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나
사무엘하 13:1-19
한 목사님이 있다. 이분은 크리스챤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성경을 절대적으로 믿는 교회에서 최상급의 리더쉽 훈련을 받았고 가장 뛰어난 신학교육 받은 목사님이다. 이분의 세계가 뒤집어지는 일인 혼외정사가 발각되었다. 20년 동안 봉사해왔던 사역지로부터 해고되고 이혼 당하고 가족을 잃어버리는 광야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름은 패트릭민즈 목사님이다. 밧세바 이야기로 성적범죄가 이어지면서 성경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오늘 본문도 너무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것은 성령님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은 특히 패트릭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남자들에 대해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이분은 하나님도 부인도 불륜대상도 사랑했을 것인데, 이분의 사랑의 실체는 무엇일까? 사람은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구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너무 커서 잘 모르는 것 같다. 오늘 암논이 다말을 사랑했다고 한다. 우리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암논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죄의 삯인 사랑
부모의 죄의 대물림이라는 이야기이다. 1절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오늘 줄거리는 이렇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인 다말을 짝사랑하며 울화병 즉 상사병까지 이르게 된다. 못된 친구 요나답의 계책을 듣고 암논은 옳지 않은 방법으로 여동생을 소유하려고 했다. 결국 그 누이동생을 강간하고 차버린다. 암논은 왜 이런 사랑을 했을까? 오늘 1절은 “그 후에”로 시작된다. 다윗이 범죄하고 죄를 회개한 후에 징벌을 예고받고 “그 후에” 로 시작을 한다. 다윗의 성범죄가 있은 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암논과 압살롬의 범죄는 다윗의 범죄로 봐도 무방하다는 뜻이 있다. 다윗은 유부녀 밧세바를 범했는데 아들은 유부녀보다 더한 여동생을 범했다. 다윗은 권세를 가지고 속전속결로 간음을 행했는데 암논은 그만한 권세가 없기에 상사병을 앓았다. 암논은 아버지가 전쟁 중에도 여자를 수없이 갈아치운 것을 보았다. 맏아들이기에 고스란히 보았다. 다윗의 아내들이 다윗의 관능적인 욕망을 자극했고 다윗이 거기에 탐닉했다. 자식들도 그것밖에 보고 배운 것이 없기에 일찍 관능의 쾌락에 눈을 떴다. 서로 다른 어머니를 가지고 있기에 서로 음란을 행하기가 쉽고 왕위 다툼도 심했다. 부인이 많다보니 자식 훈계도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 할 수 가 없었다. 아버지는 미갈, 아비가일, 밧세바 등 몇 번째나 굵직한 사랑타령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기 엄마와 자기는 안중에도 없다. 암논은 아히노암의 아들이다. 그렇게 사랑에 굶주려 있는데 구속사도 모르는 암논 앞에 절세 미인이 나타났는데 누이동생인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암논은 욕정을 불태울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해서 병이 났다. 죄를 범하지 못해서 병이 났다. 죄 지을 기회만을 엿보던 암논은 하나님도 업신여기고 인간의 도리도 저버리고 이복 누이를 겁탈하는 악행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범죄는 처음과 끝만 있을 뿐 중간은 없다고 한다. 범죄자들의 가족을 범죄문제로 보는 이유는 범죄인 못지않게 이들의 가족도 비슷한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악이 누구로부터 왔는가? 보고 배운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온 것이다. 다윗 집은 범죄자 집안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성경은 죄의 영향력이 3,4대까지 미친다고 한다. 밧세바와의 간음을 회개했다고 해도 아들인 암논도 간음을 행했고 그 밑의 동생 솔로몬은 천명의 아내와 첩을 두었다. 다윗의 아들들은 성에 집착을 했다. 이런 부모의 죄에 대해서 조상의 뿌리를 생각해 보는 것에 대해서 다들 불편해 한다. 항상 부모는 훌륭하고 조부모는 더 훌륭하다고 후손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훌륭한 부모 없다. 그러나 성경은 약점에 대해 진실하게 말하는 것을 성경적인 회개라고 한다. 에스라는 자신의 죄뿐 아니라 조상의 죄까지 자복을 했다. 나의 잘못된 행동의 뿌리를 알지 못하면 고치기가 어렵다. 고통을 가져다 주는 많은 습관과 태도 뒤에는 몇 세대를 내려오는 동기와 형태가 있다. 죄는 단지 학대, 살인, 거짓과 같은 외적인 타락을 일으킬 뿐 아니라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오랫동안 습관화된 자신의 죄의 반복성으로 인해 다들 고통을 경험한다. 집안의 역사와 나라의 역사를 정직하게 대면할 때 나를 알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한다고 할 때 부모의 거짓말을 용납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부모에 대해서 정직하게 직면하고 믿음과 아닌 것을 정확하게 대변해야 한다. 그것들은 부모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들 “내가 예수님을 믿지만 나의 과거의 모든 것을 파헤치고 싶지는 않다. 우리 부모님은 지금까지 존경 받아 왔는데 내가 다른 것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 내가 건드리든 안 건드리든 주님은 나를 택하셨고 내게 역사하실 거니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회개는 우리의 죄를 분명히 보고 그 다음에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저는 우리 식구들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식구들 얘기를 하는데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겠는가? 좋은 이야기도 한 두 번이지 누가 주야 장창 자기 식구들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는가? 세속사로 듣는 사람들은 제가 집안식구 흉을 본다고 생각을 한다. 우리 시부모님은 가정적으로 어떤 부모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훌륭하신 점들이 많다. 친정 부모님은 저에게 직무 유기를 한 것이 많기 때문에 상처를 주었다고 할 수 있는 부모님이다. 그러나 오직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하면서 왔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나의 오픈을 책임지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고 해 아래 새것이 없는 인생들의 예로써 쓰임 받게 하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오직 예수 믿게 하는 것 구원의 관점으로 보는 것 이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패트릭 목사가 이혼을 당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서 직면하게 되었다. 그 아버지는 어려서 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공부가 하기 싫어서 집을 떠나서 막노동으로 일생을 살았다. 카우보이, 트럭운전사, 목장 주 등 남자 중의 남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책을 좋아하던 그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런 상처로 인해 아버지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상하게 배운 것이 하나도 없는 아버지의 인정을 그리도 원했지만 아버지는 패트릭 목사님이 목사가 되었어도 30년이 넘게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아버지는 육체적인 강함만 인정을 했다. 아버지가 준 상처를 성인시절까지 가지고 왔고 그것을 대신하기 위해서 감정적으로 허약한 여자들에게 끌려 그들을 보호해 주고자 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버지가 아들이 남자 됨을 확증해 주지 못할 때 그 아들은 건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여자들에게 그런 확증을 계속 받고자 한다. 그러나 어느 여자도 남자들 안에 있는 아버지 형상의 빈자리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여자에 대해 아무리 많은 관심을 가져도 한 남자의 상처 입은 남성성을 고칠 수는 없다. 문제 있는 아버지는 학대하는 아버지, 부재중인 아버지 비판적인 아버지, 지배적인 아버지로 나눌 수 있다. 암논의 아버지 다윗은 부재중 아버지였을 것이고 무관심하고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자기가 무관심한지 학대를 하는지 조차도 인생에서 커다란 타격을 받을 때까지는 그런 감정이 존재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한다. 목사님이 인정을 받고자 여자에게로 가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아버지는 바람도 안 피우고 나를 잘 키워줬어” 하는 경건주의자들은 더 나쁜 것 같다. 좋은 아버지 없다. 아버지가 무엇을 물려주었는지 생각을 해보자. 바람, 주식, 술 여러 가지로 얼마나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버지의 상처로 인해 여자에게 끌리던 패트릭 목사도 결국 도덕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좋은 역할 모델이 없다고 해도 “난 아버지를 본 적이 없어” 해도 고아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하늘의 아버지를 알 때 세상의 아버지의 상처로부터 치유될 것이다. 그래야 축복이 자녀에게 대대로 내려갈 것이다. “그 후에”로 시작되는 부모의 상처를 자녀들에게 되물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사무엘은 아들들에게 본을 잘 보였다. 그런데도 사무엘상 12장에 보면 그들이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다. 아무리 내가 본을 보이려고 해도 자녀들이 그것을 따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러나 악한 일은 보이는 척만해도 전염된다. 악한 것은 가만히 있어도 따라간다. 좋은 것은 따라가기가 너무 어렵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다는 것이다. 죄의 삯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홈페이지에 “내가 끊지 못하고 몰래 하는 중독이 쇼핑 중독입니다. 아이들이 부모가 하는 대로 닮는다고 하여 가급적 작은 딸이 없는 시간을 틈타 간간히 쇼핑사이트를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자기 수준보다 높은 큰 돈을 받은 딸이 그 돈을 움켜쥐고 집에 오자마자 쇼핑 사이트를 들어가더니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을 장바구니에 넣고 구매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여준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제가 문제엄마 맞습니다. 이거 저 때문인 거죠?” 이렇게 글을 올렸는데 리플을 그 딸이 달았다. “응 엄마 때문이야 난 엄마가 쇼핑 중독 말고 영화 중독만 끊었으면 좋겠어 ㅎㅎ 나 교회에서 입을 옷좀 사#51501; 엄마것만 사지 말구”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전도를 하는 것인데 다윗은 범죄 기간에도 전쟁에서 계속 이기고 있기 때문에 그 후에 이 일이 와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진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눈물의 인생이 시작된다. 적용해보자. 나의 사랑은 죄의 삯인가? 부모로부터 되물림된 죄의 결과를 인정하는가? 되물림 된 죄는 무엇인가? 부모를 욕하면서 닮는 것은 무엇인가?
2. 끝을 보는 사랑
이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되물림했어도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1절 “그 후에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암논은 다윗의 다른 아들이라고 표현했다. 압살롬은 셋째 아들이고 암논은 첫째 아들이다. 다윗은 압살롬만 좋아한다. 여기서부터 편애가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누이는 외적 조건이다. 아름답기 때문에 암논이 연애를 했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다고 외모에 유혹된 아버지의 죄를 아들도 그대로 범한다. 여기서 사랑했다는 것은 성적 충동을 가졌다는 의미가 강하다. 2절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병이 되었다. 3절에 보면 이런 사람에게 간교한 친구가 있다. 열등감이 많고 충동적인 사람에게는 제대로 된 친구가 없다. 간교한 친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사람도 지정의 중에 하나에 치우치면 병이 된다. 무조건 적인 충동을 채워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 아닌데 완전히 잘못된 조언을 주고 받고 있다. 4절에 “네가 어떻게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하니 “다말을 사랑한다.” 5절에 “병든 체 하다가 아버지가 오면 다말 좀 보내달라고 그래라” 당시에는 부인과 아이들이 하도 많아서 아버지의 명령이 없으면 함부로 다니지 못했다. 6절에 처방을 받아들여서 병든 체 하고 있더니 아버지가 왔다. 다말을 보내달라고 하여 다윗이 사람을 집으로 보내어 다말에게 가서 오빠를 위해 음식을 차리라고 했다. 8절에 밀가루 가져가서 반죽해서 과자를 만들었다. 9절에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모든 사람을 다 떠나게 하였다. 10절에 너는 내 침실에 들어와서 먹여달라. 11절에 먹이려고 가까지 갔더니 누이야 나와 동침하자 12절에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이 수치를 가지고 어디로 가겠는가? 정 그러면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으라 14절에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했다. 오직 동침 할 수 있는 조건은 “힘이 세므로” 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나은 것이 힘이 센 것 밖에 없다. 힘이 세서 주먹밖에 나갈 것이 없다. 요즘은 여자들이 주먹이 센 사람이 더러 있다. 호신술 배워서 그렇다. 육신의 정욕을 이루려고 다말 하나 얻기 위해서 암논을 끝을 보려고 한다. 끝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열심이 하늘을 찔러서 밤잠을 안자고 모의를 하고 계획을 짜고 병든 체 해가면서 드디어 목적을 이루었다. 내가 회사를 하나 들어가도 끝을 보려고 승진하려고 모의를 하고 계획을 짜고 병든 체하고 밤잠을 안자고 성경의 한절이 중요한데 이렇게 쓰여져 있는 것은 여자를 하나 얻으려고 해도 이렇게 노력을 하는 것이다. 부모의 죄가 되물림되어 내려오지만 자신의 죄도 반드시 있다. 아들들 중에서도 다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 억제할 줄 모르는 불의한 정욕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1절의 “암논이 저를 사랑하나” 라는 구절은 한글성경에 “연애하나” 와 똑같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창세기 34장 3절의 “야곱의 딸 디나에게 세겜이 연련하여” 하고 똑 같은 단어이다. 강렬한 사랑의 마음에 이끌려서 강제로 범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세겜은 디나를 계속 사랑했다. 그러나 암논은 사랑하고 나서 15절에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해서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미움이 더 심해졌다. 16절에 #51922;아보내라 그런데 이 #51922;아보내는 악은 범한 악보다 더 크다고 다말이 말했다. 그랬더니 17절에서 누이에서 계집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18절에 다말을 끌어냈다. 이방인 세겜은 디나를 끝까지 사랑했는데 예수님의 조상 다윗의 아들 암논은 좋아할 때는 언제고 버렸다. 갖고 싶은 장난감 가지고 싶어서 난리를 치다가 일단 가지면 싫증 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암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악하고 음란한 우리들도 마찬가지 행동을 한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 이야기이다. 존 브래드 쇼는 어떤 중독도 친밀한 관계에 대한 시도라고 한다. 일 중독자가 일에 몰두하고 알코올 중독자가 폭음하는 것도 일종의 연애상태에 빠져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고독이나 수치나 상처를 회피함으로 고통을 잊으려고 한다. 탐욕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갖고 싶어하고 또 구하는 마음이다. 한 사람의 성격에 녹아든 탐욕의 모습은 들어난 현상 뿐 아니라 그 뿌리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부모의 뿌리도 살폈지만 탐욕적 성향이 가장 분명하게 들어나는 모습이 중독이다. 중독의 대상에 빠지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어떠한 희생도 감수한다. 암논도 일종의 여자중독 성중독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독한 사랑에 빠지면 한시간 만나려고 며칠 걸려서도 온다. 암논은 혼전관계를 한 정도가 아니라 강간을 했다. 처녀 총각이 하는 결혼 전 성관계는 관계를 파괴시킨다. 결혼 후의 성관계는 관계를 아름답게 해준다. 어느 때에 하는가가 너무 중요하다. 결혼 전에 성관계를 하게 되면 영혼은 떠나버리고 육적인/동물적인 것만 남게 된다. 더 이상 상대방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다 알아버렸기에 열정이 식는다. 그래서 성관계를 끝까지 가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 있어야 설렘도 있는 것이다. 남겨두는 것 때문에 휠씬 깊은 사랑을 하게 되고 참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대로 그 교제가 끝난다 해도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를 끝까지 가지 않는 것, 그래서 고백을 못해도 고백하는 사랑을 해야 하고 표현을 못해도 표현을 하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열 가지 말을 행동하고 싶어도 우리는 너무 사랑하면 말도 안 나온다. 다 보여주고 다 알려주어야 할 것 같지만 설렘이 안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한 오픈을 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이다. 육적으로 마지막을 지켜주는 것 끝을 남겨두는 것 이것은 정말 상대방을 존귀하게 해주고 진짜 사랑하는 것이다. 젊은 날에 성욕을 참는 것은 형극의 길이고 십자가의 길이다. 젊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것은 얼마나 고난인지 모른다. 그것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야말로 결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결혼 전에 관계를 허락하면 정말 결혼하고 무시를 받는 것이다. 왜 무시 받는지 알지도 못한다. 자기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무시를 받는 것이다. 무엇이든 끝까지 가지 말아야 한다. 부모도 끝까지 도와주면 안 된다. 자녀들이 할 일을 해야 한다. 다 도와주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하나도 감사하지 않는다. 내 부모가 돈 많은 것 다 알기에 다 남겨두어야 한다. 끝까지 보여주면 안 된다. 사장도 마찬가지다. 부하들에게 할 일을 남겨두어야 한다. 혼자서 다 해버리면 안 된다. 남자에게는 보호본능이 있어서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헌신적으로 엄마처럼 모든 것을 다 보살피면 도리어 싫어 버림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결혼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 결혼 전에는 공주처럼 태도를 보여야 하고 후에는 종처럼 헌신을 해야 한다. 그것을 거꾸로 하면 문제이다. 결혼 전에는 종처럼 다 주다가 결혼 후에 당신이 날 안 사랑하냐고 공주처럼 변하면 곤란한 것이다. 거꾸로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법이 중요하다. 혼전 순결을 지키라고 했으면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불신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은 행복하게 살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스킨쉽도 절제해야 한다. 스킨쉽을 하면 그 다음단계로 나아가기가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밤에는 안 만나는 것이 좋다. 빌미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성관계를 거절했을 때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떠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암논 같은 사람인 것이다. 인격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노출되는 성품이다.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가가 인격이고 영성이다. 언제까지 참아내는가가 인격이고 영성이다. 이것은 성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당하는 어머니가 결혼 생활 내내 너무 힘들다고 아들에게 늘 말하니까 아들이 엄마를 지켜줘야겠다 불쌍한 우리 엄마에게 기쁨조가 돼 주어야겠다는 것이 의무가 되어서 성인이 되어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엄마하고는 친밀하게 지내다 보니 여자와 주로 말하는 것이 편하고 여자에게만 끌리고 직장에서도 여자들하고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러다가 일대일로 연결이 되면서 결혼 생활의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친밀하게 나누면서 나는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으니 나는 결백해. 잘못된 일이 아니야 이렇게 계속하다가 패트릭 목사도 그 인정받던 목사님이 20년이나 되어서 연애로 발전이 되고 들어나고 이혼까지 가게 된 것이다. 여자로부터 인정을 찾는 도가 지나친 사람들은 결혼과 함께 불가피한 갈등을 겪는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 이것은 인정 우상이기에 또 다른 인정해주는 여자를 찾게 된다. 이것이 성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쉽게 감정의 교감을 이루게 되어서 시간과 정력과 결혼 생활의 친밀성을 다 고갈시켜 버린다. 다섯명 중에 한 사람은 크리스챤이 된 이후 다른 여자와 감정적인 교감을 가졌다고 인정했다. 여자들의 인정에 의존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알콜중독자가 알콜을 포기하는 과정만큼이나 어렵다. 너무 많은 분들이 여자문제에 연루되어 있다. 모두가 여자의 인정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정을 추구하지 않아도 보는 것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많다. 헌신된 목회자나 평신도 절반이상이 배우자 이외에 여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음이 98년도 통계에 들어났다. 패트릭 목사님은 이혼 후에 아버지를 직면했다. 자기 문제를 직시했다. 여자문제로 인한 행동의 새로운 표준을 설정했다. 1.결코 여자와 단둘이서 상담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2.여자들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일에 있어서 지극히 신중할 것이다. 3.여자와 교감을 나누는 일에 보다 조심할 것이다. 그런 내적인 작업이 지금도 진행 중인데 충분이 훈련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양파껍질 같아서 벗기고 나니 또 여자에게 눈맞춤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재혼한 부인과 또 싸웠다고 한다. “중요한 문제는 나의 남자상에 상처가 있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인정을 받고자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죄를 고백하는 것이었다.” 고 했다. 그래서 시편 130편에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는 말씀에 확신을 얻었다. 나의 남자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여자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직 주님에 의해 양파껍질이 벗겨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유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남자들은 남자상에 있는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데 이 분이 최고의 교육을 받은 인정받는 목사님이었는데도 이러는데 우리가 얼마나 기도를 해야 하고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없고 성령님께서 만져주셔야 되고 여러분들의 모든 남편들을 이해를 했으면 좋겠고 아버지 상처를 생각해봤으면 좋겠고 그래서 이 본문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들교회 집사님은 교도소에서 범인들을 많이 보셨다. 이 분은 그 경험으로 호주에서 박사를 하시고 지금은 교수님이 되신 분이다. 그분 글에 의하면 범죄는 자신의 얕은 수준의 욕망과 골 깊은 열등감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표현을 했다. 감옥에 가서 죄인이 아니라 우리가 들어나지 않는 범죄를 얼마나 많이 저지르고 있는가? 부모로부터 합당한 양육을 받지 못해 보고 배우지 않아야 할 것을 앞서 익히면서 어른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나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자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용해보자. 여러분의 사랑은 어떤가? 끝을 보는 사랑인가? 항상 끝을 남겨놓는 사랑을 하는가?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끝을 남겨놓는 그래서 표현하고 싶어도 절제해야 하고 고백하고 싶어서 절제해야 하고 부부로서도 절제해야 하고 부모로서 자녀들에게도 끝을 남겨놓아야 하고 상사로서도 끝을 남겨놔야 하고 끝을 남겨놓는 이런 사랑을 적용해 보자.
3. 회초리 맞는 사랑
16절에 다말이 나를 내쫓는 것은 나와 동침한 악보다 더하다고 하였으나 암논은 이것을 듣지 않았다. 우리가 불신결혼을 안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그것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는 어떤 사람도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혼은 안 되는 것이다. 다말은 구속사적으로 정확하게 할 말을 했다. 다말의 역할이 얼마나 눈물 나는 역할인지 은혜를 많이 받았다. 17절에는 누이라 부르던 다말을(계집을) 내게서 내보내라고 함께 하기보다는 자신의 집착하는 것이 강한 것이다. 그래서 욕망에서 한발 떨어져서 앞뒤를 생각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다. 모든 남자들이 이기적이다. 좋다가 한 순간에 버린다. 18절에 그를 끌어내고 19절 “다말이 재를 자기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다말이 훌륭한 것은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나타낸 것이다. [신분의 표시인 채색 옷을 찢고 재를 머리에 쓰고] 이것은 회개했다는 뜻이다. 인격과 명예가 더럽혀지는 수치를 당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건을 오픈했다는 뜻이다. 전적 무능을 고백하고 자기가 눈물 흘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길거리를 지나갔다. 성폭행을 당했어도 스스로 회개하는 다말을 보면서도 당사자인 암논은 회개를 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회개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우리들교회에 성폭행 당한 자매가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다 와서 자기가 회개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이러지 말고 내가 회개를 하면 된다. 이제 다말은 다윗을 징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회초리 때리시는 사람의 통로로 쓰였다고 생각한다. 다말이 너무나 억울한 것 같아도 하나님은 당한 것 다 아신다. 그래서 성폭행을 당한 형제 자매들의 아픔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후대하신다. 암논도 일종의 피해자이지만 피해만 부르짖다가 갔다. 암논은 아버지 미워하고 아버지 상처, 엄마 상처만 부르짖다가 끝났다. 그러나 다말은 불가항력적으로 당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기록하셨기 때문에 다 기억하시고 알아주시고 속아서 갔지만 일방적으로 당한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폭행 당한 자매들을 하나님이 너무 후대해 주시는 것을 본다. 특별히 성폭행 당한 자매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모른다. 우리들교회에서 다 오픈하고 갔는데 특별히 잘 산다. 그런데 성폭행 당했다고 버리고 무시하는 사람은 암논 보다 더 나쁜 사람이다. 인생이 다 똑같다. 아버지의 상처로부터 다 내려오는데 술, 주식, 간음, 바람, 폭력 다 마찬가지이다. 공동체 고백을 이야기 하면 부인이 우리들교회에 온지 햇수로 6년이 되었다. 남편이 근래와 와서 초신자 수준에 가까운 이분이 목장에서 오픈을 했다. 이분은 오픈하기 힘든 ‘사’ 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분도 아버지 상처가 있다. “저는 우리들교회 나오게 된 것이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집사람이 짐 싸서 나가버려서 그 때 마침 첫사랑에게서 연락이 오고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첫사랑과 같이 살까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이혼을 요구했는데 집 나간 부인이 이혼을 못해주겠다고 해서 방안에서 뒹굴며 울었다. 그래서 마음을 정리하고 입장을 정하기 위해서 한 달간 인도에 배낭여행을 떠났다. 첫사랑 정리하려고 갔는데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귀국을 해서도 가끔 만났다. 그 여자와 태국에 또 놀러 갔다. 저는 한동안 집 나간 것 때문에 화가 많이 나 있었는데 우리들교회 4번 나가주면 살지 안 살지 결정해 주겠다고 해서 나왔다. 그런데 아내가 3년이 지난 지금 처음으로 진정성있는 사과를 했기 때문에 첫사랑을 만나지 않기로 하고 끊었다. 그런데 최근에 인도에서 만났던 그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만났던 그 시간으로 갑자기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안부만 묻고 헤어졌다. 집사람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끝” 교회 오기도 어려운 분이 부부목장에 참여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분도 술이 굉장한 분이다. 자기는 자기 아들이 밤마다 술 먹고 있는 자기를 볼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도 자식 귀한 것은 안다. 자식을 축복하려면 술을 끊어야 하는데 술을 끊었으면 좋겠다. 부인이 이 오픈을 듣고 얼마나 놀랐겠는가? 첫사랑도 기가 막힌데 인도에서 만난 여자가 또 있는데다가 교회까지 왔는데 요즘도 또 만났다고 하니 돌아버린다. 그러나 이분은 목자님이신데 이런 오픈을 해주어서 계속 고맙다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나를 놓고 그럴 수가 있어” 가 주제가 아닌가? 오픈했다가 살이 8KG 빠진 사람도 있다. 자기도 너무나 결혼 조건을 많이 따져서 ‘사’자 들어가는 신랑과 결혼해야 된다고 했는데 남편이 그렇게 술 먹고 5년차쯤에 너무 숨이 막혀서 집을 나왔는데 남편이 첫사랑을 만나러 갈 줄은 정말 몰랐고 집 나간 계획은 이것이 아니었기에 죽고 싶어서 살려달라고 하다가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듣게 되고 4번만 여기 오라는 소리를 듣고 왔다고 한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를 4번 나왔는데 수요예배 4번째 드리는 날 주님이 저를 찾아오셨다.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고 “내가 너를 기다렸다. 너와 네 남편과 네 아들을 이 자리에 있게 하려고 기다렸다” 그래서 자기는 남편이 오늘 오픈이 너무 감사하고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이혼 안하고 살기로 결심한 것 하나밖에 없는데 남편이 목장 나오고 일대일 양육 받겠다고 하고 숙제도 열심히 받겠다고 한 것이 너무 은혜고 인생의 목적이 잘살고 행복함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따로 놀았는데 남편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린 것이 제가 교만하고 100% 저의 죄 때문이라고 부부가 목장에서 오픈을 했다. 이 모든 것이 공동체가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했고 나오기만 했더니 서로가 고백을 해 주셨다. 예전에는 계속 자기는 만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이야기 해준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저도 이 부인의 희망사항을 희망한다. 지금부터는 그 여자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락을 끊었으면 좋겠다. 끊을 마음이 있어서 결단으로 오픈 한 것 같다. 오픈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끊어달라.
말씀을 맺는다. 죄의 삯인 사랑도 끝을 보는 사랑도 공동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모로부터 죄의 되물림이다. 자신의 책임도 있다. 회초리 맞는 사랑으로 구속사를 이루어가기 바란다. 이제 정말 우리의 사랑은 여백의 사랑을 해야 한다. 표현 못해도 표현하는 사랑, 고백 못해도 끝을 남겨두는 고백이 되는 멋있는 사랑을 하기 바란다.
<목장나눔>
-모임장소 : 탐앤탐스
-인원 : 김철주, 이철훈, 이영수, 이종찬, 정유상, 장진엽, 한기붕
김철주
상담 시간에 가계도를 그려봄으로써 상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헌신적이고 나를 사랑하셨지만 욱하는 성격과 친척들을 금전적으로 도와 가정을 힘들게 한 것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에 대한 상처가 음란 중독으로 나타났으며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말씀 듣고 회개하는 구조 속에 있어서 다행이다.
1. 죄의 습관을 끊을 수 있도록
2. 생활예배를 철저히 드리도록
3. 목장에서 힘든 형제들이 예배와 목장에 잘 참석하도록
4. 남동생이 우리들교회 나오도록
이철훈
어릴적 아버지께서 친척에게 돈을 빌려주심으로 부모님께서 싸우시고 레고를 비롯한 아끼는 장난감을 말도 없이 친척에게 준 것이 상처가 되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깨어있지 못할 때면 이런 욕심이 올라온다. 예배 회복과 가족 구원에 대해서 애통한 마음이 들어서 노력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
>열심히 하려는 것이 많이 느껴진다.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마음이 눌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내 열심으로 하기에 그럴 것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나아갔으면 한다.
1. 말씀과 큐티 빼먹지않고 잘하도록
2. 회사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이영수
어렸을 때 부모님이 굉장히 엄하셨고 자주 혼내셨다. 또한 아버지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새벽에 부모님이 많이 싸우셨다. 부모님을 닮아서인지 동생이 대들 때마다 폭력을 행사했다. 풀지 않고 쌓인채로 시간만 흐르면서 동생과 친밀함이 없게 되었다. 남동생에게 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지만 어색해서 사과를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감정표현을 잘 못하시고 무뚝뚝하신데, 아버지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다녀오세요. 식사하셨어요?” 등의 인사가 전부이다. 술먹고 늦게 들어와서 엄마와 싸우고 무뚝뚝하고 집안에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아버지가 정말 싫었었는데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 되물림된 것 같다.
>양육교사 훈련을 통해서 죄의 뿌리를 하나님께 내어놓았으면 한다.
1. 남동생과의 관계 회복 , 가족구원
2. 퇴사하신 과장님(김연희) 항앙치료 잘 받고 면역이 강해지도록 구원의 사건이 되도록, 안병용 형님의 구원
3. 양육교사 훈련 잘 감당하도록
4. 집안 화장실 청소 잘 감당하도록
정유상
>결혼을 준비함에 있어서 회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직면했으면 한다.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갔으면 한다. 주일학교를 섬기고자 하는데 일단 소년부 탐방을 하려고 한다.
1. 결혼준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2. 부서 섬기는 것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3. 회사 생활 잘 감당하도록
한기붕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신 아버지는 마음이 한량없이 넓으신 분이다.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람들을 정말 잘 챙긴다. 나 역시 아버지를 많이 닮아 비슷한 면이 있고 자유분방하여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게 된다. 이러한 성품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1. 아버지가 부부목장에 가실 수 있도록, (아버지의 구원)
이종찬
아버지는 일을 저지르고 나서 사후 처리를 느긋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도 이런 부분에서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모습이 있다. 최근 술이 절제가 안되었던 것도 이러한 모습의 일부이다.
>술을 마시게 될 상황에서 찔림이 왔을 때 안마시는 선택(안마시겠다고 말하기)을 함으로써 넘어질 수 있지만 거룩을 좆는 적용을 해나가자.
1. 부모님 구원
2. 술끊는 적용 하도록
장진엽
우리들교회 온지 10년 되었다. 이제는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조금 생기는 것 같다. 그러나 목자를 오래하다 보니 지각을 하거나 목장보고서를 잘 안쓰는 경우가 있다. 목보를 주일날 쓰는 적용을 하려고 한다. 섬기는 자리에 충실하는 적용이 필요한 것 같다.
1. 목장 목원들 잘 나와서 목장예배 잘 드리도록
2. 사랑부 버디들을 잘 섬기도록
3. 직장 잘 섬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