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선지자
사무엘상 3:11~21
전 주일 말씀에 ‘부르다’ 동사가 11번이나 반복된 것은 말씀 희귀한 시대에 사무엘을 부르시기 위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합니다. 이러한 음성은 참 선지자로 세우기 위함이며 참 선지자는 비단 목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1. 자녀에게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11절, 12절, 13절, 14절)
순종하는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선 엘리의 가문이 멸문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인격적인 엘리에게 있어 가장 큰 죄악은 제물을 갈고리로 갈취하고 성전의 수정 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아들들의 죄악을 알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라 교육시키고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라 여겼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죄악은 자식을 객관화 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는 어떤 예물과 제물로도 속죄가 될 수 없는 중죄라고 하십니다. 그러하기에 경건의 모습은 있지만 능력이 없는 그들에게서 언약궤를 뺏으시겠다 하시나 성경안의 이와 같은 하나님의 경고는 우리들에게 공포 속에서 살라는 말이 아니라 말씀 붙들어 매라는 은혜의 메시지라고 합니다. 참 선지자는 목자, 부모, 목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며 이처럼 누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식을 객관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합니다. 정신병이 병이 아니라 말하면서도 실상은 언급하지 않고 병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세상 현실이라고 하니 성경적 가치관을 가진 공동체에서 주일에 예배드리고 나누는 것이 어쩌면 최고의 치료가 될지도 모른다 하십니다. 잘못된 자녀에 대해 직면하는 것이 두렵고 싫었을 엘리는 방탕한 아들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될대로 되라 식의 행동으로 본이 되지 못하였으니 이처럼 우리 역시 엘리처럼 자녀에게 육적양식만 주는 부모는 아닌가 생각해보라 하시며 저주 받을 걸 알면서도 짓는 죄악에 대해 생각해 보라 하십니다.
2. 말씀을 가감하지 않아야 합니다. (15절, 16절, 17절, 18절)
사무엘이 엘리에게 망할 것이니 회개하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은 것은 성령이 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무엘에게 말씀 가는 것이 두려웠으나 이미 경고를 들었기에 엘리는 들은 것을 모두 이야기 하라 하니 마지막엔 결국 모든 이야기가 하나님의 선한 소견임을 인정하였다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사건이 왔을 때 가슴 아프지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하며 이처럼 들을 건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무엘이 엘리에게 말한 것은 복음이며 복음은 장차 받을 환란이니 숨김없이 모두 이야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진정한 복음은 평강을 가져다 주어야 합니다. 환란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한다고 말해 주는 것이 진정한 복음이기에 숨기는 것은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사무엘은 여지껏 공손했지만 마지막 복음만은 단호하게 전달했고 이처럼 단호한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일지라도 가감 없이 말해주어야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고 복음은 장차 받을 환란이라 하셨으니 이러한 복음의 내용에 자유함을 가진 엘리는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마지막을 온유한 모습으로 마감할 수 있었다 합니다. 세상 부부가 아무리 엘리트라도 자식을 대함에 있어서는 가감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마가렛 대처와 같은 훌륭한 정치가라도 믿음 없고 예수님이 없는 가정에서는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하며 가감 없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9절, 20절, 21절)
전하기 싫은 것을 전하는 것이 참 선지자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말의 권위는 말하는 이의 인격을 수반하기에 엘리의 말은 권위가 없을 수밖에 없었으며 인간의 말은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하시나 사무엘의 말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으니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였기에 가능하였다고 하십니다. 말씀 묵상이란 것은 내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을 듣는 것인데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선 적용을 하여야 합니다. 적용이 구속사의 꽃입니다. 적용은 신학을 오래 했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어려서부터 큐티를 하면 위로의 말 교훈의 말 모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에 부담의 짐은 질지언정 그것을 감당하면 말씀이 언제나 꿀송이처럼 들린다고 합니다. 사사, 선지자, 제사장 직분을 모두 사무엘이 겸하니 적용으로 하나님을 따라가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며 드러나지 않게 보호해주심이 있다고 하십니다. 신성한 실로에서 언약궤를 빼앗길 예정인데 모든 것을 말씀으로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모르고 엘리의 아들들은 소용없는 제사만 드리고 있으니 말씀 묵상은 이처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십니다. 누구든 참 선지자가 가능하나 자신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하며 가감하지 않고 자녀를 객관적으로 여길 때 우리의 말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좋지 않은 이야기도 내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다른 이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나눔
금주 주일은 봄바람이 살랑대서 였을까...갑자기 오리고기 바람이 불어 차량으로 이동 고즈넉한 ‘옛골 토성’이란 식당에서 육적 양식을 채우고 파푸아 뉴기니 커피와 함께 영적 양식을 채우고 나누었습니다. 물주 역할을 해주신 호진 형제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한 번 더 온누리...??^^
주제 :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가지 않으면 저주당할 줄 알면서도 행하는 것은?
목자 : 요즘 사업적으로 힘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어려움도 뒤따라오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께서 도움을 주셨는데 금전적인 부분이 조금은 해소가 되었지만 왠지 아버지가 못난 아들 때문에 엘리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면서도 찜찜한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런 상황을 타계하려 조금 더 힘내서 움직여볼 생각이고 투잡을 생각중이다. 감기가 심하게 왔는데 물구나무서서 50미터를 달려도 가뿐했는데 30미터 가는데도 힘들더라.....
경훈 : 우린 50미터 발로 달려도 힘들다...( 거침없는 우리 막내의 한마디 빵 터졌습니다.^^)
소망 : 금주에 어머니랑 다툼이 있었다. 비록 자식 장래 생각해서 하시는 말씀이지만 그로인해 반복되는 갈등에 지치고 무엇이 정말 답인지 모르는 상황이 만들어지곤 한다. 나 스스로는 확실히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님 입장은 다르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합의점 찾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 스트레스를 다른 무엇인가로 풀려하니 그것이 참 문제다.캠퍼스 사역 중에 학교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는데 인본주의적 성향의 학교에 가증함을 느꼈는데 결국 내 가증함을 먼저 보지 못하고 정죄한 꼴이 되어버렸다. 진정 내 자신이 먼저 점검되어야 하는데 요즘 너무 다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짓는 죄는 없다 하지만 혼자서 개인적으로 짓는 죄에는 속수무책이다. 혼자서 보내는 것에 대한 익숙함 마인드 자체가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경훈 : 늘상 짓고 있는 소소한 죄들은 매일 가슴 깊이 느끼니 굳이 언급을 중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문제는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아는데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다. 취업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부하고 있는 내 모습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무엇을 하든 이게 하나님의 뜻일까 아닐까 고민이 안되니 더 큰 문제이긴 한데 하나님께서 말씀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있으니 그것으로 안도하고 있는 요즘이다.
목자 : 소소한 죄는 일단 제치고서라도 네 고민과 문제가 죄가 아닌 이상 상식적인 하나님께서는 저주하지 않으실 것이다. 다만 모든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본질이 아닐까 싶다. 오늘 말씀처럼 사무엘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라..결국 결론은 하나님과 함께 가고 있느냐가 문제다.
경훈 : 고등학교 절친 2명을 따로 금주에 봤다. 세상적으로 잘나가는 친구 조금은 뒤처져 보이는 상반된 두 친구를 만나게 하시면서 어떤 것을 하고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게 하셨다. 친구들 만나면서 여지껏 공부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위축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을 온전히 인정하고 진심어린 말을 해주는 것에 왠지 모를 신기함 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 좁은 시야와 시선으로 세상을 보아 왔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호진 : 엘리가 자녀들의 죄를 알면서도 내버려둔것에 대한 심판을 봤는데 진로에 관한 나의 계획에서 오는 가족들과의 의견충돌에서 무작정 피하고 싶어 대화단절로 일관했던 나의 모습이 엘리의 모습과 같음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 자꾸 따라주지 않으니 나의 인내 없음을 하나님께서 보게 하신다. 불평, 불만, 음란과 같은 죄악으로 잠시나마 피해보고자 하는 내 모습이 보이니 말이다.
대호 : 할머니께서 2주 전에 소천하셨는데 상을 치르는 과정에서 작은 아버지들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보았다. 표면적으로 크게 보이지 않았지만 돈 앞에서 문득문득 무너지는 것만 같은 가족애를 보았을 때 솔직히 작은 아버지 들에게 믿음이 있었다면 그랬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보았다. 결국은 수준이 안되는 관계로 가족을 향한 일방적 정죄함으로 끝나버렸고 오늘 말씀에 복음은 장차 받을 환란이기에 단호히 말해주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난 복음을 위한 전도는 커녕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정죄만 했던 내 모습을 보게 하신다. 분명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결국 무관심으로 사람에 대한 애통함 없는 내 자신을 여전히 고수하고 견지하고 있음을 느끼고 회개한다.
※ 기도제목
이경훈 (82)
1. 교제하는 친구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도록
2. 규치적이고 부지런한 생활 할 수 있도록
서소망 (81)
1.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의지하기
김호진 (80)
1. 말씀을 가리지 말고 묵상 잘 할 수 있도록
2. 큐티 잘 할 수 있도록
3. 가족들과 사소한 것이라도 대화할 수 있도록
배대호 (78)
1. 큐티가 늘 뒷전인데 큐티하며 내 죄 볼 수 있도록
정수석 (78)
1.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하고 싶은 것을 무분별하게 하곤 하는데 죄에 빠지지 않도록
2. 하나님께서 사건 주실 때 순종하며 갈 수 있도록
3. 진로에 대해 묵상하도록
4. 요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지만 예전처럼은 아니더라도 주님 향한 헌금 드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