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 20131027 김성연 목장 보고서★
목장 참석 : 김성연(83), 노나라(84), 김지영(85), 류지혜(85), 김진실(85)
<< 말씀 요약 >>
말씀 : 사무엘상 22장 1~23절
제못 : 내 탓이로다
지난주에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돌아오기 위해서는 ‘내 탓이로다’ 한번 하면 되는데, 억울함에 그게 안된다. 그래도 내 탓이라는 생각이라도 해보라는 말만 들어도 우리는 너무 싫다. 오늘 다윗을 보면 정말 그러지 않겠나. 억울하고 가슴이 콕 막혔을텐데도, 쫓겨나고 이상한 짓을 한 다윗이 내 탓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울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내 탓, 네 탓은 정말 공동체의 영향이 크다. 좋은 공동체와 나쁜 공동체는 무엇일까?
1. 좋은 공동체는 다윗 공동체이다.
(1) 아둘람 공동체이다
1절.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아둘람은 피난처라는 뜻이다. 아버지의 온 집이 다윗이 이곳에 있음을 듣고 모였다. 다윗의 아버지와 형들도 위험해지니 모여들었다. 그곳이 어떻게 피난처가 되겠나.
아둘람은 깜깜한 굴이다. 너무나 마음이 가난해 그 곳으로 간 것이다. 아무 곳에도 숨을 곳이 없으니 간 곳이 아둘람이다. 처음에는 인맥을 동원해 아히멜렉에게 갔는데 도리어 아히멜렉의 모든 가족들을 죽게 했고, 아기스 왕에게 갔더니 미친척을 해야 하면서 쫓겨났다. 자기를 괴롭히는 사울이 믿는 자의 우두머리니 믿는 자가 얼마나 싫었겠는가. 믿는 자에게 당하면 더 그렇다. 그래서 원수의 나라로 갈 수 밖에 없기에 갔는데 더 비참했다. 두려워하고 심히 두려워했다는 말이 나온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너무 비참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이 만만이기에 다윗의 힘을 빼기를 원하셨다. 만만이던 다윗이 비참한 인생을 끌어가고 있다. 진짜 광야로 내동댕이 쳐졌는데, 골리앗을 물리칠 때의 다윗이 아니다. 그때는 열등감이 없었다. 그런데 사울에게 미움을 너무 오래 받고 사니 사울에게 상처를 받아 두려움이 생겼다. 자기가 생각해도 내가 왜 이렇게 됐는가 할 것이다. 돌아보고 죽을 일만 남았다 생각한 곳이 아둘람 굴이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님을 알고 사람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내려놓았는데, 내려놓을 수 밖에 없어 내려놓았더니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2절.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외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왔다. 다윗에게 살길이 있음을 듣고 모여들었다. 다윗의 돈과 권력을 보고 온 것이 아니다. 다윗에게 부담이 될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천명이 넘는 숫자가 아둘람 굴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을 보고 모여든 것일까? 아무것도 없는 다윗에게 있는 것은, 그들이 당한 것과 같은 ‘환란’이 있었다. 다윗의 고난을 보고 듣기만 해도 공감가는게 있었다. 그 당시에는 다윗을 좋아한다고만 해도 사울에게 미움과 환란을 당했다. 사울의 폭정 때문에 집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사울 밑에서 폭정을 당하다 오니 다윗이 공감되는 것이다. 억울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그 얘기만 들어도 그들이 공감이 된다. 공감은 상대에게 큰 힘이 된다. 주님은 아무 죄도 없이 고난과 유혹을 당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허물을 들추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체휼하신다. 주님도 우리와 같이 연약함을 체험하셨다. 공감은 굉장히 중요하다. 공감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난을 들으면서 ‘그게 무슨 고난이냐’고 말해서는 안된다. 각자에게는 절대치의 고난이 다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다윗의 경험은 최고의 약재료가 되었다. 그런데 다윗의 경험만으로 되겠는가? 이들을 위해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말씀보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니 매일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고 간다. 다윗이 힘든 자들과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길을 열어주셨다 아둘람 굴은 블레셋의 통치령에 있지만 유다 ㄸㆍㅇ이었다. 깜깜한 동굴에서 내가 뭘 하나 생각할 때에 사람들을 살려내면서 일평생의 다윗의 사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윗은 사람들에게 처방했을 것이다, 질서에 숭종해야한다고 외쳤을 것이다. 날마다 알려줘야지 오늘만 알려주면 내일 무너지기에 깊이 묵상을 하고, 자기 고난을 묵상하다가 드디어 다윗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말씀의 깊은 보석을 캐게 되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깨달음이다. 말씀 속에서 깊이 길어 올리면서 어느 날 말씀이 깨진 것이다.
다윗이 아둘람에 오지 않았다면 사울에게 고난 당한 것을 곱씹고 곱씹다가 병원에 갔을 것이다. 다윗 같으면 죽을 인생이었다. 은혜받기 위해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살기위해 성경을 읽었다. 그러자 하루하루의 복음으로 살려주셨다. 다윗도 얼마나 하나님께 매달렸겠나. 너무 말씀을 보다보니 결국 힘든 공동체가 다윗을 살렸다. 다윗도 그와 함께 살아났다. 말씀에서 내 인생이 해석이 되니 살아난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비교하기 때문이다. 누리지 못해 속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씀이 깨달아지면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데 부러운 것이 뭐가 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고, 힘든 분들을 위해 대신 묵상하게 된다. 한 가지씩 순종할 때마다 한 가지씩 깨닫게 하셨다. 결국 그들이 다윗에게 온 것은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이 있기에 모인 것이다. 말씀이 살려주기 때문에 모인 것이다. 다윗은 말씀의 사람이었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얼마나 주옥같은 말씀인가.
아둘람 굴 같은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려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휘문이다. 편하니 모였을 것이다. 거칠고 상처받은 오합지졸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인생이 다 죄인이기에 말씀으로 달라진다. 이들이 양육을 받아 다윗 왕국을 함께 세우게 된다. 환난 당하고 빚진 것은 나쁜게 아니다. 서로 내 탓임을 고백하며 공동체에서 때를 밀어주면, 말씀의 좋은 공동체에서 있게 되면, 천국을 누리게 된다. 말씀이 왕 노릇 해야지 서로 내 탓이오 하게 된다. 지금은 배부로고 등이 따뜻한 것 같아도 말씀 있는 삶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지만 악인은 한방에 무너진다. 혼자서 교양있게 이겨보려고 하지만 해결이 안된다. 이 땅에 아둘람같은 공동체가 있을까, 우리들교회같은 공동체이다.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오는 우리들 공동체가 아둘람 공동체이다.
아무것도 없는 우리가 모였는데 하나님은 예배 때마다 기름을 부으셨다. 불같은 성령으로 기름 부으시니 또 사람이 모인다. 온 교회가 난리가 난 것처럼 도왔고, 지금도 돕고있다. 그렇게 빚 있는 사람들이 모인 우리교회인데 빚 없이 교회를 세웠다. 아무도 놀지 않는다. 개미군단들이 복닥거리면서 자원하고 영육간에 돕고 도와 아둘람 공동체가 되었다. 이런 공동체가 어떻게 사회에서 불만 세력이 아니었겠다. 이들이 다윗 왕국의 요직을 차지하고 압살롬에 의해 다윗이 반역을 당해 맨발로 도망갈 때 이들은 끝까지 다윗 편에 섰다. 자기들의 원한을 가지고 왔지만 원한을 갚은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환난 당한 자들에게 친구가 되어줬기에 불의를 당했다는 말씀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부흥은 따라오는 선물이다. ‘피난처가 있으니 이리로 오라’ 찬송한 것처럼 외쳤다.
다윗이 힘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진 것처럼, 우리들교회도 그랬다. 상처 많은 사람을 하나로 묶기란 너무도 어렵다. 그러나 한번 묶이고 나면 진짜 지체가 생기고 자원함이 생긴다. 아둘람 공동체가 된 것이다.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공동체에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교회의 핵심 가치관이다.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이다.
(2) 좋은 공동체의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
3절.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절.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다윗이 부모에 대해 얼마나 상처가 많은가. 그런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좋은 공동체에 있으면 나쁜 부모, 좋은 부모 상관없이 효도하게 된다. 좋은 공동체의 특징이다. 다윗이 구속사를 잘 알고 있으니 가드왕에게는 쫓겨났지만 모압왕에게 갔다. 모압은 외증조모인 룻의 땅이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한 것이다.
(3) 주의 종에게 순종을 잘한다
5절.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가장 좋고 좋은 길을 생각해서 유다를 떠났는데 다시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유다땅은 죽음의 길처럼 보이는데, 선지자 갓이 유다로 들어가라하니 다윗은 절대 순종한다. 사울은 그 대단한 사무엘의 명령도 듣지 않았다. 주의 종에게 순종하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이다. 이래야 ‘내 탓이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떠난 유다땅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시는데, 순종해야한다. 내가 돌아가야하는 유다 땅 헤렛 수풀이 어디인가?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이 어디일까? 다윗을 살린 것은 아둘람 공동체이다. 힘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말씀을 깨달으니 유다 땅에 들어가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아졌다. 주님을 만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돌아가야한다.
2. 나쁜 공동체는 사울의 공동체이다.
(1) 권위적인 지도자가 있다
6절.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다윗은 힘든 자들과 함께 가고 있는데 사울은 높은 곳에 앉아 협박용 단창을 들고 앉아있다. 에셀나무는 영생의 나무이다. 보기만해도 위협이 된다. 다윗 공동체는 저절로 자원해 모여들었는데, 사울은 힘있는 자, 용감한 자를 닥치는 대로 불러들였다. 환난 당한 자들이 헤렛숲에 나타났을 때, 힘든 때라도 다윗에게는 그들이 피난처가 되었지만 왕좌에 앉아있는 사울은 오히려 환난당한 자들을 죽이려고 한다. 모든 공동체에서는 힘 없는 자들을 무시한다. 떨거지들이라 생각한다. 사울처럼 무시 하다못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무시한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어떻게든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다.
(2) 지역감정까지 부추긴다
7절.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사울은 베냐민 출신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없다. 그러니 베냐민 사람들만 끼고 돌면서 자기 편을 만들고 있다. 다윗이 왕이 되면 너희들에게 뭐가 떨어질 것 같으냐면서 지역감정을 일으키고 있다.
(3) 피해의식이 지나친 지도자가 있다
8절.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사울의 공동체에서는 자기 부하도 못믿고 자기 아들도 못믿는다. 모두가 공모해 자기를 대적한다고 하며 고발, 선동, 매복이 난무하는 곳이 나쁜 공동체이다. 입만 열면 다 나를 왕따 시킨다고 한다. 이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혀 왕따시키지 않는데 혼자서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말을 해 줄 수가 없다. 바른 말을 해 줄 수가 없다. 단창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4) 그러니 간신배가 득세를 한다
9절.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절.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아히멜렉에게 다윗이 거짓말을 했는데 그 이야기는 싹 빼고 사울이 좋아할 이야기만 하는 도엑이 나온다. 아무도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누가 단창 들고 있는 사울에게 바른 말을 하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떠나지 못하면서 아첨꾼이 득세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니 탓이다’라고 할때 ‘왜 내탓이냐’고 하면 다시는 그 사람이 나에게 말을 못한다. 말만 하면 화를 내고 있지는 않는가. 바른말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한다.
(5) 순교자가 나온다
11절.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12절. 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절.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14절.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절.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16절.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절.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절.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19절.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왕이 사람을 보내 아히멜렉 가족을 소환한다. 그리고 아히멜렉은 사울 앞에서 다윗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지만 그 거짓말함을 이야기 하지 않고 오히려 다윗을 변호한다. 아히멜렉의 죽음은 사실 엘리의 저주를 이어가는 것이았다.
사울이 제사장의 가족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랬는데 신복들도 그걸 하기 싫어한다. 이들은 소극적인 순교자들이다. 사울도 베냐민 사람까지 죽이면 자기 편이 없으니 에돔사람 도엑을 이용해 제사장 85명을 죽였다. 믿음의 ㅁ자도 모르는 도엑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85명의 제사장들을 자기를 위해 무차별 살인을 했다. 이 악인 한 사람으로 인해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지만, 진리를 위한 죽음은 그 자체로 복되다.
3. ‘내 탓이오’는 아둘람 공동체의 결론이다
20절.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절.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22절.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23절.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이제 이 비극의 소식을 들은 다윗이 듣자마자 ‘내 탓’이라고 말한다. 다윗이 내 탓이라고 함은 아둘람 공동체의 말씀의 힘이다. 회개하는 심령을 건져주시는 비결이다. 어떻게 내 탓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진짜 하나님 뜻을 살피니 내 탓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최고의 깨달음을 알 수 있다. 말뿐만이 아니라 아비아달을 거두어주는 책임이 수반되는 것이다. 다윗이 드디어 한계단 올라갔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사는 것이다.
내 탓이로다 하려면 좋은 동공체가 필요하다. 아둘람 공동체가 가장 건강한 공동체이다. 찌질하다고 보면 안된다. 말씀의 다이아몬드를 캐는 곳이다.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게 하고 주의 종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공동체이다. ‘니 탓이로다’하는 공동체는 지도자가 높은 곳에서 단창 들고 에셀나무 아래서 혼자 누리는 곳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간신배가 있고, 너무도 힘들어 순교자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공동체이다. 우리 모두 ‘내 탓이로다’를 부르짖고 모든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는 우리들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 기도 제목 >>
★ 김성연(83) ★
가족들 모두 생활예배 잘 드리기
직장, 1:1 양육, 가정, 목장 모두 아둘람 공동체 되길
신교제
★ 노나라(84) ★
아둘람 공동체 안에서 말씀 붙들고 가길
일과 경제적인 것들, 신교제, 모두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길
★ 김지영(85) ★
이번주 목요일까지 일 하는데, 마무리 잘 할수 있도록
가족과 남자친구의 건강 위해
★ 류지혜(85) ★
QT를 비롯한 일상 생활 예배의 회복
직장에서 혈기 부리지 않도록
★ 김진실(85) ★
결혼 후 새로운 아둘람 공동체를 만날 수 있기를
새로운 가족과의 순적한 관계 위해
QT, 생활 예배의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