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삼상 21:1~15)
세상적인 방법을 쓰게 된 다윗은
1. 거짓말을 하여 두려움을 피해보려 했고
2. 배고픔의 문제와
3. 칼과 무기의 문제가 있었다.
4. 하지만 그 두려움은 판단의 실패를 가져왔는데
5.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건지신다.
출애굽 간증의 시간 --------------------------------------------------------------------------------------
새로 등반한 엄정미(80) 자매와 송연우 자매(81)를 위한 환영 겸 각자의 출애굽 간증부터 시작하였습니다.
■ 강혜림 목자님
19살 때 아버지 덕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현재 가족은 부모님과 결혼한 언니와 남동생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1년에 한 번은 집이 부서지도록 부모님이 싸우셨는데 아빠는 엄마에게 화를 풀었기에 어린 나에게는 1년 내내 불안한 상황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많이 때렸는데 엄마가 저러다가 돌아가실 것 같아 우리 삼 남매는 필사적으로 말렸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고 엄마는 저렇게 때리시면서 우리들은 사랑하시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학창시절에는 집안이 어렵다는 사정을 얘기하지 못했고, 아빠와 엄마가 싸워 내가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얘기는 친구들에게 꺼내놓지 않으며 늘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었다. 나는 그 시절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생각하여 교회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아빠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셔서 나도 같이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 되어지는 것이 없고 지치기 시작한다 싶을 때, 내가 나를 보는 모습, 타인이 나를 보는 모습,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모습의 갭이 점점 커짐이 느껴졌는데, 사람들은 나를 평탄한 가정 환경에서 사는 줄로 알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이 악하다는 마음을 주시는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 남동생은 소개팅으로 만난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5살 연상 이혼녀와 결혼하겠다고 하여 가족이 모두 놀랐는데 그 여자는 내 동생의 통장, 인감, 보험까지 다 가져간 상태였다. 나는 동생에게 이것은 아닌 것 같다며 돈을 다 줘버리는 것은 교제의 사이가 아니라 결혼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했더니 동생은 그 여자에게 나의 말을 전했고 수화기 건너로 그 여자의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은 그 여자를 만나줄까 하시다가 내가 만류했고, 그 여자는 동생보고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면 집에서 나오라고 요구하자 동생은 그렇게 해버렸다. 성실하게 살았는데 동생까지 저러니 내 인생은 바닥을 쳤고 동생은 그 여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 여자는 엄마에게 악한 말들을 퍼부었고 그것 때문에 우시는 엄마를 보자 이성을 잃은 나는 그 여자에게 전화하여 더럽다고 얘기했더니 그 여자는 통곡을 했다. 그리고 나서 6개월 후 크리스마스 이브 날 동생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 때 했던 말 사과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니 그 여자는 죽여버리겠다, 저주하겠다는 등 새벽까지 나에게 문자로 보내는 것이었다. 처음 당해보는 저주와 협박이 너무 무서워서 방에서 무릎을 꿇고 ‘난 지금 너무 불행한 사람이다’ 라며 울면서 기도했는데 ‘울고 있는 너를 위해 이천 년부터 왔다’라고 하시는 음성이 들리는 것이다. 그 순간 성탄절의 의미가 확 다가오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며칠 후 김양재 목사님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당신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것이라는 구절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후 우리들교회 어른 목장으로 와서 나의 상황들과 고백으로 나눔을 했더니 말씀으로 위로해 주셨다. 동생 사건으로 아빠가 나에게 뺨을 때린 것을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집사님은 아이를 때려보지 않으면 부모의 심정을 모를 것이라며 아빠가 더 힘들 것이고, 때린 사람이 맞는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지만 성경에서는 말씀을 먼저 듣는 자가 가야 한다고 말씀해 주셔서 하나님이 용서라는 그 자체를 원하시는 것 같아 아빠에게 전화로 사과를 드렸더니 아빠는 때려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했던 첫 적용이었고 이 때부터 아빠와 관계가 좋아졌다. 우리들교회 와서 양육 받으라 하셔서 받고 예배 드린 것이 올해로 7년 째 되었다.
■ 윤주희
IT회사 인사총무 일을 하고 있다.
교회는 어렸을 적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 밑에 교회가 있어 다녔지만 하나님을 알기 보다는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다녔고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친구 따라 갔지만 게을러서 몇 주 다니는 정도였다. 아빠는 좋으신 분이셨지만 주사가 심하셨고 술 드시고 오시면 항상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집에 있는 가전제품들을 던지기도 하셨다. 사춘기인 오빠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의 시끄러움에 칼을 들고 죽여버리겠다고 하자 엄마는 놀라셔서 나를 옆집에 도움을 요청하라 하셨고 나는 울면서 옆집 아주머니를 불러 그 날의 시끄러움은 종결되었지만 그 후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에는 항상 긴장하면서 잠을 잤다. 아빠는 술 드시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셨는데 하루 종일 아빠를 대신해 가게를 보시는 엄마가 불쌍했고 대신 아빠를 미워하고 무시하게 되어 아빠가 하는 말도 듣지 않았고 뭐라 하시면 대들었다. 엄마는 우리 삼남매에게 아빠 흉을 보시면서 스트레스를 푸셨는데 나는 그것이 듣기 싫었고, 싸우는 부모님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도 없었기에 결혼 안 하고 잘 사시는 공무원 작은아버지를 보며 공무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적은 떨어졌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도 못했으며 편입도 떨어졌고 공무원 시험도 낙방하여 28살에 겨우 IT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 남보다 뒤진 사회생활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을 냈고 인정도 받았는데 회사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자금 문제로 해산이 되고 너무 힘이 들어 그만 두게 되었다. 그 시점에 아빠가 림프종 암을 진단받게 되자 하필 내가 쉬려고 하니 아빠가 아프시냐 하면서 병원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내 아빠였고 집에서 쉬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빠와 나는 병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빠의 치료는 잘 되신 듯 하다 두 번의 재발과 함께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교회도 다니지 않았던 내가 눈물로 기도하게 되었고 의사가 예상한 날에 돌아가시게 되었다. 친구의 인도로 2010년에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것이 다 나 때문 같았고 아버지를 존중해드리고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기에 심판의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씀을 들으면서 싸웠던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것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작년 초 말씀으로 인도함 받았다고 생각했던 직장에서 지각의 이유로 사장님이 그만 두라는 말씀에 몇 분, 그리고 몇 번밖에 하지 않았고 다른 직원 보다 훨씬 작은데 나만 이렇게 되는 것이 억울하였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다시 기회를 달라는 말씀을 드렸지만 거절당했다. 며칠 뒤 사모님이 사장님이 불 같은 성격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시면서 다시 일해보자는 제의를 하셨지만 할머니 돌아가셔서 육체적으로 피곤했던 상태였고 일도 체력적으로 힘들고 내가 더 이상 노력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 제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훈련이 되려면 그곳에 있어야 된다는 목자님의 말에 나는 이것 밖에 되지 않나 하며 목장에 얘기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에 마음이 많이 눌렸었다. 지친 마음으로 수련회에서 많이 울었고 다음에 받으려고 했던 양육교사도 받는 시간을 허락해 주셨고 양육이 끝날 때 즈음 교회와 가까운 직장도 허락하셨다. 항상 하나님은 세밀하게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은혜도 주시는데 나는 그것을 잘 모르고 사는 것 같다. 현재 유아부를 섬기고 있다.
■ 박진아
모태신앙이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고 싶으셨는데 남편 될 분의 형이 목사님이어서 결혼하면 교회 갈 수 있겠다 싶어 지금의 아버지와 결혼하셨다. 작은 할아버지의 권유로 가족이 순천으로 올라왔는데 작은 할아버지가 우리를 부리는 것처럼 살게 되자 부모님도 싸우셨는데 다행히 작은 할아버지에게서 나올 수 있었다. 부모님은 항상 싸우셨고 믿음의 수준이 다르기에 그런 갈등이 많으셨다. 이런 부모님과 떨어져야겠다고 생각해서 다니던 은행의 서울 지점으로 신청 해서 발령이 나게 되어 서울 생활을 하게 되었고 떨어져 살게 되다 보니 삶의 억울함이 많았던 내가 부모님이 이해 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들교회는 친구의 소개로 오게 되었다.
■ 엄정미
교회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 다니는 친구 덕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고 교회 다니는 것을 집에서 반대했는데 고등학교 때 방황을 좀 하다 친구 엄마가 권유하셔서 다시 다니게 되었다. 교사로 섬기게 되면서 나는 갈급한데 양육 해줘야 할 아이들은 많고, 정작 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데도 밝게 하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이런 답답함과 힘듦에 교회를 내려놓게 되었고 이 상태로 3년을 보내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그 친구의 가정이 바뀌는 것을 보고 용기를 갖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엄마는 외갓집이 망해서 실제적인 가장 노릇을 하며 생활력이 강하게 되셨다. 엄마는 나에 대한 기대가 많으셨지만 난 그렇지 못했고 아빠는 엄마가 더 힘든 일을 많이 하시고 경제권이 있으니 나에게 스트레스를 푸셨다. 고입 시험 후 엄마가 원하지 않는 고등학교에 성적을 낮춰 들어가게 되었는데 엄마는 내 교복이 공부 잘 하는 학교와 비슷하니 동네 분들께 우리 딸이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거짓말까지 하셨다.
나는 엄마가 폭언을 하는 것이 힘든데 동생들에게는 뭐라고 하시지 않고 나에게만 그러셨다. 나는 동생들처럼 엇나간 적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 방황을 하다 졸업 후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아빠는 엄마 편이셨고 나는 엄마랑 싸우면 분노 조절이 되지 않고 큰 싸움이 되었다. 엄마에게 내가 엄마 때문에 힘들다고 겨우 얘기를 꺼냈지만 너는 우는 모습도 못생겼냐 하는 말을 듣고부터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목자님 : 눈물에는 하나님의 치유능력이 있으니 공동체 와서 많이 울었으면 좋겠다. 울어야 할 상황에서 울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일인 것이다. 사울인 엄마 덕에 정미가 거룩해 질 것이다. 엄마를 객관화 하면서 천천히 바라봤으면 좋겠다.
■ 송연우
교회에 가라고 권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부산에서 카톨릭 고등학교를 다녔고 수녀님인 담임 선생님 덕에 종교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내 목표는 서울의 대학이었다. 부모님이 계셨지만 고아처럼 산 것 같다. 할머니랑 살기도 했는데 부모님의 일이 해결 되면 부모님과 살게 되는 삶이었다. 점차 자라면서 부모님 직업을 알게 되었고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가려 했지만 그래도 부모님과 사는 것이 좋아 그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그 3년이란 생활이 후회가 되었고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나였지만 부모님은 원하지 않으셨다. 대학에 합격 후 서울로 왔는데 나를 컨트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고 판단력이 흐려지고 생활 자체가 어렵고 돈을 버는 것도 힘들었다. 돈을 버는 것이 힘들어서 대학도 그만 두게 되었다.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했던 것 같다. 과외, 피자헛, 베스킨라빈스, 병원 등등이며 마지막 직업은 연구원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서울 생활과 달라서 다시 성당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집 뒤에 있는 성당 옆에 큰 교회가 있길래 그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후로 5년을 계속 다녔고 선교단체에서 파송되어 태국에 다녀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 것이 아니었고 양육을 받은 상태도 아니었으며, 아는 언니의 추천으로 다녀왔다. 거기서도 난 원해서 온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었고 분위기에 휩쓸려 가게 된 것이었다. 생활은 아침에 일어나 운동 후 장을 보고 요리하고 점심 때 선교사님 자제분 공부를 돕고 단체 활동 후 저녁 때 장을 보고 요리를 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모르겠고, 단체생활이 아니라 혼자 있어야 할 것 같아 한국으로 떠나기 전 김양재 목사님의 책을 추천 받았는데 내가 한국으로 갈 때 기쁨이 있었으면, 유다서 말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 드렸다. 4월부터 마음이 너무 아파 성경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목사님 책이 생각 나서 설교를 검색해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때 매일 큐티의 본문이 유다서여서 깜짝 놀라 바로 티켓팅을 했고 선교단체에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한국에 들어와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다.
- 목자님 :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어떠한 사건이든 거룩한 세팅이다. 우리들교회에 와서는 말씀의 훈련이 큐티이다. 본문을 읽으면서 걸리는 것들에 대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잘 꿰뚫어 보다 보면 걸리는 것에 대해 질문을 찾고 구체적인 적용을 해야 한다. 깨알 적용으로 관계의 패턴이 바뀌게 되고 1년 전의 나와 그 후의 내가 달라짐을 느낄 것이다. 처음이라 힘들겠지만 매일 읽고 밀렸다 할지라도 그 날의 큐티를 읽으면 된다. 말씀이 훈련이 되면 세상의 말에 필터링이 될 것이다.
한 주간의 나눔 시간 ---------------------------------------------------------------------------------
■ 강혜림 목자님
지난 주 발표가 있었다. 이번이 첫 학기라 적응하기 어려워 준비하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다윗이 두려움에 있었던 것처럼 나도 처음 해 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많은데 이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를 했고 내 힘으로 갈 수 없기에 매일 큐티를 했더니 잘 끝낼 수 있었다. 발표 방법에 있어서 식상하길래 다른 학생들과 달리 질문도 했더니 교수님이 칭찬해주셨다. 나한테는 특별히 수고 많았다고 하시니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곧 중간고사여서 또 공부할 것을 생각하니 전투력이 생겨 나의 가족과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어졌다. 그래서 지난 주 엄마에게 한 말에 대해 짜증내서 죄송하다 했고 엄마와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풀었다.
나는 관계중심이 아니라 일 중심이다 보니 할 것이 생기면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지는데, 이렇게 교회에서 나눌 수 있으니 숨통이 트이고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 윤주희
지난 주 금요일날 건강검진을 했다. 가족 병력에 대해 체크하는 란이 있었는데 의사선생님이 누가 이 병력이 있냐고 물으시길래 아빠가 림프종이셨고 엄마가 당뇨가 있으시다고 답하는 순간 왠지 모를 초라함이 느껴졌다. 우리 가정은 잘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몇 대째 신앙도 아닌데 건강마저 이러니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실 늙으면 다 병이 생기기 마련인 것인데 내가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몸에 해로운 것은 잘 안 하는 편이다. 오늘 말씀 들으면서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 덕에 내가 교회 다닐 수 있게 된 전적인 은혜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겠다.
■ 박진아
특별한 일은 없었다.
■ 엄정미
초등수학을 가르치고 있고 오후 1시에서 7시까지 일을 한다. 학원 사정 때문에 선생님들이 그만두게 되셨고 초등부는 나에게 일임 되어지고 부원장님이 중등부를 맡게 되었는데 pay는 그대로고 일은 많아지게 된 상황에서 오래 있어봤자 대우도 해주지 않으실 것 같아 다른 학원으로 옮길까 생각 중이다. 내가 앞으로 가장이 될 것 같아 돈을 좀 받는 대로 가야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안 그래도 pay 조정을 해주시겠다고 했는데 그 후로 얘기가 없으셨고 앞으로 다가 올 수학경시대회 때문에 어떤 의도가 있으신 것인지 모르겠다.
■ 송연우
서울 적응 잘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도제목 ----------------------------------------------------------------------------------------------
- 강혜림 목자님
1. 학업에 지혜 주시고 진로 인도해 주시길
2. 생활예배 잘 지킬 수 있도록
3. 남동생 우리 공동체에 들어오고 가족들 한 말씀으로 나누게 되길
4. 신결혼
- 박진아
1. 내가 해야할 것들을 잘 해낼 수 있도록
2. 매일 적용하는 삶 살도록
- 엄정미
1. 매일 묵상할 수 있도록
2. 직장 연봉문제 잘 해결 되도록
- 송연우
1. 하나님의 뜻대로 꼭 필요한 곳으로 보내주시길
- 윤주희
1. 두려움은 죄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믿고 은혜 구할 수 있도록
2. 이번 주 교회에 오게 될 회사 동료 예배 잘 인도하고 말씀 깨달을 수 있게
3. 엄마, 오빠, 동생의 구원을 위해
4. 사무엘상 1장 미리 읽고 예배드릴 수 있게
5. 예성(유아부 아담반)이가 울지 않고 엄마와 떨어져서 예배 잘 드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