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2014.6.15 위혜정_목장_보고서
“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
사무엘하 6장 1-11절
말씀요약) 하나님은 나 하나가 아니라, 온 집에 복을 준다고 11절에 말씀을 하고 있다.
교회를 다녀도 불가항력적인 일이 해석이 안되면 말씀이 없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무시받는 의외의 인물인 오벧에돔이 복을 받는다고 한다. 소유의 복(12절)과 후손의 복(역대상 26장 5절)을 주셨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소유의 복과 후손의 복을 받을 수 있을까.
1. 잃어버린 예배를 회복해야 된다.
잃어버린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너무도 필요하다.(1,2절) 5장까지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바알브라심’의 은혜; 대적을 모두 물에 흩음같이 흩어주셨다. 그리고 이제 통일왕국으로 가는데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는’ 신앙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방치되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메어 오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 예배 중심, 말씀 중심으로 통치하겠다는 표현이다. 우리에게 사건이 왔는데 힘이 든 것은, 그 중심에 예배가 없고,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 일을 위해 삼만 명을 다시 모았다고 한다. 언약궤를 매어 오는데 4명이면 충분한데 다윗은 너무나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바알레유다에서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였다. 언약궤가 세상의 물질 문명 가운데 70년간 묶여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구속사적으로 보면, 70년 동안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읍을 정하려는 때에 예루살렘에 언약궤가 다윗에게 그동안 고난이 많았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언약궤를 다시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에벤에셀에 20년, 사울이 40년, 다윗이 통치한 지 10년이 되는 70년 동안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읍을 정하려는 때에 예루살렘에 언약궤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나의 언약궤는 어디에 있었는가? 나의 언약궤는 실종 되었는가?
평소에 말씀을 쌓아놓지 않으면 고난만 가지고 안 되는 것이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승리를 한 경험이 있었다. 다윗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승리해 왔던 경험을 이제는 공적인 자리에서 선포할 때가 온 것이다. 그것이 다윗의 통치 방식이었다. 우리도 잃어버린 언약궤를 가지고 와야 한다. 잃어버린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고 말씀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가 않다. 어깨에 메어 와야 하는데, 손이 가고 발이 가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
적용) 잃어버린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손이 가고 발이 가는 수고를 해서, 어깨에 매어 와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2. 예배드리지 않는 한 사람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게 된다.
회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내 방법대로 섬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3-5절) 2절에 보면 다윗은 그것을 어깨에 메고 오려고 하였으나 그의 신하들의 말에 삼만이나 되는 백성들의 이목이 신경쓰여서 당시 보편적인 방식인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오게 되엇다. 웅장한 규모의 말씀의 잔치를 벌였는데도 말씀의 원칙을 잃어버린 것이다. 70년동안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사건이 갑자기 찾아왔다. 6-7절에 보면, 소들이 날뛰자, 본능적으로 언약궤를 붙들었던 웃사가 죽임을 당하였다. 그런데 웃사가 죽은 것이 그가 잘못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그 장면만 보면 너무나 이상한 것이다. 너무나 열심히 섬겼는데도 사건이 오면 그것이 해석이 잘 되겠는가? 그런데 어떤 것도 답이 없는 것이 없다. 성경에 다 답이 있다. 성경을 몰라서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성경에서 나온 답을 보면, 다윗과 웃사가 크게 잘못을 두 가지를 했다. 민수기 4장 15절에 보면, 언약궤는 반드시 (레위 자손 중에서도) 고핫 자손들이 메라고 하였고, 성물을 만지지 말라고 하였다.
신앙생활은 본능적으로, 인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고 싶어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커다란 실수라고 보았는데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다윗 역시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에게 잘못한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웃사를 죽이신 것이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과 우상을 섬기는 것의 차이를 모른다면, 복을 받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알아야 하고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말씀 때문에 말씀의 토씨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길 때, 하나님이 기뻐 하신다. 치열하게 붙들고 가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성령님의 의도를 무시하지 않고 갈 때 큰 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충은 없다. 거의 합격은 없다. 반드시 합격하려면 작고 소소한 일에 말씀대로 한구절씩 원칙을 지켜야 한다.
블레셋이 수레로 언약궤를 가져왔는데 아무 일도 없고 무사했음을 보고 그대로 따라한 것인데, 블레셋은 말씀을 모르는 민족이었다. 블레셋은 그들의 방법이 있었고, 믿는 우리에게는 우리의 방법이 있지 않는가?
호세아 4장 6절에 보면,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라고 한다. 거듭난 이후에 말씀을 열심히 보아야 한다. 차례대로 읽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에 불구자가 되는 것이다. 웃사는 고핫 자손이라는 말이 없다. 그런데 다윗은 그가 아미나답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를 잘못 임명한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적용을 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데, 돈이 있고, 학벌이 있고, 권세 있는 사람을 세우면 그가 다른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웃사가 아니라 다윗의 책임이다.
부족해도 다윗보다 나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없다. 말씀이 없이는 누구도 이스라엘을 통치할 수가 없다. 교회는 그 목회자 수준 이상으로 자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윗이 실수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윗을 통해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다윗도 웃사가 죽은 이 사건이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된 이 때에 누가 다윗에게 말을 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실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교회가 흔들려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흔들리도록 내버려두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궤 옆에 있어도 죽을 수가 있다. 망하면 망하게 내 버려 두어야 하는 게 교회이다. 교회는 사회가 아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세상법을 지키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 것과 같다.
웃사가 죽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여야 되는 것이다.
교양과 상식이 있으면서 믿음도 있어야 한다. 이것을 넘어서는 믿음은 이단과 같다. 본질인 예배는 드리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의식하니까 궤를 잡게 된 것이다. 다윗, 백성, 웃사가 다 똑같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한다. 역대상에 나온 같은 본문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죽었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웃사가 죽은 것이 새 시대를 시작하는데 큰 축복이었다.
8절에 보면, 치셨다-> 옛날 성경에서는 ‘충돌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웃사의 헌신적인 노력을 다 깨뜨리셨다(=broken)는 의미이다. 인간적인 노력을 모두 다 좌절시키셨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때 다윗이 분하였다고 한다. 사람이 잘못하면 화가 난다. 그리고 두려워진다. 다윗이 욕심이 있는 것이다.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웃사를 치신 것이 인정하기 어려워서 분한 것이다. 말씀적용에 있어서 무지한 것일 수도 있고, 대충 적용한 것일 수도 있고, 계속되는 승리로 교만했을 수도 있다.
다윗을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건을 줏신 것이 깨달아진 다윗은 그곳을‘베레스 웃사’라고 칭하였다. 수치를 당한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치시면 무조건 옳다. 사건이 오면 생각을 해봐야 한다.
적용) 한 구절이라도 말씀을 붙들고 지키려고 하고 있는가?
화려한 예배보다 날다마 말씀을 붙들고하는 큐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한다.
3. 예배드리는 한 사람 때문에 온 집안이 복을 받는다.
10-11절) 오벧에돔은 가드사람이었는데, 가드 사람중에 유명한 사람으로 골리앗, 가드 왕 아기스같은 이들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원수, 이방인 오벧에돔은 다곤 신상이 무너지고 베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들여다 보다가 죽은 것을 보았음에도 왕의 명령에 순종하여 언약궤를 자기의 집에 가지고 온 사람이었다. 에돔을 섬겼을 수도 있던 무시받던 비천한 사람중에서도 비천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예배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웃사는 삼만명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을 맡아하도록 한 사람인데 예배하지 않은 한 사람이었다.
오벧에돔에게 소유의 복과 후손의 복을 주셨다고 한다. 오벧에돔이 온 집에 복을 받게 되니까 삼개월 만에 다윗이 그 언약궤를 다시 가져오고 싶어했다. 이것이 다윗의 연약함이었다.
적용) 다들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재앙같은 가족들을 언약궤처럼 여기고 받아들여보자.
이렇게 힘든 재앙의 언약궤를 받아 들일 때 소유와 후손의 복을 주실 것을 믿는다.
목장 스케치
그늘진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시원한 자연 바람을 맞으면서 나눔을 하였습니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바쁜 지희 너무나 반가웠고, 매주 조금씩 더 자신을 보고 노력해도 잘 되어지지 않는 약함을 나눠주는 매력둥이 지영이 우리의 이야기에 적절한 질문으로 풍성한 나눔을 하도록 돕는 목자언니와 늘 수험의 환경에 잘 갇혀있기를 바라는 저 이렇게 네명이 모였습니다. 도란도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나누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서 오늘 기도제목은 우리 나눔과 마무리기도를 해 주신 목자언니 기도내용을 토대로 적어보았어요~**
기도제목
지희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성령님께 때마다 일마다 간구할 수 있도록
기말 고사 잘 치르도록
이후 대학원 석사 논문 준비 잘 하도록
건강 지켜주시도록
이지영
신교제
사회성 발달
가족의 건강
동생 진영자매가 교회 나오도록
응어리진 어릴 적 상처들을 객관화 할 수 있도록- 억울한 마음 하나님앞에서 충분히 잘 울며 가도록
혜정언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많은 산모와 아기들을 육적으로 영적으로 살리는 사명 잘 감당하도록
남은 한 텀동안도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성령의 위로하심과 기도 동역자들을 많이 붙여주셔서 힘있게 잘 감당하도록
은화
7월말까지 계획한 수험기간- 마음 관리, 시간 관리 잘하고 기도하며 잘 보낼 수 있도록
한 구절이라도 잘 깨달아서 구체적으로, 삶으로 잘 적용하면서 가도록
가족이 예수가치관 갖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