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싸개 (삼상 25:1~44)
하나님의 생명싸개가 안에 있어야 보호 받을 수 있는데
1. 하나님은 분노를 일으키는 총체적인 것에 대해 보호해 주신다.
① 영적 위기가 왔고
② 육적인 위기와
③ 정신적인 위기가 왔음에도
2. 분노하는 자의 위기에서 건져주신다.
3. 이는 분노를 가라 앉히는 아비가일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 간증의 시간 --------------------------------------------------------------------------------------
새로 등반한 이유정(79) 자매를 위한 환영 겸 각자의 출애굽 간증부터 시작하였습니다.
■ 강혜림 목자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싸우셔서 엄마는 맞는 입장이었고, 1년에 한 번 이상은 집안이 부서질 정도로 아빠가 엄마에게 폭행을 하셨기에 이러다 엄마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밤새 울었지만 집안 얘기들을 친구들에게 말하지는 못하고 병든 채로 그렇게 살아가다가 아빠가 교회를 나가게 되시면서 우리 가족이 다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후 아빠는 엄마를 때리지는 않았다. 나도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교회를 다녀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그 때 마침 아빠가 교회에 다녀서 가게 된 것이다. 큰 교회에서 성가대 10년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은 좋은 일이 없었고 집은 여전히 가난했다. 아빠가 이상하고 싫고 이런 것에 눌려 살다 어느 날 사람들이 아는 나의 모습, 하나님이 아는 나의 모습,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의 갭이 너무 커서 상처가 깊게 왔고 하나님이 다시 정화되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갑자기 동생이 5살 많은 이혼녀를 데리고 와서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 여자는 동생 이름으로 된 것은 다 가져가고 동생은 종처럼 지냈는데 가족이 말리니 그 여자는 동생보고 가족에게 인연 끊으라고 했고, 동생은 결국 집을 나가게 되었다. 그 후 그 여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내가 그 여자에게 더럽다고 했더니 자지러 졌고 6개월 후 남동생이 그 말 사과하라고 해서 내가 하지 않았더니 그 여자는 나에게 죽이겠다고 협박 문자를 보냈는데 너무 무서웠다. 세상에는 아무도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없었고 불행한 사람인 것만 같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기도했다. 나는 예수도 믿는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하며 울었더니, 울고 있는 너를 위해 내가 왔다고 하시는 음성을 듣고 진짜 그것이 마음으로 와 닿았고 김양재 목사님 책을 보게 되면서 나를 위해 수고하고 있는 동생이 깨달아졌다. 동생을 위해 많이 기도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아빠와 그 문제로 인해 싸우다가 아빠는 나를 때리셨고 힘들다고 목사님께 메일을 썼더니 목장에 들어가라고 답이 왔다. 그래서 어른 목장에 나가게 되었는데 아빠와 인연을 끊으려고 했지만 집사님께서 자식을 때려 본 부모의 심정을 부모가 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셨다. 때린 사람이 먼저 사과해야 하지만 말씀을 먼저 들은 사람이 사과해야 한다고 그러셔서 적용 차 아빠에게 사과했다. 그랬더니 아빠도 나에게 사과를 하셨고 그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한 처음 일이었다. 그 뒤 목장에서 양육을 하라고 하셔서 다른 교회에 다녔던 내가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된 것이다.
■ 윤주희
IT회사 인사총무 일을 하고 있다.
교회는 어렸을 적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 밑에 교회가 있어 다녔지만 하나님을 알기 보다는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다녔고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친구 따라 갔지만 게을러서 몇 주 다니는 정도였다. 아빠는 좋으신 분이셨지만 주사가 심하셨고 술 드시고 오시면 항상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집에 있는 가전제품들을 던지기도 하셨다. 사춘기인 오빠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의 시끄러움에 칼을 들고 죽여버리겠다고 하자 엄마는 놀라셔서 나를 옆집에 도움을 요청하라 하셨고 나는 울면서 옆집 아주머니를 불러 그 날의 시끄러움은 종결되었지만 그 후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에는 항상 긴장하면서 잠을 잤다. 아빠는 술 드시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셨는데 하루 종일 아빠를 대신해 가게를 보시는 엄마가 불쌍했고 대신 아빠를 미워하고 무시하게 되어 아빠가 하는 말도 듣지 않았고 뭐라 하시면 대들었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에게 아빠 흉을 보시면서 스트레스를 푸셨는데 나는 그것이 듣기 싫었고, 싸우는 부모님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도 없었기에 결혼 안 하고 잘 사시는 공무원 작은아버지를 보며 공무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적은 떨어졌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도 못했으며 편입도 떨어졌고 공무원 시험도 낙방하여 28살에 겨우 IT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 남보다 뒤진 사회생활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을 냈고 인정도 받았는데 회사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자금 문제로 해산이 되고 너무 힘이 들어 그만 두게 되었다. 그 시점에 아빠가 림프종 암을 진단받게 되자 하필 내가 쉬려고 하니 아빠가 아프시냐 하면서 병원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내 아빠였고 집에서 쉬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빠와 나는 병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빠의 치료는 잘 되신 듯 하다 두 번의 재발과 함께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교회도 다니지 않았던 내가 눈물로 기도하게 되었고 의사가 예상한 날에 돌아가시게 되었다. 친구의 인도로 2010년에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것이 다 나 때문 같았고 아버지를 존중해드리고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기에 심판의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씀을 들으면서 싸웠던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것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작년 초 말씀으로 인도함 받았다고 생각했던 직장에서 지각의 이유로 사장님이 그만 두라는 말씀에 몇 분, 그리고 몇 번밖에 하지 않았고 다른 직원 보다 훨씬 작은데 나만 이렇게 되는 것이 억울하였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다시 기회를 달라는 말씀을 드렸지만 거절당했다. 며칠 뒤 사모님이 사장님이 불 같은 성격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시면서 다시 일해보자는 제의를 하셨지만 할머니 돌아가셔서 육체적으로 피곤했던 상태였고 일도 체력적으로 힘들고 내가 더 이상 노력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 제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훈련이 되려면 그곳에 있어야 된다는 목자님의 말에 나는 이것 밖에 되지 않나 하며 목장에 얘기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에 마음이 많이 눌렸었다. 지친 마음으로 수련회에서 많이 울었고 다음에 받으려고 했던 양육교사도 받는 시간을 허락해 주셨고 양육이 끝날 때 즈음 교회와 가까운 직장도 허락하셨다. 항상 하나님은 세밀하게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은혜도 주시는데 나는 그것을 잘 모르고 사는 것 같다. 현재 유아부를 섬기고 있다.
■ 박진아
모태신앙이고 엄마는 어렸을 때 교회를 안 다니셨는데 큰 아빠가 목사님이셔서 아빠와 결혼하면 교회 다녀야 될 것 같다고 하길래 잘됐다 싶어 결혼하셨다. 작은할아버지 아들이 돌아가셔서 우리 식구는 작은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 재산에 좀 눈이 머셨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잘 살지 못했고, 엄마가 교회 다니시게 되자 영적으로 강해지면서 엄마의 믿음에 아빠는 받쳐주지 않았고 아빠는 항상 능력 없게 작은 할아버지 밑에 있으니 부모님은 싸움이 잦았다. 요즘에 드는 생각은 난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로부터 상처를 받았는데 마른 내 모습이 컴플렉스여서 살 찌라는 것이 스트레스였고, 엄마도 당신이 딸을 잘 못 키운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그래서 그런 것들로 인해 집을 빨리 떠나고 싶었고, 부모님의 소개로 은행을 들어갔는데 업무가 힘드니 엄마에게 원망이 더 드는 것이다. 서울로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엄마가 내가 사는 곳으로 올라오시게 될 때면 서로 싸웠는데, 엄마가 어머니학교를 하시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어렸을 때 이런 교육을 받았다면 너에게 이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고 그 뒤로부터 풀어지게 되었고 나도 사과를 먼저 하게 되었다.
■ 엄정미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친구들이 교회에 다니게 되어 교회를 다녔고 엄마에 대한 고난이 많았는데 어렸을 때부터 생활력이 강한 엄마, 상대적으로 약한 아빠 밑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공사장을 드나드시면서 가장 역할을 하셨다. 엄마는 억척스럽고 생활력이 강하게 사셨는데 우리 삼 남매는 부유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엄마는 열등감이 있으셔서 때마다 고기, 수박 등등을 사주셨기에 계절을 앞당겨서 잘 먹기도 했다. 그것이 엄마의 사랑의 방식이었지만 난 엄마가 얼마나 힘드신지는 몰랐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한달 내내 일을 하셨기에 내가 잘 먹을 수 있었는데 어머니의 힘듦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엄마와 불화가 많았는데 나와의 관계는 항상 폭발이었다. 엄마는 나에 대한 기대가 많았는데 외모도 떨어진다 생각하셨고 엄마의 기대에 항상 못 미치니 나를 많이 힘들게 하셨다. 기분이 좋을 때는 정말 잘 해주시다가 어느 한 순간 급 다운으로 되셔서 나도 같이 기분에 휩쓸리게 되어 업 앤 다운 기질이 있었고 동생들과 차별 받았다고도 생각했다. 엄마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는데 엄마는 내 교복이 공부 잘 하는 학교와 비슷하니 지나가던 시장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딸이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거짓말까지 하시는 것을 보면서 참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어느 날 내가 머리를 감고 있는데 옆에서 엄마는 욕실 청소를 하시면서 내가 받아 놓은 뜨거운 물을 나에게 부으셨고, 내가 뜨거워하는데도 엄마는 반응이 별로 없었기에 엄마가 나에게 보복을 하신 것 같았다. 엄마 덕에 내가 이렇게 삐딱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 보니 엄마의 목소리 조차 듣기 싫어하고 말 섞기도 싫어 엄마와 관계를 끊어버린 것 같다. 교회는 믿지 않는 가족 중에 나 혼 자 다녔고 교회는 나의 피난처가 되었다. 내가 다녔던 교회는 선교단체에 다니던 언니 오빠들이 많아서 나도 그들을 따라 다녔는데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있었고 성경연구학교에 있느라 1년 넘게 집에서 떨어져있었는데 그것이 나의 도피였던 것 같다. 삶은 그렇지 않으면서 이상적인 것을 쫓는 경향이 있어서 엄마 때문에 내 인생이 안 풀린다고 여겼고 열등감이 많았다.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나왔는데 유치원에서 1년 다니다 내 직장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학원에 2년제 다니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되는 것이 창피해서 편입을 하려고 했지만 안 되었고, 교회에서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돌봐줘야 하는 애가 너무 많았고, 나 조차도 해결 되는 일들이 없어 힘들었기에 확 내려놓게 되었다. 그 뒤 1년 반 동안 교회 근처에도 다니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실제적인 신앙에 대해 바로 서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 교회에 와서 새로운 기대로 다니고 있다.
■ 송연우
모태신앙은 아니고 남동생과 부모님이 있다. 우리 부모님은 나이가 좀 있으신데 다른 부모님과 다른 면들이 좀 있는 것 같다. 예수를 믿지 않고 절에도 가신다. 우리 집은 원래 처음에는 가난하지 않았는데 내가 태어나면서 많이 가난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고, 가난했기에 늦게 동생이 태어났다. 더 가난해져서 난 외할머니 집과 할머니 집에 왔다 갔다 중학교 전까지 그렇게 지내다가 부모님과 그 후로 본격적으로 살게 되었는데 남동생과 부모님과는 같이 살았기에 사이가 좋았지만 난 이방인처럼 낯설게 살았고, 나는 나의 가족과 하나가 되었다는 생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부모님이 안 해주셔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아빠와 내가 시내에 나간 적이 있는데 아빠가 여기에 잠깐 있으라고 하시면서 나를 두고 다른데 가셨는데 정말 나를 버리고 가버리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난 1시간 동안 서 있었는데 나에게 아빠가 어디 있는지 왜 여기 서 있는지 물어봐 준 사람도 없었고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 오셔서 집에 가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버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 밖에 없다 여기고 여기에 올인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있는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혼자 사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기에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카톨릭 고등학교여서 담임선생님이 수녀님이었는데 보호받지 않는 삶을 살다 처음으로 관심을 받게 되었다. 난 하나님이 뭔지 몰랐지만 공부 우상이 있어서 공부에 더 매진했다. 부모님은 공부를 하실 만큼 분들이었고, 집은 가난했기에 내가 빨리 실업계에 가서 돈을 벌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공부가 힘들었지만 스스로 참고 부모님과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왔는데 내가 꿈꾸던 생활이었지만 무언가 꿈꾸고 계획을 세우고 이런 것이 없었고 살림하는데 돈은 없어 어린 마음에 감당하기 힘들었기에 졸업하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 이 때부터 돈을 벌면서 23살 때 계속해서 마음이 너무 외로웠다. 그래서 성당에 가기로 마음 먹었는데 성당 옆에 교회가 있어서 거기에 이상하게 가고픈 마음이 들어 갔고, 그 뒤로 계속 나가게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 출애굽 사건이었던 것 같다. 그 교회에 다니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면서 선교 단체 권면을 받고 양육 받고 훈련 받게 되었다. 선교사로 파송 되어서 태국을 갔는데 20명 정도 되는 언니 오빠들과 한 집에 살게 되면서 너무 많은 갈등과 혼란이 있었고 내가 여기 왜 있나 라는 질문들을 많이 했었다. 나는 너무 힘들어서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 했을 때 태국으로 가기 전에 선물로 받았던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책을 보고 설교도 들었더니 새롭게 해석이 되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나 하나 나에게 소망하는 마음으로 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서 여기에 오게 되었다.
■ 이유정
79년생이고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에 있다.
아버지가 갑자기 위암 초기 판정을 지난 주 토요일에 받으셨다. 아빠의 종양이 빠르게 커져가고 있고 엄마는 패닉 상태여서 나 밖에 집에서 케어 해 줄 사람이 없는데 이런 상황을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믿기 전에는 나약하고 이런 환란과 고통을 제대로 받아내기 힘들었는데, 기도 후에 바로 일어난 일이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 생각하니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난 큰 교회가 싫었고 이상하게도 이단을 많이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가 다미선 교회에 다녔는데 크리스마스 때 초대해서 가게 되었다. 정말 이상하고 무서웠지만 거기에 빠지진 않았고 그냥 접하게 된 것이다. 그 교회에서 다음 번에 교회에 오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그래서 무서워서 한 번 더 갔는데 빨간 차를 타고 이상한 쟁반들을 아주머니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고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 친척 중에 다미선 교회에 다니면서 전 재산을 탕진했는데 숙부님이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던 일이 있었다. 대학교 때 성경 공부하러 갔는데 거기도 이단이었다. 그 당시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남자친구와 사귀지 말고 자기네가 정해 준 짝으로 하라는 것도 있었다. 또 하나는 집에 있는데 초인종을 눌러 봤더니 하나님의 교회 사람들이었고 그 교회에 일 주일을 다녔던 적도 있다. 그리고 내 친구가 신천지를 소개시켜 준다면서 거길 두 달 정도 다녔었는데 성경공부를 하겠다고 간 곳이 다 그 모양 이었다. 사람 많은 상태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데 큰 교회들의 가식적인 모습, 선한 척 하면서 뒤로 얘기하고 목사님도 개인적인 것으로 재정을 쓰는 것 등이 싫었지만 하나님은 알고 싶어서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신천지에 빠져 나오니 뭔가 정리가 되었다. 엄마가 강하신 분이어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들을 간섭하셨기에 엄마가 우리 집에 교주였고, 점을 보고 궁합도 보고 남친과의 관계도 간섭하셨다. 얼마 전에도 엄마 말대로 돈 많은 사람을 사귀었는데 돈 많다 뿐이지 다른 것이 정말 별로였다. 나의 바닥을 치고 나니 우리 엄마의 판단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우리 아빠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빠는 순진한 사람이고 표현하는 방법과 자기를 케어하는 것이 안 되어서 그것을 엄마에게 풀었고, 아빠 자신의 능력이 생각만큼 되지 않아 괴로워했던 것을 안타까워 했는데 그렇게 인식이 되고 나니 암이 걸리신 것이다.
마음이 너무 가난해져서 어디에도 내가 기댈 수 없었지만 내가 가는 곳 마다 목사님 전도사님, 집사님, 선교사님이 있었는데 내가 손을 뻗지 않았던 것 같고, 난 너무 힘든데 나를 교회로 끌고 가면 나는 가겠다는 기도를 하던 중 선교사님, 목사님과 우연적으로 셋이서 만나게 되었고 그날 이영주 계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다. 새 신자로 등록하고 인사하는데 나는 그런 것을 할 때 뭐 씹은 표정으로 앉아있을 정도로 그런 것들이 싫었고 여기 새 가족 모임도 싫었었다. 성도들의 위선이 싫었는데 새 가족 목자가 그 위선을 깨 주신 것 같다. 본인 스스로 겪었던 얘기들을 은혜 받은 표정으로 말해주어 여기서 공동체를 시작해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아빠 암 얘기를 하게 되었다. 다른 모임에서는 활발한데 이상하게 교회에서는 위선적인 느낌이 있어서 잘 웃지 않고 밀어낸다. 그것을 깨리라 생각하고 여기 왔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아버지의 암이라는 사건을 허락해 주시고 마음을 가난하게 해 주시며 아빠를 전도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헌신하고자 마음 먹고 오게 된 것이다.
- 목자님 : 비슷한 고난이 있으면 동병상련이 있겠지만 사실 고난은 종류가 다양할 수 있지만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느냐 말씀을 들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유정자매도 여기서 하나님 말씀 더 들으라고 오시게 한 걸 것이다.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니 하나님이 끝내실 것이다. 어느 날 다윗에게 온 아비가일처럼 순종하고 정탐하고 인내하고 잘 가야 할 것이다. 계속 말씀 들으면서 공동체와 같이 가야 하겠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이 있음에도 여기서 깨리라 하는 마음과 사진도 찍어주는 그런 마음도 감수하면서 와 준 유정이가 대단한 각오를 하고 왔을 것이다. 우리들 교회에는 밑바닥의 고난이 엄청 많아서 믿음도 있지만 인격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인격이 우선이 아니고 믿음이 먼저기에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관계 안에서 우리 교회에서 못 감당하는 일이 있어도 붙어만 있으면 본인도 알지 못하는 아픔을 성령께서 어루만져 주실 것이다. 그것은 누가 해주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것이다. 그런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다.
설교 나눔 시간 ------------------------------------------------------------------------------------------
■ 강혜림 목자님
난 한번 폭발하면 게이지가 높다. 이 분노의 사건들이 올 때마다 내 죄를 많이 보고 훈련을 받았는데 최근에는 잘 안 되었다. 지 지난주 부모님께 결혼 기도 부탁을 같이 해달라고 하자 아빠한테 대통 당해서 화가 났지만 내가 반박한 말이 아빠는 딸에게 듣기에 강한 말이었고, 그 뒤로 일주일 넘게 내 상황 감정을 다스리려고 힘들었었다.
동생이 집에 오면 언니와 함께 셋이서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차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언니한테 지난 주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니 언니는 내가 얘기 꺼내기 전에 말을 안 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 뒤로 아빠에게 말도 없이 인사를 안 하고 나간 것에 대해 아빠는 혜림이가 집을 나갔다고 언니에게 전화해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얘기를 했고, 언니는 엄마에게 다시 전화해 그 상황을 들었다고 했다. 언니는 수요예배 말씀 중 형제 우애에 대한 것을 들으면서 동생들에게 옷을 사주고 하는 일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혜림이가 결혼을 못 한 것이 너무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는 것이다. 이런 뒤 얘기를 모르고 아빠에 대한 감정을 나 혼자 푼 것이다. 가족도 나에겐 공동체인데 가족들이 뒤에서 이렇게 얘기 한 것을 보니 그래서 가족이구나 라는 마음이 들어 분노의 앙금이 가라앉았다. 난 1년에 한 번 정도 가족 모임에서 폭발을 하는데 언니가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못하는 것에 대해 2차 싸움을 언니와 또 하면서 난 다다다닥 얘기하고 언니는 우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전에 목장 모임을 준비하는 언니를 보면서 언니가 교회에 나와서 섬기는 것도 감사히 생각지 못하고 나눔 하지 않고 샐러드나 만들었다고 쏴주고 싶었지만, 내 초원지기에 이것을 말했더니 가족에게는 목자 역할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언니가 그 동안 마음이 어려웠을 것이기에 언니 앞에서는 사랑스런 동생으로 있으라는 조언에 난 충격을 받고 언니랑 화해했더니 언니가 그 때부터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약한 언니가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아비가일 같았다.
■ 박진아
오늘 들은 생각은 분노를 약자에게 낸다고 했는데 엄마랑 있을 때 분노를 내는데 밖에서는 분노를 드러내지는 않는 편이다.
■ 이유정
이영주 계장님이 점심을 먹으면서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셨다. 내가 계속 참는데 이번에는 한번 폭발해볼까? 라고 하셔서 어떻게 얘기할까 이번 설교를 듣고 얘기해야 할지 결정하겠다 라고 했는데 오늘 설교 말씀을 들으니 너무 웃겼다. 나는 다 말하는 타입이다. 교수님이 특이하신 분인데 돈을 너무 아껴 큰일 앞두고도 외부에서 접대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식당에서 밥을 사주신다. 나는 그런 치사한 부분에 대해 다른 교수님 같은 경우 밖에서 밥도 사주시는데 왜 교수님은 밥도 안 사주시냐 했더니 교수님은 어디 감히 나한테 그러냐며 표정을 지으셨고, 이런 것들을 경험해보니 100% 내가 솔직하게 얘기한다고 다 받아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교수님을 변화시킬 수 없으니 하나님이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했더니 교수님은 이혼 위기에 처해서 돈을 다 날려버리시게 되었다. 학회도 잘 되든 못 되든 교수님 변화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학회가 잘 되었다. 이렇게 기도할 때 마다 다 응답해 주셨고, 정말 신기한 것은 내 기도의 응답으로 우리 아빠의 암 사건이 생긴 것이다. 우리 남매는 딸 셋에 아들 하나인데 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믿음에 배우자를 다 만나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믿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 전도해야겠다.
■ 윤주희
지난 주 기업부설 연구소 실사로 너무 바쁘게 보냈다. 그 동안 관리하는 자가 없었고 나 조차도 연구소가 있는지도 몰랐기에 사장님께 물어보고 서류를 찾아가며 실사 준비를 했다. 요즈음 회계 담당 대리님이 아프셔서 병원 들러 오시기에 늦게 출근 하시는데 그 업무가 자꾸 나에게 전달이 되자 그 대리님의 아픈 마음이 체휼 되지 않았고 사업부 중 한 본부장님이 나에게 자기 바쁘다며 내 담당도 아닌 일을 시켜버리고 나가셔서 짜증이 너무 났다. 이 회사는 정리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불평과 연구소 관련 일도 내 담당이 아닌데 야근까지 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까지 나에게 일을 맡기니 몸이 지쳐 한계가 왔다 싶었을 때 오늘의 말씀을 주신 것 같다.
■ 엄정미
학원에 새로 오신 선생님이 있는데 이상하게 나랑 영어 선생님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이 선생님은 오자 마자 나에게 너무 친절하게 잘 해주시는 것이다. 난 처음에 교류가 있어야 물질이 오가는데 이 선생님은 처음부터 공차나 햄버거를 사다 주시길래 부담스러워서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려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선생님이 애들을 잘 못 잡고 3, 4달이 지나도 그러길래 나한테 고민을 털어 놓아 그 방법을 알려 줬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예전 선생님하고 이 일을 얘기해봤는데 그 분은 교사 자질이 없다고 하셨다. 벌금을 매겨 간식을 사주는 식으로 숙제 체크를 하는 방법을 해보라고 했더니, 벌칙을 9가지나 적어온 것이다. 수업시간 45분에 9가지를 체크하는 것 조차 힘든데 내가 조언을 해줘도 듣지 않길래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 그냥 내 입을 닫았다. 아니나 다를까 벌금에 대해 애들이 들고 일어나자 난 참다가 그 선생님께 질러버렸다. 아이들이 벌금에 대해 반발이 일어나는 것은 선생님이 아들을 아직 못 잡는 것이라고 얘기를 해버린 것이다. 내가 직선적으로 얘기하니 그 선생님도 당황하셨다. 다음날 아무 생각 없이 일지를 쓰고 있는데 나에게 죄송했다며 자기는 나와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귀찮게 한 것 같다, 나보고 직선적으로 말씀하시는 스타일이시죠? 하면서 자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서 말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걸 들으니 막 화가 났다. 내가 근본적으로 이 사람을 무시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잘 모르겠다.
- 목자님 : 초등학생들은 처벌 보다는 보상이 더 효과적인데 그런 아이들을 다루는 면에서는 기본이 안 되신 분 같다. 왜 그런 것 같나?
- 엄정미 : 그 선생님은 내 관심 밖이긴 한데, 일단 일이 터지면 타인에게 얘기해서 계속 묻고 타인 생각을 그대로 말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 목자님 : 오늘 설교를 들으면 나발에 대한 해석이 있는데 왜 다윗을 무시했을까에 대한 것이다. 난 여지 것 멍청해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멍청했으면 돈을 모았겠냐. 사업적인 역량이 있어서 전략적으로 다윗을 무시한 것이다라는 목사님의 해석이었다. 아비가일도 자기 종들을 양육시키고 급하게 움직인 것을 보면서 정미도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 공동체의 일 중에 하나이기에 그 선생님에 대해 잘 생각해 보고 기도해보라. 그 사람이 어떻다 라는 것을 내가 설명해 주기 보다 스스로 찾아가기를 바라서 그런 것이기에 한 번 묵상 해보길 바란다.
기도제목 ----------------------------------------------------------------------------------------------
- 강혜림 목자님
1. 미술치료 레포트 11월 말까지 창의적으로 잘 마무리 하도록.
상담할 수 있는 직장 인도해 주시길.
2. 가족들 한 말씀으로 하나되기 위해 아비가일처럼 섬기기를
3. 남동생 우리들 공동체에 들어오고 말씀이 들리도록
4. 신결혼
- 박진아
1.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길
2. 모든 일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길
3. 신결혼
- 이유정
1. 아빠 암 수술하지 않게 도와주시길
2. 우리 가족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시길
3. 공동체에 적응 잘 할 수 있게
4. 교수님이 학생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갖게 해 주시길
5. 믿음의 형제와 결혼할 수 있게
- 엄정미
1. 매일 큐티하도록, 하나님과 친밀하게 살게 인도하심 받도록
2. 가정과 직장에서 내 열심 말고 감사함과 순종함으로 살도록
3. 동생 가정의 부부간의 정서적 회복이 있도록
4. 생일날 엄마에게 감사편지 쓰는 적용 잘 하게
(엄마의 분노를 잠재우는 진심의 감사를 쓰도록)
5. 학원 아이들에게 사랑의 언어를 쓰도록
- 송연우
1. 주께서 예비하신 곳으로 구직 인도 하시길
2. 신연애, 신결혼
3. 가족 만나는 여정 주 안에서 이끄시길
- 윤주희
1. 업무로 인해 지치는데 아비가일과 같은 존재인 말씀으로 인도 받고 공동체와 나눌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기길
2. 엄마, 오빠, 동생의 구원을 위해
3. 배우자를 위한 꾸준한 기도 하길
4. 추워지는데 게을러지지 않게 사소한 것들에 대해 계획 세우고 지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