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의 위혜정 목장과 김도윤 목장이 조인을 했습니다. 첫 조인임에도 불구하고 에프터 조인인 마냥 판교의 대형 식당을 예약하여 즐거운 식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먹하여 말없이 숟가락 젓가락 소리만 있었지만 조인의 후반으로 갈수록 서로에 대해 조금 알 수 있는 자리가 되었고 유쾌하고 즐거운 만찬을 가졌습니다. 큰 구원 (사무엘상 14:24~52) 여호와의 구원은 아버지의 장애를 넘어서야하고 담대해야하고 성경적인 표징을 보고 가야하는 길이다. 그와 같은 뜻으로 오늘은 요나단의 큰 구원이라 표현했다. 큰 구원은 이 세상이 감당 못하고 큰 구원에는 사단의 방해가 많이 있다. 요나단의 큰 구원을 지도자인 사울이 방해한다. 우리는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지도자도 되고 어디서든지 지도자이다. 지도자인 나는 구원을 방해하는 지도자인지 훼방을 당하는 지도자인지 생각해 보자 큰 구원은? 1. 피곤케 하는 지도자가 큰 구원을 막는다. 24절 이스라엘은 개인적인 원수를 갚는 일과 자기의 공을 위해 백성에게 금식령을 내린 사울사울 때 피곤했다. 내 원수를 보복하기 위해 개인적인 원수를 갚는 일로 혈과 육으로 싸우고져 백성에게도 금식령을 내렸다. 하나님 일을 빙자해서 내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일과 같다. 하나님의 원수와 내 원수는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의 방법으로 싸우지만 내 원수는 악하고 음란한 이기적인 내 자신의 원수이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기적인 자신의 욕망을 거슬리기 생길 때 싸운다. 요나단이 이겨놓은 싸움에서 공이 요나단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을 보고 금식해서 이겼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사울은 이생의 자랑을 위해 또한 자신의 왕권 유지를 위해서 백성에게 자기 중심적인 금식령을 내렸다. 때마다 예배중독자 사울은 날마다 예배드려라 금식해라 하면서 백성을 피곤케 한다. 이것은 백성이 세상의 왕을 달라고 한 결론이다. 사단은 끊임없이 내 속에서 ‘이겨야 돼. 다 부셔버려 불신결혼.. 돈이면 다야 하면서’ 속삭인다. 내 속의 블레셋은 나의 원수이고 하나님의 원수인데 내 속에서 언제나 꿈틀거리고 있다. 기복적인 백성은 기복적인 왕을 구했기 때문에 그대로 기복적인 왕한테 당하는 것이다. 금식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고 이타적인 것인데 왕으로써 사울은 큰 구원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인격적인 것은 없고 미신적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오로지 희생, 감동으로 비상식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오고자 한다. 열등감이 많은 사울은 불안하고 초조하여 입만 열면 예배하지만 핀트가 맞지 않고 어리석은 맹세는 백성을 피곤케하니 피곤한 백성은 전쟁을 못하게 마련이다. 어리석은 지도자이다. 사울처럼 내 명예를 지키고 높이기 위해서 명분을 속이고 자기 속셈이 있는지를 나눠보자 2. 죄책감을 주는 지도자 31,32절 금식령으로 심히 피곤한 백성들은 금식시간이 지나자마자 양과 소를 잡아 피째로 먹었다. 사울의 금식령은 하나님이 금하신 피를 먹게함으로 백성들이 더 큰 죄를 짓게 만들고 그로인해 백성들이 죄책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금식은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죄성을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백성이 범한 죄를 믿음이 없이 행했다고 책망하면서 백성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사울은 죄를 범했으니까 제단을 쌓아야 한다며 제단을 쌓는다. 적용은 안하고 예배 중독자인 사울.. 백성이 왜 피째 먹어야 했고 그 근본인 자신이었음을 깨달아야 하는데 책망만 하면서 이겼다하고 예배를 들인다. 우리도 됐다 하면 예배 드리고 안됐다 하면 예배를 드리지 않는 그런 사울과 같은 모습이 있다. 37절 예배드렸으니 전쟁에서 이겼을 것 같아 하나님께 물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사울이 깨닫기 원하셨기에… 하지만 사울은 협박의 대명사이고 아주 미숙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자신의 죄를 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죄 보기를 좋아한 인물이다. 3. 완고한 율법주의자가 된다. 문자적인 율법주의자인 사울은 아들인 요나단이 꿀을 먹었으므로 금식령을 어겼기에 죽이겠다고 한다. 완고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사울. 이러한 원칙주의자들이 무서운 사람이다. 구원을 위해서는 약속을 번복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말씀을 잘 보는 사람은 부재중에 죄를 범했더라도 용서해줘야하는 것인 반면에 사울은 책임을 전가하는데 일등인 사람이고 구원의 법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법이 최고라 여긴다. 백성은 요나단이 죽겠다고 하자 들고 일어나 요나단을 죽지 않게 했다. 그러자 사울은 전쟁의 공이 요나단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판단하에 전쟁의욕이 사라진다. 생색이 없어지니 의욕이 없어졌다. 또한 사울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만 원하는 사람으로 한테 필요한 힘세고 용감한 사람과만 교제한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만 원하는 사람 차별이 하늘에 닿았다. 4. 09240큰 사랑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요나단은 모르고 죄를 범했으나 한마디 변명하지 않고 죽겠다고 한다. 그것이 큰 구원이다. 구원을 위해서 누구보다 앞장선 요나단이었지만 전혀 생색내지 않고 죽겠다고 한다. 이런 요나단은 죄와 싸울 때만 피를 흘린다. 내 원수를 갚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를 갚는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에 관한 일 외에는 모든 것을 자기 책임지고 가는 모습이 예수의 표상과 같다. 사울도 백성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그 중심에 요나단이 중심을 잡고 있기에 백성도 사울도 살아난 것임을 믿는다. 한 사람이 중요하다. 내가 죽고자 할 때 살려준다. 살고자 할 때 죽는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요나단을 허락하시고 … 요나단 한 사람이 사울을 살리고 이스라엘을 살리고 지금의 우리를 살렸다. 나 한 사람이 중심 잡는 한 사람이 되어서 집안 살리고 목장 살리고 교회살리는 일꾼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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