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우리는 일생에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은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1. 말씀이 들리는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다.
찬송의 떡집에서도 말씀이 안 들리더니 영적으로 멸시 받는 모압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다. 아기 때부터 말씀으로 키워야 하는데 말씀의 집에서 그모스 신을 섬기는 모압땅으로 이민을 간 것이다. 그런데 그 즐거움과 희락의 성격으로 고난을 너무나 잘 헤쳐나가니까 남편이 죽고 아들이 둘이 죽기까지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이 나오미이다. 착하고 성격이 너무 좋으면 인생이 심각하지 않고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좋게 생각하니까 기가 막힌 고난에도 성품으로 넘어가는 것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택자이다 보니까 너무 심한 고난을 자처한 것이다. 예전에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권고는 방문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방문하셨으니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이 들리고 자기가 하나님의 총애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모압 땅에서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하고 정신이 들었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회개를 의미하고 회개는 유턴을 의미한다. 방향을 돌이켜서 모압에서 이스라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인 것이다. 드디어 말씀에 근거한 선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유턴을 못 하고 변명이 많고 회개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더 손을 보셔야 한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의 세상 축복이 말씀을 듣지 못 하게 한다면 그 축복은 도리어 저주라고 할 수 있다. 이 흉년으로 하나님의 소문이 들렸기 때문에 축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미리미리 말씀을 훈련으로 받으면 나중에라도 돌이키는 과정이 빨라질 것이다.
2. 자유 의지로 선택하게 하신다.
처음에는 말씀이 너무 좋아서 마음껏 권하고 한다. 그런데 같이 가다 보니까 자기가 가게 될 때까지 얼마나 산전수전을 겪었으며 남편 두 아들 잃을 때까지 정신을 못 차렸는데 자기는 모태신앙인데 그들은 불신인데 그냥 가자고 해서 갈 일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의 길인 것이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고 보장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지금 남편 잃고 아들 잃은 세 과부가 들어가면 얼마나 혀를 차겠는가. 게다가 나오미가 가자고 하는 이 믿음의 좋은 땅은 자신은 이미 떠났었다. 그리고 떠나고 나서 믿는 사람으로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고 보여 줄 것이 없기 때문에 권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나오미는 이제 보지 못하는 것을 믿고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놓고 걸어가는 하나님나라 천국을 확신하고 가지만 자부들은 아직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자부들의 상황을 생각한 것이다. 신앙은 고집스러운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다른 사람도 빨리 만나면 좋겠지만 자기가 고집스럽게 하나님 말씀을 안 들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자부들이 택자라면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 돌아오게 하실 것이고 주님을 만나게 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내 일은 아닌 것 같다. 자기는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해서 재생의 길을 열어주려는 매력적인 시어머니 역할로 돌아온 것이다. 인격적으로 접근을 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나를 치셨기 때문에 나는 죄인인 것이다. 그런 어떤 마음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항상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갈 길은 이타적이고 야망이 아닌 사명의 길이고 영생의 길인 것이다. 이 길은 좁은 길인 것이다. 이 길은 너희 힘으로 갈 수 없는 길이라고 간절한 심정을 전한 것이다. 나오미는 자부들이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지 않고 객관적인 현실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자유의지로 선택하라’ 는 것이다. 하나님이 알아서 인도해주시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이런 선택 하나하나를 통해서 훈련해 가신다. 우리가 좋은 선택을 하면 좋겠지만 잘못된 선택을 통해서도 택자라면 훈련해가신다고 믿는다. 우리는 다 좋은 결혼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알았기 때문에 믿음의 결혼을 하라고 하지만 그래도 자부들의 믿음이 각각 다른 것처럼 그 상황에 따라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뭐든지 항상 솔직하게 애기를 하는 것이 굉장히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가장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네가 선택하라는 것이다. 좋아서 가는 길이 아니다.
3. 사망과 생명의 선택은 우리가 한다. (선택은 우리의 몫)
사망과 생명의 선택은 이렇게 회개를 해서 자기 죄를 보고 조심스럽게 자유의지로 선택하라고 하셨는데도 무슨 소리인지를 못 알아듣고 사망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 선택에는 은혜와 멸망의 길이 있다. 오르바는 떠나고 룻은 남았다. 그 결과 오르바의 이름은 성경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반면 룻의 이름은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오르바는 작은 사슴이라는 뜻이 있다. 룻은 선한 벗이라는 뜻이다. 오르바는 외모로 가녀리고 착해 보이는 용모를 가지고 세상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역할을 하였다. 그 이름에는 돌아오는 자라는 뜻도 있다. 우리는 착해 보이는 용모에 속으면 안 된다. 그런데 떠나갔다. 악을 쓰고 쓰면서 하나님을 쫓아야 한다. 오르바가 멸망의 길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는 애기를 하면 안 된다. 오르바는 결국 자기의 욕심을 따라서 은혜의 길을 버린 것이다. 사울을 보면 초대 왕으로 선택되었지만 다윗을 미워하느라고 욕심 때문에 비참한 멸망의 길을 자기가 택한 것이다. 유다도 예수님의 12제자 속에 들어가는 엄청난 복을 누렸지만 은 30냥에 눈이 팔려서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먹는 저주의 길을 택한 것은 자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 어째서 은혜의 기회를 안 주셨나요’ 라고 변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를 통해서 계속 길을 제시했지만 선택은 자기가 한 것이다. 합리화를 시키면서 자기가 했다는 것이다. 오르바가 나오미가 권유할 때 눈물을 흘리며 따라갔다. 나오미도 룻도 눈물을 흘렸다. 한 명은 진짜 눈물을 흘리고 한 명은 가짜 눈물인 것이다. 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울어도 진짜 회개를 해야 된다. 진짜 눈물을 흘려야지 그냥 성품으로 흘리는 것은 안 된다. 중도에 포기하면 오르바처럼 아니간만 못한 인생을 살게 된다. 경력으로 열심으로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항상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갈 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이르러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에게 핑계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언제나 생명의 선택을 하는 것은 ‘나’이다. 선택은 엄청난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항상 순간의 선택을 결정할 때가 대부분이다. 순간의 선택이 영혼을 좌우하지만 순간의 선택이 가장 힘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늘 인도함을 받고 사소한 것도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큰 선택도 잘 하게 된다. 우리의 말씀묵상과 나눔은 큰 힘이 될 것이다. 내 선택을 하는데 공동체는 도움이 된다. 오픈은 영적인 선택이다. 영적인 선택을 하니까 영적인 처방이 들리는데 내가 육적인 선택을 하니까 육적으로 밖에 생각이 안 되서 목장에서 은혜를 받지 못 하는 것이다. 오픈하는 것도 엄청난 영적인 생명의 선택인줄 믿는다.
<기도제목>
기현: 일대일 양육, 소년부, 가정 등 에서 주님이 좋아하시는 선택할 수 있도록
준성: 후회 없는 선택 하도록
주형: 해야하는 것들 열심히 하도록
말씀 붙잡고 기도하기
장원: 지혜롭게 남은 시간 잘 보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