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 20130602 김성연 목장 보고서★
목장 참석 : 김성연(83), 노나라(84), 김진실(85), 김현녀, 김지영(85)
<< 말씀 요약 >>
말씀 : 사무엘상 8장 1-22절
제목 : 왕을 세우라
성경은 구속사이다. 창세기에서 창조하시고 출애굽기에서 재창조하셔서 민수기까지 양육 시키시고 여호수아 때에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배 부르고 등 따뜻해지니 사무엘에 들어와 여호와의 언약궤를 부적처럼 여겨 언약궤를 빼앗겼다. 언약궤가 하나님임을 알려주기 위해 20년을 수고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엘리 제사장들을 겪고 대단한 사무엘의 시대를 거치며 영적 각성과 올바른 기도 운동도 일어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겨 한 마음이 된 것 같았다. 인간을 의지하지 말자로 결론이 나야 하는데 이번엔 인간에게 더 큰 권세를 주어 열방과 같은 왕을 달라고 부르짖는다. 급한 제목이 응답되고 살만하니 세상이 부러운 것이다. 끝 없는 구속사의 행진을 해야함을 보여주신다. 떼를 부리는 기도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이렇게 떼 쓰는 기도에 응답하셨다. 왜 우리는 떼 부리는 기도를 할까?
1. 자녀를 왕으로 세우고 싶기 때문이다.
1절.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절.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왕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인간의 왕을 구하고 있다. 사무엘은 너무도 의로운 삶을 살았으나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무엘 아버지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 위대한 사무엘 선지자도 자녀 교육에 실패할 수 있는건가, 누구의 책임인가. 엘리도 자녀교육에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아비가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사무엘의 경우에는 이유가 없다. 자식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인간의 힘으로는 키울 수 없다는 교훈으로 받을 수 있다. 부모의 믿음이 중요하지만 신앙은 철저한 개인구원이다. 히스기야 아버지 아하스가 악했지만 히스기야는 성군이었다. 반면 아들 므낫세는 악한 왕이 나왔다. 우리 예측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자식 문제는 절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교육은 엘리나 사무엘을 보아도 부모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교육은 부모의 신앙고백에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이게 정답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잠시동안 자녀들은 맡겨주셨는데 내 소유라고 생각해 온갖 감정을 자녀 때문에 겪고 간다. 자녀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힘든 자녀를 맡겨주셨으면 상급이 크다, 자녀는 기업이다. 자녀의 문제는 영원하신 기업의 교과서인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자녀 교육이 내 맘대로 되지 않으면 안타까워 소리를 지르겠지만, 자녀는 부모 삶의 결론이다.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훌륭한 부모일수록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고 자녀들만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훌륭한 부모일수록 답이 나오지 않는다. 도리어 죄가 많은 부모는 나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녀 문제는 세상 적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푸는 것이 지름길이다. 성경에는 모든 모델이 다 나와있다. 우리가 당하는 어떤 유형도 나만 당하는 것 같은데 1/4에 속한다. 별 부모, 별 자녀 없다. 부모에게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자녀를 나에게 맡겨주신 영혼이라 생각하며 신앙고백이 있는가 생각해야한다. 믿음은 자녀를 주 안에서 객관적으로 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오직 구원을 목적으로 보는 사랑이다. 자녀를 끼고 도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히스기아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영적 후사가 없어 통곡을 했다. 그런데 병이 낫고 나니 바벨론 사자에게 자랑을 하며 가진 것을 다 보여주었다.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그것을 보고 네 집의 소유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자녀들도 바벨론 왕국의 환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때 히스기아가 여호와의 말씀이 옳소이다라고 한다, 무서운 아버지 아하스 아래서 자라니 믿음이 생겼으나 ‘자녀들은 환란이 없으니 그렇게 바벨론 아래에서 훈련을 받아야 하나님을 믿겠구나‘라는 것이 인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옳소이다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축복의 말씀으로 들은 것이다. 그래서 히스기아를 성군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므낫세는 제일 최고로 악한 왕이 되고 일원성신을 섬기는 왕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바벨론에 끌려가서 그때 회개를 하고 결국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계보에 올랐다. 똑같은 악을 행하는 것 같으나 부모의 믿음이 이렇게 중요하다. 여호와는 나의 왕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히스기아에게는 환관이 되도 좋으니 하나님만 믿으면 좋겠다는 고백이 나왔다. 천국에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무엘의 아들들도 최고의 아버지 아래에서 악을 행할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주님과의 관계가 확립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왕을 세우려는 큰 동기는 자녀를 왕 삼고 싶기 때문이다. 자녀만 잘 된다면 하나님보다는 세상 왕을 의지하고 싶다. 이스라엘의 후계자를 세울 때 기득권 세습을 하면 안된다. 아들이라고 장자라고 세우면 안되는 것이 성경에 수없이 언급이 되었다. 영적 후사를 알아보기 위해 믿음의 조상들이 얼마나 시행착오를 하며 분별을 하는지 모른다. 믿음의 자녀를 키워내고 죽는 것은 상급 중의 상급이다. 순수한 신앙의 승계가 안된다면 그것이 재앙이다. 자녀가 나이고 내가 우상이기에 나를 내려놓는 것이 절대 쉽지가 않다. 내 자녀가 걷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걷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는 왕을 세우고 있고, 세우고 싶은 것이다. 버릴 수도 없고 같이 가기도 힘든 것이 자녀이다. 그게 자녀이다. 자녀가 우상인가? 자녀도 고난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옳소이다가 되는가?
2. 인간의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다.
4절.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절.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사무엘이 늙고 아들들은 이상하니 다른 사람으로 왕을 세워달라고 하면서 사무엘까지 물러나라고 한다. 지금까지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사무엘 안의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먹고살만하니 사무엘이 지겨워지는 것이다. 옆의 문화들이 너무 대단해 보이고 우리는 믿고 기도해도 맨날 그 모양 그 꼴인 것 같으니 아들을 빌미로 사라져달라고 하는 것이다. 박사학위와 스펙 가진 사람들로, 세상적으로 뽀대나는 사람들로 세워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왕을 삼는 것이 지겨우니 인간의 왕으로, 겉으로 보기에 대단한 사람으로 왕을 세워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 이라고 하신다.
6절.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사무엘은 하나님께 붇고 또 묻는 말씀에 정통한 선지자니 이것이 하나님의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하나님이 싫어 나를 버리는 것을 알기에 기뻐하지 않았다. 자신이 물러나기 싫었던 것이 아니다. 사무엘은 늙었지만 그 후로도 사울을 세우고 다윗을 세운 것으로 보아 그때부터가 전성기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버릴라고 하는 것이다. 모세는 기력이 쇠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그만두라고 했다. 각자마다 때가 다르다.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백성의 요구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타협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들의 요청을 들어 왕정을 함으로서 처벌하고자 하는 하나님이시다. 분노함으로 왕을 주시고 진노함으로 왕을 폐한다는 이야기가 호세아에 나와있다.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신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백성들이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 그냥 왕을 세우라고 하신다. 사실 왕을 세우라고 하는 것은 이 백성에게 주실 것이라고 창세기부터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동기가 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때에 세워주라고 하신다. 한 마디도 아니고 백성들이 하는 말을 다 들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고 옳고 그름으로 따질 수 없다. 열심히 성경을 보다보면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인 것처럼 비판을 하지만, 가장 전문가인 사무엘조차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가 있음을 기억하라. 그래서 죽도록 조심하고 망할 것처럼 조심해야한다. 비판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여기는 성경박사들이 있다. 자신의 죄를 치열하게 봐야하는데, 이 땅과 교회를 정죄하는 자들이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나단 선지자도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하니 좋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짓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묻고 또 묻고 환경에 순종해야한다. 사람이 비판으로 하는 것인지 사랑으로 하는 것인지는 동물도 안다. 사랑은 전달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교묘하게 하는 것이 신천지의 수법이다. 요새 이렇게 분열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조심해야한다.
8절.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구원의 날부터 모든 행사로 이스라엘 백성은 나를 버렸다고 한다. 하나님을 섬긴 것 같지만 끊임없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하신다. 사무엘을 버린 것은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한다. 큐티를 해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마른 뼈처럼 검이 되어 사람을 찌른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열매가 없다. 바리새인이 무서운 이유가 이것이다. 여호와를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더니 이제는 당신이 세운 사사를 거절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계신다.
9절.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내가 왕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라고 하신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라고 하신다.
3. 인간으로 왕을 세우는 자의 혹독한 실패가 무엇인지 알려주신다.
10절.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절.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절.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절.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절.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절.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절.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절.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절.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너희가 세울 왕이 너희를 압제하고 착취할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너희를 종 삼을 것이라고 하신다. 인간의 왕을 세웠다가는 백성의 것을 취한다고 여섯 번이나 말씀 하신다. 너희의 모든 것을 가져다가 왕의 것으로 삼을 것이라고 한다. 왕은 아들, 딸, 재산, 세금을 모두 탈취하고 결국 종으로 삼을 것이고 늘 응답하시던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사람을 왕으로 삼으면 저주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제도의 개혁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의 개혁이다. 그런데도 왕을 요구함으로써 사무엘의 사사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더 이상 섬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불신결혼 하지 말라는데 무조건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것이 너를 압제하고 착취할 것이라고 하는데 들리지 않는다. 지금 당장이 너무 좋아보여서 앞으로의 내가 종노릇 할 것을 보지 못한다. 떼 부리는 기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판단은 항상 하나님이 하신다. 내가 원했던 왕이 나를 압제하고 착취한다고 하는데 내가 원하는 왕은 무엇일까.
4. 말씀이 들리지 않아서 이 세상 왕을 계속 세우는 것이다.
19절.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20절에 ‘우리’가 네 번이 나온다. 죽으나 사나 열방같이 되는 것이 소원이다, 말 듣기를 거절하면서 그저 세상이 부럽다. 세상 왕이 우리를 위해 싸워줄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예수를 믿는데도 항상 세상을 구한다.
21절.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백성의 말을 다 들었다. 사무엘이 할 말이 없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들어라, 왕을 세우라 하신다. 하나님은 이미 인생의 연약함을 아시고 왕정을 예비하셨다. 가짜 왕을 줘서 망해봐야지 진짜 왕을 믿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하나님이시다. 때를 기다리지 못해 떼 부리는 기도는 외형적인 것을 위한 기도이다. 그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쫄딱 망하니 진짜 왕 다윗을 세우게 하신다. 외모를 너무 좋아하니 구체적인 기도라 하며 육적인 것만 기도한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망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19-22절까지 보면 들어야 할 백성들은 듣지 않고 거절한다. 10-18절까지 경고를 하는데도 자신들은 반드시 왕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하나님이 ‘알았다’고 하신다. 들어야 하는 사람은 듣지 않고 선포하는 사람이 듣고 있다. 자식이 떼를 쓰면 할 수없이 부모가 진다. 들어야 하는 사람이 말하고 말해야하는 사람이 듣는 것은 비극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 설교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사무엘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알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는다. 사역자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아야 훌륭한 사역자이다. 절제되지 않는 감정을 가지고 사역할 때 큰일이 난다. 온유했던 모세가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 혈기를 내고 자기 왕을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이 옳은지를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진짜 왕을 세우기 위해 왕을 세우라고 하신다. 모든 것을 예수님의 뜻대로 해 나가신다. 매 순간마다 감동을 주시는데 내 마음대로 왕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의 죄다. 그게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도 수고를 하신다.
왜 왕을 세우는가, 자녀를 왕으로 세우고 싶어서이다. 인간의 왕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을 왕으로 세우면 망한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말씀이 들리지 않아 계속 왕으로 세운다고 하신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하다. 예배가 사모가 되고 말씀이 들리는 삶이 될 때 진짜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는 내가 될 줄 믿는다.
<< 기도 제목 >>
★ 김성연(83) ★
직장 안에서 관계에 지혜 있기를, 같이 일하는 언니에게 담대하게 말하는 지혜 주시길
제주도 팀 기도하면서 준비하기
사람 우상 내려놓기
★ 노나라(84) ★
화요일 강의 잘 마치도록
일대일 양육 교사 끝났지만 생활예배 놓지 않을 수 있기를
★ 김진실(85) ★
생활 예배의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