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삼하 13:20~39
사랑이 아닌 것.
화가날 때 급상승하는 분노호르몬은 15초가 지나면 정점에 이르게 되고 15분 후에야 옅어지면서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분노라는 감정에 있어서 15라는 숫자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한번 기분 나쁘게 한 것은 15번이나 기분을 좋게 해야 만회 된다고 한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은 살의를 가지고 분노를 감추면서 자신들이 사랑한다고 생각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분노한다고 생각한다.
분노의 특징에는 애증이라는 것이 있는데 오늘 다들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 각자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관계를 파괴하는 사랑을 한다. 압살롬도 암논도 다윗도 심히 노하고 통곡하고 있다. 사랑하나 사랑이 아닌 것은 무엇이 있을까?
1. 분노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20절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공동번역을 보면 압살롬이 다말에게 원수를 갚아 줄 테니 분노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보통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사랑 이라고 생각한다. 친가도 외가도 왕가인 왕의 딸로서 가난하고 애통한 마음을 가질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다말이 이렇게 사건을 겪으며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다말의 짧은 인생에서 마음의 가난을 맛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영생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암논이 자신의 딸을 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노했다고 한다. 그러나 암논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자신이 범한 죄 때문에 뉘우치고 참회하느라고 한마디도 대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죄로 인한 후유증은 지도자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기에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다윗은 먼저 스스로에게 무력하게 되었을 것이고 이때부터 다윗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통치해야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신이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생각할 때 죄인인 자신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스로 중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신이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여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다. 그래서 이것을 덮고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암논을 정말 사랑했다면 자식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내렸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다윗은 직무유기를 했다. 이것은 압살롬의 분노를 일으키기 충분했고 복수의 칼날을 가슴 깊이 숨긴채 괜찮은 척 하였다. 다윗의 방관으로 인해 압살롬은 다윗과 암논에 대한 증오가 함께 불타올랐다.
다윗이 죄를 짓고 해결할 때는 권세가 있어서 간음도 살인도 속전속결을 했지만 암논의 사건으로 차라리 아버지에게 가서 분노를 터트렸다면 오히려 가족의 관계가 해결될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관계가 잘 해결되지 않았어도 그것은 죄의 열매라고 생각한다. 죄에 대해 압살롬은 아직은 권세가 없기에 좀 더 천천히 살인을 했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좋은 부모는 항상 같이 있어주지 못해도 적절한 좌절과 분노를 일으키는 부모라고 한다.
간증- 오늘 김 집사님 간증에 부모가 항상 온유하고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아버지가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통제하는 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하면 직면하며 풀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압살롬의 분노는 다윗과 암논을 정조준하며 자랐던 것이다. 분노는 건강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너무 민감하게 표현해도 안 되고 너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만히 있어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 형제를 실족하게 할 만큼 분노하는 것도 죄이다. 서로 건강하게 분노가 표현되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은 상처를 준 부모, 아내, 친구, 남편, 식구들이 있을 텐데 이 상처를 당한 부분에 대하여 어떻게 분노를 표현했습니까?
데이비드 시몬즈의 ‘상한 감정의 치유’ 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과 문제를 일으키는 목사님이 있었다. 그분에게는 사랑스럽고 남편을 매우 잘 도와주는 아내가 있었는데 이 목사님은 자신의 아내를 비난했고 거부했다. 성도들에게도 그러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상처는 한 번도 말 한 적이 없었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그가 결국 상담을 받게 되었을 때 그가 군복무중 창녀촌을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스스로도 잘못을 용서해야함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죄책감이 항상 그를 괴롭혔다. 그는 자신과 약혼녀에게 잘못을 했다는 것을 용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에게 베푸는 사랑과 애정을 용서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행복을 누릴 권리가 없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에게 벌을 주면 고통을 주면 그 모든 세월 1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겨우20데나리온 빗진 자에게 독촉하듯이 스스로를 옥중에 감금하고 살았다. A.W 토져가 말하듯 그는 아마 끊임 없는 뉘우침과 참회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는 확실히 그리스도인이었고 하나님을 믿고 은혜에 대한 설교도 했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한번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이 우리자신을 상처 입힌다. 우리는 그렇게 분노하게 된다.
나눔- 목장보고서에서 어떤 분의 나눔을 읽었는데 한 목원이 목사님도 사람을 차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목자님이 ‘목사님도 사람이시니까 밥먹고 화장실도 간다. 다만 훈련을 좀더 받을 사람일 뿐이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목사님은 이 이야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며 본인이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상처받는다고 솔직하게 나누셨다.
적용- 분노하고 죄에 대하여 징계 하였는가?
아예 표현 안하고 속으로 쌓아 두었는가?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에서 나눠보자.
압살롬은 오늘 겉으로 분노를 표현하지 않았지만 다윗보다 훨씬 무서운 분노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다. 믿는 우리는 어떤 경우도 1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이다.
1백 달란트 때문에 계속 끌려 다니지 말자.
2.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한다. 분노도 타이밍이 있다. 해가 지기 전에 분노를 풀어야 하는데 극심한 분노를 2년이나 간직했으니 마음이 병이 들었다. 미움을 간직한 채 2년이란 시간을 보냈는데 그동안 그는 복수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사실 그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시간인데 미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밧세바의 사건 때에도 다윗에게 하나님은 1년이라는 시간을 주셨다.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진 동안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 언제나 시간을 주신다. 그동안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 있는 동안 안에 나의 죄를 해결하고 가야 한다.
압살롬은 직무유기한 이 일로 다윗을 10년 넘게 미워하게 되었다. 내가 미워하는 일로 10년이나 칼을 가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다. 차라리 미워하는 것이 낫지 적극적으로 칼을 갈고 복수하는 자리에는 서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매질을 한 부모는 자녀에게 사과를 해야 지녀가 마음의 상처를 씻을 수가 있다. 피해자로 자란 아들은 결국 가해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부모 또한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죄가 더욱 가라앉을 것이다. 매질을 당할 만큼 원인제공을 자신이 했다고 생각하면 감정이 더더욱 가라앉게 된다고 한다. 미움을 가진채 기도하면 기도의 문도 열리지 않고 응답도 일어나지 않는다. 분노는 자기 통찰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 늘 남의 탓을 하게 되며 성격 장애가 되어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된다. 에베소서 4장 25절부터 보면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이웃의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지도록 분을 품지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했다. 분노를 표현하는데 아조 좋은 구절인 것 같다.
1) 거짓을 버리라고 했다.
분노를 억압하거나 위장하는 것은 일종의 거짓이라는 것이다.
2) 진실함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 화가 났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3) 분을 내라는 것이다.
4) 분을 내되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다.
5) 그렇게 분을 품으면 마귀가 개입할 수 있는 좋은 틈을 열어주어서 압살롬에게 마귀가 개입하게 된 것이다.
분노를 가라앉히는 방법은 경청하는 것이다. 경청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이다.
90%들어주고 10%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유순한 말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분노를 격동시킨다. 십자가는 타이밍이라고 했는데 분노의 해결을 위해서는 이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망치로 조개를 열려고 하면 조개를 깨어질지언정 절대로 입을 열지 않지만 소금물에 담가두면 어느날 저절로 열리게 된다.
압살롬은 양털 깎는 축제에 아버지를 초청한다. 그것은 그 시대에 굉장한 축제였기 때문에 아버지를 초청한 것이지만 그가 움직이기에 매우 비용이 많이 드니 안가겠다고 하자, 아버지 대신 형을 보내주기를 원한다. 그러자 다윗은 꼭 암논을 보낼 필요가 있다면서 다른 아들들과 함께 보낸다. 다윗은 집안에 위기와 살기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형제간의 화목을 막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아들들과 함께 보낸다. 암논의 범죄에도 다윗이 이용되었고 압살롬의 보복에도 다윗이 이용되고 있는 장면이다. 자식들이 계속해서 다윗을 범죄에 이용하고 있다. 자식은 배반당하기위해서 키운다고 했는데 지금 이렇게 다윗이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자꾸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다윗은 성전을 지어드리겠다고 주님께 말하였었고, 그에 대해 하나님이 내면의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가 그리하지 않고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죄로 넘어지자 혹독한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다스리시는 것이다.
28절에 압살롬이 종들에게 암논이 술에 취했을 때 죽여라! 라고 말하며 명령하고 설득한다.
암논은 2년전 자신이 무슨짓을 했는지 벌써 잊어버렸고 그래서 방심하였다. 양심이 이렇게 화인맞은자가 많다. 자신이 왕위 계승권자라고 생각한 그는 압살롬 앞에서 방심하여 완전히 방심하였다. 술 취하면 대적에게 공격할 기회를 내어주게 된다. 다윗이 왕권을 가지고도 암논을 처벌하지 않으니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기면서 의로움 마음으로 이를 계획한다. 그러자 사람들도 이를 분별하지를 못한다. 이렇게 분노는 무서운 것이다. 압살롬이 얼마나 보복의 이유를 잘 설명 했는지 사환들이 계획대로 암논을 죽였다. 압살롬은 이렇게 10년동안 아버지를 죽인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2년동안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다. 이렇게 압살롬은 잘난 사내였다. 사람들은 정말 이런 것을 분별 할 수가 없다.
그 이후 압살롬이 모든 아들이 죽었다는 나쁜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그는 매우 슬퍼하는데..여기서 이상한 점은 왜 갑자기 하나님께 묻는 것을 잃어버렸는가 이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왜 하나님께 묻지 않았는가? 모르겠다. 다윗은 밧세바의 사건이 얼마나 컸는지 자녀교육에 연이어서 계속 실패만 하고 있다. 압살롬의 보복의 마음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이 내 맘대로 안되는 이 마음.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이 자식의 문제로 하나님이 다윗을 훈련시키고 있다. 자기 확신과 용맹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자식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었다.
마태복음 19:28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부모현제 자매 점토를 버리는 자는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랬는데, 자식을 객관적으로 보면 여러배를 주고 영생을 상속한다고 그랬는데 우리는 자녀가 이 세상에서 짠! 하고 잘되기만을 기대하기에 다윗도 예외가 없어서 객관적으로 판단을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에 는 그 누구도 용사가 없다. 자식은 자기애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부모는 자식이고 자식은 부모이다. 우리는 자녀를 분별하기가 너무 어렵다.
나눔.
천재가 되라고 아인슈타인우유를 먹여 키운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니 안될 것 같아 서울 우유를 먹였는데 그것도 안 될 것 같아서 건국대학교 우유를 마시게 했다가 또 그것도 안 될 것 같아서 지방대라고 가라고 저지방 우유룰 먹였다가 그것도 안될 것 같아서 3,4수만 해서 대학가라고 3.4우유. 그것도 안 되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는 매일 학교라도 가라며 매일 우유를 마시게 한다고 했다. 결국에는 마지막으로 빙그레 우유로 바꿨는데 언제나 웃으며 살라고 그냥 빙그레 우유로 바꿨다고 한다. 자식에 대한 기대를 잘 표현한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다윗은 혼자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과 우상이 있었다. 그래서 암논은 맏아들이여서 슬프고, 압살롬은 이뻐하는 아들이라서 슬프고, 칼이 떠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후궁이 백주에 동침 당하리라 했던 그 말을 듣자마자 살인과 범죄가 일어났다. 다윗도 휘청할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에 간교한 요나답이 나타나 왕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암논만 죽었다고 말해준다. 이 간사한 요나답의 계책은 암논에게도 압살롬 때도 발휘 되었다. 나에게 아첨을 하는 사람을 분별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잘 안 된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윗처럼 사람을 잘 분별하는 사람도 자식을 객관적으로 분별하기가 너무 어렵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자식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새로운 가치관이라고 했다. 다윗은 밧세바 간음 때도 이렇게 울지 않았는데 아들문제가 걸리자 엄청난 눈물을 흘리게 된다. 다윗을 훈련시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적용.
폭퐁눈물을 흘리는 부모인가? 그런부모가 있는가?
내가 흘리는 눈물의 이유는 무엇인가?
죄책감 때문인가? 내 죄 때문인가?
부모이기 전에 고통 받는 자녀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함께 고통 받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너와같은 자녀를 만나서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를 함께 나눠야 한다고 한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려주고 기쁨과 외로움을 가족과 나눠야한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는 것이다.
3. 편애는 사랑이 아니다.
압살롬이 이제 범죄하고 도망하게 된다. 37~39까지 그는 계속 도망간다. 편애를 받는 자녀는 사랑을 많이 받아서 건강할 것 같지만 압살롬의 내면에 분노가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기대가 크기에 부모의 요구에 맞춰야한다고, 관계가 좋은 것 같고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자신안에 감춰진 하고 싶은 기대와 욕구의 좌절로 인해 커다란 분노가 늘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분노를 건강하게 나타내는 좋은 방법은 그 사람에게 가서 사실을 말하는 것인데 자녀는 부모의 앞 보습보다 뒷모습을 더 많이 보고 자란다고 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대단한 겉모습보다 실제 삶을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왕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압살롬을 그리워한다. 달매는 다윗의 처 마아가의 아버지로 압살롬에게는 외갓집이 된다. 그에게 그만한 외가가 없었다면 반역을 도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산다는 것이 이렇게 세상적으로 피할 길이 된다. 왕의 딸 달매와의 결혼이 국익에는 매우 이익이 되었겠지만...결국 이것이 반역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어 나라가 망할 뻔 하였었다. 믿지 않는 불신 결혼이라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 것이다. 가치관이 틀리기 때문에 감정을 제어하는 방법자체가 틀린 것이다. 결국 이것은 다윗의 문제였다. 정말 사랑이 아닌 것 중에 불신결혼도 있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 돈과 스펙을 보고 결혼시키는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다. 편애를 통하여 불신결혼을 통하여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올바른 견해가 없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암논을 향한 슬픔이 가라앉고 압살롬을 보고싶은 마음이 마치 순리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해결책이 아니고 더욱 파괴적인 압살롬의 태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압살롬이 원한 것은 아버지의 인격적인 용서였다. 그러나 압살롬이 경험한 것은 아버지의 거짓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위해서는 금식을 하더니 두 아들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않는 다윗을 보는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부적절한 편애가 느껴질 뿐이었다. 자식에게서도 외모를 취하고 자식을 편애하면서 객관성을 잃었다. 사랑이 떳떳하지 못하니 분별하지 못하고 정으로만 흐를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만들기위해 자식의 문제를 겪게 하신다. 근본적으로 내가 죄에서 태어났고 죄에서 벗어날 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오늘나의 질병과 자녀문제 경제적인 문제 속에서 할 말이 없고 그저 눈물로 통곡하고 옷을 찢으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축복이다. 통곡하는 다윗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적용-편애의 여파가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불신결혼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아무리 노해도 하나님은 고치실 수가 있다.
데이비드 시몬스가 말한 분노의 해결책의 방법에는 이런것들이있다.
1)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라.
2) 문제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3) 고침받기를 원하는지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라.
4) 문제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라.
5)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6)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보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를 성령님께 구하라.
공동체 고백.
인정받는 남편을 만나서 자신을 섬기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지만 남편은 딸을 낳고난 후 암마시술소 등을 다니며 외도하자 남편을 괴롭히고 용서하지 못해서 지옥을 살았다. 가정을 배신한 남편을 용서하지 못해서 복수의 마음을 갈고닦았던 결과로 남편을 결국 직장에서 #51922;아냈고 복수만 하고나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좋지 않고 괴로워졌다. 우리들 교회에 와서 홍수심판의 이야기로 자신의 죄를 보고 말씀을 보면서 내가 세상성공에 대한 욕심을 키웠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남편의 수고를 깨닫게 되었다. 말씀이 들릴수록 남편에게 입을 닫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니 남편이 변하여 같이 교회에 오게 되고 결국 이혼했던 남편과 재결합하게 되었다고 한다.
분노는 사랑이 아니고 분별하지 못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고 편애도 사랑이 아니고 불신결혼도 사랑이 아니다.
나눔
사랑이 아닌 것에 대하여..
나는 상처에 대해 어떻게 표현 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나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있는지?
분노와 용서에 대해서 나눠보자.
윤지화(83):
분노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감정이 잊혀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때때로 올라온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호소하게 되었고,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해소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 답답하다고 호소하고 나니 내가 해석을 잘못해서 움직이지도 않고 받기만을 바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노를 끊기보다는 움직여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분노 표출은 말하지 않고 화가 났다고 표정으로 표출하여 사람들이 내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표현되지 않으면 알아서 관계를 끊어버리는 성향이 있다. 부모님의 성향을 봤을 때 어머니는 표현을 잘하시는 편이고 아버지는 친가 쪽의 일이 아닌 이상에는 화를 잘 내지 않으셨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화내는 모습이 별로 안 좋아 보이니까 나는 화를 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해서 그때부터 화를 참게 되었다.
최지희(83): 분노문제는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아직 감정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인연들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에서 더 많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마다 화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 화를 표현한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이 당장은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분노를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뭔가에 화가 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틀어지는 일이 생긴다면 많이 인내하고 먼저 경청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왜 화가 났는지를 생각해보고, 역시 기분 나쁜 것은 직접 가서 말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김진나(83): 화를 낼 때 가족들에게는 신경질을 확 잘 내는 반면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집안에서 감당해야하는 분량이 있는데 그 역할이 순종이 안되어 생색이 나고 화가 났다. 지적질을 당하기보다는 감사와 인정을 받고 싶은데 그것을 해주지를 않으니까 슬프고 나 자신의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내가 나 스스로를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진모연(80): 친구와의 문제에서 화낼 일과 나눠야할 문제를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을 먼저 해소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좀 더 분별해서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정지윤(83): 아버지와 둘이 있으면 아버지의 분노조절 장애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화를 잘 내지 못하게 되었었는데, 상담을 통해서 이제 감정을 표출 할 수 있게 되었다. 화나는 감정에 대하여 상대방에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먼저 말하게 되었다. 아직도 서툴지만 훈련하려고 노력한다. 받아들여 지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에 남들은 쉽게 하는데 자신은 어렵게 가는 것 같은 자신의 능력부족을 탓하게 되지만 공동체에서 말하고 나눔으로 나아질 것을 믿는다.
2.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오늘 나의 분노를 해결해야 한다.
나는 폭풍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아첨하는 사람을 잘 분별하고 있는가?
진모연(80): 어머니와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거의 못봤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잘 아시는 어머니의 친구분이 오셔서 어머니의 감정을 잘 설명해주시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서 감사했다. 은혜 받고 눈물을 흘리지만 그래도 적용이 안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의 믿음이 내일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윤지화(83): 엄마와 함께 여행하면서 보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약한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고, 가족 구원에 대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혼자서 움직이기에는 짐이 버겁다고 느낄 때가 많다. 아직까지는 가족들의 모습을 직면하기보단 조금 힐끗 본 정도인 것 같다.
가족 관계에 있어서 오랬동안 잘 참고 왔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라 혼자서 파이팅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어릴 때는 부모님과 자신의 뜻이 같았을 뿐인데 부모님께 순종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착한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순간이 오니까 부모님과 부딪치게 되면서 거짓된 평화가 깨지면서 가족신화가 깨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객관적으로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최지희(83): 혼자 운적이 참 많다. 그리고 혼자 울은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위로를 많이 받았다. 그로인해 가족들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아무리 울어도 내 힘으로 더 이상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도제목:
윤지화(83): 큐티를 매일 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해석 잘 할 수 있도록.
기도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제 형편을 알아주시고 마음을 만져달라고 )
정지윤(83): 나부터 잘 챙기고 건강한 마음 가질 수 있도록.
즐겁게 한주 잘 지내기.
하나님께 솔직해 지기.
아버지의 영육건강을 위하여.
김진나(83): 수요예배 및 본예배 지각하지 않도록.
정죄감 안가지면서 QT할 수 있도록.
집안에서 공격적인 태도를 받을 때 말씀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힘든부분 기대면서 기도하기.
동생의 구원.
최지희(83): 아버지의 구원과 가족구원.
말씀보면서 회개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충실히 살 수 있도록.
작품을 끝까지 준비해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도록.
진모연(80): 운동 성실히 하면서 몸 관리 잘 할 수 있도록.
매일의 삶을 성실하게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