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닌 것(사무엘하 13:20-39)
화가 날 때는 순간적으로 욱하면서 급상승한다는 분노호르몬은 15초면 정점을 찍고 분해되기 시작합니다. 15분이 지나면 거의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분노 관리에서 '15'라는 숫자는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은 모두 파괴적인 분노를 가지고 심히 노하고, 살의를 가지고, 분노를 감추면서 다들 사랑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사랑하기 때문에 분노한다고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특징에 애증이 있습니다. 오늘 다들 사랑한다고 하면서 관계를 파괴하는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나 사랑이 아닌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1. 분노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압살롬이 다말보고 "근심하지 마. 내가 원수를 갚아줄게." 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은 이렇게 말해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말이 처량하게 지내게 된 것은 축복입니다. 왕의 딸로서 가난하고 애통한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주로만 지냈다면 이런 가난한 마음은 가지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암논과 압살롬은 그 가난한 마음을 끝까지 몰랐습니다. 짧은 인생에 다말은 영생을 맛볼 수 있었기에 축복이었습니다.
'노하니'는 불타오르듯이 몹시 분노한 상태입니다. 다윗은 암논이 다말을 범하고 버린 일을 들었습니다. 듣고 심히 노했지만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범한 죄 때문에 뉘우치고 참회하느라고 한마디도 대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가 죄를 범하면 세상을 책망하기가 어렵습니다. 죄로 인한 후유증은 지도자에게는 더 심각함을 보여줍니다. 진리에 대해서 단호하지 못하기에 점점 죄에 무감각해 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다윗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됩니다. 자신이 통치해야하는 입장인데 스스로 중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실수를 범합니다. 다윗이 암논을 정말 사랑했다면 그는 암논에게 죄에 합당한 징계를 내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분노만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암논과 압살롬 중에 누구 편에 들어야 할까 생각하면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저 직무유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압살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압살롬의 분노는 암논을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버지 다윗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압살롬은 복수의 칼날을 가슴 깊이 숨긴 채 괜찮은 척 했습니다. 암논이 권세가 없기에 상사병을 앓은 것처럼, 압살롬도 권세가 없기에 살인을 하는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을 뿐입니다. 암논과 다윗에게 가서 누이의 사건으로 분통을 터뜨렸다면 그것으로 관계 회복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건 죄가 아닙니다. 이 땅에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비교적 괜찮은 부모는 항상 같이 있어주지 못해도 적절하게 좌절시키기도 하고, 분노를 일으키게도 하는 부모라고 합니다. 분노했지만 직면하며 풀어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압살롬의 분노는 다윗과 암논을 정조준하며 자라기 시작한 것입니다. 분노는 너무 민감하게 표현을 해도 안되지만, 너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만히 있어서도 안됩니다. 형제를 실족하게 할 만큼 분노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 서로 건강하게 분노가 표현이 안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 용서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게 하는 만큼 우리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일입니다. 믿는 우리는 어떤 경우도 일만달란트 탕감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백데나리온 때문에 그만 빚 받으러 다니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분노하고 죄에 대해서 징계했습니까? 그냥 넘어갔습니까? 아예 표현 안하고 속으로 쌓아두었습니까?
2.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분노도 타이밍이 있기에 해가 지기전에 분노를 풀어야하는데, 극심한 분노를 2년이나 가지고 있었으니 압살롬은 이미 병이 들었습니다. 미움을 간직한 채 2년동안 복수를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2년이라는 그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인데 미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윗에게도 1년이라는 시간을 주셨지만 스스로 회개하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시간을 충분히 주십니다. 우리에게 시간이 있는 동안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압살롬은 이 일로 다윗에 대한 미움을 10년 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충동적인 암논이나, 치밀하고 계획적인 압살롬이나 다 같이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매질을 한 부모는 자녀에게 사과를 해야 아들의 묵은 체증이 내려갑니다. 그래야 마음에 상처가 씻겨질 수 있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매질 당한 자녀는 피해자로 있다가 힘이 생기면 가해자로 바뀝니다. 부모 또한 피해자였음을 인식한다면 분노의 강도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더구나 자신이 매를 때릴 만큼 원인을 제공했다는 생각을 하면 분노는 더 줄어들게 됩니다. 미움의 마음으로 기도하면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고 응답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분노는 자기 통찰을 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늘 남의 탓을 하게 되면 성격장애가 되어 자기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엡 4:25~27)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노를 표현하는데 아주 좋은 지침이 되는 구절입니다. 1. 거짓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분노를 억압하거나 위장하는 것은 일종의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2. 진실함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화가 났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3. 분을 내라는 것입니다. 4.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5. 그렇게 분을 품으면 마귀가 개입할 수 있는 좋은 틈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압살롬에게 마귀가 개입을 한 것입니다.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좋은 방법은 경청하는 것입니다. 경청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입니다. 90%듣고, 10% 얘기해야 합니다. (잠15: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십자가는 타이밍이라고 했는데 분노의 해결을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망치로 조개껍질을 깨려고 하면 조개는 상처가 아무리 날지언정 끝까지 입을 열지 않습니다. 소금기가 있는 물에 담가 두면 어느 날 저절로 입을 엽니다.
압살롬이 왕께 양털깎는 축제가 있다고 초청을 했습니다. 거절을 했는데 안오시려거든 형 암논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왕이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하되, 압살롬이 또 간청을 했습니다. 집안에 위기와 살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암논이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로 알 수 있습니다. 보내면 위험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간청을 하니까 형제간에 화목을 막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보호막으로 다른 아들들과 같이 암논을 보냈습니다. 암논의 범죄에도 다윗이 이용되었고, 압살롬의 복수에도 다윗이 이용되었습니다. 자식들이 계속해서 범죄에 다윗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윗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갈수록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적 성전을 지어라, 내가 너를 위해서 집을 지어주겠다. 하셨는데 다윗이 알았다고 해놓고 음란, 살인, 간음을 하니 혹독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암논은 2년전의 일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마음이 즐거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왕의 계승권자이기 때문에 교만에 빠져있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압살롬 앞에서 완전히 술에 만취된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대적에게 공격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됩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왕권을 가지고도 암논을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처벌해야 한다고 명분을 내세우면서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다른 사람도 분노의 복수라는 것을 다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이 얼마나 복수의 명분을 잘 설명했는지 사환들이 군부대로 암논을 죽였습니다. 압살롬은 이렇게 속에 칼을 숨기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죽였다는 악성루머가 퍼집니다. 다윗이 주체할 수 없는 비통함에 빠지고 맙니다. 이상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묻는 것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고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있습니다. 자식의 문제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훈련시켜 가십니다. 자기확신과 용맹은 다 어디로 가고 자식문제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윗도 예외가 없어서 객관적으로 자녀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이 간사한 요나답은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려고 하는 계획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와서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아첨을 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데 그것이 분별이 안됩니다. 요나답이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하면 다윗에게 위로가 될 거라는 것을 요나답은 꿰뚫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잘 보다가 갑자기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실수 하는 것을 봅니다. 다윗은 밧세바 간음때에도 이렇게 울지 않았는데, 아들들 때문에 옷을 찢고, 심히 통곡하고, 슬퍼했다고 했습니다. 자식 문제에 있어서 폭풍눈물의 시대를 살게 된 다윗을 보면서 다윗을 훈련시키는 것은 자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적용: 폭풍눈물을 흘리는 부모입니까? 그런 부모가 있었습니까? 지금 폭풍눈물을 흘린다면 왜 흘립니까? 죄책감 때문입니까? 내 죄 때문입니까?
3. 편애는 사랑이 아닙니다.
압살롬이 도망을 합니다. 편애를 받은 압살롬은 의외로 내면에 분노가 가득한 것을 봅니다. 편애를 받은 자녀는 부모의 기대와 요구에 맞추어야 하기에, 안에 감추어진 하고싶은 기대와 욕구의 좌절로 인해 커다란 분노가 늘 자리잡고 있습니다. 분노를 건강하게 나타내는 좋은 방법은 그 사람에게 가서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고 합니다. 그럴듯하고 대단한 겉모습보다는 실제 삶을 보고 배운다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의 집으로 피신을 하는데 달매는 다윗의 처 마가의 아버지로 압살롬에게는 외갓집이 됩니다. 압살롬에게 그 정도로 믿을만한 외갓집이 없었다면 반역을 도모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이 이렇게 세상적으로 피할 길이 됩니다. 이방 여인과 불신결혼을 한 결론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 왕의 딸인 마가와 결혼하는 것은 매우 이익이 됐을 것입니다. 사울이 그렇게 죽이려하니 왕의 딸과 결혼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하다고 생각했겠습니까. 이것이 자식을 잡았습니다. 반역을 도모하여 나라가 망할 뻔했습니다. 결국 이것이 다윗의 문제였습니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다는 말은 진리중의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결혼도 사랑이 아닙니다. 자식을 위해서 돈을 보고 결혼시키고, 스펙을 보고 결혼시키는 것.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암논을 향한 슬픔은 점점 가라앉고 압살롬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압살롬이 원한 것은 아버지의 인격적인 용서였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경험한 것은 아버지의 거짓이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이의 아들을 위해서는 일주일이나 금식을 하였다고 하더니, 압살롬과 암논을 위해서는 하루도 금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녀가 보기에도 이런 편애가 없고, 이런 차별이 없습니다. 다윗의 문제는 암논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지 않고, 이 상황에서도 압살롬을 편애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편애하면서 객관성을 잃었습니다. 사랑이 떳떳하지 못하니까 정으로만 흐르고 분별이 없어집니다. 다윗을 예수님의 조상되게 하시려고 기가 막힌 자식 문제를 겪게 하셨습니다. 근본적으로 내가 죄에서 태어났고, 죄에서 벗어날 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오늘 나의 질병과 자녀문제, 경제적인 문제 속에서 할 말이 없고 그저 눈물로 통곡하고 옷을 찢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너절함과 죄를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입니다. 다윗의 통곡이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통곡하면서도 다윗은 마음을 표현하지는 못했습니다.
적용: 편애의 여파가 크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편애에 대해서, 불신결혼에 대해서도 나누어보시기 바랍니다.
<분노에 대한 해결책> 1.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라. 2. 어떤 문제든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3. 고침받기를 원하는지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라. 4. 문제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라. 5.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6.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또한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 바를 성령님께 구하라.
기도제목
지혜(87): 생활예배. 회사생활. 사유서 작성. 나에 대해서 집중하는 시간갖도록.
사랑이(90):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할 말 분별하도록. 건강관리(감기). 하나님께 물으며 가도록.
도형이(91): 큐티. 성급한 마음 갖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도록. 아르바이트 마무리 잘 하도록. 엄마를 위한 기도와 적용 잘 하도록. 일대일양육- 과제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되도록.
은정언니(85): 건강한 감정표현. 발 수술- 잘 결정 내리도록. 쉼의 시간 지혜롭게 보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