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2014.4.6. 위혜정_목장_보고서
“드디어 왕이 되다”
사무엘하 2장 1-7절
말씀요약)
다윗이 드디어 왕이 되었다. 다윗이 왕이 되었는데 더 이룰 일이 뭐가 있겠는가? 사장, 진급, 아이가 좋은학교 진학, 결혼 등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일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무엇을 하겠는가? 반드시 이 일이 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1. 다윗은 드디어 왕이 되었는데, 그런 후에 당연한 것도 하나님께 묻게 되었다.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인정하였다. 1절) 사울의 죽음을 잘 처리한 다윗은 더욱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는 상태에서 지금 사울은 죽었고, 이스라엘의 민심은 다 흩어져 버렸다. 이 때 다윗의 입장에서는 왕이 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다윗은 스스로 왕이 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께 유다 땅으로 돌아가야할지를 묻는다.
사무엘상 27장 1절에 보면, 다윗이 자기생각대로 블레셋 시글락 지역으로 들어갔다가 호되게 고난을 당하고 나서 이제는 여호와께 여쭈어아뢰되가 자연스럽게 된다. 묻지 않고 시글락으로 갔기 때문에, 사울을 추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뢰가 회복되기까지 7년 6개월이 걸린다. 다윗은 사울을 신뢰하는 세력에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고향인 유대 땅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다. 유다 성읍으로 갈지 물은 다윗은 거기서 또 어떤 성읍으로 갈지를 물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는데, 헤브론은 갈렙 족속의 땅이었는데, 사무엘상 25장에 보면 다윗을 홀대하였던 나발의 땅이었다. 전쟁이 일어날 뻔 하였던 곳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다윗은 가기가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또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로 산 약속의 땅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면 손해볼 것이 없다.
2절) 유다 땅에서 취하여 얻은 아히노암과 아비가일 두 아내. 유다 땅으로 피신하러 갔을 때 맞이함. 하나님이 무작정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유리한 조건도 이용하셔서 갈 길을 밝히시고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하신다. 다윗은 시글락에서 통곡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래서 시글락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사로잡혀갔는데도 그 일을 물었다. 당연한 일인 데도 이렇게 묻는 것이다.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광야를 수없이 지나면서 자기 생각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사소한 것도 묻는 인생이 되었다. 묻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절대주권을 맡기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구체적으로 큐티를 하면서 목장에서 공동체에서 수없이 끊임없이 묻고 가는 것이다.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이 가장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 역대상 12장 22절에 보면,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 다윗에게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날마다 하나님께 물으면 내 옆에 하나님나라의 인재들이 모이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적용) 지금 물어야 될 것이 무엇인가? 당연한 것도 지금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2. 드디어 왕이 된 다윗에게 추종자들이 있다.
3절) 아내뿐 아니라, 추종자들도 다 데리고 헤브론으로 올라갔다. 영육간의 지체를 보살피면서 가는 것을 보게 된다.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은 사실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다. 환난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이 모였다. 15년을 함께 훈련을 받고 옆에서 다윗을 보면서 떠나지 않고 추종자가 되었다. 사울 옆에 대단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도 충신은 없었다. 다윗 옆에 추종자들은 고난 가운데 왔기 때문에 진짜 추종자인 것이다. 당연히 데리고 가는 것이다.
세상방법을 통해 얻어지는 명예와 권력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 영원한 것을 잡아야 하고, 지금당한 고난은 장차 누릴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억지로든, 자원함으로든,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길은 외로운 길인 것이다. 그러나 함께하고 싶은 진정한 추종자가 있는 인생은 복된 인생이다. 아무리 말씀이 좋아도 받는 사람의 마음밭이 상한 심령이고 애통해야지 좋은 말씀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추종자가 예수그리스도가 될 때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
적용) 나는 집에서 나를 추종하는 가장인가? 목장에서는 추종하는 목자인가? 나는 함께할 추종자가 있는가?
사회에서도 성공하려면 좋은 추종자가 있어야 된다. 목장에서도 추종자가 있어야 좋은 목자가 된다. 사울도 물론 추종자가 있었다. 분별을 잘해야 한다. 내가 돈이 있고 권세가 있어서 나를 따르는가? 세상적인 조건을 가지고 나를 따르는지 봐야 한다.
3. 다윗이 드디어 왕이 된 데에는 다윗의 공로가 없다.
4절)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무려 15년 만에 유다지파의 장로들이 다윗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7년 반 후에는 이스라엘 전체에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총 세 번에 걸쳐 기름부음을 받았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세밀하게 기록이 되었던 것에[ 비해, 다윗이 드디어 유다의 왕이 되는 장면에 대한 기록은 2장 4절 한절에서가 아니라 1/2절에 불과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메시지. 다윗이 왕이 된 것은 다윗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다윗이 고생한 것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아니다. 다윗이 고생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다윗을 고생하게 하셔서 나중에 지나고나서 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때마다 일마다 다윗도 도망가고 싶었겠지만, 하나님이 강권하셔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내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면 기드온의 아비멜렉처럼 낭패를 당하게 된다. 하나님이 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내가 복음이 좋아서 복음을 전하고 가는데, 하나님이 뭘 해주시겠지 하는 것을 다 내려 놓아야 한다. 복음을 전하고 가는 것 그 자체가 상급이다.
적용) 드디어 원하던 일이 되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공로라고 인정을 하는가? 좋은 것도, 슬픈 것도 나에게 생기는 일은 하나님의 공로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를 세워가시는 훈련 중에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가?
4. 원수를 껴안았다.
이 말은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일관성 있게 사랑했다는 뜻이다. 사울이 죽었는데 왜 다윗을 이스라엘 가운데 세우지 않았는가? 유다 지파 중에서만 왕으로 세움을 받고 11지파가 동참하지 않았다. 11지파는 사울을 제비뽑아서 왕으로 세우고, 사무엘도 싫어서 버린 사람들인 것이다. 외모가 준수한 사울을 여전히 놓지 못하는 게 있고, 사울의 기복적인 통치방식은 여전히 11지파에게 건재한 것이다. 또, 다윗이 그일라 백성들을 도와준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다윗을 배반하였다. 사울에게 충성했었기 때문에 다윗에게로 가면 보복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11지파는 다윗에게로 가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다윗이 원수 블레셋에게로 갔다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기까지 7년 6개월이 걸린 것이다. 그러한 사울을 11/12이 좋아했다. 복음은 좁은 길인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윗은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고 왕 되고 나서 첫 번째로 한 일이, 사울쪽 사람들에게 축복을 빌어준 일이다. 4-7절)
사울이 사무엘상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왕으로 추대되고 나서 공식적으로 추대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암몬족속이 쳐들어왔다. 그런데 사울이 성령이 임해서 길르앗야베스를 도와주었다. 그들이 이것을 기억하고 블레셋에서 사울이 죽었을 때, 그것을 기념하고 장사를 지내주었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그 땅에 간 것이다. 다윗이 이것을 듣고,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을 은혜와 진리로 축복을 빌어주었다. 내가 왕이 되면 우리편 사람들부터 축복을 해야하는데, 원수편 사람들부터 축복을 한 것이다. 세상나라는 보복이 있고 이해타산이 있기 때문에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정말 다윗의 왕국은 은혜의 왕국인 것이다. 세상과 다르게 내편인 것 같은 아말렉은 죽이고 니편인 것 같은 길르앗야베스는 껴 안은 것이다. 다윗은 훈련이 끝났기 때문에 마지막 시험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사울을 사랑하는지를 보셨다. 다윗이 왕 되는데 도움을 준 사울을 사랑하는가, 기름부음 받은 자를 끝까지 우대하는가? 이 시험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5장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이 시험을 더 치러야 되는 것이다.
사무엘상 24장에서 보면, 엔게디 광야에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기름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 후에 사울이 이를 기억하고 너는 나보다 의롭다고 인정도 하고, 울기도 하고, 사울은 할 것 다했지만 결정적으로 회개함이 없었다. 경건의 모습은 다 갖췄는데 돌이키지 않았다. 연약한 것과 완악한 것은 다르다. 알고도 회개하지 못하는 죄 때문에 이러한 사울의 죽음이 너무도 안타깝다.
하나님이 아말렉을 나의 원수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하나님 믿는 백성에게도 아말렉은 원수인 것이다. 사울이 사무엘이 오기까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를 드렸는데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시며 회복의 기회를 주셨다. 그런데 사울은 인간적인 마음으로 내가 보니까 괜찮던데요 뭘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각을 살려주고 친구까지 맺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것은 믿음이 아닌 것이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영생을 포기한 것이다.
사울은 늘 다윗이 옳기 때문에 죽이려 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상관이 없는 인생을 산 것이다. 사울로써는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 있었다. (하나님께서 서 있게 하셨지만) 하나님나라는 신앙인격인 것이다. 사울을 왕으로 두신 이상 하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을 때가 될 때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사울은 왕이 되고나서 훈련은 받지 않고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대적하기 위해 살았기 때문에 결국 멸망했다. 다윗에게 훈련의 양이 차 갈수록 사울에게는 심판의 양이 차 갔다.
우리에게도 각각 기름부음 받은 자가 있을 것이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남편, 아내, 자녀, 식구들이 다 기름부음 받은 자들인 것이다. 다윗은 사울을 죽인 길보아 산도 저주를 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끊는 것을 단호히 저주해야 한다. 내 속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있으면 어떤 것도 긍정적으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꾸 광야를 걷게 하시면서 내 안의 원수를 직면하게 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상대가 아무리 육적으로 대해도 영적으로 적용할 수가 있다. 내가 항상 두려운 이유는 내 속의 죄 때문이다. 도덕적인 죄 밖에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은 애통하는 것이다. 기름부음 받은 자를 사랑하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다윗은 사울 때문에 되었다함을 계속해서 인정한다.
평생 교회를 다녔는데도 훈련이 없는 사람은 열매가 없다. 다윗이 항상 옳은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으면서도, 항상 자기 일에 열심히 하는 사람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날마다 영적인 실력을 쌓았고 다윗은 드디어 왕이 되었다.
기도제목
혜정언니
4/20 전도대상자 구민숙님 외 1명께 복음을 잘 전할 수 있게 지혜 주시도록.
진영언니
새로운 시도들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데, 불안하더라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수민언니
감정에 대해 잘 물어볼 수 있도록
재정
일대일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가족구원, 특히 4/20 오기로 한 여동생이 말씀 잘 듣고, 거부감 없이 흡수할 수 있게.
이지영
사회성이 잘 길러졌으면..
부모님의 건강
지영이의 건강회복
동생과의 관계회복, 구원
신교제
은화
수험생활에 충실하도록(마음관리, 시간, 체력)
가족들 예수가치관 가지도록,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도록
1. 장문의 말씀요약을 한 것은 오늘따라 너무 피곤해서 말씀 들을 때 뜬 눈으로 졸아서.. 필기 자체를 심하게 날림으로 하게 돼서 다시 들으면서 내용을 정리해보았는데요. 거의 받아쓰기 수준인지라.. 요약인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집중해서 잘 듣고 간단하게 요약해서 올리도록 할게요^^*
2. 오늘두 여전한 방식으로 모여서 목장모임을 했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기대고 모임을 사모하는 우리가 있어서 어찌나 감사한지.. 우리보다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성장하는 것을 기대하게 하시고 또 서로의 변화를 기뻐하고 축하하며 기도할 수 있는 목장으로 묶어주심에 감사한 모임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