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배려함은 여유 있는 자가 남에게 베푸는 정도로 생각하기가 쉽다. 그런데 배려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닌 반드시 해야 하는 성경의 명령이다. 고대 그리스 극작가 메난드로스는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영약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배려다 특히 남자는 그런 배려에 굴복한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배려를 할 때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많고 내 마음 같지 않을 때도 많다. 상대방을 배려 한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 믿음으로 배려하는 것이 진정한 배려이다.
1) 믿음으로 하는 배려는 대상을 차별하지 않는다.
보아스가 배려하는 대상은 이방여인이다. 그들이 하찮게 여기는 존재가 아니라 원수처럼 여기는 모합여인이다. 그런 태도가 중요하다. 보아스는 룻을 배려하였다. 우리 사회는 배운 자가 더 이기적이고 가진 자가 더 무섭다고 한다. 학력이 높을수록 지연과 학연과 인연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남녀 평등의식도 매우 낮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대체적으로 개인주의적인데 누구의 영향인지 보면 어머니의 학력이 높을 때 그리고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 높을 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다. 우리는 목자이기에 어떤 환경도 받아들이는 태도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다. 신앙인은 남을 배려하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깨닫고 의도적으로 배려하는 인격의 훈련을 해야 한다. 배려는 믿음에서 출발해야지 본질적인 배려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면 다툼밖에 없다.
2) 믿음의 사람이어야 진정한 배려를 주고 받을 수 있다.
믿음의 사람이어야만 서로 배려하는 것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배려가 잘 되는 것이다. 보아스와 룻은 믿음의 사람이기에 배려가 잘 되는 것이다. 보아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고 그 첫 계명이 부모에 대한 공경인데 믿음으로 네가 행한 모든 일을 들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베들레헴에 와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모를 위해 이삭을 줍는 룻의 소문이 모든 사람에게 들렸다. 구원에 일은 모든 사람이 알게 되어 있다. 내가 예수 믿은 것은 비밀이 아니다. 반드시 알려지게 되어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으면 내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소문을 내신다. 룻도 지금 하는 일이 믿음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소문을 내신 것이다. 보아스에게는 룻이 자기 나라를 버리고 온 것은 오히려 여호와께서 독수리 날개로 업어오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어쩌다 나오미 집에 시집와서 베들레헴으로 온 룻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네가 하나님을 쫓았기 때문에 온전한 상이 주어질 거라고 네가 믿음의 일을 했기 때문에 온전한 상이 주어질 거라고 하였다. 그 때 사사 시대에는 각자 소견의 옳은 데로 행했다. 소견이 옳은 데로 행했다는 것은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한 땅에 들어갔는데 그 감격이 식어버려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다 재미가 없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소견이 옳은 대로 행하기 때문에 그들이 무시하는 모합여인 룻이 도리어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과 너무나 다른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면서 이 땅에 들어온 것이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룻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부르고 등 따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여 갈 바를 모르고 쫓아온 룻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옳은 데로 행하던 그 시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퉁이를 열어놓고 그 사람들을 먹였다는 것이다. 말씀대로 사니까 말씀대로 사는 룻을 분별해냈다. 둘 다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가 장차 부인을 위한 배려가 된 것이다. 구속사로 성경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 땅의 모든 사람과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우리가 결혼을 할 때에도 바로 나를 알아주는 바로 한 사람이면 된다. 부모님의 어머니는 부모님들이 적용할 사항이고 자녀들은 무조건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되는 거지 이런 이야기를 자기 입장에서 강하게 하면 안 된다. 같은 믿음을 보면 감격하는 것이 있다. 좋은게 좋은 것은 아니다. 믿음이 아니면 아닌 것이다 라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내가 배려는 하겠지만 진정으로 둘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배려는 믿음으로 아니면 할 수 없다. 둘이서 하나가 되니까 다른 사람도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보아스는 믿음으로 정확하게 룻을 분별해냈다. 룻이 하나님이 내 날개 아래 보호함을 받으라고 보내준 사람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인생에는 수많은 수동적인 어찌하지 못 하는 일이 있다. 과부가 된 것도, 베들레헴에 따라온 것도, 보아스 밭에 간 것도 다 환경에 따라서 룻이 끌려갔지만 그러나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그 상황에서 열심히 말씀따라서 살다보면 그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환경들이 되는 줄 믿는다. 어쩔 수 없이 가야 되는 길에서 항상 적극적으로 내 삶을 잘 살아야 한다. 어떤 환경이 오든지 잘 살아야 한다. 그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되는 것이다.
2. 믿음으로 배려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자.
1)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불리 먹고 남을 정도로 배려하였다.
2) 곡식 딴 사이에 줍게 하고 책망하지 못하게 한다.
3) 조금씩 뽑아서 자존심 상하지 않게 하였다.
4) 실제적으로 배려
5) 시모를 잘 섬기도록 배려를 한다.
6) 오랜 기간 이삭을 주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배려했다.
7) 그녀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배려했다.
사랑은 작은 배려에서 시작되지만 열매는 지속적인 긴 배려를 통해서 나타난다. 이런 만남이 최고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3. 배려의 결국은 구원을 위한 배려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결국은 구원이지만 역시 배려의 결국도 구원이다. 믿음의 후손을 위한 배려가 되어야 한다. 나오미는 보아스의 배려를 통해서 후손의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기업을 무를 자 는 룻기의 주제다. 영적으로 나의 기업을 무를 근족은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이다. 죽을 것 같은 데도 예수님만 만나면 나는 나의 기업을 물러주시는 그 구세주를 만나는 것이다. 룻이 보아스를 만난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모든 문제가 끝나게 될 줄을 믿는다.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인 것이다. 룻이 보아스에게 은혜 입은 이야기를 했을 때 룻은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몰랐지만 나오미가 깨닫게 해 주신다. 서로 격려하고 깨닫게 해주면서 영적인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최고의 배려이다. 믿음의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것 이것이 최고의 배려이다. 우리가 이삭을 주우러 나가야 할 밭이 있고 가지 말아야 할 밭이 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만나지 말아야 될 사람이 있다. 예수를 잘 믿으려면 어디는 가야하고 어디는 가지 말아야 하는지 분별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배려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단호하게 내 밭에 있으라고 한다. 때가 될 때까지는 내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는 있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구원을 위해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구원 때문에 우러나오는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가지 말아야 할 곳,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잘 분별하고 믿음으로 잘 분별하는 법은 내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이삭 줍기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배려와 배려 받을 만한 적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룻의 적용이 있었기 때문에 보아스의 적용이 있었기 때문에 이삭줍기가 가능한 줄 믿는다. 내 배를 채우는 이삭이 아닌 구원으로 인도하는 이삭줍기 사명을 정말 허락하시는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해야 한다.
<기도제목>
장원: 회사생활 지혜롭고 슬기롭게 잘 시작하도록
술 적용 단호하게 잘 배려하도록
기현: 일대일 양육 잘 마무리 하도록
기말 고사 잘 마치도록
학기 잘 마무리하고 충전 잘해서 계절학기 잘 준비하도록
승운: 회사 마무리 잘 하도록
주형: 맡은 바 잘 하도록
QT,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