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 20131124 김성연 목장 보고서★
목장 참석 : 김성연(83), 노나라(84), 김지영(85), 류지혜(85)
<< 말씀 요약 >>
말씀 : 사무엘상 25장 1-44절
제목 : 생명 싸개
본문에는 분노를 일으키는 나발이 있고, 그에 분노하는 다윗이 있고, 분노를 가라앉히는 아비가일이 있다. 상한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겠는가. 하나님의 생명 싸개 속에 있어야 조절이 되고 보호를 받을 수 있다.
1. 분노를 일으키는 총체적인 위기에서 보호하여주셨다.
1) 영적 위기 _ 사무엘의 죽음
1절.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다윗의 영적 멘토였던 사무엘이 죽었다. 이는 다윗에게 굉장한 위기였다. 그래서 다윗에게 두려움이 임했다. 사울을 넘어섰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두려워지니 사울을 피해 바란 광야, 남단까지 내려갔다.
2) 육적 위기 _ 양식이 없음
다윗은 600명의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하루하루의 일과였다. 기본적인 것을 하지 않으면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안된다. 처자식을 먹이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채울 수 있어야 한다.
3) 정신적 위기 _ 무시를 받음
2절.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3절.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다윗은 어리석다는 뜻의 나발이라는 이름을 가진 큰 부자에게 엄청난 무시를 받는다. 먹을 것을 위해 이 부자를 찾아갔는데, 같은 고향사람이라는 이유로 나발을 찾는 다윗이나 지역감정으로 베냐민 지파를 세우는 사울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6절.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7절. 네게 양 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8절.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떡 다섯덩이 때문에 제사장 85명을 죽인 경험이 있는 다윗이기에 매우 겸손하게 구했다. 나는 네 아들이 되고 내 부하는 너의 부하라고까지 하면서 비굴하게 낮아져가며 먹을 것을 구했다. 또한 다윗은 나발의 양털을 깍는 자들을 보호해주었고, 양털을 깍는 추수할 때에 가서 사례를 해달라고 말했다. 평강을 빌어주면서 양식을 달라고 요청했다. 최대한의 겸손을 가지고 예의를 갖추고 요한 것이다.
10절.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절.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그런데 나발은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며 어디서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겠느냐고 한다. 굉장히 무시를 한 것이다.
다윗이 왕의 딸과 결혼하고 왕자 요나단과 놀다가 나발에게 무시를 받으니 분노가 올라왔다. 사울에게 훈련을 받았는데, 그 훈련이 다 허사로 돌아간 것이다. 지금까지 훈련 받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럴 때에는 나발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을 해봐야한다. 왜 저렇게 다윗을 무시할까 생각해야한다. 무시에 대해서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당한것만 생각하는 것 같다. 무시 당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무시를 당해봐야한다. 눈물의 빵을 먹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할 수가 없다. 나발이 왜 저렇게 무시를 할까? 나발은 바보가 아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도 알고 있었다. 자기 부하들이 명백하게 다윗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사울이 다윗과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울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다윗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믿음도 없고 구속사도 모르는데 무얼 알겠는가. 그런데 다윗이 이 앞에서 무너져버렸다.
2. 분노를 일으키는 자에게 넘어가 분노한지만 분노의 위기에서 건져주셨다.
12절.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매 13절.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다윗이 분노충전한 상태이다. 살인 직전에 있다. 지난주에 선으로 악을 갚은 다윗과 정 반대의 모습이다. 왜 이런 일이 온 것일까? 성경을 차례차례 읽다 보면 업다운이 있다. 다윗이 오래간만에 다운이 되었다. 하나님은 다윗이 위대하지 않음을,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님을, 다윗도 사람임을 보여주신다. 유능하고 위대한 사람을 쓰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쓴다.
우리는 다윗의 입장도 생각해야한다. 다윗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음식 한번 주지 않았다고 칼을 차고 나가서 나발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다윗답지 않다. 사람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참다참다 이럴 때가 있다. 어려움이 중첩해가는 상황에서 믿었던 사무엘은 죽고, 사울의 마지막 시험까지 이기며 선 줄로 생각했더니 딱 넘어지는 순간이 온 것이다. 나발 같은 것이 자기를 무시하고 아버지를 무시하니 다윗의 분노가 폭할 한 것이다. 나발이라는 존재에서 모든 것이 폭발이 되었다. 착하면 언젠가는 폭발한다. 착한 것은 없다. 다윗도 사울에게는 꼼짝 못하다가 사울보다 약한 나발에게 폭발한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폭발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돈 못 벌고 찌질하게 있다가 이제 좀 산다 싶으니 엄마에게 큰 소리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리고에서 승리하고 아이성에서 패한다. 다윗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여정에서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사람은 실수할 뻔한 적이 많다. 이 때에 하나님의 생명 싸개 속에 쌓여있으면 돕는 손길이 있다.
3. 분노를 가라앉히는 아비가일 공동체가 있다.
다윗처럼 실수할 수 있다. 누구나 연약한다. 그래서 서로 도와야한다. 분노를 컨트롤 할 수 없기에 목장에서 싸워야한다. 그것이 서로 돕는 방법이다.
14절. 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전령들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17절.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하인이 정확한 사실을 아비가일에게 알려준다. 아비가일이 평소에 양육해둔 아비가일 공동체 사람이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다. 한, 두사람이 제대로 예수 믿으면 교회를 변화시킨다.
18절.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19절. 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최상의 음식을 준비해 다윗에게 보낸다. 이것이 지혜이다. 남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기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구원에 관해서는 하나님 입장에서 결정해야한다. 구원에 관한 일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이다.
24절.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25절. 원하옵니다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26절.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7절.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28절.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절.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절.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아비가일이 다윗 앞에 엎드려 사정한다. 다윗은 자신보다 자신의 문제를 더 잘 알고있는 아비가일을 보고 탄복한다. 사무엘이 떠나니 하나님이 또 다른 멘토를 보내주셨음을 깨닫는다. 이 분노의 상황에 다윗의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자 누가 있겠는가. 아비가일은 요나단을 넘어서고 사무엘과 비견되는 구속사적인 처방을 했다. 다윗의 근본적이고 영적인 왕 같은 신분, 그 어려움까지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말한다. 다윗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지금의 분노대로 행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누구나 아비가일처럼 행동하고 처방할 수 있다. 다윗의 존재가치를 요나단, 사무엘처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자라면 미갈만 보았던 다윗이 깜짝 놀랐을 것이다. 다윗은 죄도 잘 짓지만 돌이키기도 잘 돌이킨다. 이런 사람이 생명 싸개 속에 있는 자들이다. 분노를 가라 앉히는 것은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너 잘났다, 너가 잘한거다가 아니다. 아비가일 공동체의 파워는 말로 할 수가 없다.
32절.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33절.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34절.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은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 35절.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아비가일은 남편 나발과 그 집을 구하기 위해 말했지만 나발의 악을 통해 구원받는 자는 오히려 다윗이다. 하나님 편에서 공의롭게 이야기했더니 이 말을 통해 다윗이 구원을 받는다.
모두가 지혜로운 아비가을의 이야기를 듣는데 듣지 않는 사람은 딱 한명, 남편 나발이다. 자신의 부인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딱 한사람 남편 나발만 모른다.
아비가일은 너무도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사실 아비가일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믿음이 좋다고 나발과 결혼했겠나. 나발은 부자에 유다지파 출신이었다. 편할 줄만 알았던 결혼생활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 입에서 진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은 금그릇을 쓰지 않는다. 늘 질그릇을 쓰신다. 때마다 다윗을 구해주시고 이 때에 아비가일 멘토를 붙여주신다. 하나님은 유능하고 위대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을 쓰신다. 결정적일 때에 라합을 쓰시고 아비가일을 쓰신다. 라합은 기생, 아비가일은 시골 아낙이었다. 그러나 이들로 인해 집안이 살아났고 다윗도 죄를 짓지 않았다.
36절.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이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은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
아비가일은 대단한 일을 했지만 그 이야기를 남편하게 하지 못한다. 부부가 같은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남편은 잘나서 취해있지만 아비가일은 말하지 못한다.
37절.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38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아침에 아비가일에게 이야기를 들은 나발이 낙담하여 심장이 굳어 죽었다고 한다. W.M 테일러는 살아있는 십자가는 죽은 십자가보다 무겁다고 했다. 모든 폭력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 남편을 죽게 만들었나 생각할 수도 있다. 구원과 영적 문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결국 다윗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39절.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40절. 다윗의 전령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 하니
도덕적으로 본문을 읽으면 해석이 안된다. 아비가일과 다윗의 결혼을 어떻게 봐야하는걸까?
아비가일의 입장에서는 믿음의 입장에서 봐야한다. 아비가일은 사명을 선택한 것이다. 현재의 다윗은 거지, 유랑객,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에다가 600명이나 되는 사람들까지 이끌어야 했다. 남편 나발이 죽었기에 그 수많은 재산이 아비가일의 것 이었지만, 아비가일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 십자가를 따라 간 것이다.
43절.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더니 그들 두 사람이 그의 아내가 되니라
그러나 다윗으로 보면 아비가일과의 결혼은 믿음의 선택이 아니었다. 43절에서 바로 또 결혼을 한다고 했다. 총명한 아비가일은 나발과도 살았기에 무너진 다윗을 구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다윗에게는 아비가일이 많은 여자 중 하나였다. 성경이 꼽는 3대 아름다운 여인으로 들어가는 아비가일이다. 그런데 왜 아비가일은 이때에만 등장하고 다윗의 부인으로 예수님의 계보에는 오르지 못했을까? 아비가일은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여기서 끝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나발처럼 남의 분노를 일으키는 일을 하면 안된다. 분이 생겨도 그 분대로 하면 안된다. 무너짐은 한 순간이다. 아비가일처럼 남의 분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
찬양 _ 십자가 그 사랑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무너진 나의 삶 속에 잊혀진 주 은혜
돌 같은 내 마음 어루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주 나를 보호하시고 날 붙드시리 나는 본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주 너를 보호하시고 널 붙드시리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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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연(83) ★
생활예배 잘 드리기
몸이 많이 지치는데, 관리 잘하고 검사도 잘 받을 수 있도록
직장에서 알바생들 말 듣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잘 이야기 하길
직장, 목장, 일대일, 초등부에서 생색 내지 않고 사랑으로 잘 섬기는 아비가일의 공동체 되길
신교제
★ 노나라(84) ★
가끔씩 올라오는 나발을 인정하고 아비가일 공동체에서 지혜롭게 처신할 수 있길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신교제도 주님께 맡기고 나갈 수 있길
과외 학생들에게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전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길
★ 김지영(85) ★
내 속의 이기적인 나발을 제하도록 도와주세요
새로운 직장에서, 집에서 이기적인 마음 내려놓고 감사하는 마음 갖길
남자친구 가정을 생각하며 이해하려는 마음 갖도록 노력할 수 있길
엄마가 결핵으로 약 드시면서 요양 중이신데, 건강 잘 회복하도록
★ 류지혜(85) ★
직장에서 상석보다는 말석에 앉아 직원들을 섬기는 마음 생기길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아 분별 잘하고 가길
★ 김진실(85) ★
새로운 가정 새워가는데 육체적, 마음적으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