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할리스할리스에서 나눔을했습니다!
참석 : 박세웅87목자, 양주영88부목자, 최인혁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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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강해지고 약해지고>
사무엘하 2:8~3:1
전쟁도 길어지면 살아나는 사람이 있고 도태 되는 사람이 있다. 부부, 형제간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 번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강해지는 것도, 약해지는 것도 ‘점점’ 된다. ‘너가 진짜 사울을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신다. 구원 때문에 진짜 사랑했는지, 기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지금까지 확인하고 계신다. 이 뜻은 본문을 통해 알아보자.
1. 심복들의 공명심이 문제이다.
공명심은 공을 세우고 싶어 하는 욕구이고 야망이다.
8~11절)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을 위해서 활의 노래를 불렀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은 이제 잘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사울을 따르던 군대장이 사울의 4번째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았다. 자신이 실권을 잡고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다. 두 왕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래서 골치가 아프다. 동업을 하거나 목회를 팀 목회를 하거나 하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다수는 이스라엘이었다. 다윗이 왕이 되기는 요원해 보였다. 1/11은 다윗을 따르지만 10/11은 사울의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심복들이 각자 자리에 차지하고 있다. 공명심 경쟁에 있다. 사울의 심복들이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다윗의 부하들도 만만치 않다. 7년 반을 기다려야 하는 시기였다. 아브넬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모든 왕과 아들들이 전사했는데 혼자 살아남았다. 다윗에게 사울을 내다줘서 자기 왕이 두 번이나 죽을 뻔 한 무기력한 사령관이었다. 사울 시대에도 사울을 지켰고 사울이 죽어서도 총사령관을 하고 있는걸 보면 믿음이 없어도 지위와 권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아브넬은 망한 사울 왕 밑에 남겨진 한사람이었다. 스루야의 요압은 다윗의 이복누이의 아들이다. 다윗의 심복 중에 심복이었다.
12~13절) 서로 나왔다고 했다. 기본전쟁이 시작이 됐다. 이것은 서로가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나왔다. 처음에는 전쟁을 할 수 없었다. 진정으로 사울을 슬퍼했기 때문에 전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 싸움이 시작이 되었다. 사람이 5천명이 먹을 수 있는 물이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전쟁을 하기는 그렇고 기 싸움을 하고 있다. 군사력을 과시하려고 서로 대치를 하고 있는데, 아브넬은 사울의 부하이고, 요합은 다윗의 부하이다. 한쪽은 순수하고 한쪽은 교활하다고 봐야할까? 이 사람들은 둘 다 통일왕국을 건설해야 하는 목적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전쟁인데, 둘 다 세상나라의 전쟁 같은 야망을 가지고 있다. 아브넬이나 요합이 다를 것이 없다.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울집하면 죽이고 쫓고 하는 관계였다. 처음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걸 아브넬이 그 문을 연다.
14~15절) 아브넬이 젊은이를 내세워서 겨루게 하자는 것은 전쟁놀이를 하자는 것이다. ‘장난하게 하자’ 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속으로는 5천명 먹을 물이 있지만 그 얘기는 서로 하지 않는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방패 없이 칼로 옆구리를 찌르게 하는 놀이를 하자고 한다.
16절) 심복이 24명이 졸지에 다 죽었다. 그걸 기브온에 있는 헬갓 핫수림이라 일컬었다. 다윗은 왕이 되어도 동족끼리 싸우는, 가족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맨 처음에는 이놈 저놈 하다가 이 자식 저 자식 하다가, 이 새끼 저 새끼가 됐다. 장난으로 시작해서 큰 싸움이 된 싸움이 너무 많다. 다윗은 자기는 용서했는데 심복들이 사울 쪽을 용서한줄 알았다. 하지만 양가의 골이 깊었다. 심복들은 용서가 안되었던 것이다. 같이 전쟁놀이를 한다.
-예수 믿고 잘 살고자 했는데, 여전히 전쟁하고 화내고, 과거를 들먹이는 것은 무엇인가?
17절) 다윗의 심복들이 패했다. 이스라엘이 패했다. 그들의 공통의 적은 블레셋이다. 심복들은 적이 누구인지 모르고 같은 편끼리 무모한 전쟁을 하고 있다. 심복들의 공명심이 방해를 하고 있다. 내 속의 공명심은 하나님 나라에 왕이 세워지는 것을 방해한다는 뜻이다. 너무 예수 잘 믿는 요합이다. 심복중의 심복이다. 하지만 아브넬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자 하신 말씀이다. 교활하거나 순수하거나 거기서 오십 보 백 보이다. 100프로 순수 할 수 없다. 늘 한쪽에서는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알려지길 원한다. 어디 가서 무시 받으면 기분이 너무 나쁘다. 무시 받아도 내가 기분이 안 나빠야 한다. 그 감정들 사이에서 목사님은 어디까지가 순수한 것인지 갈등이 된다. 늘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기를 원하는데 내 안에 공명심이 있을 때가 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사울이나 다윗부하들은 다 똑같다. 또 하나님께서는 필요하셔서 이 본문을 읽게 하신다. 내가 아니고 말씀이 나를 읽어야 한다.
- 내 속의 공명심은 어디까지인가?
2. 만용이 문제이다.
만용은 분별없이 날뛰는 것이다.
18~24절) 아브넬이 져서 도망가고 있다. 아사헬이 발이 가장 빠르고 은사가 있다. 아브넬을 쫓아간다. 묻는다. ‘왜 그렇게 치우쳐 쫓아오느냐? 우리는 동족이다.’ 라고 말한다. 자신이 전쟁을 걸어놓고 그렇게 얘기한다. 군사의 옷을 벗기고 입혔다가 아브넬을 놓쳤다는 명분을 주었다. 도피성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유를 대고 안 쫓아가야 한다. 오히려 지금은 아브넬이 옳은 말을 하고 있다. 아브넬이 전쟁을 걸었어도 요합이 전쟁을 피했어야 한다. 그런 아브넬을 죽이려 하는 심복들도 잘한 것 하나 없다. 이 전쟁은 믿음의 싸움이므로 누군가를 죽여야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기름 부은 자를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공명심 때문에 자신의 발만 믿고 자신의 실력을 몰랐다. 아사헬은 공동체에 묻지도 않고 자기 혼자 죽여 다윗에게 충성을 보여주고자 분별없이 날뛰는 만용이 있다. 아브넬은 하나님 나라에서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걸 분별할 심복이 없었다. 다윗의 공동체들이 미숙한 부분이 있어서 7년 반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항상 또 왜 만용이 나왔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두 집안은 서로 원수 집안이다. 다윗 때문에 화해는 했지만,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사이이다. 어색하다. 말만하면 싸우게 된다. ‘당신 바람 폈잖아!’라고 과거의 얘기가 계속 나온다. 다윗처럼 믿음이 없기 때문에 사울 얘기를 하면 분이 올라온다. 서로 원수같이 싸우는데 다윗 부하들도 사울 부하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어딜 가든지 다 똑같다. 다윗은 기름 부은 자를 해하지말라고 했다. 똑같이 얘기를 한다. 상대는 진실치 못해도 백년노장이다. 믿는 사람들끼리 싸우면 안된다고 한다. 사울의 백성은 자기 다윗의 백성이지 블레셋이 아니라고 한다. 믿음 좋은 사람이 적용하는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다윗은 사울의 핍박으로 주님을 찐하게 만나서 예수님 조상으로 등극을 하게 되는 것인데, 부하들은 거기까지 생각을 못한다. 사울만 사랑해서는 안되고 후손까지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심복들은 적용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그런 놈은 버려야해!’ 한다. 다윗의 심복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힘을 입지 않고 가면 인본주의를 넘어서 간다는 것이다. 다윗이 너무 무서우니까 시글락으로 피하기도 했다. 다윗은 하지만 이혼을 하지 않았다. (피했다) 하나님 나라. 가정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을 하면 하나님이 지켜 가시는 것이 있다. 인간의 그것과 하나님의 약속은 비교가 될 수가 없다. 사울은 다윗 훈련시키려고 있는 것이다. 약을 먹어서 안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를 훈련시키는 사람이 있는데 헤어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이 있다. 결혼 전에는 끝까지 분별해야 한다. 결혼하고 나서 기름 부은 자이다. 만용을 부리지 말고 자기 실력을 알아라!
-나는 어디에서 만용을 부리고 있는가?
3. 책임 전가를 한다.
25~27절) 동생 아사헬이 죽었다. 요합이 자기 동생이 죽어서 분해서 아브넬을 쫓아간다. 무슨 나라를 민족을 걱정하겠는가? 쫓아가니 아브넬이 그런다. ‘우리끼리 참혹한 일이 일어나야 하겠느냐?’ 요합이 ‘너가 먼저 전쟁을 걸지 않았느냐?’ 하며 믿는 사람이 책임 전가를 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28~31절) 하나님의 뜻이 다윗왕가에 있기 때문에, 아브넬의 사람들이 더 많이 죽었다. 아무리 병원에 가도 사울은 치료가 되지 않았다. 약을 먹어서 얼마든지 나을 수 있다. 악신이 들어도 사울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혼을 하는 것이 아니다.
32절) 다윗 쪽에는 날이 밝았다고 한다. 공명심과 책임전가가 있는데. 다윗의 왕가가 강해지는 이유는 !!
4. 한 사람이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다윗 쪽에 선한 것이 하나 없다. 오히려 말도 안되는 인간들만 모여 있다.
3장1절) 다윗 개인과 사울의 집안이라고 한다. 다윗 개인이라는 말로 쓰여 있다. 다윗 개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개입이 있으셨기 때문에 사울의 집안이 망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한 사람 때문에 점점 강성해 질수도 있고 점점 약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기름 부은 부하들이 기름 부음을 받은 부하들을 죽였다. 한마디로 적용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다윗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강하여 이긴다. 사울 집안은 사울 같은 사람들 밖에 없을 것이다. 예배중독자에 경건주의자이며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자기 자랑을 하게 되는데 인간의 힘만 자랑하는 사람들만 모이니 10/11이 모여도, 자기자랑을 하려면 남을 비방해야 하는 것이다. 교양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을 비방한다. 인간의 인본주의 적인 공동체는 재미가 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예수님의 조상이 되어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는 다윗이다. 다윗은 양쪽을 둘다 껴안는 사랑이다. 사랑은 아픔이 있고 너무 설렘이 있다. 보고 싶어 설레고 너무 재미가 있다. 만날 똑같은 것 같은데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라 만날 설레고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인간의 사랑과는 비교 할 수가 없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다.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는 아무 것도 없는데 아무것이 있다. 그러니 그 공동체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자기 자랑을 하면 끝이 없어 망한다. 말씀보고가고,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 있기 때문에 점점 강해짐을 믿는다. 한번에 강해지는 것은 없다. 처음 와서 강해지는 것은 없다. 한사람이 정신 차리고 있는 다면 공동체가 강해진다.
-기도제목
박세웅 :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공명심 죽일 수 있도록, 규칙적인 생활과 시험공부 잘 할 수 있도록. 어머니께 말 예쁘게 할 수 있도록. 동생이 유럽여행 가는데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양주영 : 한주도 분별 잘하는 삶 살 수 있도록, 얼마 남지 않은 공모전 끝까지 준비 잘 하도록, 양육교사 숙제 꾸준히 잘하고, 시험 준비도 잘 하도록.
최인혁 : 취직 할 수 있도록, 디지털 일러스트 잘 배울 수 있도록. 사회복지 1급 시험 준비 잘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