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롯기 4:11~22
배우지 못한 이도 설교가 들리는데 잘난 이는 육이 무너지지 않아 영이 세워지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합니다. ‘찬송하다’는 단순히 입술로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배하고 기뻐하고 자랑하며 삶으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증거하는 것이 찬송이라고 합니다. 기업무르기는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오로지 여호와만 찬송의 대상입니다.
1. 증인 공동체의 축복
⑴ 증인공동체의 축복이란? (11절)
사람은 사람을 축복하기 힘든데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표상이 된 보아스는 장로들 앞에서 자신의 손해를 무릎 쓰고 모합여인과 결혼하겠다고 담대히 선포하자 이것을 증명해주고 축복해주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합니다. 이것이 증인 공동체의 위력이며 이렇게 목장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자신의 진심을 나누면 그가 유명해지길 기뻐하고 기도하는 것이 세상모임과는 다른 점이라 합니다. 이것은 가족인 사촌, 친척들도 못하는 일이며 남의 일에 기뻐할 수 있는 건 하나님만 가능하기에 여호와만 찬송받을 수 있는 분이라고 합니다. 찬송한 복은 신령한 복이며 우리의 공동체가 찬송 신령하다 합니다.
⑵ 앞선 증인이 있다. (12절)
증인 공동체에서 나누면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으며 그이가 앞선 증인이라 합니다. 우리는 앞선 증인을 보고 그처럼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얻는다 하며 시아비와 동침한 다말 발치 이불을 들었던 롯의 행동은 수치스러운게 아니라 기업무르기 위함이었기에 예수님의 계보에 올려질 수 있었다 합니다. 이렇게 보기 위해선 사건을 구속사적으로 볼 수 있어야 가능하며 수치스러운 간증을 알아주는 건 목장밖에 없다 하십니다. 치부를 드러내는 증인 공동체 이기에 우리는 알아들을 수 있으며 공동체가 축복이고 찬송이라 합니다. 솔직한 나눔의 공동체, 증인이 있는 공동체, 축복된 증인의 공동체에 우리는 속해 있습니다.
⑶ 내 자녀 남의 자녀를 구별하지 않는다. (14절)
진심으로 축복할때도 그 자녀까지 축복하는 공동체가 되기는 힘든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증인 공동체는 시샘없이 축복을 주고 받아야 하며 내가 복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같은 진정한 공동체의 만남이 축복입니다. 더치페이만 하던 목장 예를 들어주시며 직분이 낮은 이에게 죄를 물어선 아니되며 목자는 믿음 좋아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먼저 와서 하는 것뿐이라 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완전함이란 없기에 우리는 상대방 입장을 먼저 살펴야만 합니다.
2. 여호와의 축복이 따라온다. (13절)
쉬지 않고 성취키 위해 달려온 보아스는 결국 결혼하여 동침하게 되는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고 잉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낳으려면 영육간에 건강키 위해 노력하여야 하는데 예배와 큐티로 영을 살리고 술,담배를 끊는 적용으로 육을 살려야 한다 합니다. 할 거 다하면서 아이를 바라여선 안되며 아이를 낳기 위한 동침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동침하면 잉태는 저절로 된다 합니다. 롯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지만 하나님께선 그것마저도 모르게 고쳐주셨으며 믿는 자 출산위해 아이를 낳는 것은 축복이라 합니다. 이처럼 최소한의 노력에도 축복을 주시는데 우리는 이것이 최대한의 노력처럼 보여 행함을 두려워하니 흉년 하나에도 벌벌 떠는 것이 현실이라 합니다. 자녀를 예수 믿고 가게 하는 것 즉 영적자녀 하나를 낳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순종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3. 후손의 축복은 오직 여호와께서만 하신다. (14절, 15절, 16절, 17절)
보아스와 롯의 자녀는 영적자녀이기에 나오미도 저절로 안게 될 수 있었으며 다른 여인들도 저절로 나오미의 아들이라 칭할 수 있었다 합니다. 이렇게 영적자녀는 내 자식 남의 자식이 없다 합니다. 롯과 보아스의 자녀지만 성경에선 오로지 그들의 자녀라 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모두의 영적 자손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이처럼 롯기의 주제는 ‘영적 자녀를 위해 살라’이며 그렇게 살면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라는 말이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 합니다.
영적 자녀를 낳는 것만큼 축복중의 축복은 없습니다.
4. 혈통과 육정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계보 (18절, 19절, 20절, 21절)
수치의 족보지만 롯기는 어마어마한 세계를 보여주었으며 롯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합니다. 롯과 보아스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으며 내 조상이 부끄러워도 예수님 믿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되었다 말할 수 있다 합니다. 구속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모든 사건을 문자적으로 밖에 볼 수 없으며 인생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로서로 축복함으로 베들레햄이 메시아의 중심이 되었듯 우리도 지금 이 장소를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 나눔
실로 오래간만에 목장식구들끼리만 모여 나눔을 한듯한 느낌이...
그동안 조인을 너무 많이 했었나 봅니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맥도널드에 모여 소망형제의 기도를 시작으로 나눔을 가졌습니다.
목자: 간증했던 자매를 보고 기억에 많이 남았다. 식물인간이 된 오빠를 두고 하나님께 얼마나 많이 묻고 구했을까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나누고 증인됨이 축복이라 하셨는데 감기에도 불구하고 교회가신다고 했던 아버지를 내가 긍휼히 여기니 공동체의 모든 증인도 함께 아버지를 긍휼히 여겨주심을 근래 느끼고 있다. 금주 아버지 목장모임을 집에서 했는데 조금 트러블이 있었는데 오늘 간증 듣고 내가 아버지 아니었으면 주님 믿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괜스러 더 미안해 지더라.. 나를 위해 수고해주셨다는 적용이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싶다. 나는 강압적인 것이 있으면 좀 답답함을 느끼곤 했는데 집사님들께 순종하듯 아버지께도 순종하는 적용을 해야겠다. 새해를 맞이해 요즘 세금 정산하느라 정신없는데 집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더라 아직 손익분기점도 못 넘은 것 같고.. 남 밑에 있을 때는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뛰었는데 막상 독립하니 더 나태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니 결국 사업적인 부분이 잘 풀리지 않는 건 결국 내 탓이 아닌가 싶다.
호진: 목자 형이 아버지 이야기를 하니 그 순간 나도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난 아버지와 대화자체를 안한다. 특히 사소한 대화에는 아예 대꾸도 안한다. 요즘엔 다른 가족들에게도 그러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일 때문에 그런 것 같진 않고 원인을 모르겠다.
목자: 대화 자체도 문제지만 원인을 모르는게 더 큰 문제 아닌가?
호진: 그렇다 곧 명절도 오는데 다 귀찮다.
목자: 목장 모임 때도 가끔 멍하게 있는 너를 본다.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아무래도 진로에 대한 고민과 정체함이 그런 이유 아닌가 모르겠다. 가족도 말리고 목장에서도 말렸는데 진로가 그런 식으로 막히니 그런 것 아닌가 중요한건 너의 진로를 가족이나 목장에서 말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막으신 사건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해 인지하고 기도는 해보고 있는가?
호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담사란 직업 자체가 시간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드는 직업이다 보니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소망: 하나님 말씀 하시는게 어떻게든 환경을 열어주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먼저 순종하는게 우선이다. 지금 나의 모습을 봐도 그렇다.
헌일: 만약 진짜 소망이 있다며 지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생각한다. 뚜렷한 응답과 그것으로 쓰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든다면 결정을 빨리 해보는 것이 낫지 않나 싶은데..목장은 둘째치더라도 가족이 반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같다.
호진: 목장 처음때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계속된 가족의 반대에 진로에 대한 준비를 짧게 준비하다 얼마 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됐다.
수석: 가족이 도와주고 안도와 주고는 네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가족에게 기댈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경우엔 말씀보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는 듯한데 큐티 말씀에 때가 아니므로 초막절에 올라가지 않는다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소망: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주변 의견에 순종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주의 일이라면 당연히 감당하고 앞으로 어떻게든 나아가야 할듯하고..
헌일: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현실감각 없는 사람들 별로라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남자로써 가족부양이란 책임이 있을텐데 현실적인 부분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목자: 호진이 너 같은 케이스 주변에서 꽤 봐왔는데 결국 다 포기하고 직장구하는 이들도 봤고.. 하나님 일하려면 그런 나중의 일까지 감당할 자신이 있어야 하는데 만약에 그러지 못하면 나중에 자신이 무너진다. 믿는 사람으로서 본을 보여야 하는데 그러고 있지 못하는게 현실 아닌가..다른 이를 위한 상담 말고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를 위한 상담먼저 해보라. 하나님과 부모님께서는 나의 답답함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 좋아하신다. 진심 담아 괴로운 이야기 해보라. 안되면 순종하는 적용하고 현실감각 없는 것도 나이 먹으면 힘든 일이다. 미지근하면 안된다. 뜨겁던지 차갑던지 둘 중에 하나만 하자.
헌일: 어머니 하고의 관계에 있어 참 성실하고 좋으신 분인데 막상 부딪힐 일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이중적으로 대하는 절대 변하지 않는 혈기 많은 내 자신을 본다. 어찌된게 가장사랑하는데 가장 혈기 부리는 나의 모습이 스스로 인정이 안된다. 호진이의 성품 좋음과 소망의 웃음 합치면 좋을텐데..오늘 이야기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수석: 아니다. 지금처럼 목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화한다면 사랑 받으실 것이다.^^
헌일: 어머니도 그러신다. 다른 사람들한테 대하듯 당신도 그렇게 대해달라고 하시더라.
목자: 그 사람과 틀린걸 죽을 때까지 인정하고 인내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던데 그러지말고 어머니께는 그저 순종하는 것이 답인 것 같다.
헌일: 어머니께서 아침에 좀 조용히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청소하시는 모습에 좀 화가 났다. 새벽 3시에 잤는데 창문 다 열고 청소하시니...
목장식구들 일동 아우성!!!!! (혼자 사는 저로썬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는..ㅡㅡㅋ)
헌일: 넌 절대 청소 안한다는 어머님의 말씀이 실상은 감사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못마땅해하는 내 모습이 실망스럽다. 저녁에 어머니랑 마트에 다녀오고 오붓하게 어머니와 저녁을 먹고 싶어 손수 음식을 해드리려 했는데 널브러진 주방을 못보시고 그저 당신이 하시더라..그런 어머니다운 어머니 모습을 보는데도 내 혈기에 인내하지 못하는 못난 내 자신만 남아 있더라.. 뭐든지 적당히 하시면 되는데 힘들다 하시면서도 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목자: 티격태격해도 지금의 모자관계 더없이 보기 좋은 것 같다. 그대로 지금을 누리셨으면 한다.
헌일: 담임목사님 같은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다. 영적인 걸 사모하는 어머님을 기대하지 않았나 싶다.
목자: 작은 회사를 다녀도 불만이 있고 큰 회사를 다녀도 불만이 있는 법이다. 형의 죄를 먼저 보는 적용이 필요한 것 같다. 잘안되는 모습은 인정하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보자.
소망: 저번 주에 장례식에 갔었다. 신대원 시절 같은 반 이었던 선교사분이 천국에 가셨다. 파기스탄분이셨는데 한국으로 귀화하셨고 슬하에 아들 넷이 계신 분이었다. 경제적인 도움이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복도에서 쓰러지셨다. 왠지 모를 자책감과 부끄러움이 들었다. 안정된 길이 보장됐음에도 어려운 길로 택하신 신실하신 분이셨는데.. 그렇게 되신 것에 주님께 제발 일으켜달라 기도했다. 그러면서 나는 왜 두려움 때문에 복음증거하는 마음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랬더니 하나님의 길에 순종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고 부끄럽더라.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무얼까 생각하고 기도해볼 생각이다.
목자 모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고 목원들의 나눔에 귀 기울여 주신 우리 목자님~~감사해요
이렇게 증인 공동체를 지켜주시는 목장식구들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 서로서로 감사하고 축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