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28. 구영미목장보고서
사무엘하 13장 20-39절
사랑이 아닌 것
말씀요약
화가 날 때 순간적으로 급상승 하는 분노호르몬은 15초면 정점을 찍고 분해되기 시작한다. 15분이 지나면 거의 사라진다고 한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은 모두 파괴적인 분노를 가지고 심히 노하고 살의가지고 분노를 감추면서 다들 사랑을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사랑하기 때문에 분노한다고 한다.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특징에 애증이 있다.
암논의 사랑이 다말을 사랑하나 사랑이 아닌 것을 보았다. 압살롬 역시 다말을 사랑하나 사랑이 아닌 복수임을 보았다. 다윗도 심히 분노하면서 사랑하면서 사랑이 아닌 직무유기인 것을 보게 된다. 모두 각자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심히 노하고 심히 통곡하고 있다. 사랑하나 사랑이 아닌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늘은 다윗의 직무유기와 압살롬의 원수 갚는 것에 대해서 보려고 한다.
1. 분노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20절, 공동번역을 보면 압살롬이 다말을 보고 암논이 너를 건드렸지? 그래도 근심하지 마, 내가 원수를 갚아줄게. 세상 사람은 이렇게 말해주는 것을 사랑이다. 그러나 다말이 처량하게 지내게 된 것이 축복이다. 친가도 외가도 왕가인 왕의 딸로서 가난하고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암논과 압살롬은 그 가난한 마음을 끝까지 몰랐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3-4절)했는데, 짧은 인생에 다말은 영생을 맛볼 수 있었기에 축복이라고 생각을 한다.
21절, 노하다는 불타오르듯, 몹시 분노했다는 의미이다. 다윗이 무엇을 듣고 노했는가? 자기 딸 다말을 범하고 버린 일을 들었다. 듣고 심히 노했지만 암논을 처벌하지 않았다. 왜 일까? 자신이 범한 죄 때문에 뉘우치고 참회하느라고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도가 죄를 범하면 세상을 책망하기가 어렵다. 죄로 인한 후유증은 지도자들에게는 더 심각함을 보여준다. 진리에 대해서 단호하지 못하기에 점점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이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자기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통치해야 하는 입장인데 스스로 중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실수를 범한다. 자신의 가문에 등장한 치욕한 간음사건을 은폐하고 덮어놓으려고 한 것이다. 밧세바 사건이 트라우마로 다가왔을 것이다. 다윗이 암논을 정말로 사랑했다면 죄에 합당한 징계를 내렸어야 했다. 그런데 그냥 분노만 하고 있다.
다윗은 암논과 압살롬 중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저 직무유기를 했다. 22절, 압살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압살롬의 분노는 암논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다윗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압살롬은 복수의 칼날을 깊이 숨긴 채, 괜찮은 척 했다. 암논도 권세가 없기에 상사병을 앓은 것처럼, 압살롬도 권세가 없기에 살인을 했는데, 살인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뿐이다. 다윗은 권세가 있어서 간음도 살인도 금세 해치웠다.
압살롬이 누이의 사건으로 다윗에게 가서 분통을 터뜨렸다면, 그것으로 관계회복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것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 분통을 터뜨려서 관계가 악화되면, 그것은 죄의 열매이기도 하다. 이 땅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비교적 괜찮은 부모는 항상 같이 있어주지 못해도 적절하게 좌절시키기도 하고, 분노를 일으키게도 하는 부모라고 한다. 분노했지만, 직면하며 풀어보려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압살롬의 분노는 다윗과 암논을 정조준하며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분노는 건강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너무 민감하게 표현해도 안 되고, 너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만히 있어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 형제를 실족하게 할 만큼 분노하는 것도 죄가 된다. 건강하게 분노가 표현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상처당한 것에 대해 어떻게 분노를 표현했는가? 데이빗 씨맨즈의 상한 감정의 치유에 나온 예화. 성도들을 정죄하고 사모님에게도 비판적인 말만 일삼은 목사님이 상담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군복무 중에 창녀촌에 여러 번 드나든 일에 대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니까 사모님의 사랑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그는 A. W 토저가 말하는 확실히 거듭난 사람이었고, 진정한 크리스천이었지만, 강단에서 용서에 관한 설교도 했지만,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용서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게 하는 것만큼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분노를 한다.
압살롬은 분노를 아직 말하지는 안았지만, 표현하는 다윗보다 훨씬 무서운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믿는 우리는 어떤 경우도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이다. 백 데나리온 때문에 그만 빚 받으러 다니시길 바란다.
Q. 분노하고 죄에 대해서 징계했는가, 그냥 넘어갔는가, 아예 표현안하고 속으로 쌓아두었는가? 아버지 입장, 아들의 입장에서 나누어보자.
2.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23절, 분노도 타이밍이 있다. 해가 지기 전에 풀어야 한다. 그런데 극심한 분노를 2년이나 가지고 있었다. 압살롬은 이미 병이 들었다. 미움을 잊어버리지 않고, 미움을 간직한 채 2년을 보냈다. 치밀하게 복수를 준비했다. 사실, 그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인데, 미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다윗에게도 밧세바의 가임기간인 일 년이란 시간을 주셨지만 스스로 회개하지 않았었다.
하나님은 항상 충분한 시간을 주신다. 우리에게 시간이 있는 동안,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압살롬은 이미 택자가 아닌 것이다. 이 일로 다윗에 대한 미움을 10년이 넘게 가지고 있었다. 충동적인 암논이나 치밀하고 계획적인 압살롬이나 다 같이 구원받지 못했다. 매질한 부모는 아들에게 사과를 해야 아들이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 그래야 마음의 상처가 씻겨질 수 있다. 매질 당한 자녀는 피해자로 있다가 힘이 생기면 가해자로 바뀐다. 매를 드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히는 것을 말한다.
미움의 마음으로 기도하면 기도문이 열리지 않고, 응답도 일어나지 않는다. 분노는 자기 통찰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 늘 남의 탓을 하게 되면 성격장애가 되어 자기문제를 보지 못하게 된다. 에베소서 4장 25-27을 보면, 분노를 표현하는데 아주 좋은 지침이 되는 구절이다. 1) 거짓을 버리라-분노를 억압하거나 위장하는 것은 거짓이다. 2)진실함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 화가 났다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3) 분을 내라 4)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5) 그렇게 분을 품으면 마귀가 개입할 수 있는 좋은 틈을 열어주어서 압살롬이 마귀가 개입한 것이다.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좋은 방법은 경청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이다. 90% 듣고, 10% 자기 얘기를 해야 한다. 잠언15장 1절,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십자가는 타이밍이라고 했는데,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망치로 조개껍질을 깨려고 하는데, 조개는 끝까지 상처를 입을 지언정, 껍질을 열지 않는다. 소금기가 있는 물에 담가두면, 어느 날 저절로 입을 열게 된다. 본문 24-25절, 압살롬이 양털 깎는 일에 다윗과 신하들을 초청했다. 다윗이 그 행사에 가면 압살롬에게 누를 끼칠 것 같다며 거절을 하자, 압살롬이 다시 다윗에게 올 것을 간청을 했다. 26-27절, 다윗이 또다시 거절을 하자, 그러면 형 암논을 대신 보내달라고 말하였다. 집안에 위기와 살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다윗이 압살롬에게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에 있다. 보내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형제간의 우애를 막는 것 같아서 보호막으로 다른 아들을 다 같이 해서 암논과 함께 보냈었다. 암논의 범죄에도 다윗이 이용을 당했고, 압살롬의 복수에도 다윗이 이용당했다. 자식들이 계속해서 범죄에 이용했다. 자식은 배반당하기 위해서 키운다고 했는데, 다윗이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갈수록 깨닫게 된다. 왜 인가? 다윗이 하나님께 성전 지어드리겠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지 말고 대신에 내적 성전을 지어라, 내(하나님)가 너(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고 하신다. 다윗이 알았다고 해 놓고는, 음란 살인 간음을 하니까 혹독한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28절, 암논은 2년 전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고,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씀한다.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 암논 자신이 왕위계승권자이기 때문에 금새 교만에 빠져 있다. 마음이 풀어져서 압살롬 앞에서 완전히 술을 만취하도록 마신 것이다. 술 취함은 대적에게 공격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압살롬은 시기와 관계와 질서를 철저하게 연구해서 디데이를 잡고 반대의 용맹을 내라고 했다. 다윗이 암논을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처벌해야 한다고 명분을 내세우면서, 자신도 다른 사람도 분노의 복수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도, 압살롬도, 암논도 누구도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다 사랑이라고 하고 있다. 복수도 이렇게 치밀하게 하는 것을 보니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 수 있다. 29절, 압살롬이 얼마나 복수의 명분을 잘 설명을 했는지, 사환들이 분부대로 암논을 죽였다. 압살롬은 10년 동안 아버지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다. 복수를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마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겉보기에 너무나 나이스한 사람인 것이다.
30-31절, 압살롬이 모든 왕자들을 죽였더라는 악성루머에 다윗이 비통함에 빠지고 만다. 다윗은 왜 갑자기 하나님께 묻는 것을 잊어버렸다. 다윗의 집안이 영적인 집안인가 할 정도로 영적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다윗이 왜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걸까. 밧세바 사건 이후에 다윗은 그것이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자녀교육에 실패를 하고 있다. 압살롬을 제대로 분별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자식의 문제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훈련시켜 가신다. 다윗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암논과 다말 애기를 듣고도 기가 막히고,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다는 얘기를 듣고도 기가 막혔을 것이다. 자기 확신과 용맹은 다 어디로 가고, 자식 문제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19장 29절에 보면,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성공하길 바란다. 다윗도 객관적으로 자녀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녀가 사람을 죽이고, 간음을 했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이다. 자식의 문제는 그 누구도 용사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식= 자기애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가족이 없이 혼자 떠돌아다니다 보니까,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고, 우상수준으로까지 갔다. 집안에 칼이 그치지 않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간음과 살인이 연달아 일어났다. 다윗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32-33절, 간교한 사람 요나답이 등장, 그의 계책으로 암논이 죽임을 당하였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려고 한 것을 요나답이 알고 있었는데 다윗에게 와서 말하지 않았다. 결국 압살롬도 죽게 되었다.
나에게 아첨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되는데, 분별이 안 된다. 우리는 나에게 욕하는 사람은 싫고,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요나답이 암논만 죽었으리다고 하면, 다윗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요나답은 꿰뚫고 있었다. 다윗처럼 사람을 잘 보는 사람이 어떻게 압살롬을 예뻐할 수 있겠는가? 다윗이 사람을 잘 보다가 갑자기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실수를 하는 것을 본다. 자식을 개관적으로 보기가 어렵다. 주의 일을 위해 자식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새로운 가치관이라고 했다.
34절, 압살롬이 도망을 한다. 35절, 다윗은 밧세바 간음 때도 이렇게 울지 않았는데, 아들 때문에 옷을 찢고 심히 통곡을 하고 슬퍼했다. 자식 문제로 폭풍 눈물의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다윗을 훈련시키는 것은 자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Q 폭풍 눈물을 흘리는 부모인가, 그런 부모가 있었는가?
폭풍눈물을 흘린다면 왜 흘리는가, 죄책감 때문인가, 내 죄 때문인가?
부모로서 그동안 가졌던 마음을 자녀들에게 털어놓는 기회를 가져보기 바란다.
3. 편애는 사랑이 아니다.
압살롬이 도망을 한다. 34,37,38,39절에 보면 도망을 간다고 한다. 편애를 받는 자녀는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건강할 것으로 예상되나, 압살롬의 의외로 내면에 분노가 가득한 것을 보게 된다. 기대가 크기에 부모의 요구에 맞춰야 한고, 관계가 좋은 것 같지만 관계에 순종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감춰진 하고 싶은 욕구와 기대의 좌절로 인해 커다란 분노가 늘 자리 잡고 있다. 분노를 건강하게 나타내는 좋은 방법은, 그 사람에게 가서 사실을 말하는 것인데, 자녀들은 부모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고 한다. 그럴듯한 겉모습보다는 실제 삶을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37-39, 압살롬이 그술 왕 암미울의 아들 달매의 집으로 피신을 한다. 달매는 다윗의 처 마아가의 아버지로, 압살롬에게는 외가가 된다. 압살롬에게 그 정도로 믿을 만한 외가가 없었다면, 반역을 도모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잘산다는 것이 이렇게 세상 적으로 피할 길이 된다. 이방여인과 불신결혼을 한 결과이다. 결국 이것이 다윗의 문제였던 것이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다는 말은 진리 중에 진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사랑이 아닌 것 중에 불신 결혼이 있다. 눈물의 인생을 살고 있다. 통일왕국의 왕이 된 다윗이 자식 때문에 폭풍 눈물을 흘리고 있다. 편애를 통해서 불신결혼을 통해서 결혼과 모든 것들에 대한 견해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 것을 본다. 암논을 잃어버린 슬픔과 압살롬에 대한 분노에서 벗어나, 다윗이 살아있는 아들 압살롬을 다시 권념하는 것이 순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더욱 파괴적인 압살롬의 만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암논에 대한 슬픔은 잦아들고,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강해졌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압살롬이 원한 것은 아버지의 인격적인 용서였다. 그러나 압살롬이 경험한 것은 아버지의 거짓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윗은 아무 것도 경험한 것이 없다. 밧세바를 위해서는 일주일이나 금식을 행하더니, 암논과 압살롬을 위해서는 하루도 금식을 하지 않았다. 자녀가 보기에도 이런 편애가 없고, 이런 차별이 없다. 계속 편애로 다윗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압살롬을 취하고 있다. 자식에게서도 외모를 취하고 있다. 자식을 편애하면서 객관성을 잃었다. 사랑이 떳떳치 못하니까 정으로만 흐르고 분별이 없어진다. 그래서 다윗을 예수님의 조상되게 하시려고 기가 막힌 사건을 겪게 하셨다. 근본적으로 내가 죄에서 태어났고 죄에서 벗어날 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오늘 나의 질병과 자녀문제 경제문제 속에서 할 말이 없고, 그저 눈물로 통곡하고 옷을 찢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다윗의 인생이 축복이라고 생각된다.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나의 죄 문제와 너절함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이다. 다윗의 통곡이 아버지의 마음이라고도 생각이 된다.
Q 편애의 여파가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편애에 대해서 나눠보고, 불신결혼에 대해서도 나눠보자.
아무리 노해도 하나님은 고치실 수가 있다.
분노에 대해서 데이빗 씨맨즈는 이런 해결책을 얘기했다. 1)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라. 2) 어떤 문제든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3) 고침받기를 원하는지를 스스로 물어보라 4) 문제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라 5)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6)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또한 어떻게 기도할 바인지 성령님께 기도하라고 한다.
목장 나눔
오늘도 6층 소년부실에서 나눔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77또래 장혜경 언니가 새로 오셔서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고, 언니의 소개를 듣고, 말씀요약 후 간단히 적용질문위주로 나눔을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목자언니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언니의 타이밍으로 가져간 것과 취업에 대한 문제를 공부를 도피처 삼아 자존심을 세운 일을 죄패로 나누었고, 나래언니는 학창시절엔 건강고난으로 하나님을 떠났었고, 직장을 다니면서는 양다리를 걸쳤던 사람과 만났던 것을 고난으로 나누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웬만큼 잘하지 않고서는 칭찬을 받아본 일이 많지 않아서 교회로 도피했는데, 성품적인 교만을 신실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의 칭찬에 취해서 살다가 삼개월에 걸친 취업과 결혼과 교수님과의 관계 문제가 쓰나미처럼 겹겹이 일어난 후에서야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던 것과 이후의 삶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혜경언니: 4대째 모태신앙, 태어나고 보니 이미 종교가 정해져 있더라. 초중고교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교회를 다녔었다. 대학 때 선교단체 C. C. C에 들어가서 제대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십자가 사건이 개인적인 상황으로 다가왔다. 대학 졸업 후에 자유롭게 지냈다. 강남의 O교회를 4년 정도 다녔으나,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서른다섯 이후로, 고민이 많아지기 시작했을 무렵, 스캇 팩 박사의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의 종교 챕터를 읽게 되었다. 신앙을 멀리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침례교에 관심이 생겨났고, 그것을 대표하는 교회에 찾아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그들만의 리그인 듯 텃세가 심했고, 코이노니아만 치중한 듯 보였다. 자유주의 신학의 선두주자인 분들은 원로목사로 계셨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물이 한 곳에 고인 듯 한 인상을 받았다. 무신론자들이 지은 실존주의 서적을 읽으면서, 거기서 오히려 내가 유신론자구나 라는 것을 역으로 깨닫게 되었다.(하나님께서 언니의 호기심과 지적 관심에 맞춰서 기막히게 인도하심이 들으면서 반가웠달 까요? ^^ 맞춤식 방문!) 동생을 따라서 서현역 부근에 교회를 다녀보기로 했다. 3주전에 여자 직장인 목장에 참석했는데, 나눔의 수준(깊이)에 놀랐다. 나눔을 듣고 보니, 내 문제가 하찮게 느껴지더라.
나에 대한 인포를 조금 준다면, 프로그램 개발자이다. 청년부에 오면서 한 가지 우려 되는 것은, 나눔이 너무 이성교제나 결혼 쪽으로 흐를까 하는 것이다. 현재 교제중이나 둘 다 결혼은 생각이 없다.
Q 다시 종교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혜경언니: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 한없는 사랑을 받아보는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래서 내가 그럴 수 있는 인격과 성품을 가지고 싶다. give take 가 아닌, 그래서 나도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슨 이유가 이렇게 사기캐릭터스러운지..!! 이유치고 너무 멋지잖아요. 들으면서 울컥거리는데 열심히 참았어요. 저까지 울 순 없으니까요~ ㅎ ㅎ )
우려되는 부분은, 가정에서 이러한 경험이 없고, 아버지나 할아버지께서 권위적이시고, 또 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에 묘한 반항심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하는 마음이 무의식중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오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목소리 차분하고 매우매우 논리 정연한 언니의 나눔은 듣는 것만으로도 뭔가 지적인 채움이 생겨나는 것 같아 좋았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듣고, 격일간 밤샘근무 같은 야근을 하느라고 체력이 바닥난 언니를 위해 초집중을 하고, 먼저 언니의 나눔을 듣고 먼저 보내드렸답니다.(그래봤자 30분 먼저 일어나게 했다는 거...잉잉..)
나래언니:
1) 나는 분노를 건강하게 표현하는가? 그런 편이다.
2) 나는 폭풍눈물을 흘리는가, 내 죄 때문인가, 죄책감 때문인가? 폭풍눈물을 흘리는 날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있다면 예배드릴 때 많이 흘리는 것 같다. 예수님이 나 대신에 흘리시는 눈물 같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3) 편애의 여파가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나는 편애를 하는 사람인가? 당연히 그렇다. 예쁜 사람과 예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일을 할 때도 상사라고 나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은 별로다. 차라리 그런 것에는 무뎌도 FM스타일이 좋다. 기본에 충실한 사람, 일 잘하는 사람이 훨씬 낫다. 그리고 일을 하다보면, 심정적으로 곤고한 사람이 보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목자언니:
1) 생색이 난다. 적절하게 잘 표현하고 싶다. 분노가 났을 때 제 때 표현을 못하니까 그것을 곱씹게 되는 것 같다. 예전 목자언니 생각이 난다. 여럿이서 함께 있을 적에는 말을 잘하다가 언니랑 단둘이 있으니까 이상하게도 빤히 쳐다만보고 아무런 말을 안 하는 거다. 왜 이러나 싶었고 화가 났지만 그냥 참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것이 그 언니의 약함이었다. 그런데 내가 업무상 너무 바쁘니까 옆에 사람이 와도 안 보이게 되더라. 목자언니랑 둘이 있을 적에 그 모습이 연출이 되더라. 그러면서 그때 그 언니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와 관계없이, 바로 내 감정을 표현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부분이 있다.
2) 지난 주 금요일에 예배드리면서 가족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목장은 어떤가, 목장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은 가족을 못 넘어가는 구나하는 부분이 있다. 동생이 교회를 쉬고 있다. 내가 공부할 때, 용돈도 주고 지지해 주었던 동생인데, 동생 앞에서는 내가 직무유기 하는 죄인 같아서 고민 된다. 가족들에게 이런 부분이 잘못 됐어 라는 말이 안 나온다. 가족에 대해 말을 못하면서 내가 진짜 무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이 훈련시켜 가시는 것 같다. 동생은 유학을 가고 싶었다고 한다. 회사원 생활이 싫고, 공부를 했으면 하는 게 있다. 가족들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면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면 좋겠다.
(혜경언니: 동생은 어쩌면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목자언니: 은화는, 양육교사 훈련 어땠어? 첫주차 소감 간단히 얘기해주고, 적용질문에 대해서도 나눠줘.
은화: 어제 시작했다. 당연히 기대가 되고 감사할 일인데, 수요일 오후부터 당일 새벽이 되도록 마음이 열리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 이대로 잠들면 못가는 거지 하고 새벽 늦게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6시 반. 삼십분 동안 뒤척이다가 일어났다. 두 시간 만에 마감되었는데 언니가 신경 써서 제일 먼저 신청을 했다는 말이 생각나서 과제도 하는 둥 마는 둥 한 채여서 맘 같아선 그냥 제끼고 싶었지만, 꾸역꾸역 정말 힘들게 교회에 갔다.
도착하고 보니, 어린 또래들도 있었고, 잠을 설쳐가며 과제를 해오는 모습들, 기대어린 모습들을 보는 게 그렇지 못한 내 모습과 대조가 되어 괴로웠다. 뻔뻔하단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빠지게 되면 맘이 편칠 않고, 빠진 나를 자책하느라 힘들 텐데 그럴 거면 가자는 생각에서 간 거다.
내 평생 이렇게 마음이 닫혀있던 시기도 없던 것 같아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너무나 힘겹게 첫 주 모임을 마치고 나니까 목장 카톡방이 생각났다. 힘들면 힘든 티내고 찡찡거리느라고 폭풍 카톡을 하게 될까봐 자제를 한다고 너무 참다가 더 힘들어진 것 같다. 마음이 열리고, 성품적인 교만함이 깨져서 말씀이 들리길 기도해주면 좋겠다.
목자언니: 은화는 안 괜찮다고 말하는 적용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중보할 기도제목이 있으면 목장 그룹카톡방에 요청을 했으면 좋겠다. 그 부분의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은화:
1) 삼십 년이 넘도록 제 때 표현을 못하고, 집에 와서 잘 때 울면서 잠이 든다. 너무 억울해서 흘리는 분노의 눈물인 것 같다. 사춘기도 없이 지냈고, 큰소리도 못 치던 내가 교회를 옮기고부터 뭔가 조금씩 부모님 말씀에 토를 달고 목소리만 커져도 처음에 크게 놀라셨다. 쟤가 갑자기 안하던 행동을 하네 싶으셨던 것 같다. 처음에는 건강하게 싸우라는 처방이 부담스럽고 싫었는데, 연습을 하다 보니 감정이 폭발하거나 너무 눌려서 화낼 타이밍을 놓치거나 하는 일이 줄었다.
2) 폭풍눈물을 흘리는 때는 잘 없는 것 같다. 요즘엔. 좀 전에 말했듯이, 화가 날 때 감정을 그때 바로 표현을 못하고 쌓아두다가 한꺼번에 폭발을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잘 때 자면서 울 때가 많았다. 억울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혜경언니:
1) 경우에 따라서 다르다. 내 욕구와 감정이 무엇인지 분화해서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훈련을 하니까,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해야 할 말을 잘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2) 가끔, 가족사에 대해서는 그런 편이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에 관한 영화나 자료들을 보면,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자기 연민으로써의 눈물인 것 같다. 복합적인 것도 같다.
기도제목
목자언니
1.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고 가족의 예배가 회복되도록.
2. 기도시간 확보 많이 하도록.
3. 일상생활에서 바른 몸자세 유지하고 피곤해도 스트레칭과 운동할 수 있도록.
4. 동생과 같이 영어스터디 시작하고 진솔한 대화도 할 수 있도록.
5. 목장과 초등부 그리고 초원을 위해 폭풍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 있도록.
나래언니
1. 회사에서 업무와 사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눌리지 않도록.
2. 생활예배, 기도생활 할 수 있도록.
3. 말과 행동에 있어 주님 자녀답게 할 수 있도록.
혜경언니
1. 나를 돌아보는 글을 쓰기로 다짐했는데, 꾸준히 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통찰의 지혜가 깊어지도록.
은화
1.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고, 특히 엄마와의 분리 잘 하도록.
2. 양육교사 훈련 동안, 하나님께 많이 묻고 감사함으로 훈련되어져야 할 부분 훈련받는 시간되도록.
3. 생활의 단순화(잘 때 푹 잘 자고, 일찍 일어나도록)
4. 구직활동 열심히 하되, 하나님께서 합당한 일터 주실 것을 믿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