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7. 주일 사무엘상 22:1~23 <내 탓이로다>
- 설교 내용: 지난 주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내 탓이로다 한 번만 하면 되는데 우린 그게 잘 안 된다. 인생이 너무 억울하기 때문에 도저히 용서가 안 되니까 모든 것이 너의 탓이지 내 탓일 수가 있겠는가 한다. 네 탓 내 탓은 공동체의 영향력이 크다.
1. 다윗은 좋은 공동체를 만났다. 그것은 건강한 공동체이고 다윗 공동체이다. 1)아둘람 공동체 아둘람 굴로 도망했다. 아둘람은 피난처라는 뜻이다. 아버지의 온 집이 거기로 왔다. 아버지와 형들도 다윗 때문에 위험해졌다. 되는 게 없으니까 믿는 사람이 싫다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이 만만이기 때문에 힘을 빼기 원하셨다. 만만인 다윗이 이 인생을 끌어가고 있다. 옛날에 골리앗을 물리칠 때 다윗이 아니다. 골리앗을 물리칠 때는 열등감이 하나도 없었다. 두려움이 생기고 상처가 생겼다. 자기가 생각해도 왜 이렇게 됐는가 생각할 것이다. 죽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곳이 아둘람 굴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됐다.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내려놓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 곳에 모든 환란당한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이 몰려 들었다. 다윗이 모집한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가면 살길이 있다더라 하고 모여 온 것이다. 다윗에게는 그들과 같은 환란이 있었다. 다윗의 고난은 보고 듣기만 해도 공감이 됐다. 다윗이 너무 공감이 되는 것이다. 사울 밑에서 자기도 억울한 일을 다 겪었기 때문에. 그 얘기만 들어도 사람들에겐 공감이 되는 것이다. 공감이 사람들에겐 큰 힘이 된다. 주님은 허물을 들추지 않으신다. 주님도 우리와 같이 연약함을 체휼하셨다. 다윗의 경험은 최고의 약재료가 되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도왔다. 날마다 알려줘야지 오늘만 알려주면 또 무너지니까. 깊이 묵상하다가 자기 고난도 묵상하고 그들을 위해서도 묵상하다가 이 세상에서 줄 수 없는 말씀의 깊은 보석을 캐내가 되었다.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말씀을 읽었다. 그 날 그 날 죽을 일이 생기면 말씀을 깊이 읽어서 캐내니까 하나님이 살려주셨다. 하나님께 얼마나 매달렸겠는가? 힘든 공동체가 다윗을 살렸고 힘든 공동체도 다윗 때문에 살아났다. 말씀으로 내 인생이 해석 되니까 부러운 게 많이 없어졌다. 사실 너무 속상한 건 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며 사느라고 이 세상이 너무 힘든 것이다. 다 누리지 못해서 속상한 거다. 한 가지씩 순종할 때마다 한 가지씩 깨닫게 하셨다. 결국 사람들이 다윗에게 온 것은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이 있어서 몰려든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말씀의 사람이다. 다윗 하면 말씀이다. 그래서 주옥같은 시편 말씀을 남긴 것이다.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말씀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내 탓이라 고백하면서 서로의 때를 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의 공동체에 있게 되면 서로 내 탓이오 부르짖게 되니까 천국이다. 말씀이 왕 노릇 해야지 서로 내 탓이오 하는 것이다. 교회를 다녀도 서로 네 탓이오 하면 나쁜 공동체에 있어서 그렇다. 지금은 배부르고 등 따시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은 한 번에 무너진다. 혼자서 교양 있게 이겨보려고 하지만 해결하지 못한다. 참 무서운 가치관이다. 가치관이 달라지니까. 자원하고 자원해서 도우니까 아둘람 공동체가 됐다. 부흥은 부속물이다.
2) 좋은 공동체에 있는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
3) 주의 종에게 순종을 잘 한다. 자기가 지금 좋고 좋은 길을 생각해서 유다를 떠났는데 다시 거기에 들어가라 하신다. 여긴 죽음의 길이 아니겠는가? 선지자 갓이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주의 종에게 절대 순종을 한다. 사울은 세계적인 선지자가 기름 붓고 얘기해줘도 평생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는다. 다윗은 평생 선지자와 관계가 좋다. 주의 종에 순종하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라서 이런 공동체 안에 있어야 내 탓이로다 가 잘 되는 것이다.
금세 왔다갔다해도 말씀에 의한 순종은 값진 것이다.
2. 나쁜 공동체의 특징 , 나쁜 공동체는 가정도 된다.
1) 권위적인 지도자가 있다. 다윗 공동체는 저절로 자원해서 모여들었는데 사울은 닥치는 대로 불러 들였다. 그렇게 힘든 때라도 다윗에게는 피난처가 되었는데 왕좌에 앉아있는 사울은 도리어 환란당한 자를 죽이려고 한다. 모든 공동체에서는 힘없는 자들을 무시한다. 떨거지들이라고 생각한다. 무시하다 못해 죽이고 싶어 한다.
2) 지역감정을 부추긴다. 자신이 없는 사울은 베냐민이 악을 행했으니까 베냐민만 끼고 들고 그 사람들에게만 요직을 준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편을 만든다. 베냐민을 부르면서 다윗이 왕이 되면 자리가 있을 것 같냐 없다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또 휩쓸려 간다.
3) 피해의식이 지나친 지도자다. 사울 공동체는 자기 부하도 못 믿고 다 나를 대적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극심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고발, 선동, 매복이란 단어가 남발한다. 사울은 입만 열면 다 나를 왕따 시키고 있다고, 자기가 왕이 돼서는 그렇다고 말한다. 본인이 왕도 아닌데 그러니까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다. 혼자서 계속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단청 들고 죽이려고 하니까.
4) 간신배가 득실 한다. 사울이 좋아할 얘기만 일러준다. 사울의 부하들도 다 다윗을 좋아하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지만 사울이 해도 너무 하니까 거기서 녹을 먹고 있지만 아무도 밀고를 안 하는 것이다. 아첨꾼이 득세하는 것이다. 말만 하면 화를 내니까 바른 말을 들을 수가 없는 거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손해 보는 것이다.
5) 순교자가 나온다. 좋은 공동체가 아닌 도리어 나쁜 공동체에서 나온다. 아히멜렉과 대제사장들을 소환한다. 애매한 소리를 하니까 아히멜렉이 다윗을 변호한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거짓말 한 것을 알았지만은 변호한다. 정확히 평가했다. 엘리의 후손이 멸망한다는 과정이 있기도 하다. 주의 말씀을 받은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엄하게 다루신다. 하나님께서 교훈하시는 것이다. 사울의 신하들이, 베냐민 지파들도 다윗의 신하들을 죽이기 싫어했다. 소극적인 순교자라고 할 수 있다. 사울도 베냐민 사람까지 다 죽이면 자기편이 없으니까 차마 다 죽이진 못하고 애돔 사람이 죽이라고 시켰다. 도엑이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 85명을 죽였다. 더할 나위 없는 악인이다. 무차별 살해했다. 진리를 위한 죽음은 그 자체가 복된 것이다. 악인에게는 삶 자체가 형벌이다. 바른 견해를 가졌으면 좋겠다.
3. ‘내 탓이로다’는 아둘람 공동체의 결론이다. =좋은 공동체의 결론이다.
이 비극의 소식을 들은 다윗은 사울이 드디어 일을 벌였구나 하면서 내 탓이로다 하고 고백한다. 다윗이 내 탓이라 말한 것은 아둘람 공동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에게 처절하게 겪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을 안 겪어보면 계속 세상 왕을 구할 것이니까. 하고 나면 좋으니까. 그래서 삶에 결론이라 한다. 진짜 하나님의 뜻을 살피니까 내 탓이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내 탓이라는 깨달음은 책임이 수반되는 깨달음이다. 뒤에 가선 죄를 또 짓긴 하지만 내 탓이라 하는 게 천국을 사는 것이다.
-목장 풍경: 목자이신 영아 언니가 예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치킨을 시켜 주셨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언니! 예지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목장에 참석했습니다^0^ 안나는 아팠었습니다ㅠ.ㅠ 영아언니는 화요일에 시험이 있다고 합니다. 이진이는 학원에서 여러가지 문제로 힘들어 했습니다. 전 오빠와 아빠 사이에서 여전히 눈치를 봤던 일을 나눴고 졸업 논문 준비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음을 얘기했습니다ㅠ^ㅠ 그리고 저번 주는 죽어가고 있었다면 이번주는 살아나게 된 것을 얘기하며 제가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자 하나님이 살려주셨던 일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기도 제목>
*예지: F학점 맞지 않을 수 있도록
*안나: 가족의 건강
*이진: 평안을 주시길
*영아 언니: 11월 8일 논문발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화요일 시험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아빠와 동생의 구원, 수요예배 참석할 수 있도록
*수연: 11월 8일까지 논문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오빠와 아빠와 할아버지의 관계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 갖기, 아빠를 두려워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