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사무엘하 15:1~12
"마음을 훔치니라"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훔쳤다고 한다. 훔치는 것은 자연스레 얻은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략으로 얻는 것이다. 압살롬이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보자.
1. What? 무엇을 위해 마음을 훔쳤는가? = 자기를 위해.
자기를 위해 마음을 훔치는 사람들의 특징
① 겉모습을 과시하고자 한다.
14장에서는 초라했는데 15장에서는 위풍당당하게 왕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다. 나귀가 아니라 말들을 준비했다. 이스라엘은 말을 준비하면 안되는데, 열등감은 과시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금하는 세상적인 방식대로 준비했다. 사단의 세력들은 항상 겉모습으로 포장한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자신의 즐거움이 아닌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타적이고 자기회개가 있고 죄고백이 있으면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다. 본질은 못보고 겉모습만 보며 겉모습만으로 과시를 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다. 충성을 하고 있나 아닌가는 내가 즐거운가 아닌가로 체크할 수 있다. 즐겁지 않다면 마음을 훔치는 보여주는 즐거움인 것이다.
② 자기를 위해 매우 부지런하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일찍 일어난다. 자신을 위해서도 일찍 일어나는데 하나님을 위해서는 얼마나 일찍 일어나야 하겠는가? 회사나 학교에는 늦지 않으면서 교회에는 늦지 않는가?
③ 입으로 정의를 부르짖는다.
내가 정의를 행하겠다하면서 재판관이 되어주겠다고 월권을 부르짖는다. 그가 원했던 정의를 구현할 능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④ 입을 맞춘다.
잘생긴 왕자가 와서 입을 맞춰주니까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⑤ 철저하게 계산된 친절로 마음을 빼앗는다.
철저하게 계산된 겸손으로 4년이 되니 마음을 강탈하게 되었다. 특별히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치는 인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분으로 하는 것. 압살롬의 명분이 백성들을 움직였다. 밧세바 사건, 암논의 간음, 동생이 형을 죽였는데 다윗이 가만히 있으니 다윗에게 문제가 있다 생각하게 되어.. 압살롬의 명분에 동의하게 되었다. 악의 세력이 민심을 미혹해야 하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데 필연적인 것이다. 백성도 마음이 똑같았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과 자기를 위한 것이 겉모습은 똑같다. 죄인들의 마음이 똑같다. 그러나 이것이 진심이 아니기에 성경은 훔쳤다고 하는 것이다.
#65279;Q)마음을 훔치기 위해 겉모습을 과시하는가? 모든것을 다 갖췄는데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위해 너무 부지런한가? 입으로 늘 정의를 부르짖는가? 온몸으로 나는 네 편이라고 껴앉고 입을 맞춰 주는가? 철저하게 계산된 친절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치려고 노력한 적은 없는가?
이런사람의 특징이 "항상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 내가 칭찬 못받는 것이 가장 힘든가? 하나님이 아닌 내게 오게 해서 내사람을 만들지는 않는가?
2. How? 어떻게 마음을 훔치나? = 하나님을 빙자하여.
#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11#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년 동안 이런 생활을 한 압살롬은 다윗에게 하나님을 말하면서 자신이 서원했기 때문에 헤브론에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서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을 망령되이 일컬은 것이다.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헤브론에 가려한 것이다. 이를 겉으로는 절대 알 수가 없다. 믿음이 있고 없고는 나중에 열매로 분별하는 것이지 겉모습으로는 분별할 수 없다. 나#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의 욕심을 이루려는 헤브론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욕심 채우고자 하는 것이 헤브론이다. “이것만 주시면 잘 믿겠다!” 라고 하는 것. 다윗은 이에 속아 자신을 죽이려고 가는 것인지도 모르고 압살롬을 헤브론으로 보냈다.
내가 정말 얼마나 형편없는 보는 것이 회개이다. 늘 회개를 해야한다. 입으로는 회개를 하는데 흉내를 낼수 없는 회개가 있다. 내 회개를 하나님께서 쓰고 싶은 대로 쓰시기를 바란다. 시기마다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을 팔아서 자기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 압살롬이 4년이나 재판을 했는데도 다윗이 압살롬의 심리를 모르고 분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겉모습을 누가 분별할수 있나. 믿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안넘어가려가려고 하기 보다. 항상 잘 믿는다. 큐티를 하다보면 알려져서 안 속았지. 똑똑해서가 아니다. 믿지 않고 사는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가.
#65279;Q)하나님을 빙자해서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번 한번만 눈감아 주면 예수를 잘 믿을 것 같은 것이 무엇인가?
3. How? 어떻게 마음을 빼앗겼는가? = 아무것도 모르고. 뜻도모르고
압살롬의 모반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아히노벨은 만명의 군대보다 좋은 다윗의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배신했다. 차라리 원수가 배반했으면 참았을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의 배반을 겪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배반을 당하는 것이 주님을 믿는 데 참 도움이 된다. 가까운 사람에게 배반 당할 수 있는데 이는 겉으로는 모른다. 진심인지 아닌지 분별이 안된다. 시간이 가야 분별이 된다.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어릴때 알수가 있겠는가. 날이 갈수록 인생이 옛날보다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렇게 배반을 당하는데도 압살롬에게 돌아오는 백성은 왜 많아졌을까? 죄를 책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죄의 책망을 가져온 사람이다. 우리가 죄를 책망해주기가 쉽지 않다. 힘들때는 죄의 책망이 들리는데 편해지면 죄의 책망이 듣기 싫어진다. 게다가 밧세바의 사건도 터졌고 아버지와 우리는 다르다. 아버지 시대는 갔다. 자꾸 죄를 왜 고백하라 하는가? 하면서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편하면 생긴다. 편하면 떠난다. 편한 사람이 교회오는 것이 힘든 사람보다 따블로 천국갈 것이다. 인생은 다 똑같이 죄인인데.. 차별하는 것이 문제이다.
압살롬의 반역은 말씀에 대한 반역이다. 여기에 부흥하는 백성이 많아지는 것이다. 왜 큐티를 하나? 이렇게 편한데 왜 굳이 죄를 오픈해야 하는가? 왜 회개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압살롬이 잘생기고 다 갖췄으니 압살롬편에 붙었다. 사람은 다 악하고 음란한데 개인적으로 있을 때는 죄가 그 안에 잠재되어 있다가 무리 속에 섞이게 되면 그 악이 드러나게 된다. 내가 아무 뜻없이 하는 것이 무엇인가? 세상사람들은 (교회다니면서 말씀 안 읽는 사람은) 하나님 뜻을 모른다. 세상사람은 세상의 뜻대로 살고 자기의 뜻대로 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기때문에 매일 뜻이 다르다. 절대적인 뜻이 없기 때문에 확신도 없고, 강할때도 약할때도 모른다. 자기중심적이라서 자기가 편한게 자기 뜻이다.
큐티는 나의 욕심을 쳐서 말씀에 복종하게 하는 훈련이다. 목적의식 없이 큐티하고 교회 다니면 평생 아무 뜻도 개념없이 살다가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졸지에 예수님을 반역하게 된다. 압살롬을 따라간 사람들은 졸지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어쩌다 실수한것이 아니고 너무나도 성공이 좋은 것이고 정함이 없는 인생이고 뜻이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65279;Q)뜻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 편한대로 행동한 것은 무엇인가?
"날마다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해야 한다. 욕심을 쳐내는 큐티가 답이다."
그러면 다윗처럼 마음을 빼았겨도 도와주신다. 욕심대로 행하고 싶지만 큐티를 하면 저절로 분별이 되서 피할수 있다.
4. Why? 압살롬은 왜 끝까지 마음을 훔치는 자가 되었을까?
압살롬은 혼자서 한달란트 묻어놓고 원망만하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본적도 없고 내힘으로 능치못한 일이 없다며 했고 무엇보다 그 옆에 선지자가 없었다. 왜 압살롬이 아버지를 미워하고 아버지 사랑을 모른척했을까? 압살롬은 아버지의 사랑을 기다렸는데 다윗은 사랑하면서도 다가갈수 없다는 것을 압살롬이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보지 않았다. 압살롬은 너무 억울해 하는데 찾아온 다윗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압살롬이 백성에게 이 성에서 네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얘기했었는데 사실 이것은 자신의 이야기였다. “내가 불을 질렀는데도 아빠가 내 얘기를 안 들어줘, 벌써 11년째야”의 압살롬 고백은 억울한 백성들이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누구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반역계획을 했기 보다는 압살롬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인생을 해석하지 못했다. 억울함을 밑바닥에 깔고 사람들을 공감해주니 이런 사람이 마음을 훔치고 사람들이 따르게 되었다. 압살롬을 키운것은 분노였다. 다윗은 죄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데 압살롬은 백성을 찾아 들어주고 입맞춰주고 정의를 부르짖고 당대의 지략가였던 아히도벨이 편까지 들어주니 더욱 백성들은 압살롬을 따르게 됐다.
압살롬은 불택자인다. 압살롬은 가진것이 많아서 주님께로 나오지 못했다. 왜 나에게 이런일이 왔을까 생각하지 못했고 다말이 성폭행당한것만 죽을때까지 억울해 했다. 남겨진 부분을 보지 못하고 죽을때까지 억울해 했다. 다윗은 안타까우면서도 저놈은 사람을 죽인 놈이지, 또 한편으로는 차기 왕으로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기다렸다.
압살롬은 왕의 재목이 아니었는데 수준을 너무 높게 봐서 당장의 아픔을 보듬어 주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있는 그대로의 압살롬을 봐 주며 아픔을 보듬어줘야 했다. 11년동안 안보며 훈련시킬 재목이 아니라 그냥 사랑해줘야할 아들이었다. 치유가 필요하고 피해의식이 있는 압살롬을 간과한것이 다윗의 실수이다. 인생 채찍과 사람 막대기로 훈련 받은 다윗에게도 안되는 게 있었다. 다윗에게도 한계가 있다. 사랑하는데도 안되는 것이 있다. 우리가 다윗이라면 이러지 말아야 할 것이다.
#65279;Q) 내 주위의 불쌍한 압살롬은 누구인가? 수준을 너무 높게 보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줘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