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감사 (룻 1:1~5)
감사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된다.
1. 흉년이 왔으면 각자의 흉년을 잘 해석해야 하는데
2. 흉년이 와서 세상으로 피하고 만다.
3. 하지만 남은 부분이 있다.
■ 김재동
어제 형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결혼을 한 것이 아니어서 친구들을 초대하지는 않았다. 형은 결혼을 결심한 이후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었다. 형은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살고 싶지 않아서 공무원 중에서 예쁜 여자를 골라 여러 번의 대쉬 끝에 형수님과 결혼하게 된 것이다. 형의 결혼식에는 축가를 불러 준 형의 부서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도 축가를 불렀으며, 구청의 높으신 분이 주례를 하는 그런 결혼식이어서 나는 내 지인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결혼식도 하나의 예배이기 때문이다. 신부는 키가 173 센티 정도 되는 날씬하고 피부도 하얗고 글래머에 83년생이다. 사람들은 신부가 예쁘다고 난리였지만 나는 별로 그래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니 얼굴에 생기가 없는 느낌이었는데 형의 눈에는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엄마의 뱃속에서 같이 나온 형제인데 형은 에서의 길을 가고 나는 믿음의 길을 가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기에 형의 결혼이 기쁘지 않고, 좋아 보이지 않고, 부럽지 않고, 신부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나의 예전과는 달라진 부분인 것 같다. 할머니,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도 오시지 않은 결혼식이었다. 할머니는 결혼식 전 날 절에 가셨고, 작은 아버지는 자식이 없기에 오실 만도 했는데 그러지 않으셨다. 결혼식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이런 결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은 결혼식이라는 것이다.
이번 주에 ‘반 고흐 in 파리’ 전을 관람했다. 프린트 된 것과 실재의 그림을 보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음을 실감했다. 유화의 색감, 질감들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천재인 고흐는 초기에는 어두운 색으로만 그림을 그리다가 파리에서 밝은 색의 그림을 시도하기 시작하고, 붓의 터치를 두껍게 혹은 얇게 칠하며 점묘법도 도입하면서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을 쓰면서 그것들의 조화를 이루어냈다. 고흐의 그림은 밝음과 어둠의 대비로 영적인 느낌이 든다. 가난했지만 끊임 없이 자신의 기법을 발전시켜 나갔고, 팔리지 않은 그림 때문에 어두운 그림을 고집했던 그가 자존심을 구겨가면서 새로운 것들을 발전시켜 갔지만, 평생을 발전시키고 세계의 칭송을 받은 그의 작품이 결국 그를 구원해 주지는 못했다. 우리가 성공하고 일을 잘 하는 것이 필요 없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고흐의 끝은 권총으로의 자살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나를 구원해 주지는 못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뿐이다.
오늘 감사라는 주제로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는데 감사는 믿음에서부터 나오며 그런 감사가 아니면 힘이 없고 오래가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흉년이 오는데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왕이 아니라 내 인생에 나를 왕으로 두기에 흉년이 되어 지고, 우리 인생은 결국 모압으로 내려가게 되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나오미도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나오미에게서 남은 룻이 예수님의 계보를 잇게 된다. 그 작은 나머지가 온 구원을 이루는 계보의 통로가 되었다. 우리 인생의 욕심, 인정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여 내가 가진 것들을 오히려 잃어가고 비참한 영적인 흉년을 겪게 되지만, 하나님은 남은 부분으로 일으켜 주신다. 하나님이 흉년을 통해 진정한 감사를 회복시키려고 주신 것이 룻기이다. 이것은 예수님 없이 해석 될 수 없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는 뜻, 나오미는 ‘기쁨’ 이란 뜻이고 거하고 있던 땅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각각 찬송, 떡집, 풍성하다라는 뜻)이었다. 먹을 것이 풍성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던 생활에서 기근이 오니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모압으로 갔다. 자식으로 인해 기근이 온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흉년을 피하기 위해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면 더 큰 기근을 만나게 된다. 흉년은 성경에 여러 번 있던 패턴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가서 흉년이 오게 되니 애굽으로 가서 왕에게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고 부인을 잃을 뻔했는데, 아브라함을 통해 예수님이 오셔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었기에 그는 정말 큰 죄를 범했다. 이삭도 흉년이 오니 아버지랑 비슷한 일을 했고, 엘리야 시대 때 3년 넘게 비가 오지 않았는데 흉년은 그냥 온 것이 아니다.
자신의 흉년을 나누어 주시고 추수감사절이기에 감사하는 것 하나씩 나누어 보고 나에게 남겨진 부분이 무엇인지 얘기해 보도록 하자.
■ 윤주희
지난 주에 예배에 오지 않았다. 그 주에 야근을 좀 하고 동생이 줬던 종합비타민을 먹었는데 한 3일째 가서 위가 붓는 느낌에 더부룩하고 미식 꺼려서 야근 때문인 줄로 여겼다. 하지만 동생도 그런 느낌이 있어 비타민 먹는 것을 중단하고 나를 준거였는데 나는 괜찮겠지 하고 먹었지만 4일째 정말 못 먹겠어서 끊었더니 속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열이 나고, 먹어도 부은 느낌이 들어서 주일날 교회에 가려고 준비를 했지만 결국 가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아파도 교회에서 아프고 죽어도 교회에서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새 나약해졌는지 가기가 싫었다. 한편으로는 그거 조금 아프다고 교회 안 가는 모습을 식구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싫었지만 열도 나니 다 귀찮았고, 교회 안 가면 죄책감 가지고 맘 편히 쉬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편히 쉬려고 마음 먹었다. 정말 사지 멀쩡하고 걸어 다닐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는데 교회 안 가니까 찔리긴 했다. 지금 이 시기가 편하고 별다른 불편함 없이 지내니 나에게는 영적 흉년인 시기인 것 같다. 토요일에 친구 생일이었는데 그 친구 없었으면 우리들교회에 오지 못했고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 때 교회 와서 감사하면서 기도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예배 잘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목자로서 덕이 되지 못했다는 것, 몸살도 아니었는데 예배 드리지 않았다는 것이 많이 걸린다. 내 인생의 감사는 다시 교회에 오게 된 것이지만 그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2년 전에 왔을 때는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고 회개했기에 첫사랑을 계속 생각하면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남은 부분은 가족들이 나를 향해 교회 다니면서 변화되지 않다고 지적하는 부분과 같다. 엄마와 동생은 부지런하고 약속시간 절대 늦지 않지만, 나는 게으르고 꾸물거리고 누가 깨워줘야 겨우 일어나며 회사에 늦을까 엄마가 걱정한다. 나는 엄마에게 있어서 항상 불안함에 있는 딸이기에 그런 부분에 있어 일단 행동으로 변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나의 달라진 행동 변화를 보고 가족들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보여지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시간관리, 예전과의 행동패턴을 다르게 하는 것이 나의 남아있는 부분인 것 같다.
■ 목자님
목사님은 가장의 믿음이 가정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하셨다. 영적인 의미에서 가장은 예수 믿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데 본인이 잘 서있지 않으면 흉년에 대비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아프면 모압 땅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아프면 안 올 수 있지만 내가 그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나를 속이고 남도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처음 교회에 왔던 것을 생각하며 열정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고난이 없는데 어떻게 깨어나야 하는가? 신앙이라는 것은 공동체에서 사람을 살리려는 것이다. 같이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깨어 있을 필요가 없다. 타인을 살리려는 마음이 없으면 혼자서 공동체에서 나눔만 하고 결국 모압으로 가서 흉년을 맞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사람을 살리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성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여 깨어있을 수가 없다. 내가 살릴 지체가 있으려면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전화, 큐티, 부서 섬김 등을 해야 한다. 아무 것도 안 하면서 깨어있으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때에 맞는 순종을 해야 하는데 말씀으로 인한 메시지가 왔을 때 지금 돌이키는 것이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영적인 흉년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바로 선 후에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이 같이 설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믿는 나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 고동욱
지난 수, 목, 금 2박 3일 동안 출장을 갔는데 현장 협조가 안 되어서 빙글 돌다가 금요일에서야 확답이 되어 일이 끝나 돌아오게 되었다. 이틀을 모텔과 펜션에서 잤는데 야한 영화가 나오길래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고 생각해 버리고 그것을 보았다.
여친과 ‘창조적인 결혼생활’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는 집회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 주된 내용은 남녀에는 차이가 있어서 어떤 배우자를 만나도 관계에서 성숙하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강의가 좋아서 그 분 강의를 더 찾아 들었는데 남녀가 만나는 과정이 영, 혼, 육의 관계로 이루어져 가야 한다라는 부분에서 나는 여친과 만났을 때 순서가 잘 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생각을 얘기했더니 여친은 말을 안 하려고만 해서 난 또 여친을 판단하고 단점만 보게 되어 버렸다. 나는 사람과 관계에서 율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여친이 좀 변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여친과 헤어질 때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잘 가라는 인사만 하고 여친 차에 내려서 내 차를 타버렸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전화를 했지만 냉랭한 여친의 태도에 나도 그냥 집으로 와버렸다.
여자친구에게 하고 싶었던 것, 본인이 적용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다고 하면 대화를 했어야 한다. 얘기를 안 하고 차를 타는 것 보다 분명히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나은 방법이 될 것 같다. 2인칭이 아닌 1인칭으로 대화를 해 보아라. 말을 할 때 상대방을 정죄하지 말고, 정중하고 예의 있게 설명해야 한다. 나는 예전에 여친과 사귀었을 때 여친이 바빠서 연락을 잘 안 했지만, 막상 만나면 너무 잘 해 주었다. 나는 잘 해주는 것 보다 연락을 해 주는 것이 더 좋았기에 ‘너 왜 연락 안 했어?’ 라고 얘기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는 네가 연락을 안 해줘서 서운했어.’ 라고 얘기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란 것을 깨달았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전달이 안되면 소용이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달은 1인칭 시점으로 하고 트러블이 있을 것 같으면 끝까지 솔직하고 예의 있게 대해야 한다.
■ 윤혜진
지난 주에는 학원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 소리를 지르게 되자 내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또한 내가 깨어있지 못해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나의 20대는 어두웠다는 생각이었고, 오빠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살아갈 것 같았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생활의 정리가 되었기에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지금 편하니까 기본적인 신앙생활도 안 되고 순종하기 싫다며 모압 땅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귀찮아서 다 내려놓고 세상 속으로 가면 즐거울 것 같고, 왜 나는 즐거우면 안 되는 것인지 모르겠고, 순종하기 싫고, 하나님 안에서의 큰 즐거움이 없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계속 거부한다는 생각이 든다. 간증하는 분들을 보면 예전에는 체휼도 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다.
■ 김지은
동욱이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다. 내 틀을 깨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한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는 것들이 쑥스럽고 잘 되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좋고 나쁨이 있는 것인데 나는 나쁨이 더 크게 다가와 내 마음 속에서 궁궐을 짓는 것 같다. 타인의 이야기에 좋게 해석이 안 되고 최악으로 들어버리지만 그 미운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상대방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내가 들어야 할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나쁘게 생각해 버린다.
오늘 설교를 듣고 좋은 공동체를 만났다는 것, 금전적으로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것, 좋은 친동생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박성아
Thank you so much~!!!
■ 강원희
Come back, Plz~
■ 홍태진
A big w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