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5.18 주일예배
사무엘하 3:21~39
[내가 오늘 약하여서]
김양재 목사님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지고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해진다.
드디어 다윗에게서 '오늘' 내가 약하여서 너무 어렵다는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것이 강함이다.
골리앗을 물리칠 때의 다윗이라면 오늘 내가 약하다는 고백을 하겠는가?
그것이 바로 십자가와 은혜가 필요한 이유이다. 다윗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다윗이 약하여서 오는 문제
1. 기회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
온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 되고자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아브넬은 다윗 앞에 나온다.
기회주의자인 아브넬. 지금까지 다윗을 대적하였으면서도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처럼 다윗을 높이고 있다. 사울은 그동안 인본주의자이면서 간신배인 아브넬을 평생 끼고 돌며 감쌌다. 사람분별이 안 되는 사울은 죽기 전까지 아브넬을 믿으면서 죽었다. 아브넬은 가장 큰 배신인 나라를 넘겨준 배신자이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충신이 아니다. 사울의 충신이었다면 사울의 첩을 범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울의 아들을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식은 있는데 돌이키는 행함이 없는 것은 지혜가 없는 것이다. 자기 죄를 보는 것이 가장 유식한데 사울과 아브넬을 통해서 자기 죄를 못 보는 무식한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아브넬이 다윗의 밑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은 잘 결정한일이지만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한 것과 아브넬이 뜻을 정한 것은 다르다. 아브넬이 뜻을 정한 것은 다윗에게 분명히 도움되는 일이지만 진실하지 못하고 이스보셋에게 상처를 주고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하나도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서 뜻을 정한 일이기에 아브넬의 뜻을 받아들인 것은 다윗에게도 약점으로 다가온다. 만약 아브넬의 뜻을 받으려면 미갈을 데려오라고 하면 안 되었다. 다윗은 그의 치명적인 약점인 여자하고 놀다보니 당연히 약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아브넬의 기회주의를 다윗도 기회주의가 되어서 그걸 넘어서지 못했다. 이 일은 다윗이 할 일을 아브넬이 완벽하게 해준 것이다. 다윗은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나라를 얻었다. 그렇다고 다윗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실한 것처럼 위장하면서 상대방의 유익을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얼마나 나의 유익을 위한것이 많았는가 생각해봐야한다. 아브넬은 성공이 목적인 사람인데 우리랑 다를것이 무엇인가? 목사님은 잘 참는 편인데 본인이 잘 참으니 다른 사람에게 왜 참지 못하냐고 한 것이 아브넬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셨다.
Q: 우리의 기회주의는 어디까지 인가? 다니엘처럼 진실한 결정을 하자.
2. 심복의 배반을 처리하지 못한다.
요압이 전쟁을 이기고 돌아왔다. 아브넬이 다윗을 만나고 평안히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꾸 평안히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은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소리. 아브넬의 평안은 다윗이 보장해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가치관이 들어왔을 때만이 평안할 수 있다. 누군가 나의 앞날을 보장해줄 것 같지만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나님이 보장해주신다. 요압과 아브넬을 이간질 시키는 단어가 '평안히' 이다. 요압이 뒤집어질 말. 우리도 교양 있게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을 뒤집어놓는 이야기를 한다. 요압은 아브넬이 화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왕을 속이러 왔다고 따진다. 이럴때 다윗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어제까지 원수였던 아브넬을 믿지는 않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나라를 얻으려면, 미갈을 얻으려면 아브넬을 믿어야 하는데 요압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15 광야 함께 했어도 구속사를 못 깨달으니까 나쁜 놈은 항상 나쁜놈인 것이다. 나쁜 놈이 오늘 착해질 수 있는데. 다윗은 요압이 따지는데 (=이 상황을 못 알아듣는데) 한마디도 못한다. 힘든 세월을 함께 해준 요압에게 한마디를 못한다. 결국 요압은 아브넬을 죽였다.
나라를 위한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 동생 아사헬때문에 죽였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앉아있다. 원한에 가득차 있는 사람이. 그동안 광야를 거치면서 다윗에게 도움 준 사람이었는데 지금 다윗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일만 하고 앉아있다. 요압이 다윗의 뒷통수를 친것이다. 그런데 일을 잘함. 그래서 버릴 수가 없다. 요압은 악역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원한으로, 야망으로 감당하고 있다. 이렇게 한 사람 잘못으로 나라가 망하는 일이 온다. 그래서 나중에 요압은 개죽음을 당한다. '아브넬이 1분만 빨리 갔어도, 세월호가 탈출하라는 말만 했어도' 하는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이 있다. 우리는 인생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지 않아서 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아브넬이 죽은 것도 결국 하나님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고 우리의 사건을 하나님이 지켜주시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아브넬이 죽은 것을 들은 다윗은 나는 죄가 없다, 요압이 한 일이다하면서 요압의 집안을 저주한다. 다윗이 이 사건을 들은 즉시 요압을 저주한것은 공평한 일이다. 요압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아브넬의 악행을 하나님이 갚아주심을 믿어야하는데 참지 못하고 본인이 원수를 갚았기 때문에 이 죄가 자녀에게 내려가는것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브넬이 죽은 후에야 요압을 저주하는 것이 다윗의 약함이다. 요압이 무서워서 요압에게 말도 못한다. (요압의 힘이 필요하니까) 욕망으로 가득찬 요압을 제어하지 못하는 다윗. 그랬기에 통일 왕국의 군대장관은 아브넬이 적격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요압은 15광야를 거치면서 다윗에게 순종하다가 자기 자리(군대장관)가 걸리니까 이렇게 무섭게 바뀐다. 모든 목적의 끝에는 돈이 있다.
이렇게 구속사를 깨닫지 못하는 요압과 함께하는 것이 다윗에게도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심복 요압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브넬 죽인 것은 요압뿐만 아니라 아비새도 관련이 되어있다. 다윗과 고난을 함께했지만 아말렉 소년을 죽이고 아브넬을 죽이는 그 형제들이 심복이지만 구속사를 깨닫지를 못하고 다윗에게 해만 된다. 나와 가깝지만 해가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기회주의를 넘어서지도 못하고 배신도 처리하지 못하는 다윗.
3. 오늘 내가 너무 약해서 그렇다고 고백하는 다윗
믿는 사람은 오늘이 항상 어렵다. 하나님 뜻대로 살려니까 거룩하게 살려니까 오늘이 어렵다. 따끔하게 배신을 처리하지 못하는 다윗에게 나라는 등을 돌린다. 화해를 청한 아브넬을 죽였다고 생각하니까 믿지 못하는 것이다. 블레셋으로 갔던 다윗을 다시 생각하면서 믿지 못한다. 그러나 위기에 강한 다윗. 아브넬을 위해 애가를 지어 부른다. 사울을 위해서 울고 아브넬을 위해서 우는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다. 끝까지 사울을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위하는 일이다. 이것이 예배가 회복되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진심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부하의 잘못을 다윗이 책임지고 사울과 아브넬을 위하여 옷을 찢고 우는 다윗을 보면서)
어려서 목동 일을 해왔기에 허드렛일을 잘하는 다윗. 교만한 사람은 이럴 때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회피하는데 다윗은 본인이 책임지고 운다. 밥도 먹지 않는 것을 보면서 백성은 왕을 보며 기뻐한다.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 것이다. 백성들을 어떻게 기뻐하게 하겠는가? 39절에 답이 있다. '오늘' 내가 약하여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그 고백.
다윗은 요압을 왜 처리하지 못하는가? 요압과 아비새가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통일 왕국을 위해서 그들을 처리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브넬이 와서 형제를 견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것같다. 자기는 그 형제를 통제하지 못하고 조취를 취하지 못하니까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보고 오늘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강함이다.
이스라엘은 다윗의 공정함을 보고 기뻐했다. 그러나 요압은 하나님 나라가 안보이니까 자기 자리가 보장된다면 다윗이 말로 하는 저주는 저주로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이 더 무섭다. 그러면서 다윗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윗의 의중을 꿰뚫어보는 정치적 능력이 높다. 그래서 끝까지 다윗은 요압과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다윗보다 오래 삼. 평생 무서운 사람이 나보다 오래 살면서 나를 괴롭힐 수 있다. 다윗은 요압도 하나님이 처리해주기를 바랬다. 이런 인간관계의 사건을 통해서 다윗의 지경이 넓어진다.
다윗은 기름 부은 사울과 아브넬을 위해 진정으로 슬퍼했다. 구원 때문에 사랑하고 구원 때문에 가고 구원 때문에 죽이는 것을 시험하시는 하나님. 기름 부은것은 질서이다. 이 시험이 어렵기 때문에 7년 6개월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부부사이 부모자식 사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험하신다. 끝까지 같이 살 수 있는가?
내가 너무 약하다는 고백을 우리도 하면 된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 다윗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가만히 기도하는 것처럼.
[나눔]
Q1. 나의 기회주의는 어디까지인가? 내 안의 유익은?
욱진이형의 기회주의: 나 스스로 우상이 되는 부분. 최근 도일이를 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처음에는 챙기는 수고가 내 공로가 되어 내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구례 때의 실패를 내 사역으로 여겨 망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춘천 아웃리치를 더 열심히 해서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구원의 일이 우선이 아닌 나만 세우는 일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투석을 하면서 찬양을 하는 모습에 은혜 받는 사람들을 더 의식하고 인정받고자 하던 모습이 아브넬과 같다.
승현의 기회주의: 자꾸 내 위주로 돌아서는 것. 직장 처소 문제 통해서 사장님, 직원들 체휼하는 것이 우선되는 마음이 아니라, 돈을 더 신경 쓰게 되는 마음이 먼저 들게 되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가게 만들고 내 능력 더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든다. 양육도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 아닌데 잘 하고 싶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원식의 기회주의: 인간적으로 뜨거운 사랑을 늘 찾게 되는 것 같다. 말씀을 듣고 인내하고 있지만 그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내 힘이 들어갈 때가 많다. 내가 편하기 위해 예들 들어 결혼생활도 편해지기 위해 믿지 않는 누나를 전도해야 편해질 것 같아 전도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 만족 때문에 하는 일이었고 내 기분, 심정은 하나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을 하던 전도를 하던 일단 내가 하나님 사랑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 같다.
동환의 기회주의: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영어 공모전을 준비하기 위해 영어 잘 하는 친구를 찾았다. 잘하는 친구에게는 잘해주고 못하는 친구에게는 관심을 멀리하게 되는 모습을 봤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찾게 된 결과이다.
용석의 기회주의: 간증하신 집사님 얘기가 내 얘기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재산 내게 올 거란 생각을 했다. 결국 내 약점은 돈이었다. 여자친구와 결혼 준비를 하면서 돈에 관해 조심한다고 하지만 결국 돈 때문에 염려하는 마음들이 올라왔다. 돈 때문에 생기는 집착, 생색, 정죄하는 마음이 있음을 드러내신 것 같다.
Q2. 가장 가까운 자의 배신을 당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무서워하는 요압같은 사람이 있는가?
원식이 당한 배신: 사람에 대한 신뢰에 기대함이 많이 사라져서 없는 것 같다.
원식의 요압: 내가 요압과 같다.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가도 내가 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승현이 무서워 하는 요압, 배신당한 사건: 같이 일하는 세컨인 후배가 무서울 때가 있다. 다른 직장에서 안 좋게 넘어온 사람이었다. 이곳에 온 후 정말 15광야 함께 한 요압같은 사람이었는데 세컨이 되고나서부터 돈에 대한 욕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프랜차이즈 사업을 구상하면서 자기에게도 기회를 줄줄 알았는데 그렇게 못하게 되니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회사의 단점만을 말하는 것을 알게 되어 뒤통수 맞았다. 시간을 가지고 얘기하고 바로 잡으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추스리고 잘못된 가치관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다. 너무 그 상황을 모른 척 한 잘못이 있다. 사람 너무 믿고 내 역할 다 하지 못한 죄를 보게 됐다. 다시 바로 잡으려 매니저 형과 나눴는데 오히려 얘기해줘서 감사하다고 하더라. 모든 것을 바로 잡아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동환이 배신하거나 배신당한 사건: 알게 모르게 뒤통수 쳤을지도 모르나 내가 일부러 거짓말하진 않고 솔직하게 얘기한다.(얼... 남자다ㅋ)
욱진이형이 배신당한 사건: 어머니가 집을 나간 사건이 그렇다. 최근 어머니가 교회에 나오시고 목장에도 나가시는 은혜의 시간들이 이뤄지고 있는데 아버지가 가끔 교회에 너무 시간을 많이 뺏기는 것 같다고 초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어려워지고 있다. 아버지가 요압과 같고 우리 가정 가운데 일어날 사건이 예비 되어가고 있다.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용석이 배신하거나 배신당한 사건, 요압같은 사람: 내가 요압이다. 회사에 들어가 믿고 따르던 실장님과 일하면서 나와 맞지 않는 일을 시키면 그 일을 하지 않고 내가 생각한대로 일을 해버렸다. 나중에 그 실장님이 뒤통수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면서 소장님에게 하소연하는데 요압처럼 무섭게 그 분을 종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장님이 다윗처럼 나를 얼마나 어렵고 무섭게 여겼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Q3. 위기 가운데서 내가 변명하지 않고 잘 인정하고 감당하는 사람인지? 나는 약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있는지? 내가 할 수 없다고 고백한 것이 있다면?
욱진이형의 변명: 유치부에서 휘문3부 목자, 부목자 수련회를 하고 춘천 아웃리치를 했다. 청소가 잘 안된 문제 때문에 유치부에서 전화가 왔다. 그 순간에 바로 휘문3부의 문제라고 했다. 그 쪽 책임이라고 하는 마음이 있다. 다윗은 자신이 책임졌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용석의 고백: 최근 맡은 일이 비용과 일정, 사람들 모두 어려운 숙제였다. 내 의와 능력발휘가 아닌 ‘할 수 없으니 지혜와 능력 달라고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 그 후 하나님께 맡기니 걱정보다는 오늘 하루 잘 해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현의 고백: 교회에서는 수치를 잘 오픈하는데 직장에서는 수치를 잘 드러내지 못했다. 이번 직장문제 통해 나를 어려워하고 경계하는 친구에게 고난을 오픈하게 됐다. 그러고 나니 그 친구가 진심으로 응원해주더라.
원식의 약점, 안 되는 부분: 답답함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음.
동환에게 안 되는 부분: 온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기도제목]
동환
1. 예배시간에 늦지 않고 잘 나올 수 있도록
2. 취업준비 잘 할 수 있도록
3. 신교제할 수 있도록
원식
1. 이사 때까지 아무 탈 없이 진행되도록
용석
1. 불평불만, 험담하지 않고 맡겨진 일 잘 할 수 있도록
2. 돈의 문제에서 벗어나서 신결혼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3. 부모님, 누나 구원 위해서 더 힘 있게 기도할 수 있도록
승현
1.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수 있도록
2. 휴가계획 잘 짤 수 있도록
욱진이형
1. 야동안보는 일주일 되도록
2. 큐티 잘 할 수 있도록
3. 회사에서 내 약함 잘 드러내고 최선 다해 일하도록
*승원, 현수, 호연 다음 주일에 주의 인도함으로 예배와 목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