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약 : 삼하 12:13-31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다윗은 밧세바 이후와 이전의 회개가 다르다. 가장 진실된 회개를 하게 된 것이 밧세바 사건이다. 나단이 일 년간 죄를 은폐한 다윗에게 찾아가 책망하자 다윗은 즉각적으로 회개했다. 진실된 회개에 대해 알아보겠다.
1. 죄 고백이 있다.
나는 죄인입니다. 옳소이다. ― 참회하는 영혼을 하나님은 결코 물리치지 않으신다.
13절, 바로 죄 고백과 죄 사함이 나온다. 건강한 신앙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 받을 수 있음을 안다. 죄 고백은 자신을 위한 것임에도 하기가 어렵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게 죄의 본질이다(창 5:3). 다윗은 하나님 자리에 자기도 모르게 가 있었다. 참 지식의 시작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이다.
다윗의 회개는 밧세바 사건 이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가?
사울에게 쫓길 때 다윗이 기도만 하면 하나님은 다 들어 주셨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핍박의 시간에는 생존이 우선이다 보니 내면의 죄까지 심각하게 생각해볼 수 없었다.
하나님 자리에 있고자 하는 죄 가운데 인정받고자 하는 게 있다.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정 성장(*영서의 대가라 할 수 있는 고든 맥도날드의 저서)이라는 책을 쓴 고든은 여자 문제가 터지자 징벌의 시간을 보낸 후 자기가 죄인인 것을 날마다 이야기 했는데, 이처럼 내가 갈 방향이 정해졌다는 것을 알고 자기 주제를 찾는 게 회개하는 삶이다. 이 말은 죄 지을 일만 찾아 헤매어 우리를 좌절시키는 병적 근성 같은 게 아니다. 인간은 창조주에 대한 반역과 불순종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이 솔직히 회개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평생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사람보다 위대하다고 했다, 자기 자신의 죄를 위해 우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르치는 자보다 위대하다. 자기의 약함을 아는 사람은 천사를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
다윗은 한마디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은 것 같지만, 즉각적인 회개, 변명이 없는 회개, 겸손이 없는 회개를 했다. 여기서는 한 줄로 표현되었지만,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통한의 고백을 한다.
우리는 또 지, 정, 의로 회개해야 하는데, 지적으로 자기 죄를 알고, 정적으로 하나님께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며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자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회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자신이 의롭다는 교만에서 무너져야 한다.
2) 자기의 모습을 보고 늘 슬퍼하고 애통해야 한다.
3)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쓰라린 애통은 모든 죄를 혐오한다.
4) 미움과 혐오를 자신에게 깊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슬픔이 있어야 한다.
5) 하나님 앞에서 백일하에 드러나는 약함과 죄과를 감추지 않아야 한다.
6) 회개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회개는 삶의 방식이다. 평생 계속 되어야 할 삶의 방식으로 일회성이 아니다. 다윗에게 밧세바의 회개는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는 분수령이 된다.
시편 51:3-4를 보면, 다윗이 깨달은 것은 스스로 죄를 짓고 물처럼 먹고 마실 수밖에 없는, 죄밖에 지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이게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셨기에 내 나라를 영원히 하리라고 약속하셨지만, 인생 막대기와 사람의 채찍으로 죄를 알게 하신다. 도덕적, 윤리적 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면 어디에서도 살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의 후반부 인생은 자기 내면과의 싸움이 되어 말이 없어지고 인내하는 인생이 되었다. (시편 6:6, 32:3-4, 7) 우술초는 문둥병을 치료할 때 쓰는 것인데, 감각이 없는 문둥병은 자신의 죄를 모른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문둥병보다 못하게 여기며 우술초로 자기 죄를 씻어달라고 고백한다. 이게 자기 죄를 고백하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내가 여호와께 죄를 지었나이다’라고 나왔지만 이런 마음인 것이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상한 심령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신다. 상한 심령의 제사를 누가 보겠는가! 한계 상황의 노아와 에노스가 보는 것이다. 과거를 뉘우침만이 아니라 동일한 죄를 미래에도 반복하지 않겠다는 회개인 것이다.
다윗의 죄의 고백을 하나님이 나단을 통해 사하신다. 허물의 삶을 용서받고 진정으로 낮아지며 회개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권세에 대한 욕망이 많다. 다윗이 부유할 때는 인간에 대해 몰랐다. 인간에 대해 모른다면 죄에 대해 모른다는 뜻이고,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니까 나중에 꽝 터지게 된다. 다윗도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불완전한 우리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초점이다. 성숙이라는 것은 더 나은 행동이 아니라 나쁜 행동을 식별하는 능력이다. 또 회개하고 또 회개하는 생활 방식이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자기 죄를 고백하는 방식인 것이다.
적용 : 나는 모든 지적에 대해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옳소이다.’가 되는가?
2. 죄는 반드시 징벌하신다.
14절, 우리가 죄를 쉽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죄값을 치룬다기 보다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죄 사함의 은총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윗의 무너짐은 원수들의 득세함을 불러온다. 원래 다윗에겐 폭력성이 있었다. 사울이 양피 백 개를 가져오라니까 무고한 사람을 죽여 이백 개를 바쳤다. 도덕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이미 죄인이다, 원치 않았지만 간음과 살인까지 갔다. 하나님이 방치하셨다.
사람이 위기에 닥치면 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하나님이 두고 보시는 게 있다. 다윗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크게 채찍을 드신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으로 하나님의 구속사가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공격한다.
15-16절, 예고된 고난은 아무 준비 없이 당하는 것과 다르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이 치시는 고난이 있다. 이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택함 받은 자녀이다. 나단은 목숨을 걸고 다윗을 책망했는데, 나단이 집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한다. 너무 두려워 말고 이야기 하라.
다윗에겐 죄 지을 때 우리아가 있고, 회개할 때 나단이 있었다. 때마다 이렇게 믿음의 동역자가 있었다.
적용 : 징벌의 대가를 받은 적이 있는가? 신뢰하는 동역자가 있는가?
3. 징벌에 순종하는 자를 사랑하신다.
1) 다윗의 회개는 징벌에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16-17절, 형벌인데 죽게 내버려두는 건 형벌의 태도가 아니다. 자격이 없는 것을 깨닫고 밤새 엎드려 회개했다. 경험 많은 신실한 신하들이 말렸지만, 지도자는 사람 말을 듣는 게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먹지도 않고 회개할 죄가 있다. 이미 징벌 받을 것을 들었지만, 간구했다. 그래도 죽었다. 그게 응답이다. 그리고 19절에서 신하들이 수군거렸다. 그렇게 기도했는데 죽었다고.
2) 징벌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현실을 수용하고 하나님을 신뢰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다윗은 응답으로 생각하기에 아이가 죽었다고 하는데 의복을 갈아입고 음식을 먹는다. 회개 후에 확신의 모습이다. 아이가 천국 갔다고 확신한다. 영아 죽음의 구원에 대한 근거의 구절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3)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
24-25절, 11장 3절은 밧세바를 우리아의 아내라고 했는데, 다윗의 회개 후에는 다윗의 아내라고 부른다. 다윗과의 간통으로 생긴 아이는 죄의 씨앗인데, 그 아이를 치심으로 죄값을 치루게 하셨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고 밧세바를 위로했다. 지금 여기서 정죄감이 가장 큰 사람이 누구겠는가? 밧세바를 위로할 사람은 다윗뿐이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여인인 것이다. 미갈은 죽는 날까지 아이가 없으리라고 했다. 다윗은 그래서 미갈과 동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죄를 범한 밧세바에 대해서는 위로하고 동침했다는 표현이 있다. 비록 자기 이름은 아니지만 마태복음 1장의 구속사 명단에 들어간 걸 보면 다윗과 믿음으로 사랑한 것으로 보인다. 땅 끝까지 내려간 남녀이기에 구속사를 통렬히 깨닫고, 다윗의 아내가 그렇게 많은데 비참했던 밧세바를 통해 영적 후사를 주신 것이다. 부부간의 아가페적 사랑이 가능한 것을 이렇게 보여주신다. 이런 아픔과 수치를 겪은 이들의 아들인 솔로몬의 이름을 여디디야, 사랑하는 자라는 아름을 붙여주셨다.
적용 : 징벌에 순종하고 현실을 수용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가?
4. 회개의 결론은 거룩이다.
26-31절, 이 부분은 솔로몬을 낳기 전의 사건이다. 다윗이 회개했기에 암몬과의 싸움에서 이긴 게 아니라 죄를 짓고 있는데도 승리했다. 다윗이 이렇게 기가 막힌 죄를 짓고 있는데 영원한 적 암몬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었다,
간신 요압은 다 이겨났으니 다윗에게 와서 마지막을 치고 승리하라고 한다. 우리아 사건을 다 알고 성경을 적제적소에 쓰는데, 요압은 음부에 떨어졌다. 죄를 모르니까 요압 같은 자에게 속는다. 다윗은 요압에게 일생 끌려다녔고, 요압은 다윗을 일생 흔들었다.
범죄 기간에 아무리 이렇게 싸움을 잘 해도, 어마어마한 돈을 얻었더라도, 죄와 수치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를 하다가 암몬 이야기는 몇 절이 더해졌을 뿐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성결과 순결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적 거룩이 없으면 끝이라는 것이다. 암몬과의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실질적 싸움에서는 졌다는 뜻이다.
적용 : 회개는 나의 개인적 성결과 거룩이다. 각자 거룩하면 교회는 저절로 간다. 각자 자기 죄를 보기로 작정하고 금식회개기도를 하면 좋겠다.
엘리 아들들, 사무엘, 사울, 예수님의 조상 다윗도 마땅히 죽을 자였기에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존속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무엘하는 말하고 있다. 인간은 우술초로 씻김받을 수밖에 없는, 내가 죄를 이기려 노력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밖에 길이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저절로 자기 수준에서 하나님을 늘 생각하다보니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게 있다. 예배의 시간만큼 하나님께 달려드니까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다. 내가 완벽히 회개해서 잘되게 해주시는 게 아닌 것이다.
목장나눔
이윤희(83) : 지금은 밧세바 사건 이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 죄를 이기려고 하고 율법적 신앙에 치우친 사람이다. 해야만 하는 것을 하는 내 성격과 무엇이든 하기 싫으면 피하려고 하는 동생의 성격이 주님 없이는 결국 똑같은 것인데, 동생의 성격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거라고 여기며 고쳐 놓고, 바꿔 놔야 한다고 생각했고, 인격적 모독과 잔소리로 상처 주고, 죽이고 싶어 분노로 울었다. 그래서 지금은 동생의 무시와 비난을 내가 받아야 할 징벌로 마땅히 여기며 받고 있다.
이예준(85) : 요즘 지저스랑 사이가 별로 안 좋다. 교회에 오기 싫은 마음으로 왔더니 나한테 죄인이라고 하고, 회개하라는 말만 하니까 기분이 안 좋아졌다. 지저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싶다. 그래도 설교 마지막 부분에서는 위로를 받았다.
요즘은 남자 친구가 좀 가라앉아 있는데 직장에서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있는 것으로 기분이 상쇄되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난다. 나한테 무척 잘해주지만, 나도 그만큼 남자 친구의 눈치를 본다. 내가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싶다.
윤미영(85) : 모태신앙으로 교회에서 반주를 오랫동안 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취업 고난이 오면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는데, 이제 별 문제없이 지내다보니 그때의 마음이 시들었고, 엇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가 죄를 지어봤자 어차피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의 틀 안에 있을 것이고, 그래서 큰 죄를 짓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도제목
윤미영(85)
-생활예배 다시 시작하도록
-직장에서 세상 기준대로 살지 않고 구별된 인생 살도록
-업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도록
이성은(82)
-큐티 묵상 오래해보기, 오전 오후로
-어린이집 그만둘 생각만하고 있는데 영원히 있을 것처럼 직장에 붙어있기
-언니의 구원
-우리 목장의 단합
이윤희(83)
-근무시간 맞추듯 수요예배도 시간 맞춰 가도록
-피부병으로 고생 중인 친구(김목주) 잘 섬기고 푸념 잘 들어줄 수 있길
-업무 가운데 일뿐 아니라 사람을 생각하고 지혜 있게 말하고 행동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