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조상으로 다윗의 이름이 찬란히 언급 되게 하심.
다윗의 모든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생생히 보이심으로, 그가 모든 성도들의 예표가 되게 하심
1. 나의 사울이 죽어야 나의 다윗이 시작됨
큰 사단인 사울은 나의 훈련이기에 하나님이 처리 해주실 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의미인데,
1절에 ‘사울이 죽은 후에’ 로 시작한 것은 드디어 다윗의 새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사무엘상에서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 계속 쫓기다가, 드디어 사무엘하에서 사울이 죽었고, 하지만 5장이 되어서야 다윗이 왕이 되었다.
다윗이 23년 동안 고통의 세월을 보냈지만 그 고통이 별이 되어서 온 인류를 살리는 보석이 된 것처럼, 내 고난 하나하나가 하나하나 별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보석이 될 수 있다.
다윗의 광야 생활은 놉땅을 시작으로 15개의 광야생활을 거쳤고, 그 뒤에야 사울이 죽음
다윗이 15개의 광야생활을 지나고 나서 나중에 왕이 되었을 때 얼마나 지난 광야생활이 유익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당시에 주로 굴속에 많이 숨었는데, 전쟁을 할 때 이미 굴속에 숨어봤기에 비밀장소를 너무 잘 알아서 전쟁마다 승리를 하였다.
내가 남편고난 자식고난 경제적인고난 다 겪어보면, 내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서,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내놓을 보석 같은 나의 고난들이 유익하게 쓰이게 된다.
사울은 암나귀 하나 찾으며 편안하다가 왕이 되었기에 고난이 오면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보다 잘난 부하 다윗 하나를 다루지 못하고 평생 미워하였고, 왕 자격이 부족하여서 결국 자살 하는 인생을 살았다.
광야를 지날 때는 다 힘들겠지만, 어떤 것도 사명과 연결되지 않는 고난이 없기에, 당하는 것이 축복이고 고난이 축복이며 보석이다. 이것저것 많이 겪어보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우리는 ‘훈련이 빨리 끝나고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 때가 바로 사울이 죽은 후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광야에서 마지막으로 도망 간곳은 블레셋인데, 블레셋은 사울에게도 이스라엘에게도 원수이기에 다윗에게도 원수이다. 하지만 사울이 너무 괴롭혀서 원수나라로 도망갔고 시글락 땅을 얻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을 벌였다.
다윗이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조국 이스라엘을 치러 나가기로 결정을 하였는데, 다행히 적극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의 의심을 받아 동족과의 전쟁을 파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시글락 땅으로 돌아왔더니 처자식들이 아말렉 족속에게 사로잡혀가고 크게 약탈당하였다.
다윗에게 너무나도 기가 막힌 일인데, 지금껏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빚지고 원통하고 환난 당한 자들을 공동체로 다 불러 모아서 지금까지 함께해 왔던 사람들인데, 자기를 그리도 좋다고 하던 공동체가 이제는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다윗의 어떤 광야에도 비교할 수 없는 고난이었다.
다윗은 울 기력이 없도록 땅을 치며 통곡했고, 매우 다급하게 여호와를 힘입어서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물어서 그제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그제야 구하였더니, 아말렉을 치라는 명령을 받아 아말렉과 싸워서 전리품을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공동체 모두에게 다 나눠줄 정도로 통이 커졌다.
그러고 돌아왔더니 사울이 죽었다. 이정도 되어야 나의 사울이 죽었다.
모세가 죽어야 여호수아가 시작하듯이, 죽어야 새 시대가 온다.
영적으로 내가 죽어야, 내속의 사울이 죽어야 주의 일이 시작 된다.
죽은 줄 알았어도, 성경을 보면 다윗 속의 사울이 죽지 못한 것을 묵상 할 때, 내 속에 세상적인 세력이 죽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고 내 속의 사울이 죽게 하신다.
사울 때문에 이스라엘이 고생했지만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사울을 처리해주신다.
단지 내 속의 사울이 죽지 않았기에, 사울이 죽는 하나님의 때가 오지 않는 것이다.
세상 세력의 죽음이 선포 되어야한다. 이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세상에는 죽은자로, 하나님께로는 산자로 선포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기 위해서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리 찔러도 반응하지 않는 송장같이, 광에서 성도들을 앞서가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고, 그렇기에 다윗은 우리가 따라 가야할 모범이고 위로이고 도전의 모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고난 이후에 사무엘하에서 다윗이 정권을 잡게 되었지만, 그 이후의 앞으로 당할 기가 막힌 일들이 남아있다.
별 인생이 없기에 조금 잘 산다고 교만하지,도 힘들다고 열등감 갖지도 말고, 단지 주님의 사명자로 살아갈 뿐임을 생각해야 평강하다. 따라서 지금의 모든 환경에서 사명을 붙잡아야 한다.
내 인생 어느 때에 사울의 죽음이 선포되는가.
내게서 사라져야 할 사울의 모습이 있는가? 그것 때문에 사울이 나를 위해 수고하는 것이다.
큰 사단인 사울은 나의 훈련이기에 하나님이 처리 해 주실 때 까지 반드시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기다려야 할 사단이다.
2. 물리쳐야 할 사단이 있다.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에게 분별의 능력이 생겼다.
큰 사단은 하나님께서 처리해주시지만, 작은 사단 아말렉은 부지런히 분별해서 처리해야 한다.
다윗은 15개의 광야를 거치며 큰 사단과 작은 사단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겼고, 쳐내야 할 사단과 기다려야 할 사단을 분별할 능력이 생겼다.
그래서 아말렉 청년이 찾아올 때 분별하였다.
다윗은 청년에게 어디서 왔는지 소속을 물었다.
사울과 블레셋군의 싸움이 맹렬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울에 대한 소식이 매우 궁금했을 상황인데, 마침 사울의 진영에서 한 사람이 면류관을 들고 온 순간이다. ‘드디어 내 평생에 기도제목이 이루어 졌구나.’ 할 만한 상황이다.
마치 ‘다윗의 기도제목이 응답되었다.’며 새 시대의 일꾼으로 써달라고 찾아온 아말렉 청년
그런데 다윗은 사울의 생사를 묻지 않고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다윗처럼 고난을 겪어보지 않으면 사람을 사건을 분별 할 수 없다.
충분히 ‘심봤다.’라고 여길만한 상황인데..
내가 일평생에 나를 괴롭히는 게 돈인데 누가 돈을 들고 나타난 상황이다.
그런데 ‘그 돈 어디서 났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은 상황
합격이나, 질병의 회복 앞에서, 먼저 '이것으로 어떻게 쓰임 받을 것인가?‘ 묻고 있는 것이다. 다윗에게는 사울의 죽음이, 우리에게는 돈이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자식 때문에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다가 겨우 자식을 얻었는데, 하나님이 그 자녀를 내놓으라고 하니까 ‘아멘’ 하며 내놓았고 이것이 부활신앙이다.
내 삶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기에, 있어도 없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돈을 가져오면 마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난 돈인가?’
합격을 해도 ‘왜 하나님이 이 대학을 붙여주셨다고 생각 하는가?’
아주 좋은 조건의 배우자 앞에서 그냥 기도의 응답이라고 좋아하기보다는 ‘어디서 왔는가?’
다윗이 세상에 대하여 죽은자 이기에 이렇게 질문 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진영에서 블레셋과 싸우고 왔기에 ‘자신은 믿는 자.’ 라는 아말렉 청년 이었지만
다윗은 차분하게 아말렉 청년을 분별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확실히 알면 인간을 알 수 있다.
인간론은 나 자신에 대해 알고 남에 대해 아는 것인데, 하나님을 모르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고난의 과정을 겪었기에 분별이 되는 다윗이다.
‘사람을 믿어 줘야한다.’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나타내 주신 것이 있었기 때문에
10절까지 한 절 한 절 아말렉 청년을 분별해가는 다윗.
사람을 분별하는 것은 다윗처럼 울 기력이 없도록 울어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일이 어떻게 되었는가?”라며
정말 믿는 사람이 맞다면 자신의 간증을 해보라는 영적질문을 하였다.
그 질문에 아말렉 청년은 사울과 요나단이 같이 죽었다며 대답을 하였는데,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다윗이 가장 좋아할 만한 얘기를 하였다.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하였지만, 믿음이 없기에 삼천포로 빠지는 대답을 하였고, 단지 다윗이 어떡하면 기뻐할까 하는 청년이다.
다윗과 사울의 관계가 영적인 싸움이 아니라면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은 좋아 했을 것이지만,
보통 사람 같으면 좋아하겠지만 그 상대방 때문에 내가 너무나 훈련이 되고 하나님을 만났기에 좋은 소식이 아니다. 다윗과 사울의 관계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죽은 줄 어떻게 아는가?“
큐티하는 사람은 질문을 해도 의미가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사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상대방이 인간적인 마음으로 왔는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서 왔는지 분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분별하기 위한 질문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적인 핵심을 잃어버리고 내 기대에 부흥하는 질문만 해서는 안 된다.
큐티하면서, 항상 성경을 보면서 수 없이 질문을 생각해내면 사람 분별이 비교적 쉬움
삶속에서 사람을 분별하고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다윗이 왜 어디서 왔냐고 물었는지? 왜 어떻게 행하느냐고 물었는지?
이렇게 큐티하면서 거꾸로 질문을 만들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구절구절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는 것이 성령님의 의도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고,
이렇게 물어보는 습관을 들일 때에 나에게 허점이 없어지고 빈틈이 없어진다.
청년이 말하기를 우연히 길보아산에 올랐더니, 사울이 나를 부르시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였다고 하였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이 없는데, 단어에서 벌써 표시가 난다.
조금만 말을 해도 모순이 금방 나타난다.
전쟁 중에 있던 병사가 우연히 길보아산에 오르는 것도 말이 안 되기에, 병사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는 말은 이사야가 소명 받을 때 하는 멋있는 말이지만
같은 말이라도 야망으로 했는지 사명으로 했는지, 어느 타이밍에 했는지,
하나님과 상관없는 부름인데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는 점에서
분별할 수 있다.
‘결국 자기 말로 자기를 증거한다’
“나는 아말렉 사람.”
믿는 사람인 것처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는 사람임을 드러내었다. 안 믿는 사람은 자기모순이 많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말렉은 사울과 철전지 원수관계에 있었다.
사울은 다윗과 비교할 때 굉장한 모범생이었다.
예배도 번제도 열심히 드리고 사무엘 쫓아다니면서 물어보고 예언도 하고 이방인 블레셋등과 늘 싸웠다. 마치 예배 열심히 드리고 집안은 인격은 어떻게 되든지 간에 늘 전도하러 다니는 율법적인 사람과 같다.
그런 사울이 아말렉 청년인줄 알고도 자기를 죽여 달라고 했을 리가 없음을 다윗은 분별하였다.
이처럼 나의 고난을 통해서 성경을 같이 읽고 왔으면 분별할 수 있다.
다윗을 다윗 되게 하기위해서 사울이 얼마나 수고했는지를 깨달은 다윗의 마음을, 청년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다윗이 좋아할 거라고만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였다.
전형적인 세상가치관의 사람인 아말렉청년이며 병사도 아닌 지나가던 좀도둑에 불과하다.
그저 다윗시대가 도래하려나보다 하며 다윗에 붙으려는 것이다.
사울이 죽고 나서도 아직 다윗 쪽에 오지 않은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있었기에, 아말렉 청년이 믿음이 있어 보일 수도 있으나, 그래서 사울의 죽음의 소식을 가져온 것을 그냥 칭찬해줘도 될 텐데, 다윗은 이렇게 성경에 많은 구절을 할애해 가면서 까지 일일이 청년이 자기말로 자기를 증거 하도록 끊임없이 분별하였다.
내가 아말렉 청년처럼 나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 했던 적은 없는가?
다윗왕국의 처음 시작이 사람 분별이었다.
자살 한 사울인데, 사울을 죽였다고 거짓말 하는 청년이다.
고통 때문에 힘들면 안락사 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청년
우리가 힘든 불치병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다. 그것이 가족들을 통해서 어떤 구원의 일이 이루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나눔>
주일날에 교회에 나왔을 때, 우선 예배를 나의 시간으로 만들려고 하고, 내 말씀으로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Q.T. 묵상을 할 때, 다윗이 청년에게 ‘어디에서 왔느냐?’ 질문 한 것처럼 말씀에 왜 이런 부분이 있을까 질문을 해야 한다. 한 가지라도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으면 계속 묵상을 하고 꼬리를 물고 생각하는 것도 좋은 Q.T.가 될 수 있다.
아말렉 청년은 물리쳐야 할 사단이다.
기회주의자로서, 믿음인척 순종의 단어를 쓰면서 다윗에게 접근했지만, 다윗이 사울이 죽은 것에 기뻐할만함에도 아말렉 청년을 분별한 것은 사울이 영적전쟁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목사님과 시어머니와의 관계처럼 하나님 안에서 훈련받게 하시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하는 사울이었다.
다윗처럼 학교생활 속에서 관계 속에서 사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울 같은 큰 사단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없애주시지만, 아말렉 청년 같은 작은 사단은 우리가 말씀 묵상으로 분별함으로 늘 쳐내야 한다.
다윗은 15가지 고난을 심하게 받았기에 노하우가 생기고 지혜가 생겼다. 우리에게도 있는 힘든 환경들, 그것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훈련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도제목>
한승형: 일대일양육교사에서 3명을 맡았는데 양육을 잘 준비하도록,
포트폴리오 공모전 준비하는데 말씀 보면서 잘 깨닫고 가도록
창의: 공익하면서 편입준비하는데 근무하는 곳에서 공부할 시간 많이 생기도록
현웅: 좋은 동반자 만날 수 있도록
희철: 편입공부중인데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재윤: 부대체력평가가 다가오는데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고 부대생활 잘하도록
시호: 인간관계 졸아지도록, 학교 수업 잘 들을 수 있도록
재현: 재수학원 열심히 다니고 세례교육도 잘 받도록
상철: 오래된 흉부통증이 낫도록, 학교 수업 잘 듣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