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김재동 목장 - 우리들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
말씀 : “룻기 01:06~14”
제목 : “선택”
설교 : 김양재 목사
[말씀요약]
대선을 앞두고 누구를 선택할지 그게 우리의 화두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선택을 해야하는지 알아 보겠다.
첫째 말씀이 들리는 선택이 회고의 선택이다.
(06절)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찬송의 떡집에서 말씀이 안들리다가 모압땅에서 나오미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오미의 뜻이 즐거움과 희락이다. 말씀의 집에서 키우지 못하고 모압땀에서 살게되고 모압땅에서 희락과 즐거움으로 잘 살고 있었다. 이럴 수 있다. 무엇이든 성품으로 넘어 갈 수 있다. 주식 집사님이 10년동안 안바뀌었는데 나오미도 낙천적이다. C.S 루이스는 고통은 귀막은 마이크라했다.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갔는데 더 흉해졌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셨다. 권고는 하나님이 방문하신것이다. 자기가 모압땅에서 말씀이 들리니 정신이 반짝 한것이다. 말씀이 들린것은 회개이다. 회개는 되돌아오는 것이다. 우리의 세상 축복이 말씀을 못 듣게 하는 건 저주이다. 말씀으로 미리미리 훈련을 받으면 된다. 어쨌든 여기서 있으면서 말씀이 들리기 바란다.
두번째 자유의지로 선택하게 하신다.
(07절)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08절)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09절)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절)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11절)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12절)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13절)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너희는 어미땅으로 돌아가라 하나님이 나를 치셨기에 나는 너희로 인해 슬프다. 그럼 큐티를 해보겠습니다. 나오미는 회개하고 자기는 왜 같이 안가려 했을까? 이런의문이 들어야 큐티가 된다.
회개해서 유턴해서 말씀이 들리고 첫사랑이 회복되면 정말 좋은 것이다. 나오미는 자기가 그땅을 버리고 왔기에 자기가 제대로 보여준게 없다. 자기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나 두 자부들은 그렇지 못했기에 생각해서 돌아가라한 것이다. 이땅에서 자기는 자기가 죄인으로서 자부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신앙이라는 것은 내가 구원 받은 것외에는 자랑할께 없다. 내가 갈길은 사망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 사명의 길, 좁은길이다. 나오미는 자부들이 객관적인 현실을 알려주고 자유의지로 선택하게 한것이다. 선악과도 자유의지요 가나안 정탐꾼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의지로 10명의 정탐꾼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선택을 통해서 주께서는 훈련시키신다. 자부들의 믿음이 각각 다르듯이 결혼도 마찬가지다. 신결혼은 나는 가진게 없고 보여줄께 없고 나하고 결혼하면 힘든 길을 가야 한다고 진솔하게 얘기해야 한다. 이게 신결혼이다. 인간은 다악하고 죄인이다고 미리 힘들고 어렵다고 미리 솔직하게 얘기하는게 냉정한거 같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다. 결국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룻이 예수님계보에 오른 것처럼 떠나지 않은 이게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다. 10년전 룻기 묵상을 한 후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 교회가 이렇게 은혜를 받았다.
세번째 사망과 생명의 선택은 우리가 한다.
말씀을 못듣고 사망을 선택하는 자가 있다. 은혜의 길, 멸망의 길이 있다. 나오미가 강권하기에 오르바는 떠나고 룻은 남았다. 그결과 오르바는 성경에서 없어지고 룻은 성경에 남게 되었다. 오르바는 약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리고 연약한 사슴이다. 룻은 선한 벗이라고 한다. 오르바는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우리는 용모와 성품에 속으면 안된다. 오르바가 나중에 골리앗을 낳았다는 것이다. 즉 오르바는 세상적으로 잘 살다가 지옥갔다는 것이다. 오르바는 골릿아, 룻은 다윗을 낳게 되었다. 오르바는 나오미를 따라가다 되돌아 간것이다. 오르바는 멸망의 길, 룻은 생명의 길이다. 결혼할때 한가지 선택이 중요하다. 오르바는 믿는 시어머니를 따르려 했으나 믿음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안된다. 교양이 구원을 받는게 아니다. 악을 쓰고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오르바는 자기 욕심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버린 것이다. 사울왕도 유다도 마찬가지다. 자기 욕심때문에 자기가 선택한 것이다. 누군가 계속 얘기를 했어도 선택은 자기를 합리화 하면서 선택한다. 내가 아무리 울어도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한다.
(히브리서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중도에 포기하면 안된다.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언제나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건 아니다. 순간의 선택이 가장 힘들다. 입시, 승진, 이직, 직장, 결혼 등을 선택할때 말씀으로 선택을 하면 큰것도 잘 선택할 수 있다. 나오미는 남편을 잃어도 깨닫지 못해서 두아들을 잃은 다음에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사망과 생명의 길을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다.
[목장 나눔]
▶ 목자
어제 형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신혼집에 데려다 줬다. 태우고 가면서 뒷자리에서 둘이 하는 말이 지나가면서 아주 좋은 아파트가 보여서 형수가 저집을 살 수 있을까? 하자 형은 안된다는 것이다. 형은 아주 숫자에 강하고 명확하다. 그러자 형수가 실망 하는 것이다. 둘이 아파트 얘기만 하는걸 보면서 저거 외에는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번주에 아이들을 데리고 에버랜드에 갔다왔다. 에버랜드에서 느낀것은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임을 알았다. 기다리는 시간 90분 기구타는데 1분 30초 였다. 인생이 지루하고 그속에서 아주 잠깐 좋은일이 생기는것이다. 우리 인생은 기다렸다가 영원히 천국에 들어가는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는게 지루한데 어떻게 해야하나? 기구를 타려는 즐거움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것을 보고 우리도 천국에 가는 것을 사모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사모함이 있으면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다. 아름다운 가정을 주실것을 사모하며 이세상을 기다리는 것이다.
▶ 강원희
지금 현재로서는 먹고 살만큼 벌고 있다. 요즘 일적인거 말고 개인적인 취미활동이 없다.
게임도 술도 마찬가지다. 술이 맛이 없다. 막걸리도 카스도 마찬가지다. 할께 없어서 재미가 없다.그래서 기분이 않좋다. 내 즐거움들이 없어져서 기분이 좋지 않다. 여자친구하고는 맨날 싸운다. 맨날 끝내자고 하는데 네가 정힘들면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했다. 나도 엄마가 힘들어 하는걸 봤기에 차라리 난 혼자 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여자친구한테 네가 결정하라구 말했다. 하지만 난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의 기타가 없어지자 알코올 중독으로 갔다가 다시 기타를 잡으면서 다시 정상으로 됐다고 한다. 자기가 무엇인가 통제할께 필요하다. 그래서 원희는 일대일 양육후 악기를 권한다. 꼼꼼하고 정확한 사람은 음악을 하면 잘한다. 음악이나 미술과 관련된 취미를 해보기 바란다. 예수 믿으면 세상적인게 다 끊어진다. 그러니 기타를 권한다. 네가 통제할 수 있는 네가 원하는 것을 찾아 해보기 바란다.
오늘 목사님도 말씀하셨듯이 결혼 하루 전에도 아니면 않하는게 맞다. 그러나 네가 헤어져도 교회는 꼭 나오길 바란다. 믿음이 중요하다. 너의 선택은 여기에 꼭 붙어 있는 것이다.
사랑은 무엇일까요?
내가 괜찮아지는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내가 스스로 괜찮다고 느끼지 못하면 흠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 자존감이 낮으면 성격 좋고 집안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냐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을 수록 흠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정말 충분히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돼도 이상한 사람을 만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최고라는 가치관이 없어서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최고로 여기기에 자기가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자기가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어떤 조건을 갖춘사람 앞에서도 꿀릴께 없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대로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안이 좋아야 하고 돈이 있어야 나를 귀히 여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만 보고 결혼했다가 고통속에 살게 된다.
[모래위에 세운집]
모래위에 집을 세운집이라고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 보화를 하늘에 쌓으라고 하신다. 우리는 탁류가 오면 모래위에 지은 집인지 반석위에 지은집인지 알게 된다. 겉으로보면 화려해 보여도 탁류가 오면 알게 된다. 탁류가 오면 나의 가치관과 보이는 것이 다라고 했던 가치관들이 무너질때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가치관을 쌓게 된다. 이런 탁류를 한번 겪다보면 이게 다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반석위에 쌓게 되는 것이다. 나의 무너짐과 하나님의 무너짐은 다르다. 나오미도 남편만 죽었을때 돌아오면 좋은데 두아들이 다 죽었어야 돌아오게 된다.
할머니가 돈이 많았을때 내가 우리들 교회와서 목사님 설교 말씀이 사람이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영이 세워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구원을 위해서는 육이 무너져야 한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서는 할머니 돈이 없으면 된다. 나는 돈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회개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1년뒤 할머니 돈 관리 하던 아줌마가 돈을 갖고 도망갔다.
내친구 정동진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예금보험공사에 들어간 친구가 1,2년 다니고 그만뒀다. 부모님이 예수님을 안믿고 부부금실이 좋고 돈도 있었다. 이 친구도 고민끝에 나랑 같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가 사기를 맞을 비슷한 시기에 친구 아버지가 불치병이 걸리셨다. 아버지가 불치병 걸리셔서 우리들 교회에 오셔서 3년뒤 침대에서 누워서 찬송가를 부르다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어머님은 우리들 교회 목자가 되셨다.
[질문]
여러분들은 우리 가족이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이 세워지도록 그런 기도를 하겠어요?
나오미 처럼 남편과 두아들이 다 죽고나서야 돌아오길 바라나요?
우리 집안이 어떤 문제가 생겨서라도 구원을 받기만을 바라나요?
▶ 고동욱
제가 잘못 기도한거 같다. 제가 대학생때부터 부모님을 전도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부모님이 우습게 여기셨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를 쳐달라고 기도했더니 그뒤 1,2년 후에 어머니가 뇌졸중에 쓰러지신적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외도가 문제다. 얼마전에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려지셨음에도 아버지의 외도가 끊어지지 않아서 제가 기도하길 아버지가 하시는 일도 안되길 바라는 기도를 했다.
어머니를 쳐달라 아버지 외도를 막아달라는 기도가 중요한게 아니고 그렇게 해서라도 구원받을 수 밖에 없는 구원이 목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괜찮은 집안에서 내가 기도하는거 보고 자기고 기도했는데 순탄하게 온 집안이 우리들 교회로 오게 되었다. 구원이 목적이 되어서 육이 무너져서라도 영이 세워지길 바란다면 그렇게 기도할 수 있지만 자기가 가족의 고통을 보고 저는 참을 수 없는데 정말 그 방법밖에 없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해야 한다. 그 사람의 구원의 애통함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난 할머니와 애착관계가 없어서 그까지것 그 돈 없어도 된다고 했다. 솔직하게 기도하길 바란다.
▶ 윤혜진
아빠도 그런것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아 가셨다. 그런데 오빠한테 또 하기는 어려울꺼 같다. 목사님께서 내남편이 살아있음을 감사하라고 하셨을때 눈물이 나왔다. 엄마가 아플때는 정말 눈물로 기도했는데 엄마가 건강해 보이니까 나몰라라 하고 오빠의 백혈병을 생각하면 오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다시 살아났을때는 정말 감사했는데 왜 나만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나 이런 생각이든다. 오빠와 엄마가 살아게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는데 몇번 못했다. 오빠를 돌아오게 해달라고 그런 기도를 하지는 못할꺼 같다.
각자 믿음의 수준대로 하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과 은혜를 주시면 하면되고 지금은 자기 수준대로 하는게 적용이다. 오빠한테 문자하나라도 보내는게 적용이다. 아니면 청소해주고 메모지라도 남기는 것이다. 구원의 길로 놓고 생각을 하면 창조적인 생각이 나오게 된다. 작은것부터 적용하는 것이다. 이런게 너를 깨어있게 하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이 모든 환경은 나를 거룩하도록 깨어 있게 하는 것이다. 나의 의나 열심으로 하는게 아니라 참된 회개에서 나오는 애통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래서 참된 평안은 또다른 구원을 위해 애쓰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단은 때려치라고 꼬드긴다. 보이는거 감정, 느낀는대로 하라고 속삭인다. 이게 포스트 모던이즘이다.
[포스트 모던이즘]
포스트 모던이즘은 다원론과 이원론이다. 너도 맞고 나도 맞는다. 1인칭 미디어 시대이다. 네뜻이 아닌 네감정이 아닌 한분의 뜻대로 살라고 하면 돌맞는 시대이다. 이게 포스트모던이즘 시대다. 나는 나다. 교회와 사회는 다르다. 머리는 이렇고 가슴은 이렇다. 이렇게 다 나누는 것을 이원론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앙과 국가가 분리되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을 떠나가게 했다.
여러분은 다 속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절대적인 것을 믿고 살았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게 맞다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게 맞다. 내인생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단이 네맘대로 절대적인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신앙도 국가도 사회도 다 분리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교육과 문화속에 살고 있기에 우리속에 이런생각이 들어와 있다. 오리지 하나님 한분만 옳으신 분이다. 우리는 다 죄로 타락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존중할때는 평등주의를 가지돼 생각은 엘리트주의를 가지면 된다. 평등하면 생각과 행동도 다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생각은 다르고 각각의 사람을 존중은 해줘야 한다. 유럽은 포스트 모던이즘으로 정치와 신앙이 서로 나눠지게 되었다. 미국은 존F케네디가 학교에서 성경을 떨어져 나가게 하면서 그 가문은 저주받게 되었다. 미국의 공교육이 지금은 엉망이다. 성경은 이원론이 아니라 일원론이고 영과 육은 하나고 내 뜻이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뜻만 있다. 계몽주의는 인간은 교육시키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에서 나왔다. 가장 합리적이라는 독일인들이 유태인을 학살하면서 끝났다.
세계도 역사도 하나님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로마가 중심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중심이다. 그래서 나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있는 것이다. 믿지 않는 우리 아버지도 나 김재동 때문에 있는 것이다. 믿는 너 때문에 다른 이들이 수고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거 내가 보는게 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내가 믿고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다 나 때문에 있는 것이다.
적용은 믿음의 수준에 따라 말씀에 의거해서 작은것부터 실천하는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걸 기뻐하신다. 왕의 명령을 위해서는 자기 몸을 불살랐던 옛날에는 당연했다. 지금 우리는 포스트 모던니즘이라는 가장 강력한 적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주에 술을 두번이나 마셨다. 왜 원희오빠는 술이 맛이 없다고 했을까요? 저도 처음에는 교회오는게 좋고 술도 마시지도 않고 술자리도 없었다. 그때는 정말 성령충만했다. 이번주 적용으로 11시에 일찍 일어나서 큐티도 충분히 하고 기도도 했는데 12시에 끝났다. 보통 1시에 일어났는데 조금 일찍 일어났을뿐인데 정말 여유로웠다. 친구랑 만나서 술을 마셨다. 전 술보다는 술마시는 분위기 사람만나는게 좋다. 어제는 가까운 산으로 친구랑 같이 등산하면서 오랜만에 서로 신앙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되었다. 우리집에 와서 와인을 마시면서 서로간에 눈물을 흘리면서 나눔을 했다. 술을 마시면 하나님 얘기를 꼭 하면서 나눔을 하게 된다. 믿는자로서 이래도 되는지! 술을 끊는다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자리가 정말 좋은데! 술을 안마시는 적용을 지키겠다고 하면 세상의 모든게 끊어질꺼 같아 그게 걱정이어서 하지 못한다.
찬송가 중에 '예수를 나의 구주로 삼고' 3절에 보면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내안에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래야 되는데 나는 세상을 끊지 못하는거 같다. 말씀을 듣고 눈물만 흘리는게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해야하는데 말씀듣고 그때만 눈물 흘린다. 오늘 말씀대로 내가 선택하는데 있어서 오르바 같은 내 자유의지대로 내원하는데로 선택하면산거 같다. 오빠도 그렇지만 누굴의 위해서 이제것 살았다. 예전에 엄마랑 통화를 하다가 엄마가 오빠도 이모도 이것저것 다 해주라 해주라 하니까 내가 빵! 터졌다.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펑펑 울었다. 엄마한테 장문의 메일을 쓰면서 내가 그때 왜 화내고 소리질렀는지 아냐구 엄마도 가슴에 상처를 받았겠지만 시간이 지났어도 그때 내가 얼마나 서러웠는지 아냐구 내맘속에 있는 얘기를 써서 보냈더니 엄마가 우리딸이 투정을 처음으로 했다고 속마음의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엄마는 우리딸이 평화로운삶을 살길 바라니까 나도 이제부터 말조심하겠다고 하셨다. 오빠한테 돈달라고 몇번이고 메시지 보냈는데 답변이 없다. 미안해 나중에 줄께 라는 메시지도 없다. 돈달라고 할때는 언제고 시간이 지나니까 나몰라라해서 꼴보기 싫다.
▶ 김지은
내가 어렵고 불편한 사람인줄 아는데 만일 내가 마음을 열면 다른 사람들이 막 침입해 온다. 내가 다 받아들이면 괜찮은데 내가 그러지 못해서 힘들다. 무한또래때 나를 만만하게 보던 남자얘가 있었다. 내가 무슨 말만하면 내말을 무시하고 잘라 버려서 화가나고 싫었다. 나한테 무시하면 그사람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보고 나랑 똑같이 대하면 괜찮은데 나랑 다르면 그때부터 화가 난다. 왜 나를 무시하냐고 화나서 물었더니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둘러 얘기했다. 오늘 무한또래 그얘를 만나서 아는체를 했는데 나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과 아는체하고 얘기하는거 보고 화가 났다. 사람에 대해서 좋게 해석이 안되서 내가 우리들 교회를 떠나고 싶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말씀을 가지고 이해하면서 사람들을 대하는데 다른 교회는 어려울꺼 같다. 나는 내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우리들 교회를 떠나고 싶지는 않다.
▶ 홍태진
나요즘 외롭다. 이번주는 절실하다. 회사에서 외톨이다. 정말 밧모섬에 갖혀 있다.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우니 회사에서 술먹자고 같이 놀자고하는 사람도 없어졌다. 예전에는 주중에 종종 같이 마시고 놀았는데 지금은 아예 부르지 않는다. 친구들도 교회다니면서 변했다고 부르지도 않는다. 회사에서도 혼자고 친구들도 없고 나홀로 지내고 있다. 주말인데도 갈 때 없어서 결혼식장이나 가구 카톡으로 얘기나 하구 그러고 있다. 교회에서 사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요한계시록 밧모섬에 대해 많이 묵상하면서 알게 된게 점점 세상과 끊어지면서 나홀로 있게 된다. 그럼 선택해야 한다. 세상으로 다시갈지 아니면 주의 품으로 완전히 들어갈지! 오늘 목사님께서 자유의지라고 하셨는데 내가 선택해야 한다. 난 세상에서 지내다가 왔기에 더 이상 세상으로 나가기는 싫다. 그러면서 내가 앞으로 회사에서 나랑 같이 술 마시자고 담배 피우자고 하지도 않으니까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나의 본분을 잊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다.
▶ 윤주희
저번주에 목자님한테 혼났다. 그리 심하게 아프지도 않았는데 교회를 오지 않아서 내가 부목자로서 가슴이 찔린다. 목원이었을때 보다 중보기도를 하지 않는다. 이번주에는 카톡도 하고 회사 동료중에 전도하려 큐티책과 복음팔찌와 기도로 준비했다가 만나지 못해서 아쉬웠다. 나름 이번주에 내적용을 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수습기간에는 4대보험을 넣지 않는다. 법률상으로 넣게 되어 있지만 개발자들이 자주 퇴사해서 정식직원으로 되면 그때 넣어주는걸로 회사방침이 잡혀 있다. 퇴사한 개발자가 자기는 1월에서 7월까지 일했는데 7월 한달만 4대보험이 들어갔다고 노동부로 민원을 넣었다. 나에게 전화가 와서 내가 결정한 사항이 아니니 사장님께 물어보라고 했고 사장님은 이런 것을 잘아셔서 수정신고로 잘 마무리 되었다. 내가 요즘 평온하게 지냈는데 이런 사건으로 나를 일깨워 주시는거 같다.
코엑스에 카폐쇼가 있어서 동생이랑 같이 갔다왔다. 그래서 동생한테 나도 갈때니까 교회같이 가자고 했더니 안가겠다고 해서 내가 삐진체로 있으니까 자기가 아쉬워서 같이 가자고 했다. 갔다가 밥먹으면서 크리스마스때는 같이 가자고 했다. 동생이 제과를 하다보니까 피곤해서 주일에는 쉬어야 된다는 것에 결국은 내가 타협을 하고 말았구나 생각과 오늘 설교 말씀을 듣고 선택은 자기 한다고 했는데 내가 너무 강압적으로 한 것은 아닌가? 내가 큐티도 안하고 말씀으로 준비도 않했으면서 내가 너무 강압적으로 조급하게 한 것은 아닌지! 동생이 돌아오는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건데 내힘으로 할려고 한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오늘 말씀이 선택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봤다.
우리 목원들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삶이 계속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