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7. 구영미목장보고서
사무엘하 12장 1-12절
당신이 그 사람이라
말씀요약
나단의 책망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책망 받는 것을 참 싫어한다. 책망받기 좋아하는 사람 정말 드물고 힘든 것 같다. 몸에 쓴 것이 건강에 좋듯이 영육 간에 좋은 것은 쓴 것이다. 성경은 책망의 책이다. 오늘 다윗같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책망을 받아보길 바란다.
1. 책망은 책망하는 사람이 있다.
책망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어야 된다. (1절) 죄 가운데 있는 다윗에게 나단을 보내시는 하나님이시다. 내 인생을 회복시켜 줄 고레스 보다 더 신실하게 해석해주고 책망해 줄 예레미야를 간절하게 찾아야 한다. 나단이라는 이름의 뜻은 선물, 주는 자 이다. 말씀을 주는 자라는 뜻이다. 쓴 소리를 해줄 수 있는 나단과 다윗과의 만남이 선물이다.
잘못이 크면 책망을 받기가 어렵다. 상당한 인격을 가지기 전에는 책망을 잘 못 받는다. 생명을 내놓고 죄를 지적하는 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자이다. 인간적인 책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책망은 그 말씀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그 말씀으로 막혔던 내 마음이 시원하게 해 준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사람은 성경의 책망이 불편할 수 있다.
처처에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말씀을 풀어주고 해석해주는 믿음의 지체가 필요하다. 목장공동체가 책망자가 될 수 있다. 좋은 책망자는 자신보다 듣는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해 줄 수 있다. 현재 모습보다 앞으로 변화될 모습으로 대하며 가능성을 가지고 책망하는 자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책망해주는 사람이 나단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죄하는 것이 된다. 그 사람에게 맞게 책망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책망자이다.
적용) 나는 좋은 책망자인가, 정죄하는 책망자인가?
2. 책망의 방법
1)누가 하는가?
2) 어떻게 하는가?
나단은 적절한 순간을 기다렸다. 적절한 순간을 기다린다는 말은, 민감함으로 책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든 맥도날드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실려 있는 느낌까지도 알아차리는 것이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침묵이나, 내용이나, 한숨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민감함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민감함을 가진 것이다. 민감함은 타고난 것인가? 훈련이 필요하다. 기도로, 경청함으로. 성숙한 사람들을 통해서(목자) 묻고, 삶의 현장에서 많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왜 그런가 묻고, 그들과 같은 삶의 자리에 있을 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방식으로 대하고 말할 때 민감함이 훈련이 된다.
민감함으로 책망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아픔이 되는 반응을 주고받을 때 본능적으로 나오는 반응이 무엇인가 체크해보자.
나단도 다윗의 죄를 직접적이기보다는 비유로 깨닫도록 했다.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친숙한 상황을 예로 들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건으로 생각하면 쉽다. 공격적으로 들리게 하지 않기 위해 우회적으로 설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민감함으로 나단은 다윗을 설득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예로 들음. 부한 자인 다윗이 처첩이 많음에도 우리야가 딸처럼 아끼는 암양새끼같은 한 아내를 취한 것을 비유했다. 다윗의 얘기, 엄청난 비유인 것이다. 간증을 들으면서 전혀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듣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다윗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택자에게 교만해지지 않을 연단을 계속해서 주셨다. 언젠가 지은 죄가 모두 드러날 터인데 이 땅에서 드러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자기의 악과 음란을 드러내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이 땅에서 드러나서 하는 사람은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적용) 어떻게 책망을 하는가? 민감함을 훈련하기 위해서 기도로, 경청으로, 삶의 현장에서 질문하기로 그 자리에서 있어주기 중에서 어떠한 훈련을 하고 있는가? 목장에 안가는 분은 가시기 바란다.
3. 책망에는 반응이 있다.
인간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이유는 1) 죄에 대해 익숙해져 있고, 2) 반은 선하고 반은 악하면 선한 행위가 악한 행위를 감추기 때문에 자꾸 속는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가 우리의 주제가이다. 하나님께 진정 용서받은 경험이 없다면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하게 된다. 다윗은 자기를 보지 못하고 있다. 자기와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죄를 모르는 사람은 남을 판단하는 게 전공이다. 밧세바 사건은 다윗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다.
다윗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애다. 밧세바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이다. 자신을 직면한다고 하는 것의 뿌리가 자기애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며 그분 자체이다. 하지만 자기애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며 자신의 행복과 이익 때문에 하나님과 친밀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영적 겸손함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하고 절망적인지를 말씀을 통해 깨닫는 것이다.
비밀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은 종교적인 절정감과 아주 비슷한 것을 가져다준다. 그토록 헌신적인 사람이 그토록 음란할 수 있다. 다윗이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지만 자기애로 인해 주님과의 첫사랑의 감정을 밧세바에서 찾았을 수 있다. 거기에 권세를 썼다. 나단의 책망과 다윗의 판단이 대비되고 있다. 책망을 못 받는 사람을 판단을 하고, 정죄를 한다.
다윗이 깨닫지 못하자, 나단이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얘길 하는 것이다. 돌직구를 날렸다. 당신이 죽어야 될 사람이라는 얘기는 생명을 내놓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얘기다. 다윗에게는 어쩌면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던 것일까. 사람이 좋고 나쁘고는 옆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용을 할 때, 책망을 받으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5가지)
1)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거나
2) 앙심을 품거나
3) 꼬인 사람이 있고
4) 지극히 예민하게 받아들이거나
5) 옳소이다 하고 겸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적용) 책망을 받을 때 위의 다섯 가지 유형 중 나는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나는 책망하는가, 판단하는가?
4. 책망의 내용이 무엇인가?
다윗의 범죄는 우리아의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다윗은 통일왕국의 왕이었는데,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혔다. 다윗의 범죄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죄의 대가가 너무 혹독한 것이다(11-12절). 다윗의 죄의 형벌을 선언하셨다. 모진 형벌을 주심으로 다윗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끌고 가신다. 7장 16절에서 네 집과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말씀을 주셨던 것처럼, 이제 칼이 네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의 범죄는 축복을 취소할 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책망을 받았을 때 순한 마음으로 받는 사람이 참 드물다.
다윗은 혹독하게 벌을 받았다. 왜 그런가? 우리아 사건은 다윗의 완악함 때문에 일어났다.
통일왕국의 왕이 되기까지 은혜로 왔는데, 밧세바 사건은 여자 문제를 넘어서는 권세의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자리에 앉아서 권세를 남용한 것이다. 정점에 올라가니 다윗이 교만을 보였다. 여자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교만함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책임을 물으신 사건인 것이다.
후반부는 다윗이 징벌을 받다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면서 주옥같은 회개의 시편을 남겼다. 다윗은 문제는 자신이다. 이것이 가장 힘든 것. 자기애다.
혹독한 칼과 비참한 벌을 계속 깨우치면서 다윗은 너무나 안 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보시면서 다윗의 회개를 도출해 내신다. 지옥가게 생긴 다윗에게 혹독한 징벌은 회개의 기회였다. 엄청난 참회의 시를 썼다. 하지만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던 시글락에서는 시편이 없다. 거기서는 왜 울었는지도 모른다.
적용) 은혜가 부족한가? 만족하지 못하는가? 나의 징벌이 혹독한가, 합당한가? 앞으로 주님을 위해 크게 쓰일 것이기 때문에 합당하게 벌을 주셨다고 생각하는가?
나눔
Q. 책망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목자언니: 책망은 아니지만 지난 번 쓴 목보에 대한 리뷰를 간단히 하자면, 말씀요약보다는 나눔에 중심을 두어서 쓰는 게 좋겠다. 다음 주부터는 목원이 새로 오는데, 민감함과 지혜로움으로 잘 쓸 수 있도록 하자. 그런데 즐겁게 쓰면 좋겠다.
나단의 책망은 자기 죄를 보도록 하는 책망이다. 목보 쓰는 것에 대해 책망은 아니고, 주의 일을 할 때, 나도 즐겁고, 남도 즐거워야 열매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작지만 이 역할 잘 감당했으면 좋겠다. 아마도 너에게 이것을 통해 하실 훈련이 있으신 것 같다. 그러니 영적인 유익 생각하면서 힘내자.
Q. 나에게 예수님은 전부인가, 일부인가?
목자언니: 지난 주 목자모임에서 네 생각이 났다. 컴패션 사역에 대한 얘길 들으니 컴패션가입 아동의 우선 조건이 예수님을 모르는 아이들이면서 가난한 아동이라고 하는데 왠지 너에게 그러한 분야의 일이 잘 맞을 것 같더라. 일자리를 구하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니? 나는 두 가지는 꼭 생각하는데, 1. 수요예배와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와 2.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분야인가 하는 점이야.
은화: 당연히 예배를 우선에 두고 방해받지 않는 자리를 구했는데 잘 안구해지고, 꽤 괜찮아 보이는 자리들도 그냥 놓치게 되는 것 같아서 마니 아쉽고, 지금 와서는 지원을 못해본 게 후회도 되요.
목자언니: 예배를 우선하고 그랬던 마음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고 계셔. 내가 생각하는 두 가지 기준만으로도 충분히 필터링이 돼서 정작 쓸 곳이 많지는 않더라. 그렇게 해서 걸러진 데는 모두 다 써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10년 정도 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싶니?
은화: 복지관련 정책이나 법 입안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할 수만 있다면 석+박을 해서 박사 학위도 따고 싶다. 전에는 타이틀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정책 관련 일을 할 땐 필요한 것 같다.
목자언니: 그러면 더욱 필드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 행정 업무만 하면 나중에 원론적인 정책만 펼치게 될 거 같다. 현장에서의 고충은 어떤지 어떤 게 그 분야에서 절실하게 필요한지 알지 못한 채 실무에서 별 도움이 안 될 거 같다.
하루든 한 달이든 관련 업무면 거리 가 멀어도 일단 필드에 발을 들여 놓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남의 시선 신경 쓰지 말고. 그래도 어떤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는 방향설정은 되어 있는 거니까 다행이다.
목자언니: 다시 책망에 대한 부분으로 돌아와서 나눠보자. 혹시 책망을 받은 적이 있는지, 그것이 합당하다고 인정이 되는지?
은화: 인정 욕구가 많은데, 애정결핍처럼 부모님께 좀처럼 잘해도 칭찬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교회로 도피를 했던 것 같다. 교회에서는 성품으로 잘해도 믿음이 좋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세워주고 높여주니까 계속 영적인 스펙을 쌓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 같다.
본래 책망을 잘 못 듣는 편이다. 그냥 꾹 참고 듣는 게 너무 힘이 든다. 책망이라고 하면, 석사 과정에서 논문 쓰는 동안 지도교수님과 부딪힌 일이 가장 생각이 난다. 4학기 동안 교수님께 일부러 찾아도 가고 존경하는 교수님이라서 실력 좋고, 강의 잘하시고, 싱글이셔서 평생을 연구에만 매진한 교수님이 너무나 존경스럽고, 교수님과 잘 지내고 싶었는데, 실제로도 돈독하게 지냈었다.
그런데 논문을 쓰는 동안 관계가 틀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데, 지도교수님과 그렇지 않은 교수님을 비교하며 힘들어했다. 논문을 쓰려는 자세가 안 되었던 것 같다. 그저 트렌디한 논문을 쓰시는 교수님의 스타일로 쓰고 싶었는데, 지도교수님의 논문스타일이 촌스러워보여서 고집을 피우니까 계속해서 교수님과 부딪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논문을 한 학기 더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졸업을 한 달 남겨두고 말씀을 하시는 데 서운함이 극에 달했다. 졸업 후에 곧바로 1년에 한번뿐인 1급자격증을 따려는 계획이 틀어지는 게 너무나 싫어서 이번에 꼭 졸업하게 해달라고 생떼를 썼고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했다.
목자언니: 교수님께서 논문을 한 학기 더 하라는 말씀인데, 논문을 작성하는 타이밍을 너의 타이밍으로 가져갔던 것 같다. 너 나름대로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까봐 굉장히 마음이 조급했던 것 같다. 물론 1차적으로는 교수님의 이름이 올라가니까 당연히 그게 꺼려지실 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 학기 더 연장해서 논문을 다듬고 수정하면 지금보다는 레퍼런스가 더 많이 붙을 만하기 때문에 그 점을 많이 생각해주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깝지 않아?
은화: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아예 배려를 안 해주신 것도 아닌데, 당시에는 바쁘신 중에 배려를 해 주신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어떻게든 졸업을 하려다보니 당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논문이 조금 못하게 나왔다. 졸업 전에 논문을 마무리 짓는 과정에서 오해가 붉어졌는데 유선 상으로 크게 화를 내셨다. 교수님은 교수님대로 배신감을 느끼신 것 같았다. 잘못했다고 생각될 때 교수님께 찾아오라고 말을 하시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까지 오해를 받을만한 행동을 했던가? 그동안 나를 어떻게 봤으면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낼까, 그렇게 화를 낼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졸업을 한 학기 더 연장하려는 게 교수님의 이름이 걸린 문제니까 그런 것 아닌가? 하고 꼬아서 생각을 했었고, 서운함의 우물을 깊게 팠던 것 같다.
사실 나눔을 잘 못한다. 부끄러운 행동인데도 지금까지 100%는 잘못이 인정이 안돼서 교수님께 찾아갈 생각도 못했다. 오늘 이 내용을 나누려고 한 것은 아닌데, 나눔을 하다 보니 이전보다 더 교수님이 나를 많이 생각해주시고 배려해주셨다는 게 더 많이 깨달아진다. 너무 고마우신 분인데 당시에는 내 생각만 하느라고 서운해 하기만 했다. 나누고 나니까 챙피하긴한데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꼭 나누어야 할 나눔을 나누게 하신 것 같아서 감사하다. 졸업하고 나서도 카톡을 보면서도 교수님 생각을 계속 했다. 그런데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고만 생각이 되지 않고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으니까 계속 밍기적 대고 못가고 있다. 취업이 되면 한번 찾아 봬야지 생각하고 있다.
목자언니:(언니도 나눔을 잘 못한다며, 학부 졸업한 지 오래 되었는데도 교수님을 못 찾아가고 있다고 말하며 위로해주었어요.) 일단 네가 100% 교수님께 잘못한 것이 인정이 되면, 그 때 찾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혹시 취업이 안되었어도 그냥 그 모습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고, 억울한 마음이 남아 있는데도 적용을 한다고 급히 찾아가지는 말고 정말 네가 잘못했다는 게 인정이 될 때 그 때 바로 찾아가는 적용을 하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 나눔과 적용을 하기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할지를 생각해보고 기도제목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기도제목
목자언니
1.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고 가족의 예배가 회복되도록.
2. 기도시간 확보 많이 하도록.
3. 일상생활에서 바른 몸자세 유지하고 피곤해도 스트레칭과 운동할 수 있도록.
은화
1. 100% 잘못이 인정되어져서 교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음 주시길. 적절한 때에 잘 표현할 수 있도록.
2. 주일, 수요예배 올 수 있고, 그동안 익히고 경험한 것들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유익하게 할 직장 구하도록. 평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찾도록.
3. 말씀보고 기도하며 영적으로 잘 깨어 있도록.
4. 건강관리- 스트레칭 잘해서 근력 키우고, 건강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