어짐은 도와줄 것이 있게 된다. 다윗이 압살롬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가. 사랑의 도망을 하려면 이런 오래된 넘어짐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낮아짐을 경험하면서 나의 인생과 무관하다고 여겨졌던 지체에게 관심을 갖고 힘든 지체를 위해 어떻게 도와줘야할까 생각이 드는 것이 사랑으로 도망하는 것이다. 이렇게 남을 도와주게 되면 환난당한 자를 배려하게 되고 돕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3. 돕는 자가 생기는 것(21~37절)
① 잇대(환난 당한 자가 목숨을 걸고 돕는다)
잇대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몰라도 다윗의 인격과 신앙을 보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윗을 따라갔다. 어렸을 때부터 내 옆에 힘든 사람들이 몰려있다. 그만큼 십자가 복음은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안 들리는 것이다. 실수가 있다고 백성들은 다 압살롬을 따라 떠나는데 잇대는 예수씨를 보고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진심을 알고 같이 가기로 허락했다.
잇대가 도망가는 다윗에게 줄을 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후대하셨다.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한데 진실한 사람들은 진리의 편에 서게 되어있다. 모두가 압살롬에게로 갔다고 생각했는데 다윗이 초라하게 떠나기 시작하니까 대성통곡하며 같이 합류하는 백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윗은 어두움의 기드론 시냇가를 건넜다. 하나님만이 산성되시고 방패되시는 체험을 하게 하셨다. 다윗은 이 다급한 상황에서 모든 백성을 먼저 건너가게 했다. 위기상황에서 자기의 생명을 걸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원래 다윗이 이렇게 택한 자인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내가 계속 울면서 회개하고 갈 때에 도울 사람을 보내주시고 내가 할 일을 또 보여주신다. 고난과 위기가 왔을 때, 충성과 우정과 사랑의 사람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Q)끝까지 배려하고 가는 사람인가? 나의 충성과 사랑은 어떤 종류인가?
② 사독, 아비아달(말씀의 인도를 잘 받으며 가도록 돕는다)
가장 중요한 사람인 양대 대제사장 가문은 다윗 편을 들었다. 레위사람들이 피난을 가는데 예루살렘에서 언약궤를 가지고 가는데 얼마나 좋았겠나. 그런데 다윗이 언약궤를 이스라엘에 도로 갔다놓으라고 한다. 나를 위해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되었다. 언약궤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윗이지만 자신이 죄 짓고 가는 마당에 언약궤를 자신을 위해 가져간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이 낮추실 때 낮아지는 자는 반드시 높임을 받는다. 언약궤를 부적처럼 가져갔다가 진적이 있었는데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고 말씀 자체를 상급으로 여긴 것이다. 하나님이 용서해줘도 감사하지만 그리하시지 않을지라도 불평 없이 순종하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징계를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모습이 아름답다. 다윗의 진면목이 나타났다. 다윗에게 누구보다 가장 엄한 징계를 내리셨지만 그를 다시 회복 시키셨다. 인생은 악하고 음란하여 연약하기 짝이 없기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럴 때 불평하지 않고 순순히 받는 것이 더 큰 고통으로 가지 않는 것이고 지경이 넓어진다. “겸손히 받으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충성을 끝까지 바쳤다. 믿음의 사람들은 따로 있어도 함께, 함께 있어도 따로 하는 것과 같다. 말과 행동을 뛰어넘는 함께함이 있다. 이것이 믿음의 공동체고 서로 돕는 것이다.
Q)징계를 피하기 위해서 말씀으로 인도받으려고 하는가, 아니면 말씀 자체가 상급인가?
(징계는 안 받고 징계를 피하기 위해서만 말씀을 보면 안 된다.)
③ 후새(인간의 모략을 하나님의 모략으로 바꾸어 돕는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알게 된 다윗, 압살롬편에간 아히도벨의 모략의 실패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즉시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하나님의 모략으로 변하게 만든 후새를 보내주셨다. 내가 진실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즉시 응답하신다. 그것을 믿고 기도하라. 다윗은 후새도 압살롬에게 거짓투항을 하라고 돌아가라고 하였다. 충성하는 자(후새)와 반역하는 자(압살롬)가 같이 이스라엘로 들어갔다. 어느 공동체(회사, 집)나 충성하는 자와 반역하는 자가 공존한다. 후새는 이런 반역계획을 폐기케 하므로 다윗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반역하는 자의 권세가 너무 커서 모략을 패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반역하는 사람과 충성하는 사람은 게임이 안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엄청 바보취급을 당한다.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남자들에게 엎드려 경배하기 바란다. 우리가 이기려고 하면 너무 힘들다. 이기려고 하지 말고 십자가로 도망가서 오직 하나님의 모략으로 승리해야 한다.
4. 십자가 지는 사랑을 하는 것(30절)
나의 죄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고통이 커서 머리를 감싸며 맨발로 울면서 올라가야 한다. 사울 때문에 고난을 겪을 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믿음으로 버텼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징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모든 고통이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머리를 풀며 울며 올라가니까 이 초라한 모습을 보고 다윗의 백성이 모두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잇새도 포기하고 왕의 권리도 성도 아들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들을 죽게 하는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다윗도 압살롬을 죽이는 고통으로 가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무시와 조롱을 온몸으로 받으며 그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가는 것이다.
성숙하는 사람의 두 가지 특징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쉬운 것, 구원을 위해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 땅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우리 주님도 아무 죄 없이 십자가 길을 걸으시면서 우셨고, 고통으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우리도 그래야한다. 내가 사랑으로 도망가면 상대방이 다 안다. 충성하는 자와 반역하는 자중에서 결국 충성하는 자가 이긴다. 아무도 모르는 고통과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결국 우리의 죄 때문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하나님까지 눈물 흘리게 하는 우리의 죄를 짓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압살롬이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그 상처가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우리 아버지는 나쁜 놈으로 끝났다. 마지막까지 압살롬은 돌아오지 않는데 다윗은 그래도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간다.
Q)십자가 지는 사랑을 할 수 있는가? 기득권 내려놓고 사랑으로 도망갈 수 있겠는가?
이타적으로 사랑의 도망을 가야한다.
“어떤 일을 당해도 모두가 자기 죄를 보면서 가는 것..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이 아닌가.”
<기도제목>
주희: 하나님과 관계회복하고, 주님이 100%옳다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회사 일 시작하기 전에 큐티하기
유정: 연이은 배신의 폭풍 고난 후.. 후유증으로 온 처절한 외로움을 사탄의 시험으로 분별하고 겸손히 잘 받고 견뎌낼 수 있도록, 사랑받고 싶은 내면의 어린 자아 직면하고,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는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부어주시길, 사람이 믿음의 대상이 아닌 걸 알면서도 자꾸 믿고 싶어지는 맘과 사람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맘 만져주시길.
지영: 내 힘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온전히 의지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도록
경아: 말씀이 회복될 수 있도록,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양육 잘 받고 숙제 미루지 않도록, 회사일이 바쁜데 지혜롭게 잘 견뎌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