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룻과 나오미는 고부간의 관계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관계 이상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어떤 성경학자는 룻기가 암울한 사사기와 피폐한 사무엘서가 굉장히 딱딱한 조개껍질 같다면 그 조개껍질 사이에 끼어있는 영롱한 진주알 같다고 표현했다. 룻의 충성이 죽음에 이르는 충성이었기 때문이다. 충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룻이 충성할 수 없는 것을 충성했다.
* 충성할 수 없는 이유
1) 누구도 정죄하지 않는 관행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2) 너무 가난하다
3) 룻은 아버지와 근친상간 해서 이루어진 모압족속 백성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족속을 개만도 여기지 않는다. 심각한 인종차별을 기다리고 있다.
4) 재혼은 꿈도 꾸지 못 한다.
5) 나오미는 하나님의 축복이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도 고백했듯이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고백한 것처럼 세상적으로 불행이 따라다니는 여자인 것이다. 보여준 것이 하나도 없다. 예수 믿어서 된 일이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6) 남편도 자식도 없는 이 가정을 누구를 위하여서 지켜야 하는지 명분이 없다
7) 무엇보다도 나오미는 존경할만한 부모가 아니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해준 것이 없어서 충성할 수 없다가 주제다. 우리가 결혼에 충성하고 싶어도 이혼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수백 가지고 사랑할 수 없는 이유는 수천 가지고 충성 할 수 없는 이유가 각자가 수두룩 각상으로 있다. 부모는 훌륭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부모가 잘해줘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부모가 나를 다 버리고 못 되게 하고 술 먹고 이혼하고 주님 만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나에게 돈 잘 주고 이래서 좋은 부모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부모는 부모인 것이다.
2. 충성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룻이 어머니를 가만히 지켜보니까 한번 실수해서 모압땅으로 왔지만 그 가운데서 어느틈엔가 나오미가 믿음이 회복되었다. 그 사람이 믿는 하나님을 룻이 믿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된 것이다. 옆에 오르반은 절대 믿지를 못 하지만 룻은 하나님이 들어온 것이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에 충성 할 수 없는 이유들이 단번에 불식이 되어가지고 인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권세보다 더 높은 권세가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어머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종교를 바꾸고 나라를 바꾸고 언어가 다른데 언어를 극복하고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충성인 것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좋은데 그 백성은 싫다’ 이거 말이 안 되는 이유인데 하는 사람이 있다. 한번 결혼했으면 그 가문을 지키겠다. 룻의 죽음에 이르는 충성이다. 하나님을 믿고 보니 모든 게 뚫렸다. 어떤 면에서 자기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시어머니를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을 내가 주님을 만나면 존경하고 사랑하고 잘 모시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혼자된 시어머니가 불쌍해서 모시겠다는 것은 오래가지 못 한다. 믿음은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하나님이 되야지 사람에게도 헌신하게 되는 것을 믿는다. 신명기 5장 16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데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부모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신성함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를 자녀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신성함을 비쳐주는 역할을 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라는 1계명을 모르면 부모도 부모 노릇을 못 하고 자식도 자식 노릇을 못 하는 것이다. 자식들은 하는 일이 부모를 거역하는 일이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의 권위를 자식들에게 비추어주려면 영적 훈련을 해야 된다. 스스로 영적 훈련을 해야 자식들이 부모를 존경하는데 영적 훈련이 내 자식만 끼고 도는 것이 아니라 영적 훈련을 해야 한다. 이렇게 큐티를 하고 목장을 하는 것 이게 이타적인 것으로 자녀들에게 보인다. 이것이 자녀들에게 존경 받는 최선의 훈련인 것이다. 자식된 내가 부모가 너무 이상한 부모가 많지만 거듭나고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면 아무것도 주는 것이 없는데 하나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서 그 사랑이 넘쳐서 여러분들에게까지 가는 것이다. 내가 내 부모 이것만 생각하다가 지경이 너무 넓어졌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크고 놀라워서 지경이 넓어져서 나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신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육신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부모를 최선을 다해서 공경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믿음을 남겨주지 않으면 절대로 효도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육적 생명을 모르면 영적 생명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감사한 것이다. 그런데 영적 생명을 받은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우리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이렇게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들 교회에서 설교를 그렇게 들으면서도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고 아직도 부모를 원망하고 인간의 사랑에 집착하고 원망하니까 사회가 다 원망이 되고 우리들 교회 와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이다. 아직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놓지 않기 때문에 아직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하나도 해결이 되지 않은 분이 우리들 교회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유감스럽다. 사람의 사랑이라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충성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 밖에 없는줄 믿는다. 어떤 경우에도 내 생의 끝은 주님 밖에 없다. 내 항해의 끝은 주님이 되어야지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이지 누구를 만나고 사랑해서 내 항해의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룻이 주님을 만나고 나니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부모님을 공경하게 된 것이다. 내가 만난 예수님이 이렇게 위대한 것이다.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주님이 계신 곳이라면 내가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말하기를 그치는 인생, 원망에서 좀 그치고, 집착에서 좀 그치고 하나님을 만나면 정말 룻과 서로 말을 그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다. (충성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 동안에는 인간적으로 나오미가 인간적으로 오는 것을 거부했지만 룻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확신한 것을 보고) 오르바는 구원에 대한 한 시각이 안 되었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돌아가기로 굳게 결심할 베들레헴이 어디인가. 다 하나님 앞에 가야하고 교회, 예배, 기도, 목장, 사명, 봉사의 자리에 가야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말 내가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편하게 해줘야 하는데 상대방이 불편하다고 하는데 나 혼자 사랑하고 나 혼자 좋아하고 그것은 상대방을 편하게 해줘야 하는데 남편의 자리로 가야되고 아내의 자리로 가야되고 각자 성도의 자리로 가야되고 각자 자기의 자리로 가는 것이 충성인 것이다. 상대방이 힘들다고 하면 자기 자리로 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니까 조금 더 진전이 안 되면 충성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타적이지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우리는 잘못 왜곡된 사랑은 ‘나는 상대방을 위해서 불 속에라도 들어가겠다’ 인간적인 거랑 영적인 것이 맨날 섞여서 정말 힘든 분들이 있는 거 같다. 충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 룻은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신앙적인 기회로 삼았다. 오르바는 세상으로 갔지만 룻은 신앙적인 자리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기회로 삼았다. 충성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울 수도 없다. 오직 주의 사랑으로만이 오르바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입을 맞췄지만 떠났다. 우리는 어떻게든지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결국 남는 것은 믿음뿐이 없다.
3. 변명하지 않는 것이다
항상 어떤 일이 생겨도 더 깊은 회개로 나아가는 것이다. 6명 중 베들레헴에 입성한 사람이 그 두 사람이다. 천국에 입성한 것이다. 천국 가는 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모든 걸 버리고 죽기를 각오한 충성과 헌신으로 왔더니 고향백성들이 다 반겨주는 게 아니라 떠들면서 왜곡된 시선과 관심으로 보는 것이다. 다 죄인의 입장에서 목장에서 나누니까 가능하지 전부 의인들이 있는데 내가 혼자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를 하겠는가. 죄인의 입장에서 들어줘야 한다. 회개한 사람은 사람의 말을 잘 견뎌낸다. 나오미는 ‘내가 초라한 것은 흉년을 피해서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 죄의 징벌 때문에 더 이상 나오미라고 불릴 자격 조차도 없는 죄인’ 이라고 고백하고 더욱 깊은 회개로 나아간 것이다. 마라는 ‘쓰다, 비참하다’라는 뜻이 있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 보다 나는 더 죄인이다) 라고 말한 것이다. 죄 고백을 하는 것이 당당한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까지도 극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게 대할 때 나오미처럼 달게 받고 참되게 회개하고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사람이 바로 충성된 일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룻기의 주제가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라고 하는 데 ‘텅 빔’ 인 것이다. 든든한 남편 장성한 아들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내 마음을 비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징벌이라는 단어에는 훈련이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은 징벌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 그 사랑을 알고 나오미가 이런 간증을 한 거이다. 룻은 나오미 옆에 나는 무엇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정한 충성의 동역자는 룻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챙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된 것이다. 이런 관계가 룻과 나오미 사이에 이루어 진 것이다. 챙겨주지 않아도 목자님이 교회가 우리 가정이 쓰임 받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마음 먹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장 충성된 일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주님의 사랑 때문에 감사한 사람은 앉아 있는 것만도 감격하고 감사하고 내가 어쩌다가 이 자리에 앉아있나 이것 때문에 자체로 감사한데 룻하고 나오미는 이런 관계가 된 것이다. 충성에는 변명이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더 깊은 회개로 나가는 것이다.
4. 추수할 것이 있게 하신다.
흉년이 들어서 떠났는데 풍성할 때에 돌아오게 하셨다. 내가 적용만 하면 시작이 반인 것이다. 우리는 금새 더 깊은 회개로 나아갔더니 은혜를 베푸시고 사랑 받는 나오미가 말할 사람을 거쳐서 다시 사랑 받는 나오미로 돌아오게 한 줄 믿는다. 풍성하게 해주셨다. 흉년에 떠났는데 추수 #46468; 에 돌아오게 하셨다. 늘 죄의 고백이 이루어질 때 그 사람에게 추수할 것이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주님의 일꾼으로 살겠다고 하면 반드시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줄 믿는다. 충성이라는 것은 항상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