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무엘하 15:13~37 말씀: 사랑의 도망
내용
예수님이 이 땅에서 많이 하신 일이 피해서 도망하신 일이다. 싸울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도망가야 할 때가 많다. 이것이 사랑하기 때문에 도망가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다르다. 원수를 위해서 생명을 내어놓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1.자기 방어를 내려놓는 것이다. (13,14절)
다윗은 부하들에게 일어나 도망하자고 그의 신하와 지체들을 동원했다. 그동안 다윗은 멘붕이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압살롬이 반역을 했다.
성숙의 가시적인 증거는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고린도전서 13장의 그 사랑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란 보이는 행동만으로 측정하기가 어렵다. 칭찬과 따뜻한 미소, 격려는 계산된 친절인 경우가 많다. 사랑은 나보다 남을 더 존중하는 것이다.
다윗은 자기 방어를 내려놓고 즉시 나라와 압살롬에 대한 사랑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모두 자기백성이라고 여기며 할 수 있는 대로 사람이 안 죽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이 사건은 급박한 상황이라 즉시 행하였는데, 이것은 평소에 훈련이 되어야 급할 때 생각날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은 말씀의 힘을 알고, 통치를 받는 사람이기에 이것은 우연히 온 사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밧세바 사건과 우리아의 사건으로 나단 선지자를 통해 ‘칼이 네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예언을 받았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결론임을 즉시 인정할 수 있었다. 이것이 묵상의 힘,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이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늘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맞는데, 사탄은 이때 ‘너 왕이잖아, 도망가면 지는 거야’라고 속삭인다. 다윗은 왕이고, 예루살렘은 요새요, 백전노장이고, 어디를 가나 이기게 하셨다. 실전 경험이 없는 압살롬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있으면 압살롬에게 왕을 물려줄텐데, 그 조금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지만 이것이 인생이다.
이런 것을 해석하며, 적용하며 걸어가는 것이 성숙이고, 사랑이고, 성도로서의 의무이다.
다윗은 계속 압살롬과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적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상처를 통해 성숙하게 되는 것 같다. 상처는 나쁜 것이 아니다. 별이 되려면 상처는 필수 코스다. 다윗은 아들의 반란을 통해서 아주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밧세바에게서 나은 자식이 죽었고, 큰아들은 자기 딸을 겁탈했고, 작은아들이 큰아들을 죽이고, 작은아들은 다시 나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다윗은 자기 아들이 아니면 싸웠겠지만 아들이기에 도망갔다. 이기지 못해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 하나님도 다윗의 영광을 생각해주시는 것이다.
사도행전 20장 24절의 고백이 다윗의 고백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방어다. 자기를 증명하고, 변명하고, 옳은 것을 증거 한다. 상처를 피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사랑의 노력을 방해하는 요소인지 모른다.
성숙한 사람들은 자기방어 없이 관계를 맺는다. 그들은 그냥 사랑을 한다. 다윗은 많은 일을 겪으면서 자기방어가 부질없는 짓인 것을 알고 내려놓았다. 근데 훗날에 보면 주님이 다윗을 얼마나 방어해주시는지 보게 된다.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는다고 했는데, 이 땅에서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랑은 타락한 사랑이다.
-도망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 불륜, 재산싸움, 중독에서 도망가야 한다.
-내 사건에서 일어나는 주체 자를 사람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으로 봅시다. 싸우지 말고, 자기 방어를 내려놓고 사랑으로 도망가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나의 자존심이 상할지라도 공동체가 훼손되지 않는 것을 선택해야합니다. 내가 지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무엇인가?
2. 환란당한 자를 끝까지 배려하는 것이다. (15,16절)
아둘람 공동체가 다윗을 따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다윗이 갈 때에 후궁 열 명을 남겨 두고 떠나는데, 이것은 싸우지 않겠다는 의미와 어머니뻘인 후궁을 압살롬이 어떻게 하진 않을 것이라는 사람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는 다윗이다. 17절에 다윗 왕이 벧메르학에 멈추어 섰다. 이것은 마지막 궁, 이제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집이라는 의미이다. 오늘 본문에는 중요한 지명이 나온다. 벧메르학, 기드론 시냇가, 감람산. 결정적일 때 이런 지명이 나온다. 이렇게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섰는데, 18절에 그의 모든 신하들과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한다. 생각지도 못한 가드에서 온 육백 명이 행진한다. 가드사람은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 갔을 때 은혜를 입고, 그때부터 나중에 이스라엘로 와서 무시 받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다윗의 옆에 있다.
고난이 보석이라는 것은 고난 자체를 해결하기 보다는 믿음의 공동체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에 어려서부터 있는 것이 얼마나 은혜인지 모른다. 우리시대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교회에서 보냈는데, 요즘은 공부만 한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좋은 이야기만 들어서 그래도 착할 수밖에 없는데, 맨날 이기는 것 밖에 모르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악해진다. 공부 잘해서 잘살고, 평안하지 않다. 교회에서 살아야한다.
길고 짧은 것은 늙어서 재보라, 어렸을 때부터 큐티하는 것이 똑똑해지는 비결이다.
19, 20절 이때는 이방인인 동시에 쫓겨난 자였다. 이스라엘에서 유리하는 인생이었다.
이쪽저쪽에서 다 무시 받기에 아무도 안가는 다윗을 따라가기가 쉽다. 적용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쉽다. 다윗에게도 도움이 필요한 때지만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여유가 놀랍다.
쫓겨 가면서도 자기 죄를 보는 사람들은 같이 갈사람, 돌려보내야 할 사람을 분별하고, 깨어서 끝까지 견디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이렇게 이때를 배려하면서 적용하면서 나아가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항상 이타적으로 적용하면 베풀어주실 은혜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항상 하나님만 생각하고, 내 할 일만 하고 가면 되는 것이다.
다윗은 회복이 되었다. 이렇게 회복된 넘어짐은 도와줄 것이 있는 인생이 된다.
3. 돕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1)환난 당한 자 잇대가 목숨을 걸고 돕는다.(21절)
잇대는 곁에 있는 자라는 뜻이다. 잇대는 다윗의 인격과 신앙을 보면서 감동이 되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물론 잇대도 가난하고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말씀이 들리고, 다윗을 따라갈 수 있었다. 십자가의 복음은 그 시대의 가장 힘든 사람들만 다윗 옆에 모이게 한다.
그만큼 십자가의 복음은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에 장사가 없다. 22절 다윗이 잇대의 진심을 알고 함께 한다. 우리는 줄을 잘서야 출세한다고 하지만, 잇대가 도망가는 다윗에게 줄을 섰기 때문에 앞으로 이후에 이스라엘 군대의 2/3를 관장하는 군장이 되었고, 자신과 가족과 부하의 생명까지 지키게 되었다.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항상 진리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진실한 사람들은 진리 편에 선다.
23절 모두가 압살롬에게 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었다. 다윗이 초라하게 떠나기 시작하니까 대성통곡하며 합류하는 백성들이 많이 있었다. 다윗은 벧메르학의 마지막 집, 기드론 시냇가의 탕유를 건넜다. 하나님만이 산성과 방패 되시는 경험을 하게 하셨다. 다윗은 다급한 상황에서 백성을 모두 건너게 하고, 자신이 마지막에 건넜다. 다윗이 택한 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가 울면서 회개할 때에 나를 도와줄 사람을 보내주시고, 다음 할 일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이렇게 울면서 회개하며 가는 장면이 23절에서 나오고 30절에 또 나온다.
-끝까지 배려하고 가는 사람인가?
-나의 충성과 사랑은 어떤 종류일까?
(2)말씀의 인도를 잘 받도록 아비아달과 사독이 돕는다.(24절)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에게 갔어도, 중요한 제사장 가문이 모두 다윗의 편을 들었다.
25절 레위사람들이 피난을 가는데, 언약궤를 가져오자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한다. 죄 짓고 도망가는 광야 길에 언약궤를 가지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은혜의 빛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비춰진다면 죽고, 살고의 문제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언약궤는 예루살렘에 있다는 것이 옳다고 여긴 것이다. 이렇게 내려놓고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데, 이것이 참 안 된다.
하나님이 낮추실 때 낮아지는 자는 반드시 높임을 받는다. 다윗은 이미 언약궤를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를 믿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26절 하나님이 용서해주셔도 감사하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불평 없이 순종하겠다 고백한다. 인생 최대의 고난이 왔는데 어떤 것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이런 그를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키셨다. 인간은 악하고 음란하며 연약하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불평하지 말고 순히 징계를 받고 더 큰 고통을 받지 않아야 한다. 29절 다윗을 생각하는 두 제사장의 각별함을 볼 수 있다. 믿음의 사람들은 따로 있어도 함께, 함께 있어도 따로, 말과 행동을 뛰어넘는 함께함이 있다.
-징계를 피하기위해서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는가? 아니면 말씀 자체가 상급인가?
징계를 피하기 위해서 말씀을 보면 안 된다.
(3)모사인 후새가 도왔다. (31절)
잇대의 다윗이 자신의 가장 친한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아히도벨의 모략을 불쌍히 여기시라고 기도한다. 32절 마루턱은 감람산의 정상이다. 감람산 길로 가면서 아히도벨의 모략의 실패를 위해서 기도를 했는데, 정상에 오르자 후새가 등장한다. 아히도벨과 훗세가 나란이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즉시 응답했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기도하면 즉시 응답하신다. 33절 다윗이 같이 가지말자고 한다. 34절
압살롬에게 가서 거짓투항을 하라고 한다. 35절 예루살렘으로 가면 사독과 아비아달이 있으니 서로 주고받으며 36절 모든 소식을 알리라고 모략을 가르쳐 줬다. 인간의 모략을 하나님의 모략으로 바꿀 수 있는 후새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다. 37절 다윗의 친구 후새가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성으로 들어갔다. 충성하는 자, 반역하는 자가 같이 들어갔다. 회사에도, 가정에도, 어느 공동체에도 충성하는 자, 반역하는 자가 함께 있다. 후새는 반역하는 자의 작전 계획을 폐기케 함으로 다윗을 돕는데, 모든 세상에서 사랑의 도망을 해야겠는데, 반역하는 자의 권세가 너무 커서 모략을 파하기가 너무 어렵다. 반역하는 사람과 충성하는 사람이 게임이 안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바보취급 당하겠는가? 아히도벨의 모략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모략 밖에 없는데, 결론적으로
4. 사랑의 도망은 십자가 지는 사랑이다.
회사에서도, 부부간에도 십자가 지는 것이 도망인 것이다. 30절 나의 죄는 옆에 있는 사람까지도 고통이 커서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올라갔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길 때도 이런 표현이 없다. 그런데 아들 때문에 맨발로 울며 올라간다. 이것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십자가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울 때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버텼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징계라고 확실히 생각이 되니 울며,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서, 머리를 가리며, 맨발로 울며 올라가니까 이 초라한 모습을 보고, 다윗의 백성들이 함께 통곡하며 올라간다. 다윗은 이제 예루살렘 성, 아들, 잇대, 후궁, 법궤, 왕의 권리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국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하나님처럼 아들을 죽게 하는 그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다윗도 압살롬을 죽이는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기가 막힌 길이다. 사랑의 도망길이다. 다윗이 우니까 백성들도 같이 울면서 가는 것이다. 백성들을 섬기려는 목적으로 자신을 내어준다는 것은 무시와 거절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보이며 가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온도가 측정되는 것이다.
주님도 배반한 친구들과 때린 병사들을 위해 돌아가셨다. 성숙한 사람의 두 가지 특징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쉬운 것이고, 구원을 위해 못 할 일이 없는 경건이 있는 것이다.
이 땅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정신이 맑아도 무능한 사람이 있고, 술 취해도 유능한 사람이 있다. 선지자는 지적인 것 보다 하나님의 심정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이렇게 다윗은 처절하게 울면서 가지만 우리 주님도 아무 죄 없이 멀리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그들의 죄로 인해 우셨고, 누구도 겪지 못한 고통으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회사에서도 이렇게 기도해야한다. 내가 사랑으로 도망하면 상대방이 다 안다. 결국 충성하는 자가 이기는데, 주의 사랑으로 충성을 해야 한다. 주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고, 아무도 겪지 못한 큰 슬픔과 고통을 당하게 만든 것은 우리의 죄다. 아담의 죄로 인해 인류가 고통을 겪고 있다. 내 죄로 나 뿐 아니라 내 옆의 모든 식구와 하나님까지 눈물 흘리게 하는 죄 짓기를 두려워해야 한다. 압살롬은 이 죄를 짓고 간다. 다윗은 눈물 흘리며 간다. 다윗이 생명을 내어주며 가는데, 끝까지 압살롬은 돌아오지 않는다.
-십자가 지는 사랑을 곳곳에서 할 수 있겠는가? 사랑으로 도망을 가야한다. 내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타적으로 사랑의 도망을 가야 한다.
나눔
찬형
중등부 VIP 캠프에 다녀왔다. 고난이 많은 아이들과 즐겁운 시간을 보냈고, 아이들의 나눔을 들으며 정말 와야 할 아이들이 왔다고 생각이 됐다. 돌아오는 주에 아버지와 목포에 내려가 할아버지 이장을 하러 가게 되었는데, 잘 마치고, 작은아버지께 복음을 전할 수 있길.
지민
요즘 일이 많이 바빴고, 고향에 다녀오느라 몇 주간 참석하지 못했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식사를 제때 챙기지 못해서 건강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항상 바쁜데, 조금이라도 한가해지면 사장님이 말을 바꾸며 근무하는 날을 더 늘리려고 하고, 지금 선배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그만두게 된 상황에서, 내가 더 일을 하기를 바라고, 주일에도 앞으로 영업을 한다고 하니 걱정이고, 스트레스가 심함. 그러나 겉으로는 티를 못내고 있음. 오늘 설교에서도 직장인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생각남.
영재
회사 다녔고, 목요일에 생일이어서 금요일에 가족과 함께 외식을 했고, 토요일엔 여자친구와 함께 보냈다. 12월에 가기로 되어있던 출장이 취소될 것 같아서 기쁘다.
내가 직장인이라서 공감이 많이 됐다. 처음 입사했을 때, 일은 가르쳐주지도 않고, 나를 평가하고,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 출장을 다녀오면 상사들에게 선물을 돌리고 하는 것이 숨 막히고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그 속에는 잘해서 인정받으려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내려놓고, 마음이 편해졌다.
정필
운동 끝나고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맥주를 자주 마셨다. 내일부터는 학교 다니는데 멀어서 걱정이고, 끊으려고 했던 담배는 다시 피고 있다. 일대일 양육, 운동, 공부 중 1순위는 운동이다. 절대 내려놓고 싶지 않음. 학교도 멀고, 8시간을 있어야 하고, 운동에, 일대일 양육 과제까지 하려니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심하다.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겠다.
요즘 술자리를 자주 가다보니 다시 필름도 끊기고, 술을 먹으면 안 될 것 같다.
상연
추워져서 그런지 잠도 많아지고, 게을러졌다. 늦잠을 자주 자고 있음.
내가 바로 압살롬이다. 조금을 기다리지 못하고, 눈에 보기에 좋은 직장을 내 뜻대로 선택하려고 했다. 나는 지금 12월 생활비가 없다. 그래서 지난 주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가득하신 베이커리 교수님께서 자신의 카페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게 되면 양교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고, 그곳은 주일에도 영업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주일에 쉬는 것을 약속 받더라도 나중에 생색이 올라오거나, 지키지 못하게 될 수 있기에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인데도 합리화하며 하고 싶어졌다. 초봉 200만원이 받고 싶고, 나의 열심으로 인정받아 세상 성공을 꿈꾸고 있었다. 이 가난한 내 현재 상황과 앞으로 어디에 어떻게 취직이 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말씀 자체가 상급이기보다는 말씀에서 이 직장을 선택하라고 해주시길 바랐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지금 내 가난과 막막한 상황이 내가 져야할 십자가라고 하신다.
기도제목
찬형
청큐 집필 잘 마무리하기, 목포에 내려가서 할아버지 이장 예배 잘 하고 오도록.
지민
교회 잘 나오기, 자기계발
영재
생활예배, 큐티
정필
학교 적응, 운동하며 부상 안 당하도록, 신교제
상연
부모님 때문에 교회에 못나오는 중등부 학생을 위해 기도하기, 큐티를 대충 하지 않기, 취업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