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있더라. (사무엘하 11:1~5)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간통의 사례는 이스라엘 왕 다윗이 저지른 것입니다. 이 죄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어서 짓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어서 그의 마음을 몰고 가는 것은 은총의 헷세드가 아닌 정욕의 에로스가 되었습니다. 그대로 있더라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1. 건강한 쉼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범죄는 암몬과의 전쟁에 출전하지 않았다가 암몬과의 싸움을 마무리 짓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두 번이나 이긴 다윗은 요압과 군사들만 보내도 충분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암몬은 철천지원수이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아람이 암몬을 돕지 아니하더라.’ 했지, 아직 암몬이 완전히 함락된 것은 아닌 시점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했는데, 다윗으로 보면 쉼 없이 달려온 인생이었습니다. 다윗이 이제 쉬어도 누구 하나 말할 사람 없고 부하들도 이제 출전하지 말라고 그랬을 것입니다. 물론 후방에서 할 일도 있으나, 언약궤가 군대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요한 싸움에 다윗이 출정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 됩니다. 나라의 상황은 비상사태인데 다윗은 이스라엘의 목자장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유기했습니다. 자기가 할 일을 안 하면서 쉰다는 것은 도리어 스트레스가 됩니다. 쉬는 것이 잠자고 먹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일로 다윗으로는 최대의 위기를 초래했는데, 한 번의 실수가 영원을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핍박보다 유혹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후반부 인생입니다. 암몬과의 싸움은 이스라엘 때문에 이기게 하셨지만 다윗에게는 책임을 톡톡히 물으십니다.
(마태복음 14:13) 각종 기적을 베푸시는 가운데 예수님도 휴식을 위해서 빈들로 가시는 모습이 나오는데 거기까지 무리가 따라옵니다. 예수님은 ‘힘들어서 내가 좀 쉬어야겠다.’가 안식이 아니라,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요한복음 5장 말씀처럼 구원을 위한 일을 하시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가장 큰 안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시간, 부모님, 자녀, 돈 그리고 가장 중요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좀 쉬어야 되겠다.’ 라며 휴식의 시간에 하나님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욕망의 표출을 정당화하게 되면 안됩니다. 내 시간을 주님을 위해 쓰지 않으면 인간은 100%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을 위해 쓰게 되어있습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교회 안오고, 목장 안오면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주일에 교회 오는 것보다, 목장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큰 쉼은 없습니다.
적용: 무엇이 쉼이라고 생각합니까? 구원의 일을 쉼이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육적으로 먹고 마셔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 어떤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결론은 어떤 쉼이라도 구원의 일로 쉬는 것이 건강한 쉼입니다.
2. 그대로 있어서 안목의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의 부하들이 그가 잠자는 시간에 더위 속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잠이 왔을까요? 마태복음에 잠을 잘 때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고 간 것과 같은 잠입니다. 주님이 가라지를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알곡까지 뽑힐까 해서 두라고 하셨는데, 다윗 속에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주님이 뽑지 않으셨습니다. 자다가 깬 그는 변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다윗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행동을 했습니다. ‘거닐다’는 목적 없이 권태롭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걸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목적 없이 왕궁 위를 거닐다가 다윗의 가장 약점인 여자, 그리고 보는 것을 통해 사단이 틈을 탔습니다.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그 여자는 ‘심히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하셨습니다.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죄인의 지성과 감성은 외모를 취하고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그것으로 판단을 합니다. 한가하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밧세바 쪽에서 보면 목욕을 하면서 어떻게 보이게 할 수 있습니까?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고 한가했을 그녀가 왕이 거니는 것이 보였을 수 있습니다. 밧세바가 거닐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밧세바 때문이 아니고, 어떤 환경에서도 다윗이 깨어있었으면 안 걸릴 문제지만 다윗의 약점이 걸린 것입니다.
적용: 한가한 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안목의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까? 보이는 것 때문에 시험에 걸린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습니까?
3. 보게 되니 권세로 욕정을 풀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서 당장 그 여인을 알아보게 했습니다. 다윗에게는 권세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온 다윗이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한 여인에게 집중합니다. 알아보니 밧세바는 엘리암의 딸이고, 우리아의 아내인 유부녀입니다. 밧세바의 아버지도 남편도 모두 다윗의 용사 37인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다윗에게 더없이 고맙고 고마운 동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면서도 동침까지 갔습니다. 월경이 끝난 후 첫날에 동침을 한 것은 굉장히 치밀하게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때는 절대로 임신 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 것’을 취하려고 그냥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치밀하게 죄를 지었습니다.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 기계, 여행, 골프……. 그것을 취하려고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해서 죄를 짓습니까.
다윗이 자신의 권세만큼 여자를 취합니다. 아비가일 때에도 빨리 데려오고 싶었으나, 돈도 없고 권세도 없었기에 못 데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천하의 권세가 자신에게 왔습니다. 그 권세를 가지고 알아보고, 데려오고, 동침하고, 신속하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이 주어졌습니다. 여호와로부터, 요나단으로부터, 아비가일로부터, 존경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필요한 것은 다 주어졌는데, 이 권세를 썼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욕이 불타고 가지고 싶어도, 돈이 없고 권세가 없으면 취하지 못합니다. 지금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돈이 없고 권세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한 다윗이 난 이제 너무 수고했으니 즐겨야 한다면서 권세로 욕정을 해결하는 것을 합리화합니다.
음욕을 피하기 위해 세 가지 전략을 말하고 있는데 ①눈을 굶기라는 것입니다. ②생각을 지배해서 생각이 싹트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③마음의 승리인데, 자신의 아내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내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세 가지 다 실패했습니다.
‘들어가지 마시오.’ 라는 펫말을 보면 그냥 지나가다가도 다 보게 됩니다. 어떠한 경건한 사람도 죄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이 여기까지 온 것은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윗에게 선함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윗을 보며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축복이고, 무조건 잘된다는 없습니다. 죄의 값을 다 치루어 갑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합니다.
적용: 권세로 욕정을 푼 일이 있습니까? 내 권세로 알아본 일이 있습니까?
4. 그대로 있으니까 통제권 밖의 일이 생깁니다.
임신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치밀하게 죄를 지었는데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이 말은 다윗의 모든 죄를 올킬 했습니다. 정확한 확정적 표징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드러내시고 정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몰아가시는 것입니다. 모든 권세를 가진 다윗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참아주신 하나님께서 다윗이 죽어도 이 치명적인 약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밧세바 사건을 일으켜서 살인을 저지르게 하시고 자신을 직면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에게 분명 믿음은 있는데 그것이 겨자씨만한 믿음이어서 키워주시느라 그것을 터트리셨습니다.
암몬과의 싸움은 어디서든 승리하니까 내부에 적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나와의 싸움입니다. 가장 큰 원수는 나 자신입니다. 그러니까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이 문제는 ‘간음하지 말라.’ 이 문제로 터트리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묻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 저지르고 나서 진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조상인 다윗도 이런 치명적인 약점 가운데서 죄를 범했는데, 우리 남편인들 난들 안그러겠는가 하고 체휼해야합니다.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다윗이 예뻐서 놔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인내하고 참고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가 없는 인생입니다.
적용: 통제 못할 일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는 교회에 오고, 목장 예배드리고, 큐티하고, 믿음이 좋아 보이지만, 내가 할 일을 안하고 사명을 망각하면 누구도 다윗처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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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목장 모임은 할리스였습니다^^
은정언니(85), 예경이(89), 그리고 저, 정지혜(87) 셋이서 나눔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첫만남이어서 각자 어떻게 교회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고난이 있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위주로 나누었습니다. 얼른 도형이(91)와 사랑이(90)도 만나기를 고대합니다+_ +♥
기도제목
-은정언니(85) : 회사일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가족에 대해 애통한 마음을 갖고 적용(전화) 잘 할 수 있도록. 신교제.
-예경(89) : 영적회복. 큐티 잘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쉼의 때에 게으름 피우지않고 시간활용 잘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시는 과정에 성실히 임하도록.
남자친구와의 헤어짐에 마음 흔들리지 않고 다잡을 수 있도록.
-지혜(87) : 생활예배. 예배회복. 회사에서 맡은 업무 잘 감당하도록. 유아부 잘 섬기도록.
해야 할 일을 하고 쉼을 누리도록. 신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