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습니다. 메리메리 크리스마스!!!!
예배요약.
위기에서 피할길.
삼상29:1-11
출애굽속에서도 은혜를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겼던것을 고린도전서에서 다룬바가 있는데 그것이 우리들과 같은모습니다.
우리가 좋은 양육도받고 말씀을 들어도 기복을 버리지않아 사건으로 숨고 환경을 피해서 달아나니 세상과 다를것이 없는 모습을 계속 보인다.
그러나 주님은 사건을 주실때는 반드시 피할길을 주신다고 말씀하시며 감당흘수 있는 고난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수 많은 위기가 우리에게 있지만 그곳에서 그리스도가 피할길이 되어야 한다.
1. 십자가를 선택해야한다.
피할수 없는 곳에서 십자가를 선택하는것이 구원의 선택임을 알아야 한다.
삼상
1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2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다윗에게 진퇴양난의 위기가 온것은 다윗의 삶의 결론이라고 한다. 가지말아야 할 길을 계속해서 갔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런경우가 많다.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에게서 다윗의 도망치는 일은 하루이틀도아니고 자신이 거느리는 백성도 한두명이 아니었기때문에 다윗은 할 수 없이 블레셋으로 가게 된것이다. 그러나 사울을 떠난 다윗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자 말씀을 보지않게되었다.
우리도 다윗처럼 몸이 편안해지면 말씀을 보는 일이 소홀해지면서 세상의 유혹속으로 빠져들게된다. 다윗이 블레셋에 있는동안 열심히 거짓말을하고 산 결과는 잠시는 편안했지만 결국 동족상잔의 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다윗은 왕이 될 귀한몸이며 사무엘에게 기름을 부음받은 자인데.....오히려 자신의 백성을 죽이게 되었으니 이게 얼마나 큰 위기란 말인가?
아기스왕은 어떤왕인가?
아기스왕은 전에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하여 언약궤를 약탈했었지만 그 법궤때문에 블레셋#47504; 우상이 무너지고 독종재앙이 창궐해서 다시 언약궤를 돌려보내고난 후 골리앗을 보냈더니 애송이 다윗이 물매로 골리앗을 쓰러트리자 무서웠던 아기스는 더이상 아무짓도 못하고 그들을 지켜보기만했었는데 그 때 마침 이스라엘에 내부분열이 일어나 다윗이 망명하자 아기스왕이 보기에는 최대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서 아벡에서 군사를 모아서 다시 전쟁 준비를 하였다.
이런 아기스 왕에게 빌붙어서 살게된 다윗은 이제 아기스의 명령에 따라 전쟁에 참여하게되었으니 사단의 계략에 완벽하게 사로잡힌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기때문에 막다른 골목길을 허락하실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것을 알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길을 주실 때가 되었다는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으신다.우리는 해석을 잘하고 지혜롭게 가야한다. 사울처럼 신접한 여인에게로 달려가면 안되는것이다.
마귀는 생각을 먼저 점령하기때문에 이렇게 위기의 때가 왔을때 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예화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데 느혜미야를 죽이기 위해 성전을 건축하는 느혜미야에게 총리가 4번이나 사람을 보냈지만 느혜미야는 자신의 할 일을 다하기위해 거절했고 다음에는 제사장을 보냈지만 또 그때에서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자신을 감히 제사장이 들어가는곳에는 들어갈 수 없다며 거절하는 일화가 있었다.
이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할일을 알고 자신의 분수를 인정할때에야 위기에서 피할수 있게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말씀을 보고 적용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살아야 하는것이다.
오늘 내 할일을 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것이 가장 중요한일이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거룩한 삶이다.
몸도 뼈가 제자리를 찾고 있어야 건강한것처럼 우리도 그렇다는것을 명심하자.
하나님의사람과 악인은 절대로 좋은 일을 꾸밀수 없다. 악인은 하나님이 없는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이 처음에는 좋았지만 결국에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2.십자가를 잘 선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것이다.그것도 악인들의 입을 통해서 들어야 하는것이다.
삼상.
3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4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5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고 말했을때 화를내기보다는 인정하고 그냥 지나가는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다윗을 보호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데 무슨음성이냐면 "다윗아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있니 너의 정체성을 자각해야한다."라는 말이었다. 내가 길을 헤메일때 나의 소속이 어디인지 제데로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한다.
삼상.
6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7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아기스는 결국 다윗을 위하는척하지만 진정으로 위한다기보다는 써먹을려고 받아들인 다윗을 써먹지 못해서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래서 다윗에게 인간관계를 잘못해서 지금의 결과가 생겼다고 다윗을 책망한다. 여기서 인간의 약한 모습이 나오게 되는것이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기고 사랑의 대상 이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방백들은 다윗을 무시하고 이방인이라고 취급해주지않았지만 그가 실력이 있다는것은 알았기 때문에 다윗을 두려워했다.그래서 아기스 왕에게 다윗을 나쁘게 말한 것이다.
도덕적으로 보자면 아기스 쪽이 더 올바르게 보인다 왜냐하면 다윗이 이들 모두를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가 이 글을 읽겠는가? 이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스라엘백성들이다. 성경은 이방의 왕들이 무너지는 모습만이 기록되어있다. 사람은 도덕적으로 선한것이 없다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아야 하기때문에 성경은 구속사적으로 읽어야 한다. 다윗은 자신의 유익때문에 거짓말을 한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거짓말을 한것이다. 그러나 선의의 거짓말도 안하는것이 좋은 이유는 한번의 거짓말은 계속된 거짓말을 부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나오는 '주' 라는 명칭은 사울에게 쓰이는 것이다.
적용: 나는 어떤 원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가? 가족들이 나의 원수라고도 한다.
3.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삼상.
8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은 감쪽같이 연기를하며 지혜롭게 대처한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행동해야 할 때도 있다.
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비록 블레셋으로 망명하고 살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살았다. 아기스왕이 다윗을 인정하며 아낄만큼 열심히 일한것이다. 믿는사람이라면 악인에게서라도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안믿는 사람은 믿는사람을 도덕적으로 평가한다.
4. 이 모든것을 통해서 우리는 악에서 떠나야 한다.
삼상.
11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사단에게서 떠나야 하는데 오히려 사단이 위기를 막아주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 다윗이었다.
악인들에게서 왕때당하고 그들과 어울리지못하는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이다.
적용. 세상사람과 노는것이 즐겁고 어울리는데 어색함이없다면 이것이 위기인 것이다. 성도라면 세상보다는 교회가 편해야 하는것이다.
그래서 나를 왕따시키는게 고마운것이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있게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은 블레셋으로 가고 블레셋 사람은 이스라엘로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블레셋 때문에 기름 부음도 받고 결혼도 했지만 #51922;겨나서 또 블레셋때문에 먹고사는것을 보면 이시대의 교회가 세상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왔다가 교회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으로 가는것과 같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주님이 위기에서 피할길이 되려면...
1. 십자가를 선택해야한다.
2. 십자가를 잘 선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것이다.그것도 악인들의 입을 통해서 들어야 하는것이다.
3.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4. 이 모든것을 통해서 우리는 악에서 떠나야 한다.
나눔.
신지연(78)
현재 많은 사역과 업무가 밀려 사람과의 관계가 얽히니 교회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고는 있지만 점점 영성이 떨어지고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아 너무 힘들고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오늘의 말씀처럼 영적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현재 상황에서 말씀으로 예배를 먼저 회복시키기 위해 사역을 내려놓고 조금씩 체력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또 어머니에게서 따끔한 쓴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모습을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말씀처럼 타인의 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던것 같습니다.
점점 힘들어지고 몸이 힘들어지니 마음도 힘들어져서 정말 모든것을 다 내려놓고 떠나고싶을때 그래도 말씀으로 계속 설득시켜주시고 가족들의 입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주님께 감사합니다.
큐티인 택배가 많아서 연말에 너무나 바쁘고 힘들어질때 말씀으로 잘 이겨나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큐티와 예배를 통해 영적 육적으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최슬기(84)
관계의 문제에 관해서 직면하다보니 이제껏 우상처럼 여겨왔던 관계를 아직도 한가닥 남겨놓고있는것이 있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대일 양욱을 마치고 나니 그 우상의 관계를 내려놓는것이 너무나 쉬워져서 마치 한가닥의 실을 끊는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우상처럼 여기던 사람과의 관계를 쉽게 정리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슬기는 가족의 고난이 있는데 그중에 언니가 지금 놔종양으로 많이 아픈상태 입니다. 그런데 종양이 이제 다른곳에도 잡힌다고 합니다. 그런 아픈언니를 보면서 왜 언니가 이렇게 아파야 하는가..하는 생각에 하나님이 원망도 되었었지만 수요예배 말씀에 하나님께서 주신것에 선하지 않은것은 없으며 살기위해서 질병도 주시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듣고, 언니가 아픈것도 선하신것이고 정말 아픔으로 인해 죽을것을 살려주셨구나라는 생각이들어서 마음이 좀 가라앉고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대단하고 말씀도 잘듣고있고....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윤정원(83)
말씀을 들으면서 최근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는 아버지에대한 미움이 사라지게 된 것이고 오히려 사이가 좋았던 어머니가 교회 가는것을 반대하는 모습에 놀라고 있다고 합니다. 점점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씩 변해가는 환경과 상황을 직면하면서 정원이의 가치관도 바뀌어져가는것같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최지희(83)
아프신 아버지 때문에 정신과를 가서 전문의의 소견을 듣고 알콜 중독 센터로 가서 구체적인 입원실과 치료비를 알아보았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한 땅을 정복하기 전에 정탐하듯...땅분배를 하면서 아직 땅을 다 분배받지못한 지파들이 다시 정탐하여 지도를 그리듯하라는 목장 식구들의 소견에 따라 움직인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정탐하고 지도를 그려서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어서 어머니를 설득했는데 이번엔 어머니가 듣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오히려 저에게 독하고 못된 자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아버지가 없으면 연말에 들어온 일들은 어쩔꺼냐면서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점점 상태가 안좋아지시는 모습이 보이는데도 어머니는 차라리 저보고 집을 나가라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할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더이상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몰라서 멍하니 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위기가 온것입니다. 어머니의 말에 상처를입고 점점더 아파하는 아버지를 보고있으니 산채로 피가 마르는 것 같아서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결국 수요예배를 듣고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심야영화를 두편이나보면서 하루 가출을 하고 삼성역 화장실에서 밤을 세면서 정말 집을 나오는것이 나의 길인가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큐티 말씀에 동편으로 돌아가려는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지파와 이스라엘 지파가 서로 오해를 푸는것처럼 서로의 입장을 해명하라는 말씀에..조용히 집에들어가 어머니께 사죄하고 제 입장을 설명하자 어머니도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시면서 저는 아버지의 문제를 어머니께 맡기고 좀 더 떨어져서 지켜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 막다른 길에 몰리게 하신 것은 가장 좋을 길을 예비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이 있었는데, 그 좋은 길을 잘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말씀으로 해석을 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말씀만 붙들고 이 막다른 길에서 가장좋은길을 예비해주실 것을 믿으며 걸어가길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