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 20130526 김성연 목장 보고서★
목장 참석 : 김성연(83), 노나라(84), 김진실(85)
<< 말씀 요약 >>
말씀: 사무엘상 7장 3-17절
제목: 미스바로 모이라
미스바 회개운동 미스바 대 각성 운동 등등 그 유명한 미스바 운동이 본문에 나온다. 사무엘이 개혁을 하기 위해 미스바로 모이라고 한다. 개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회개운동이다. 미스바는 망대와 파숫꾼이라는 뜻이다. 판교 채플 첫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미스바로 모이라고 한다. 망대와 파숫꾼의 역할을 하는 판교채플인 것 같다.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동쪽 13키로에 위치한다. 이스라엘 지파의 총 집결지가 될 수 있었음은 위치적인 것 때문이다. 레위인의 첩이 비주류에 의해 살해당해서 온 이스라엘이 모인 곳이 미스바였던 것처럼 빚지고 원통하고 환난 당한 자들이 모여 우뚝 선 망대가 되어 사명을 하라고 주신 판교채플일 것이다. 그러나 미스바가 이렇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장소로 쓰이는 미스바가 또 한번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완전하게 거룩한 장소는 없다. 언제나 인생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놓지 않고 미리미리 조심하면서 가야한다는 경고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은 왜 미스바로 모이라고 하는가? 하나님이 당부하시는 것은?
1. 모이는 것을 보이라고 하신다. 사무엘이 미스바에 모이라고 그랬는데 백성들이 감동이 되어 모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4장에서 이미 사무엘은 말씀을 전했다. 그 이후 언약궤 이야기가 세장에 걸쳐 나오고 그리고 7장 3절에 다시 사무엘이 등장한다. 그동안 사무엘은 말씀을 계속 전했다. 그러나 교만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를 않았다. 시간이 지나지만 사무엘이 어떤 식으로 말씀을 전했길래 지금 이렇게 모였나 생각해봐야한다.
호감의 다섯가지 요소가 있다. 호감이 전략을 이긴다. 첫 번째는 진실성, 자기 주제를 알고 솔직한 것이다. 그렇지만 솔직하다고 아무 이야기나 하면 안되고 자기 인식에서부터 시작되는 솔직함 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관련성, 너의 상처가 나의 상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네가 아파하는 것이 내가 아파했던 것이라고 약재료로 내놓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타성. 항상 상대방을 위하는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단순성,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오로지 구원만을 목적으로 할 때에 다섯 번째로 타이밍을 맞추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와 상황을 분별하는 것은 큰 호감으로 작용한다. 언약궤를 무서워서 보냈던 벧세메스 사람들이 힘이 빠지길 기다리는 것이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무엘이 이런 방식으로 말씀을 전하며 시간을 기다렸다. 그랬더니 낮아지고 낮아질때까지 기다리며 사무엘이 메시지를 전하고자하니 이제는 사무엘의 말이 먹혀들어가기 시작한다.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모했다고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교회, 목사, 목자 등이 매력 있어야 한다. 호감을 줘야한다. 그렇게 모이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모였다. 이제 모인 사람들이 해야하는 일을 보여주신다.
2. 올바른 회개를 보이라고 하신다.
3절.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스라엘은 너무도 회개가 필요한데 회개가 잘 안된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면 모든 문제가 끝이 나는데, 회개가 안되는 것이 집집마다의 문제이다. 어떻게 회개를 할 수 있나? 사모하는 것이다. 통곡하고 애통하는 것이다. 참된 회개는 눈물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 회개가 자기 불행과 슬픔에서 야기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참된 회개는 그냥 통곡에서 그치면 안된다. 구체적으로 돌이키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온전히 돌아오려거든 이방신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하신다. 그러면 블레셋에서부터 구원받을 것이라고 약속 하신다. 그런데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 우상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우상을 제거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다. 내가 눈물을 흘리고 통곡한다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우상을 제거해야한다. 제거하지 않으면 눈물을 아무리 흘려도 회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생이 구려운 이유는 각각 애정을 쏟는 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일에 가장 기쁘고 슬픈가가 나의 아스다롯이고 이방신이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관계가 냉정해졌는지 살펴봐야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제자리를 찾아가라고, 우상을 제하라고 하신다.
사기 당하고 이단에 빠지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 욕심이 많고 자기만 똑똑하다는 자만심에 빠져있다. 힘든 환경에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상식을 놓친다. 너무도 성경 지식은 풍부한데 그걸 문자로 믿는 철저한 우상숭배자들이다. 이단에 속한 자는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했다. 큐티는 끊임없는 우상 제거이다. 오늘도 세워진 우상을 타파하고자 말씀 앞에 앉는 것이다. 구원의 조건이 회개이기도 하지만 회개의 결과가 구원이기도 하다. 회개가 너무도 중요한 구원의 필수요소이다. 사무엘은 블레셋의 지배가 이스라엘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하기 때문이라고 계속 말하고 있다. 내가 지금 돈이 없고 빽이 없어서 안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우상숭배 때문에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고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 안되는 것이다. 반드시 우상숭배가 끝나면 구원을 받는다고 약속하셨다. 남편을 우상처럼 숭배하면 남편에게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주 안에서가 아니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누구에게도 복종할 수 없다. 그렇기에 평강이 없고 계속 싸우게 되는 것이다.
4절.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이스라엘이 즉각적으로 순종을 했다. 감정적인 통곡이 아니었다. 사무엘의 말을 듣고 돌이켰다. 블레셋은 이미 거둔 승리로 인해 확고하게 이스라엘을 지배할 것으로 마음을 먹었는데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니 하나님에 대한 구원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에는 바라볼 곳이 없었는데 회개를 했더니 바라볼 곳이 생겼다. 회개를 하고나면 영육간에 힘든 문제에서도 구원이 이루어진다. 모든 가치관에서 구원 받는 것이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회개의 결과이다. 그런데 벧세메스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열심히 자신들이 할 것을 다했다. 그러면서 언약궤를 버렸다. 올바른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6절.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범죄했다’고 자기 죄를 고백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그래서 사무엘이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니 사무엘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 우리들교회를 다녔어도 목사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씀이 안들린다고 한다. 통곡하고 애곡하니 사무엘의 가르침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순종하며 범죄하였다 고백하는 공동체가 됐고 사무엘의 다스림 속에 들어오게됐다. 판교채플에 들어오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말씀에 순종하며 우상을 제거하길 바란다. 우뚝 서 있는 망대로 있기에 올바른 회개를 보여야 할 것이다.
3. 올바른 기도의 모범을 보이라고 하신다.
7절.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절.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절.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절.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올바른 회개는 올바른 기도를 가져온다. 회개를 하고나니 올바른 기도를 하라고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다. 전에 쳐들어온 것과 지금 쳐들어온 것은 너무도 다르다. 지금은 구원받고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구원 받기 전에는 너무 무서워서 해결이 안되는데 이제는 두렵지가 않다. 구원받기 전에는 사시나무 떨 듯이 떨어서 있는 것도 다 빼앗기지만 구원받고 나서 쳐들어오는 사건은 다 기도로 승리하게 해주시니 없는 것도 생긴다. 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구원 받고나면 언제나 이기는 싸움만 싸울 줄 믿는다.
사단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명예도 권세도 돈도 아니고 회개이다. 그래서 내가 충만하면 사단도 옆에서 춤을 추고 부흥을 한다. 그래서 블레셋이 들어왔다. 옛날에는 기도할 줄 몰랐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 하고나니 하나님밖에 바라볼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기도요청을 했다. 누구에게 이 문제를 고할까가 달라진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 택한 자들을 끊임없이 양육해야한다. 언약궤를 수호신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했듯이 사무엘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함께 기도한다. 올바른 기도의 모범을 보여줬다. 기도를 누구에게 부탁해야하나도 보여준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부탁을 하고 사무엘이 쉬지않고 기도하여 이겼다. 회개가 너무도 크다. 회개가 결국 이기게 했다.
4. 올바로 도우시는 하나님을 보이라고 하신다. (에벤에셀의 돌)
12절.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 이라 하니라 13절.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내 옆에 누가 사는가에 따라서 블레셋이 쳐들어오고 못 들어오고가 결정된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내일도 지켜주신다는 것이 믿어진다. 회개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자신에게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남을 도와주고 회복시켜주고 물질도 도로 찾게되고 생각지도 않던 무서운 아무리와도 평화를 갖게 된다. 이 지명이 전에는 패배의 장소였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장소라도 변화될 줄 믿는다. 예전에 실패한 사람들이지만 변화될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고 도와주실 줄 믿는다. 회개와 기도와 적용이 올바르니 보상으로 하나님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의 적을 막아주신다고 하신다. 사무엘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그래서 우리도 조심해야한다. 항상 망할 것을 예비해야한다. 복음은 장차 받을 환란이다. 이 땅의 것은 완전한 것이 없다.
에그론에서부터 가드까지 빼앗겼던 것을 다 회복한다고 하셨다. 시작되는 판교채플에서 우리는 평화를 지켜야 한다. 믿지 않는 자는 전도해야하고 강한 아모리 사람과도 화평해야한다. 상처 받아서 교회 안나오는 사람들도 모두 평화를 누리길 바란다. 판교채플은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에벤에셀의 돌이 되길 바란다.
5. 그 모든 것으로 올바른 예배를 보이라고 하신다.
15절.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절.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절.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집회가 열리면 ‘미스바 대 각성회’ 이렇게 열린다. 그런 부흥회는 화려하고 멋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서의 집회가 끝난 후 금세 순회하면서 다스리고 있다. 전도한 사람의 후속 양육이 중요하다. 한번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계속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15-17의 각 절마다 ‘다스렸다’고 한다. 영어로 judge이다. 공의에 가깝다. 우리들 교회가 공의의 하나님을 앞장서서 가르치길 바란다. 6절에서 눈물 흘리고 범죄 했다고 회개할 때 사무엘이 다스렸다고 하는데 그것도 judge이다. 공의와 사랑은 사실 똑같다. 그런 하나님의 잃어버린 예배를 회복하는 운동이 미스바의 부흥 운동이고, 영적 지도를 계속 받아 가야한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가르치고 우뚝 서있으라고 이 말씀을 주셨다고 믿는다. 사람이 많이 모였어도 끊임없이 가르치고 다스림을 받았다.
맨 마지막이 예배로 끝났다. 사람이 갖는 최대의 축복이 예배이다. 일주일동안 아스다롯의 우상이 많이 있으나 말씀을 가지고 사투를 하다가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그래서 예배가 감동이고 감격이어야 한다. 우리 삶의 절정은 예배이다. 그래서 7장 마지막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는 것이다.
6. 올바른 말씀 묵상을 보여야 한다.
4장 1절에서 사무엘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된다고 했다가 싹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7장에서 등장한다. 7장 3절부터 17절까지는 말씀이다. 사무엘이 한곳에 머물지 아니하고 이곳저곳에서 말씀으로 다스렸다한다.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적용하려고 할 때에 진정한 영적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기초에 말씀이 있다. 말씀 묵상을 기조로 깔고 가는 것이 미스바 교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했을 때에 말씀대로 실천하고 이루어졌다는 것이 미스바에 모여야하는 큰 목적이다.
사무엘은 선지자로, 사사로, 제사장으로 그 역할을 감당했다. 미스바 교인인 우리는 영적으로 말씀뿐만이 아니라 육적으로도 세상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뚝 서서 다른 사람을 도와줘야한다. 올바른 회개, 기도 예배, 도움이 보여져야한다. 도움도 말씀대로 도움을 받는 것을 보여 줘야한다. 그건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스다롯이 매일 깨지기 위해서는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해야한다. 하루에 한가지씩이라도 나의 우상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이다. 추상적으로 살지 않고 구체적으로 큐티를 하고 통곡한 결과와 돌이킴이 있어야 한다.
판교채플의 첫날이 망대이고 파수꾼인 미스바로 모이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미스바의 부흥 운동을 하라는 것이고, 올바른 회개, 기도, 하나님의 도우심, 회복, 예배, 말씀 운동을 제대로 보이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주심을 감사드린다.
판교채플이 교회다운 교회가,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올바른 교회가 되고 회개, 기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고 말씀 묵상이 되는 곳이 되게 하소서
내 자신의 악이 다 무너지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여 주소서
<< 목장 스케치 >>
양육 교사 훈련 때문에 늦게 만난 목장,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할리스에 도착하여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다 성연언니 발견!! 밝고 환하게 맞이해주는 성연언니와 진실이를 보니 처음 만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난주에 만난 사람들 같았다능 +_+
먼저 성연 목자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언니의 지난 시간을 스스럼없이 오픈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함께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던 이 자리까지 있게 된 핵심을 간략하게 정리 하자면 ‘바람을 피우신 아버지의 수고’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온 가족이 함께 섬기는 명문 가정으로 성장하며 매일매일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답니다. 두 번째로 나눔을 한 저 역시 아빠의 수고로 인해 우리들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 번에 오지 않고 멀리 아프리카까지 돌아 돌아서 오게 되었다는 점~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진실이는 지금 새로운 관계로 많은 고민이 있음을 나누었습니다. 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나 그 누구도 막기 어려운 그 길을 걸어가는 진실이를 위해 함께 기도하기로 했어요!!
오늘 말씀처럼 올바른 회개, 기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말씀 묵상이 있는 미스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D
<< 기도 제목 >>
★ 김성연(83) ★
생활예배의 회복이 일어나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길, 생색내지 않길
우상인 돈과 사람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한 주 되길
★ 노나라(84) ★
수요일, 금요일 강의할 때 호감의 법칙 잘 적용하여 듣는 사람들의 귀가 열리는 강의 되길
회사랑 수익 배분 관련 문제에 있어 지혜 주시길
★ 김진실(85) ★
수요예배 드릴 때 말씀이 잘 들릴 수 있길
생활 예배의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