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4년 2월 9일
본문 : 룻기
제목 : 고엘의 축복
설교 요약 :
헝가리 선교사님 설교였습니다. 실리콘벨리서 목회하셨고, 큰 자동차 사고로 다리 한 쪽 무릎 위를 절단하는 사건이 있으신 후 살아남은 은혜에 감사하여 선교를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목회하시는 교회가 안정되고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 선교를 시작하셨습니다.
본문 룻기는 고엘 사상 강조한다고 합니다. 고엘을 지킬 때 오는 결과와 축복에 대해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고엘이란 말의 뜻은, '기업 무를 자'라고 하십니다. 영어 성경에는'a kinsman-redeemer'라고 기록되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엘로 오셨다고 하십니다.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한 것이 없지만, 예수께서 고엘 되시기 때문에 구속자, redeemer가 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고엘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대속자의 역할 못하기에 세상에서 욕을 먹는 거라고 하십니다. 대가 끊어지거나 망했을 때, 보복이 필요할 때, 죄를 대신 져야할 때 책임지는 것이 고엘이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고엘은 자격 갖춰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고엘은 자원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룻4:13에 기록된 보아스 오벳 이새 다윗으로 이어지는 혈통, 그리고 마1장 다윗으로부터 예수님께로 이어지는 족보가 나옵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가장 위대한 가문이 다윗 가문입니다. 보아스 이후 4대만에 이러한 다윗 왕이 배출되었습니다. 내 증손에 이런 위대한 인물 나온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결혼한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자손이 복이나 저주를 받는다고 하십니다. 영원을 보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손해 봐도 영원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청년들은 너무 오늘만 보고 산다고 하셨습니다.
4대만에 고엘의 축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헌신과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룻기의 시작은 엘리멜렉과 그의 부인 나오미가 흉년으로 찬송의 땅(유다)과 생명의 떡집(베들레헴)을 떠나 육신의 땅 모압으로 향한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모두 사망하게 되면서, 잘 살려고 갔던 나오미는 찌질한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가 있던 곳에서 나와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간 고향에서 나오미는 자기 이름을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여기서 to return, 돌아가는 것이 강조됩니다. turn over - 회개입니다. 수치스러워도 자기의 자리로 돌아갈 때 고엘의 축복이 시작된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올 때 시작된다고 하십니다. 베들레헴과 모압 사이에서 아직도 방황한다면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전히 온전하지 않아도 돌아올 때 회복되고 돌아올 때 축복이 시작된다고 하셨습니다.
룻2:1을 읽어보면 이삭을 주으러 간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으로 가게 되었고, 보아스는 마침 그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룻의 결단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시모 나오미와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하나님 안에서 맺어진 관계를 끊지 않고 지킨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끊지 않고 잘 붙어있는 것, 보아스의 이불에 들어가듯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사는 것, 감당하기 어려운 배우자, 부모, 시부모, 직장 상사 등과 관계를 끊지 않고 잘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고엘인 보아스는 대를 이어줘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1순위 고엘이 거절하자 'I will do it', 책임을 감당합니다. 고엘의 축복은 받기 원하지만 고엘의 책임은 거절할 때가 많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고엘, 즉 맡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뜻이기에 예수님도 고난의 잔을 감당하셨다고 하십니다. 맡믄 직분과 책임을 최선으로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목장 모임 참석자:
이장원(82) 이성훈(84) 김문경(86) 고광훈(85) 김형우(86) 김기도(86) 임운철(87)
목장 스케치
이 날의 목장은... 부목자인 저의 기억엔 상당히 긴장되었습니다. 아직은 서로 어색 어색한 또래의 남자들이 모여서 삶의 풍파가 가시지 않은 가운데 말씀을 나누기란. 참.
목자 이장원 형님은 뉴스에도 떠들석했던 사건이 일어난 회사 소속이신지라 급한 전화를 받고 달려가셨고,
뒷 일은 네, 제게 맡겨졌습니다. (부들부들)
목원들이 막 모임 장소에 모일 때 쯤 '오늘도 셋이 하는 것 아니냐'는 문경이의 말이 무색하게도
오늘은 마치 하나님께서 작정하고 끌어모으신듯 생소한 남정네들이 나타났습니다. 가지각색이더군요.
목자였지만 교회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취업 준비가 끝나 어머님께 등떠밀려온 이도 있고,
일이 한창 바쁠 때지만 주일은 지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짬을 내서 온, 제 기준에선 한없이 미스터리한
아름다운 청년도 있었습니다. 참, 판교 이전 당시 목장에 소속되지 못했다가 돌아온 친구 따라 온 이도 있네요.
그리하여 나눔은 기존 멤버 둘에 그 두 배의 새가족, 아니 돌아온 가족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나눔을 요약해 보자면...
광훈(85): 우리들 교회에는 전에도 출석했고, 부모님도 나오신다고 합니다. 시애틀에서 유학했고,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서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곳에 거주 중입니다.카츄샤 '치아병'으로 복무했다고 합니다. 마침 치아 교정기 제조 관련 일을 하는 운철이가 와서 얘기가 통하는 것 같더라고요. 전공은 관련 없었지만 영어 습득이 빠른 병사 중 업무 보조할 사람을 뽑는 데 그거로 된 거라네요!
본인 표현으론 말을 직설적으로 한다지만 말투가 조근조근하고 워낙 차분해서 어쩐지 형님같았던 광훈이었습니다. 이 날은 어머니께 말그대로 등떠밀려서 한 번 와준다는 생각으로 왔다고 합니다. 광훈찡...계속 떠밀려서 오면 안될까?
형우(86): 형우...여기선 말 편하게 할게? 사실 좀 네가 무서웠어 히히. 형우는 우리들교회 목자 출신입니다. 그 나이 또래에선 보기 드물게 교회 생활과 신앙 생활에 대해 깊이 관철하고 답을 얻기 원하는 진중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안 그럴것 같이 생겼... 자기 표현으론 교회 다니고 말씀 들으면서 '머리는 많이 커졌는데' 실생활에선 실천되지 않는 모습에 실망이 되고 고민도 많았다고 해요. 이해가 느린 저라 "그 고민이 '변하지 않는 자신과 습관적인 죄' 같은 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해주었어요. 신앙에 대한 고민과 질문이 많았던 만큼 '답'을 찾기 원했고, 나름의 결과로 교회를 떠나는 선택을 했다고 합니다. 약 8개월간 떠나 있으면서도 고민은 계속되었고, 그 결론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자 출신에, 알아보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감내하는 용기가 멋있었어요.
기도(86): 기도는 형우와 친구입니다. 미국 유학 시절(어디였지? 뉴저지?)부터 알고 지낸 절친이라고 해요! 그동안 우리들교회 예배에 참석하며 오갔지만 목장 모임은 하지 않았는데, 형우가 돌아오면서 함께 나오게 되었습니다.
운철(87): 운철님아 나 헷갈림 86인지 87인지. 정자동 쪽에서 치아 교정기 제조 관련 일을 하는 친구입니다. 우리들교회는 3주(?)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고 해요. 학생들이 아직 방학철이라 한창 일이 바쁜 때인데도 불구하고 사장님의 허락을 받아 목장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예배는 못 드렸다고.
어렸을 적부터 과학을 좋아했는데, 과학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생기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무슨 창조과학자들의 간증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가! 가족들은 신앙 생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동안은 바빠서 예배나 목장 모임 나오는 것이 불확실 할 것 같다고 합니다.
문경(86): 우리들교회 오픈 문화의 맹점(본인 경험을 더하여)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민감할 수 있는 내 간증이 사람들 사이에서 와전되고, 와전된 이야기를 다시 전해 듣게 될 때 곤란함을 느꼈다고 해요. 한동안 오픈을 안하기도 했다고. 이전에 광훈이와 같은 목장이었다고 해요.
성훈(84): 찌질하고 쪽팔린 오픈거리가 있어서 했어요. 제 이웃의 여인을 보며 욕심을 품었던, 그래서 너무나 괴로웠던 한 주를 보내었노라고. 어지간해서는 안 갈텐데, 목자와 목원의 처방에 따라 정신과에 간 것도 이 요인이 컸습니다.
나누진 않았지만, 우리들 교회의 여러 역할을 속성으로 배우고 경험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목원들의 나눔을 나눔될 수 있도록 잘 인도하는 목자들의 내공이 보통 아니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장원이형 존경해요.
괴로운 와중에도 하나님보다 좋은 건 많아서, 너무 누리다가 공허함을 느낄까봐 조심스럽습니다. 전 여자가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