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사무엘하 6:12~23)
여러분은 누구 앞에서 뛰놀고 싶은가? 사장님 앞에서? 애인 앞에서 인가? 어떤 분이 남편이 돈을 주면 그 앞에서 뛰논다고한다. 일흔번씩 일곱번도 저를 용납하시는 여호와 앞에서 뛰어 놀고 싶다. 여호와 앞에서 뛰어 노는 것은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서 예배하는 것을 말한다.다윗의 뜨거운 신앙과 미갈의 차가운 신앙으로 볼 것이다. 뜨거운 신앙, 다윗은 어떻게 뛰어 놀았는가?
1. 거룩한 기쁨으로 뛰놀았다
블레셋과의 싸움은 안 믿는 사람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다윗은하나님께 물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올 때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그래서 웃사가 죽었다.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실패할 때가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예배인데 웃사가 죽고 오벳에돔이 복을 받는 엄청난 일을겪으면서 이렇게 중요한 일에 묻지 않으니 치신 것이다.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다윗을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거룩한 기쁨은 하나님의 진노를 겪은 기쁨이다. 다윗이하나님과 다시 가깝게 된 기쁨이다. 랄프 데이비스는 사무엘하 6장은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두려움은 기쁨을 억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무시킨다고 했다. 시편 2편에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거룩한두려움이 거룩한 기쁨을 가져온다. 하나님 앞에서 잘 몰라서 웃사가 죽었다. 다윗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깨달으니기쁨이 몰려오는 것이다. 너무 경외하는 사람 앞에서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집사님이 스스로 치리를 받겠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몇 번에 걸친편지에 치리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 같은 사람을 쓰셔서 이 일이얼마나 죄인가는 것을 알리는 모델로 써달라고 했다. 이분이 거룩하신 분노 앞에 거룩한 기쁨을 회복하기바란다. 이것이 우리들교회의 방식이다. 너무나 건강한 교회라고생각된다. 궤를 내려놓은 오벳에돔은 궤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분수를 알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축북을 주시고 법궤를 지키는 문지기의직분을 주셨다. 후손의 복을 받고 소유의 복을 받았다. 소유를주셔도 소유의 복을 받지 않으면 그것이 다 없어져서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오벳에돔은 소유의 복까지받은 것이다. 자기 분수를 아는 것, 내 것이 어디 있는가? 오벳에돔은 거룩한 기쁨으로 궤를 맡았을 것이다. 우리들교회에도 오벳에돔과같은 분이 많다. 여러분은 거룩한 두려움에서 오는 거룩한 기쁨이 있는가? 여호와의 진노를 경험한 기쁨이 있는가?
2. 헌금이 저절로 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궤를 맨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두렵고 떨림으로 한걸음 한걸음씩 갔다. 이것은 위축된 것과는 다르다. 말씀대로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레위 자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섯걸음을 가도 죽지 않아서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셨구나 기뻐하면서 수송아지 일곱 수양 일곱을 드린 것이다. 일곱은완전수이다. 어깨에 낑낑대며 매도 내가 적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여 드린 것이다. 말씀이 깨달아진 것이 너무 감사해서 십일조를 기쁘게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십일조는 기쁨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뻐야 하는 것이다. 완전수를 바친 것은 십일조를넘어선 것이다. 너무 기뻐서 바친 것이다. 제가 한 사람을살려야 하기에 늘 말씀을 보고 그냥 듣는 것이 없다.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구나 생각되니 기쁨으로 헌금하는 마음을 안다. 여호와 앞에서뛰노는 완전수의 헌금생활 하고 있는가?
3. 힘을 다하여 회개함으로 뛰논다
베 에봇을 입었다는 것은 통일왕국의 왕이지만 하나님을 영원히 왕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회개의 눈물의 표시이다. 회개의 눈물을 끊임없이 저에게 흘리게 하신다. 왕복을 입지 않고자신의 보잘것없는 것을 나타내는 회개의 에봇이다. 말씀을 보면서 회개하니 저절로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열매를 주시는 것이다. 내가 회개할 때 백성도 회개하고 내가 기뻐하면 백성도기뻐하는 지도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우리들교회도 제가 회개할 때 여러분들도 같이 회개하는 역사를많이 보게 된다. 같이 회개하고 같이 기뻐하면서 가는 우리들교회 성도,목자, 목원이 되기 바란다. 힘을 다하여 뛰노는것이 남들이 보기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눈물로 회개함으로 뛰노는 것이 있는가?
4. 비난을 무릅쓰고 뛰놀았다
미갈은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올 때 창으로 내다보다가 심중에 뛰노는 다윗을 업신여겼다. 다윗의 즐거움을 보았음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영적 축복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부부였다. 하나님을 기뻐할 때 이런 비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가야 한다. 다윗을비난했는데 저인들 비난을 받지 않았겠는가? 회개하고 오픈하는 것을 지금도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다. 속으로 미갈처럼 ‘저런 얘기를 왜 하지?’ 하는 사람이 있다. 미갈을 사울의 딸로 표현한 것은 다윗을 조롱했던미갈의 태도가 아버지 사울과 비슷했기에 계속 사울의 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눈을 의식하면서 지나치게 형식과 체면에 매여있지 않는가? 업신여겼다는 것은어떤 것에 가치를 전혀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윗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모욕의 의미까지 있다. 미갈은 다윗이 왕에 걸맞지 않게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주였고그는 목동이었다’ 는 마인드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미갈처럼믿음의 직분자에게 둘러 쌓여 있으면서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임을 자기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 미갈은죽는 날까지 사울의 딸이 먼저이고 다윗의 아내는 하찮게 여겼다. 인본적인 시각이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다윗과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이다. 다윗이 미갈을 사랑하기도했지만 정치적인 모습도 있었다. 좋지 못한 시도였다. 왕이라는것은 하나님이 택해야 하는 것이지 인간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대한 책임을 다윗에게도 묻고있고 미갈에게도 묻고 있다. 다윗은 미갈이 마중 나오지도 않고 자기를 업신여기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약궤옮기는 것을 마치고 여전히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했다.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로 백성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진정으로하나님께서 기뻐한다면 나누어주는 인생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예배를 제대로 드리면 화목할수 밖에 없다. 가족우상주의도 곤란하지만 가족을 홀대해도 안 된다. 다윗은일생의 힘든 일을 하고 누구도 언약궤를 가져올 생각을 안 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예루살렘성에 안치를 하고 백성을 축복하고 자기의 가족을 축복하기위해서 가족에게 돌아왔다. 여러분은 공동체에서 하나 됨을 어떻게표현하고 있는가? 모든 것을 나누는가? 다윗이 집에 오자 미갈은 다윗을 무시하고 공격했다.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들어내니 좋은가?” 사울의 인본주의가 미갈에게그대로 드러났다. 미갈은 정치적인 왕, 자기만 바라보는 남편왕을 좋아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종으로써의 다윗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인본주의로 행할 수 있는 재력이있을 때 그렇게 행할 수 있다. 남들에게 피해 안 끼치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인본적인 사람들은없는 사람이 나누어 먹는 것에 교양이 없다고 무시 한다. 21절에 다윗은 “이는 여호와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미갈은 계집종 앞에서 몸을 들어냈다고 하며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뛰놀았다고 한다. 똑같은 것을 봐도 시각이 서로 다르다. 세상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분별하겠는가? 다윗은 왕이라고 하지 않았다. 지도자라고 했다. 여호와의 궤를 옮겨오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왕의즉위식을 행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하나님의 통치하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가운데 이것이 왕으로서의 업무의시작이다. 다윗은 제2의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크게 느끼고 웃사가 죽은 상황에서 미갈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다윗은 목동일 때 미갈은 공주였다. 그래서 죽어도 미갈을 내려놓지 못했다. 다윗은 미갈을 참 좋아했다. 첫사랑이라서 사랑했다.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 오직 믿음만 없었다. 그러나 미갈은 예배드리는 미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미갈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미갈을 기대를 안하고 끊어냈다. 이혼과는 다른 인간적인 욕정을끊어낸 것이다. 이것이 미갈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우리를 거룩을 위해 가게 하시는 성도의 목적을 알아야 하는데 서로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어야 하지만 상대방의 물건은 아니다. 22절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다윗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일이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윗을 공격했기에 미갈은 자식이 없었다. 하나님보다 사람 왕을 더 대단하게 생각하는 인본주의의 결론이다. 성경은미갈이 다윗의 아내라는 표현을 절대 안 한다. 끝까지 사울의 딸이라고 표현한다. 부인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아니라고 생각하면 끊어내는 것이다. 중요한위치에 있는 미갈이 사사건건 방해를 하니 끊어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 될 수가 없다. 이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이혼하는 것이 아니다. 미갈 자체를 인정하고 인간적인 집착과 그의 마음을 어떻게 해서든 돌이켜봐야지 하는 마음, 안되는 부분을 인정하고 내려놓음을 의미한다. 부부간에 집착도 힘들고무관심도 힘들다. 부부라는 것이 함께 있어도 각각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주야장창 나만 바라보라고 하면 마음이 상하고 힘들어하는 것 그만해야 한다. 칼로두부 썰듯이 잘 안되겠지만 나의 미갈을 접어야 한다. 상대방의 역할과 한계를 받아들이고는 적용을 하는것이 미갈을 끊어내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대방의 연약함을 무시하고 그것에 마음 상해하지 않고 ‘안 되는 것이 있구나’하면서 사명감당하고 가는 것이다. 나만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무관심도 힘들지만 집착도힘든 것이다. 그것은 또 진짜 사랑은 아닌 것이다. 무관심도문제지만 집착도 문제이다. 미갈이 왜 이랬을까? 자기가 왕족이고공주인데 미갈에게는 최고의 선지자 사무엘과 최고의 오빠 요나단과 예수님의 조상인 남편 다윗도 있었다. 사람을 보는 기준만 높고 자기 믿음인양 착각하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 오빠 동생이 죽으니 이 사건을 받아들이지못했다. 왕년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다윗뿐인데 다윗이 그것을 안 해주니 모든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것이다. 오직 남편 다윗을 통해서만 자기의 살아있음을 느끼려고 하기에 다윗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것이집착이 되어서 다윗을 힘들게 하고 끝까지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남편에 집착하는 사람은 자녀에게도집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갈은 자기기준을 못 버리는 사람이다. 믿음은조건과 환경을 다 넘어서는 것인데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우리의 미갈들을 어떻게해야 하는가? 내 안의 미갈을 받아들이고 나를 인정하기 바란다. 미갈들에게가장 힘든 것은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비교하고 있는 나, 유연하게대처하지 못하는 나, 너무 힘들어서 다윗만 바라보는 것이 한심하고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봐야 하는데 봐지지가 않는 것이다. “예수잘 믿는 남편이 왜 나를 안 돌보고 교회만 가는가? 나 좀 보라”며 교회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미갈은 나 중심성이다. 믿음의 문제이다. 남자들도 각자 미갈이 있다. 미갈을 통해서 우리 인본주의를 끊어내야 하며 경고를 받아야 한다. 여러분들의 미갈은무엇인가? 부부생활에서 미갈은 누구고 무엇이고 생각하는가? 남자들도 미갈이 너무 많다. 다윗을통해서 자기를 증명해야 할 남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미갈이 많다. 믿음이 분량대로 집집마다 미갈이 있다. 육적인 처방을 드리겠다. 동침하라. 말을 조심하라. 같은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잘 판단해서 하라. 미갈처럼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고 춤춘 다윗처럼 모든것 다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영광을 올려야 한다. 교양은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몸에 밴 부유함으로 미갈이 아래 것들과 논다고 말한 것 이것이 교양 없는 말이다. 우리의 땅끝은 아프리카 탄자니아가 아니라 배우자이다. 또는 나 자신이다. 각자의 여호와 앞에서 뛰노는 여러분이 되기 바란다.
<나눔>
-인원 : 이범희, 장현성, 이영수, 방준현, 성진우, 김현태
-장소 : 투썸플레이스
이범희
지난한주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나의 미갈은 남을판단하는 모습이다.
1. 규칙적인 생활 할 수 있도록 (특히주말에)
2. 아웃리치 팀원들과 친밀해질 수 있도록
3. 동생과 누나와 관계 회복
장현성
아웃리치 모임을 하면서 내가 여전히 편견이 있고 아집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 그릇이 작기 때문에 아웃리치를 통해서 나를 깨시고 낮추시는 것을 느낀다.팀원들이 잘 하고 있다. 요즘 큐티로 약간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말씀을 듣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왜 좋은지 깊이 깨닫게 되었다.
1. 분주한 일상과 아웃리치 준비 중에 지혜와 체력 주시도록
2. 나의 한계를 말씀보고 잘 깨닫도록
이영수
고모가 돌아가신 이후 영적으로 해이해졌다. 장례식장에서 동생과 3일 동안 같이 있으면서 서먹함을 느꼈다. 현재 동생이 오랫동안 일을쉬고 있어서 많이 힘들텐데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답답함이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사람에게관심이 없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1. 큐티 묵상 기도에 힘쓰도록
2. 남동생 취업과 관계회복
3. 연구과제 발표 준비 잘 하도록
김현태
엄마가 답답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쉬운길로 안가고 어려운길로 가는 것에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가끔 화를 내게된다. 사과는 드리지만 반복되게 된다.
1. 신교제
2. 자기 죄를 볼수 있도록
3. 기쁜 마음으로 십일조 드리도록
성진우
지난주에 운전 중에 차선을 지키지 않는 택시기사와 갈등하고 마트에서 새치기를 하는 사람과 다투었는데 오늘말씀을 들으니 그들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연구실과 관련해서 인해 27일 핀란드로 출국한다.
1. 7/15까지 보고서 마무리 책임회피하지 않고 성실하게할 수 있도록
2. 보고서 쓰다보면 몸이 망가지는데 건강과 큐티 잘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