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 (룻 3:14~18)
진짜 성취를 하기 위해 진짜 쉬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1. 순종의 매력이 쉬지 않아야 한다.2. 오해를 피할 줄 알아야 한다.
3. 상대방의 입장을 세밀하게 배려하는 것을 쉬지 않아야 한다.
4. 서로를 위함이 쉬지 않아야 한다.
5. 기다리는 것을 쉬지 않아야 한다.
■ 강원희
여자친구가 원하는 경제적, 신앙적 부분은 내가 못 미치지만, 여친은 나를 받아 줄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주어서 고마운 것이 있다. 여친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내가 문제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 인식이 될 것 같고, 내가 여자를 편하게 해 줄 수 없으며,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목자님 : 여친이 순종의 매력이 있나?
- 강원희 : 그런 것 같다.
- 목자님 : 오해를 피할 줄도 아는 것 같은가? 배려해 주는가? 쓸데없는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해 주는가?
- 강원희 : 그렇다.
■ 목자님
결혼 전에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은 것이 결혼 후에는 참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너를 인도한 것은 하나님이시지 여친이 아니다. 여친을 통해서 원희를 인도하셨던 것뿐이다.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취가 된 것이다. 결혼해서 내가 전적으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결혼은 선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선택하는 것은 잘못이다. 결혼은 둘이 서로 좋아서 타인을 살리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감당할 수 있으면 결혼하고 감당 할 수 없으면 하지 말아라. 취향은 다르지만 standard한 기준이 있기 마련인데, 소녀시대의 멤버들을 각각 좋아는 해도 윤아는 모두가 인정하는 미모를 가지고 있기에 무대 가운데 선다. 각자의 취향은 있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그 표준을 무시하지 말아라.
■ 박성아
수련회 가기 전에 상태가 좋지 않아서 수련회 때 회복이 되었으면 했는데 환경이 열악해서 별로 였다. 하지만 ‘회복이 되어서 반짝이는게 아니라 힘들어도 그 안에 예수가 있어서 반짝이는 것이다’라는 김병년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가 되었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씀에 하나님 이렇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수련회 중에 계속 회복이 되었다 다운이 되었다 하는 과정을 겪었다.
■ 홍태진
인사평가가 나왔는데 놀랍게도 A를 받았다. 예전에는 내 열심으로 죽어라 일해도 B를 받기 힘들었는데 이번에 A가 나온 것이다. 평가 내역을 보니 대인관계, 자기계발의 노력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 열심과 인정 받기 위해 일을 했던 지난 과거를 버리고 순종하고 큐티하고 나아갔더니 좋은 결과를 주신 것 같다.
나는 먼지가 많아지면 만성염증 때문에 힘든데 수련회 때 먼지가 많아서 눈이 따끔했지만, 내가 우리들교회에 온 과정들을 떠올리며 참았더니 감사함이 나왔다.
형은 순종을 하셨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적용하지 못 하는게 있는데 형은 정말 그대로 순종하셔서 주신 결과인 것 같다. 하나님이 살 길을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순종을 안 하기 때문에 살 길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뒤에서 애굽 군대가 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다. 죽을 것 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세는 막대기를 던지는데, 내가 할 일은 홍해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막대기를 던지는 것이고, 이것이 최소한의 순종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해 오던 습관, 생각들로 순종을 안 하고 만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하시지 정말 못하는 것을 하라고 하시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순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것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것 하나라도 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을 길을 살 길로 만들어 주신다. 형이 부서를 옮기는 것이 죽을 길이었는데 하나님은 살 길로 열어 주셨다.
■ 윤혜진
요즘 내가 깨어있다고 생각하지 않은데, 믿음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이 많아 그렇게 느껴지고 내 안에 갈등이 너무 많다. 매번 자제, 절제를 해야 하고 만남도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로 나누어 지고 그러면서 벗어날 용기도 없어서 양다리에 걸쳐 있는 듯 하다. 순종하기 싫고 내가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기도도 못 하겠고 답답할 뿐이다. 모든 것이 자신이 없고 믿음, 결혼 또한 그러하고 나이에 대한 압박이 드니까 그런 것 같다.
■ 김지은
나는 내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이 쑥스럽고 어렵다. 전에 아는 언니가 나에게 ‘성실하게 교회에 오는 너를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겠어’ 라고 말해 주었는데 나는 속으로 얼마나 나를 칭찬해 줄 것이 없으면 그런 것을 칭찬하실까 하는 생각에 별로 기쁘지 않았다.
모든 성공한 사람에게는 좋은 멘토가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런 사람도 없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그런 사람을 주시지 않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고동욱
내 스스로 율법적이어서 가족을 전도해야 한다는 것이 있었지만, 우리 가족을 싫어했기에 가족을 위한 기도는 잘 하지 못했다. 가족을 섬기는 것이 변화되는 것이고, 순종하고 나아가는 것이 성화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가족들을 정죄하면서 10년을 살아 왔다. 내가 잘 하고 있는 줄 착각했고, 그 동안 순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회개가 되었다. 가족을 외면했고, 형이 혈기가 많은 것에 대해 그건 내가 못 고치는 것이니까 하며 무관심으로 지내왔다.
UBF에서는 성경공부를 한 뒤 일정한 패턴의 정형화 된 소감을 쓰고 깊은 묵상이 없는 수련인데 반해, 우리들교회의 수련회는 찬양과 기도, 말씀, 그리고 게임이 있으니 좋았다. 예전엔 살기 위해 기도를 했었는데 이번 수련회 때는 좀 더 가볍고 편하게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수련회 안에서 편하고 사람들과 관계도 좋고 기도도 하다 보니 안정감이 느껴졌다. 사람에 대해 외면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조원들을 대하다 보니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윤주희
우리들교회에 수련회 온 이래로 불편함이 많았던 수련회였다. 찬물에 머리를 감아야 했고, 잠을 자는데 코가 시리고 발도 시렸다. 하지만 수련회에 올 수 있는 환경도 주셨는데 어느새 불평만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져서 회개 기도를 했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 동생한테서 언제 집에 올 거냐는 전화를 받았다. 수련회 마지막 날이 아버지 제사여서 집에 가서도 편히 쉬지도 못하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는데 동생은 거기에 대놓고 이딴 식으로 할거면 집에 오지도 말라는 말을 하길래 나는 내가 지금 집에 안 가는게 아니지 않냐며 낮은 톤으로 말 했더니 동생이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엄마도 뭐라 안 하시는데 동생이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화가 났지만 수련회 버스에 내려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먼저 말씀 듣고 있는 나를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집에 도착해서 늦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하고 부지런히 도왔고 다행히 동생도 나에 대해 화를 내지 않았다. 제사를 지낼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가정이 예배 드리는 가정이 되었으면 한다.
■ 김재동
예수님의 첫 표적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왜 첫 번째 표적이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며 묵상하는 것이 큐티이다.
결혼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고 행사인데 예수님은 신랑이시고 우리는 신부이기에 그 중요한 우리의 잔치에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결혼식은 많이 준비된 자리였지만 포도주가 부족했는데, 우리 인생에 있어서 내가 아무리 치밀한 준비를 해도 이처럼 언제나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은 건기의 끝에 포도주를 만들어 물 대신 목마름을 해결했기에 포도주는 기쁨을 상징한다. 그 잔치에 물이 두 세통 든 항아리가 여섯 개가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은 포장되지 않은 도로여서 먼지가 많았는데, 손과 발을 씻기 위함이었다. 항아리 물에 손을 씻으니 맑은 물이 금새 허드레 물로 변하였는데 이 더러운 물을 예수님은 포도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더럽고 죄가 많고 중독이 많고 문제가 많은 사람이어도 하나님은 누구나 먹고도 감탄할 극상품의 포도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랑은 나고 너희는 나의 신부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싶었던 것이다. 물이었던 존재를 포도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면 포도주가 부족해서 잔치를 열 수가 없다. 하인의 위치에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시키시는 것을 하기만 하면 예수님을 알 수 있고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우리는 연회장이 되려고만 한다. 예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은 빛이라고 하셨는데 빛은 정말 신기한 것이다. 17세기까지 뉴튼은 빛을 입자라고 했다. 하지만 18세기에 빛은 파동이라는 설이 나왔고 20세기에 와서 아인슈타인은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고 하였다. 즉, 빛은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인 셈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빛이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면서 공의롭기 때문이다. 죄는 용서할 수 없으면서도 우리를 살리시려는 것이다. 우리가 빛 자체를 볼 수는 없다. 빛을 비추면 다른 게 보이면서 빛으로 인하여 그 형상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자체를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을 알게 되면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빛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주에 그렇게 두 가지 속성을 가진 것이 빛 밖에 없다. 물론 하나님과 빛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셨기에 빛은 창조물에 불과할 뿐이다.
■ Bonus Time
- ‘Talk show with 사역자님’ 시간에 질문했던 것 중 궁금한 몇 가지에 대한 목자님의 답변입니다.
Q.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옥에 보낼 것을 왜 만드셨나?
A. 믿음에는 ‘왜’가 없다. 우리는 완전히 믿어지면 ‘왜’가 없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이 성숙해 가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질문이 생기기 마련이고 나도 이런 질문들을 많이 했었다.
하나님은 지옥부터 만드신 것이 아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시는 등의 시간적 순서대로 만드신 것 같지만 하나님은 시간에 구애 받는 분이 아니시며, 지옥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선악과로 인해 죄를 지었는데 죄의 결과가 결국 지옥이 되었다. 꼭 맞는 예화는 아니겠지만 간단한 예화를 들려주겠다. 옛날에 한 왕국이 있었는데 화목했던 왕국이 사치와 향락으로 타락하기 시작해서 죄를 많이 짓게 되자 왕은 결단을 내렸다. 앞으로 죄를 짓게 되면 그 사람의 눈을 뽑겠다고 했는데 그 첫 번째 해당하는 자가 바로 하나 밖에 없는 왕의 아들이었다. 왕이 고민을 하다가 아들의 눈 하나를 뽑고 자신의 눈 하나를 뽑았는데 이는 아들을 사랑하는 것도 증명하고 법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할 수 없는 분이고 또한 백성을 사랑하신다. 죄는 반드시 벌을 해야 하고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원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옥에 보내려고 창조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려고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죄를 지었고 우리에게 살 길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믿지 않는 죄를 짓는 자들을 가만히 두면 안 되기 때문에 지옥이 있는 것이다. 죄 중의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다.
Q.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나?
A. 자유의지를 다르게 해석하면 안 된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 없이 이상한 사람과 결혼하라고 하시면 해야 할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도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만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에 대해 선택의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악과를 먹지 않는다, 먹는다, 둘 다 하지 않는다 라는 선택의 가지 수가 아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한 것을 하지 않으면 죽음이 따라 오더라도 그 죽음은 하나님이 주신 옵션이 아니라 하는 것 밖에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길을 하나 밖에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처럼 기계적은 창조를 하셨고, 인간은 인격적인 창조를 하셨다. 너 나 사랑해야 한다 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창조하신 것이다. 사랑은 선택을 주지 않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 ‘너 나 사랑해야 해’ 라는 것은 기계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선택할 기회를 준다는 것인 것인데 선택할 기회를 하나님께서 어디까지 주셨냐 하면, 자기를 버릴 정도로 우리에게 자율적으로 선택권을 주셨다. 우리 인간을 만들 때 하나님을 알게 해서 절대로 하나님을 못 버리게 만들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자신을 완전히 버려도 될 정도로 사랑의 자유 선택 의지를 주신 것이다. 길가던 사람에게 하나님이 ‘저 여자와 결혼해!’ 라고 하셔도 나는 안 한다. 그것은 결국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인데 하나님이 과연 그렇게 인간을 창조하셨을까? 하나님이 ‘저 여자와 결혼해!’ 라고 해서 해버리는, 감정도 없고 의심도 없게 사람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기계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다. 선택할 수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선택이 없으면 사랑이 시작될 수 없다. 자발적으로 나를 선택해 줘야 좋은 것이다.
Q. 술과 담배는 죄인가?
A.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처음 들여오신 선교사님은 미국의 보수 장로교 출신이셨는데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술을 먹고 담배를 피는 생활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도 들어가지 않으니 술을 먹지 않는 기독교를 들여오신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23~24절 말씀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 쓰여있는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타인의 유익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아폴로, 제우스 신을 섬기는 제사를 드린 후 버려진 음식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먹여도 되냐 하고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질문하니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내가 어떤 것을 해서 타인이 시험 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술과 담배는 성경에 죄라고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몸은 성전이기에 몸을 더럽히면 안 된다.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전도사도 술을 마신다며 시험 드는 사람이 많다면 안 마셔야 한다. 내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Q. 내 열심을 빼면 무기력해지는데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나?
A. 오늘까지 내가 준비한 것은 내일 나를 자랑하기 위함인데 그 자랑하기 위함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 나를 높이려는 것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즉, 내 열심과 욕심이 없어지면 무기력해 진다는 것인데 그렇지만 내 욕심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법이다. 왜냐하면 목표를 달성하는 즉시 또 다른 목표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 먹고 싶어서 먹다가 결국 죽는 것으로 끝나는 인생으로 되어버린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채워주시지 않으면 그 인생은 헛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소유로 채워져서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이 아니다. 진정한 인생은 관계에서 오는 것이고 이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 무기력은 내 야망이 무너진다는 것이고 그것을 하나님이 일으켜 주실 것이기에 잠시 무기력해도 괜찮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무기력하다는 것은 강박이다. 의미 있는 대상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에 무기력하다는 것이지, 그것이 자신의 열심은 아닌 것이다. 내가 아무 것도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나님이 일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