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고 베임을 통해 남은 희망의 그루터기-2부예배
이사야 6:1~13
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11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되며
12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예수믿지 않는 농민의 가정에서 무당에게 점교를 받는 불교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목사님. 선배가 복음을 전할 때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스마트, 예의범절, 인내) 존경을 했다.
100명의 학생을 서울대 보내기 위해 공부 사육을 시킨 고등학교를 나왔다.
학우들끼리 경쟁을 시키고, 성적을 붙여놓는 고등학교에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읽고 싶은 소설을 읽지 못하고 전혀 다른 과목을 공부를 해야 했던 고난과 학기말 시험이 다가 올때는 지진을 기도했던 학창시절을 보냈다
77년 여름 동아일보 신문 중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무래하지 않으며 시기 하지 않고 질투 하지 않으며 사랑은 항상 바라고 견디고 참습니다.-코린토 전서중-이란 문구를 보았다.
사랑의 갈구함이 깊어가던중 더 경쟁적이고 각축적인 이 시대가 더 힘들어지기 시작,
그렇게 힘든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후 대학에 왔지만 대학강의는 별것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군대에 점령당한 사태가 벌어지고, 교수들의 매 맞는 것을 보며 나의 대학생활이 힘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80년 5월 기숙사에 있다가 끌려가게 되며, 고생 끝에 들어온 이 지성의 전당이 폭력앞에 속수 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며, 이 학교에 들어온 목적인 내 개인의 출세와 야망을 포기하였다.
나의 20대는 웃시야와 같은 왕이 죽는 경험이었다.
웃시야 왕은 내가 꿈꾸는 대학이었다. 지성의 향연을 꿈꾸며 들어 왔던 그 대학이 폭력과 군사력 앞에 무너지는 것을 보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웃시야 왕은 유다 왕국을 52년간 통치해 오면서 나라를 국방과 외교가운데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왕이었다.=광개토 대왕, 장수왕
이런 사람이 죽었을 때, 웃시야왕을 의존하던 이사야가 높이 들린 보좌앞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
★웃시야 왕이 살아 있을때는 보이지 않던 보좌가 내 우상이 죽던해에 웃시야왕이 죽자하나님이 보였다.
=내마음속의 꿈꾸던 힘, 권력, 숭배의 우상이 살아있을땐 높이 들리신 거룩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내가 출세, 성공의 가도로 걸어갈 때는 힘, 세력등이 더 크게 들어온다.
웃시야왕은 52년간 통치를 하며 이사야를 매우 감동시킨 사람.
이사야는 웃시야왕의 서기관으로 왕실 서기관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사람.
그토록 숭배, 사랑의 대상이 었던 웃시야 왕이 죽자마자 하나님의 높이신 보좌가 보이고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보였다.
★잃고, 더 큰 것을 얻은 것.
★세상에는 이런 큰 상실의 경험이 죄와 상관없이 찾아온다.
★죄와 상관없이 인생을 송두리째 손상시키는 신적 부조리한 상태가 벌어진다.
★내가 손 쓸수 없는 운명의 강한 타격이 인생의 척추를 부서뜨릴 때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보이신다는 것.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거치고서야 하나님이 눈에 보인다.
ex1) 14년간 ‘척추 카리에스라’는 병을 앓았던 일본의 ‘미우라 아야코’는 14년동안 누워 있었다.
그 위대한 작가가 14년간 누워 있으면서 늘 죽음을 생각했다. 그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이 간 저승세계가 더 친숙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죽기를 바라며 병실에 있던 어느날, 기도문을 발견했는데 그 기도문은 이와 같았다.
★병들지 않으면 믿을수 없는 기적이 있다.
병실에서 이렇게 무기력 하게 누워있지 않으면 드릴수 없는 기도가 있다.
★그 무기력 상태가 하나님을 만난 상태, 하나님과 입맞춤한 상태, 그런 경험으로 이끌었다 고백한다.
ex2) 1897년 ‘오찌무라 간조’ 일본의 ‘명치유신’(=메이지 유신)이후 근대화 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명치유신이 제국주의로 건너가며 국가 숭배를 강요하자, 국가숭배를 거절 일본의 매국노가 되었다. 엄청난 비난 가운데 예수하나님의 나라에 눈을 완젼 뜨게 된다. 열등한 것을 잃고 우등한 것을 얻는 세계가 열리는 것.
★★우리에게 있어 상실과 죽음 등 부정적인 경험들은 하나님이 없다면 매우 나쁜것들이지만,
★하나님이 있다면, 이런 부정적인 경험들은 반전과 역전, 화해, 축복 등 대 반전을 이룰수 있는 계기가 된다.
웃시야 왕이 죽자 마자 누구를 만난건가?
★유다의 미래는 웃시야에게 달려 있는가? 아니다. 높으신 보좌위에 앉으신 하나님손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미래는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가?
★내 누추한 인생을 위해, 내 망연자실한 인생을 위해 높이들리신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웃시야 왕의 죽음을 경험한듯한 망연자실한 상실감 속에 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길 바란다.
내가 만일 평탄한 시대에 대학생활을 했다면 하나님의 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성적이 나락으로 떨어지자 공부못했던 친구들에 대한 체휼이 되었다.
나쁜 성적표, 장학금 박탈을 당하면서 고향의 아버지 생각이 났다.
공부하기가 얼마나 힘들면 그 강한 아이가 심신이 쇠약한 아이가 되어 종교에 의지할까 편지를 길게 써주심.
심각하게 종교에 빠지지 않길 바라는 아버지와 그를 설득하는 목사님 사이에 편지가 오고 갔다. 마지노선 목사만은 되지 말아다오....12시간 기차 타고 다니며 만났던 아버지와 8개월동안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 받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은 김회권 구출위원회를 결성, 무슨 공부를 하는 지 정탐한 친구는 같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대학 1학년에 만나게 된 코린토 시인. 그는 바울이 쓴 고린도 전서13장이 였다.
만일, 내 대학생활이 순탄하게 풀려 보통 출세가도를 달렸다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내 인생의 깊은 성찰과 반성을 못했을 것이며, 아버지의 혈육 경주 김씨 64대손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내 대학생활의 우울증을 허무함을, 조국의 역사가 소용돌이 치는 역사속에 죽어가는 학생들 틈사이에서 그냥 모르척 하고 지나칠수 없는 양심을 불안을 내게 주셔서 '캠퍼스 선교사'가 되었다.
졸업한 83년에 14만원 생활비를 받으며 이세상과 등을 지며 전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 하나님 복음 없이는 이민족의 미래가 없고 예수그리스도 같은 이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과 같은 독생성자급 청년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 민족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전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83년~94년 11년 6개월 동안 계속 된다.
개신서원을 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 사역을 대신하는 사람이 나타내기 까지 계속해야 했다.
온집안이 대성 통곡을 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이렇게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 까지 완전히 주앞에 돌아와서 항복하고 돌아가시긴 했지만, 목사가 되는 과정 때문에 의심하고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바라는 데로가 아닌 목회자가 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때는 안수 받지 못하는 전도사였기에
83년~94년 8월 17일까지 하루, 아침에 기도하면서 “오늘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구원의 시점에 도달한 영혼을 만나게 하시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며, 26동 대형 강의실이나 서울대 미대 음대 강의실에서 1시간 기도 한창 한 후에 3동과 5동앞에 있는 연못가에서 딱 기다리고 있다가 일단은 냉혹하게 거절할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가 “5분만 시간을 내 주시겠습니까?”하며 복음을 전했다. 영문과의 거의 모든 학생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수련회는 1/3이 따라왔는데, 30명중에 10명 그중에 2명이 여학생, 여학생 두명을 항상 데려간 이유는 그 여학생을 좋아하는 복학생 형들을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한명에게 세명이 따라 붙으니까 복학생 6명이 동시에 따라온다.
서울대 16명이 동시에 따라온다. 이 아이들이 설교를 듣다가 도저히 지루해서 못듣겠다고 탈출하고 난리. 그렇게 11년간 복음을 전해오며 교수님께 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교수님.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쓰시면서 하나님을 안 믿으시면 안되죠, 구원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죠 이거...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셔야죠~”
“ 야 김회권!! 손봉호 처럼 예수좀 믿어! 손봉호처럼 믿으면 교회 갈게~ 아직 기독교 멀었어!!그렇게 간단하게 나 예수믿게 하려하지마! 공부 더 많이 해!!” 이렇게 토론과 애정 어린 논쟁을 많이 했다.
정진홍, 백낙청 교수님 등 다 전도했는데 항동규 선생님이 최근에 아드님께 더 심각하게 전도 당하고 있다. 최
근에 우리학교 문인교수님과 대화하다 “30년전 김회권 때문에 죽을뻔 했다고,,” 지금은 아드님 때문에 거의 예수를 믿을 것 같다.
이런 생활을 11년 6월하고 유학을 갔는데, 내가 만일 평탄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면, 지금 나는 강남스타일 정도는 되지않을까 싶다.
낮에는 근엄하게 살고 밤에는 마음대로 사는 욕망의 해방구를 줄사람 치지 않았겠는가 싶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강남 스타일이 아닌 예수스타일로 살기를 원하셨는가 보다.
고난의 시기에 나를 부르셔서 말씀을 읽게 하시는데 내가 얼마나 11년 6개월 동안의 시간이 꼭 3년이 지난 것 같았다. 어!!보니까 내가 30대 후반이 되어 있었다.
20대 때 시작했는데, 79년부터 예수믿고 94년까지 16년이 지났고 캠퍼스 사역을 한 것은 12년인데 내 나이가 36이 되어있었다.
그때 김진홍 목사님이 프린스턴 유학을 가라고 장학금을 만들어 주셨다. 근데 난 갈수가 없었다. 캠퍼스 사역 때문에 전도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공부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 공부 많이 한 사람도 별거 없었다. 그래서 신학박사에 대해 사모함이 없었다. 그런데 김진홍 목사님께서 남양만에 무허가 건물을 많이 지으셨는데, 그 무허가 건물을 유허가 건물로 만들기 위해 김진홍 목사께서 지은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다녔다. 경찰서에서 철거하라고 명령이 떨어졌는데 우리에게 부탁을 해서 내가 청년 3~4명을 데리고 가서 철거하던 도중 건물위에서 지붕에서 떨어져서 팔이 다쳐서 할 수 없이 8주 동안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8주 동안 토플 공부를 했는데 반석토플을 10번 반복해서 읽은 후 11월 기브스를 풀고 시험을 치고, 3월에 유학을 갔는데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다. 김진홍 목사님의 무허가 건물이 없었다면 난 유학을 못 갔을 것 이다.
팔이 부러진 것은 나쁜 일이지만, 팔이 부러져 8주동안 누워 있으면서 토플을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은혜였다.
★내 인생의 많은 경우는 상실과 더 큰 얻음을 얻게 되었다.
★상실과 더 큰 문 열림으로 가득 차 있다.
★내 인생을 가만히 보면 잃고 더 큰 것을 얻는거나. 한쪽문이 닫히고 한쪽문이 열리는 경험으로 가득차 있다.
이사야와 같은 경험을 한 것.
한국에서 자발적 가난한(캠퍼스 사역=교회가 돈을 데는 것이 아닌 학우들을 불러서 학우들이 작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했기 때문에 가난했다. 하지만 행복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말씀 공부외에는 할것이 없었다.) 생활중에 유학을 갔는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다. 그때부터는 스랍 천사를 만나서 하나님 보좌로 올라가는 시기였다.
7년동안 유학생활을 하며 나는 하나님 보좌를 향해 상승하는 경험을 했다.
내 영혼의 터가 요동되고 흔들기고 격동 됐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늘어갔고 기도할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작은 것을 잃고, 작은 세상에 문이 다치고 큰세상에 문이 열리는 변접법적 경험으로 가득차 있다.
★여러분이 무너진 것이 무너진 것이 아니고, 짤리고 비행을 당한 것이 사실 소망의 그루터기만 남게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
어떤 것이 소망의 그루터기인지 모른다. 내 많은 인간관계, 숱한 나의 연인들, 많은 친구들등 그런것들은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지만은 그런것들은 모두다 잘리고 베이고 제거되야 할것들이고 ,내 안의 참 소망의 그루터기는 나의 조용한 성격, 나의 내향적 성격,나의 기도, 나의 말씀 읽기등이 소망의 그루터기 이다.
하나님의 나의 소망의 그루터기를 남게 하게하기 위해 우리의 허무맹랑한 비젼, 꿈들 야망들은 전부 짜르고 베이고 제거하신다.
이사야 시대에 받은 말씀은 유다의 미래는 영적 지방질로 가득차 있는 비대한 유다의 국력, 유다의 군사력, 유다의 국제관계의 힘, 등이 유다의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창렴한 상태, 하나님 말씀에 창렴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할수 있는 영적 감수성이 유다의 미래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
웃시야 왕들의 업적들은 농업, 경제, 생산, 국방, 외교 등이 유다의 자랑이었다. 그 모든 것 들은 말짱 헛것이 되었다.
★유다의 미래는 하나님을 예배할수 있는 스랍 천사와 같은 찬양대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 부정한 입술이 깨끗케 되는 영적 세척, 이 죄사함의 경험들, 죄사함의 확신들이야 말로 유다왕국의 미래이고 하나님백성들의 미래라는 것을 이사야는 깨닫게 된 것이다.
여러분이 예수안에 있는 사람이라면은 예수안에 있는 사람의 특징은 죄악된 세상으로 줄달음 칠 때 하나님이 호세아 6ㅡ7장처럼 가시로 담으로 길을 막으신다.
우리 하나님은 호세야 안에 있던 고멜이 이스라엘 백성이 음란한 여인처럼 자기 사랑하는 하는 연인을 따라서 이리저리 방황하려 할 때 고멜의 앞길을 가시와 담으로 막으셨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칫 영적방황을 할 때, 표류할 때, 우리가 죄로 질주할 때, 멸망하는 길이지만 겉으로 보이기엔 형통한 그길을 질주 할 때 가시로 길을 막으시고 담벼락에 나타나셔서 절망의 벽을 쌓으신다.
★이것은 좋은경험인데 겉으로 보기엔 나쁜경험이다.
★가시로 길을 막고, 방벽이 나타나서 내 앞길에 장애가 나타난다.
★우리의 터가 흔들리는 것, 우리의 보금자리가 흔들리는 것은 언뜻보면 나쁜경험이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요동시키는 까닭은 진동하지 않는 나라를 상속하도록 한 것이다. 흔들리는 세계에 살면서 진동하질 않을 나라를 사모하도록, 영적 감수성을 갱신시키게 하기 위해 우리의 누추한 삶의 자리가 막 흔들리게 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성전 터가 요동하면서 흔들리지 않는가?
이제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전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천상 성전을 출입하는 예언자가 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적 지평을 넘었다.
하나님나라의 지평,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거룩한 성령에 충만한 세도, 거룩한 영혼이 자신을 진동시키자 마자 자신이 부정한 백성임을 알았고,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줄 알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나자신,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내가 정면으로 MRI 자기 공맹장치에 노출된 것처럼 딱 노출되는 이 치관적인 노출을 경험해봐야 내가 얼마나 누추한 인간인지알게 된다.
나는 대학때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아니다.
20대, 사회 초년생이 죄를지어 봤자 무슨 죄를 얼마나 지어 봤겠는가? 그당시는 전자 영상물이 없어서 죄를 지을수도 없고, 게으름이나 술 먹고 취하는 것 등 큰 죄는 아니었다.
그런 죄마져 잘 짓지 않는 내가 난 참 괜찮은 사람인줄 알았다.
항상 일기에 보면 “난 참 괜찮다~”라는 자아 도취적 결론이 었다.
1979년 11월 17일 박덕훈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요한일서 2장 15~17절 “이세상이나 세상에 잇는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것이라, 이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리라”
말씀을 듣는 순간 내 마음 속 문지방 터가 요동해서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내가 ' 재구성' 됐다.
처음으로 70여명의 대학생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몰래 눈물을 흘렸지 내가 죄인이라는 말을 몰래 했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긴 처음이었다.
정강이 뼈가 저절로 자복되며 하나님께 소리를 지르며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순식간에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모습을 보여주니,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삶의 기준에서 볼 때, 내 인생의 고상한 세계관이라는 것은 누더기에 불과했고 너무나 부정했다. 예수그리스도의 삶이야 말로 일률삶의 지배적 규범이 되고, 지배적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동의를 하고 나니, 제가 저희 아버지의 뜻대로 살고, 시골에서 올라올 때 나의 품었던 꿈을 실현시키는 인생들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께 항복하고 전향했다.
그 경험이 터가 부서지는 경험이고 요동하는 경험이 었다.
우리 하나님은 저를 거룩하게 요동하신 분, 저를 재구성 하기 위해 리모델링 하시기 위해 저의 가건물 같은 저의 실존을 부수시고 저를 새롭게 건축하셨다.
우리 모두 그런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기오신 성도님들은 말씀과 성령에 의해 재건축되신 분들이고 재 구성된 분들이고 리모델링 되신 분들이다.
재활, 복구, 리 사이클 되신 분들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쓰레기 같은 경험으로 가득찬 죄인도 폐기 하시지 않고, 재활 복구 시켜서 갱신 시켜서 난지도 같은 경험을 한 사람에게도 베르사이유 같은 궁전을 지으실수 있는 위대하신 부활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인줄 믿는다.
★우리의 이세상의 경험들은 온통 부정적 경험들로 점처져 있다 하더라도, 우리하나님은 이 부정적 경험들 위에 새로운 영광의 면류관을 건축하실수 있고, 새로운 인생을 재구성할수 있고, 재건축하실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길 바란다.
성전 터, 내가 믿었던 내 모든 삶의 터가 새차게 요동치고 흔들린다 할지라도 우린 두려워 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그 성중에 하나님이 계시오니 우리하나님은 임마누엘로 요동하는 성중에 계시는 요동하는 사업, 요동하는 일터, 언제 내가 직장에서 퇴출될지 모르는 요동하는 직장 한복판에 있는 성도들도 두려워 할 필요 없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해고 시킨다 할때는 반드시 새로운 계획이 있음을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흔드신 후에 재구성 하는 분이고 재건축하시는 분임을 믿는다.
★우리를 짤라 내시고 우리는 들어내시고 우리는 해체하시고 우리에게 파괴적인 심판같은 역경을 우리에게 쇠도케 하시고 막 보내신다 하더라도, 소망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시기 하나의 기가 막힌 변정법 적인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수 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굴러떨어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가장 진실하게 가장 절실하게 느낄수 있는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굴러 떨어질 때 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장 정점에서 성공을 향유하면서 만끽하면서 내가 얻었던 모든 업적의 기득권을 만끽할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이 보일때는 내 삶이 터전이 흔들리고 요동할 때, 내가 믿던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 하나님 영광이 우리집에 가득찬 것이 보이게 된다.
★그러니까 나쁜 것 아니다. 그러니까 이세상 두려워 하면 안된다.
★잘리고, 베이고, 죽고, 상실되고, 빼앗기고, 이런 모든 부정적인 이 경험들 모두가 주안에서는 좌절되고, 가시의 길로 막히고, 큰 방벽이 내 인생을 막는 그런 경험을 한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소망의 그루터기를 남겨두시는 ‘섭리의 하나님’임을 믿기만 하면 된다.
78학번 음대생중에 성대 결절이 된 학생이 있었다. 주를 영접한 학생이었다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텐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관악 캠퍼스 뒤에 있는 댐에서 투신을 했다. 주예수를 아는 사람은 성대결절로 목소리를 잃었다 하더라도 더 위대한 삶을 살수 있다.
“주여 왜”라는 책을 쓰신 신부님이 계신다. 이책의 저자는 원래 신부님이 되려는 마음이 아닌 알피니스트(등산객들의 구조등반 조련사-조난 전문가)가 되려는 사람에게 다리를 못쓰게 만드셨다. 대신 신부가 되게 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격심한 상실과 박탈, 우리삶의 중요한 부분을 빼앗아 가버리는데 그 빼앗아 간다해서 우리 삶이 가능성이 다 소진된것도 아니고 다 끝난것도 아니다.
★우리 하나님에게서는 '위대한 반전'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큰 메시지 이다.
나는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전도자로 살고 있고, 내가 하나님께 받은 청년들에 대한 비젼과 소망은 끝이 없다.
그래서 70% 잠드는 사람에게 얘기한다. “여러분이 아무리 눈을 감아도 절대로 외치기를 포기하지 않을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눈을 떠서 말똥말똥 뜰 때 까지 나는 물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미리 감사합니다. 눈떠주실 것을 인하여,,,,”
눈떠주실 것을 인하여 미리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에 대해 눈감고 교회에 대해 냉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길 원한다. 우리 교회는 냉소를 당할만한 교회가 되었고 우리 한국에는 도덕적 슬럼 지대가 되었다. 한국교회는 전반적으로 힘든상황에 돌입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냉소하면 안된다. 너무 비난해서는 안되고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잘리고 베임을 당하면서도 소망의 그루터기로 자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신문만 보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각각 교회에서 아무리 문제가 많은교회라 할지라도 그안에서 여전히 소망의 그루터기를 남겨놓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담임 목사님이 사고를 쳐서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어떤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가 있다. 그말은 우리 하나님이 담임목사님이 무너져도 그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님이 그 교회 주인이면 교회의 지휘부가 약간 도덕적 슬럼 형태를 보이고 사회 지탄을 받을 만한 죄에 연류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 교회는 반석위에 세운 교회처럼 자라난다. 그말인 즉은 그 교회안에 잘리고 베임을 당하면서 크나큰 상실을 이용해 많은 교인들이 흩어지고 해산되는 가운데에 있지만 여전히 소망의 그루터기 들이 상실의 아픔과 심판의 기억들을 간직 하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상처 입은 교회, 문제가 많은 교회도 없에지 않고 여전히 소생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이다.
★하나님안에서는 절대 자기 자신에 대해 ‘최후 통첩적’발언을 해서는 안된다.
★다른사람에 대해서도 안된다.
★“너는 끝났어!” 자기자신, 남에게 해서도 안된다.
공부 못하는 가정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공부 못해야지 마음먹고 못하는 것이 아닌 분석해 보면 대단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 65명중 65등 하는 가정도 그냥 손쉬운게 아니다. 64등이 분발해서 자기를 꼴등으로 밀어내는 엄청 복잡한 프로세서가 있어야만 65등 하는 것이지 공부 못하는 가정도 어려운 것인데 공부 못하는 가정에서의 게으른 사람들을 전부 일괄 하나의 유니폼한 것으로 정죄하면 위대한 예술가는 나올수 없다.
만일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을 강남 학부형 같은 사람이 볶아서 선행 학습을 시켰다면 발명가가 될수 없다. 하루종일 둥지에서 새처럼 알을 품고 있어도 에디슨 같은 사람도 놔두었기 때문에 에디슨이 되었다.
빌게이츠가 하버드 대학2학년 다니다 중퇴하고 집에서 사무실 차려놓고 컴퓨터 부시고 있을 때 아버지가 혼냈다면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죽었을수도...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냥 놔뒀다.
대게 게으른 사람과 우울한 사람중에 위대한 천재가 나온다.
약간 우울증이 많고 사회성이 없는 사람중에 훌륭한 작가가 나온다.
작가들은 대게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대게 사회성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위대한 시를 쓴다.
눈이 먼 호머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썼다. 눈이 멀지 않으면 쓸수 없었던 작품.
우리나라 12권으로 번역된 536000자 짜리 사기는 눈먼 사람이 쓴 것. 눈뜨면 그거 못쓴다. 호머가 눈을 감고 그 많은 시구와 운율을 창조해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썼다.
느린사람, 게으른 사람, 약간 수학문제 늦게 푸는 사람 등 대한민국에 문제되는 사람도 먼가 은사가 있다. 느린사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좋다. 느린사람 때문에 공부잘하는 성질 급한사람들이 죄를 지어도 사회가 안정감이 있다.
가정의 느린사람은 가정을 안정시키는 사람이다. 그래서 대게 공부 일 이등 잘 하는 언니오빠가 시끄럽게 소란하게 성급하게 종말론적인 긴급함속에 살 때 막내가 게으르게 살면서 사고치고 F학점 받아도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느린 사람을 점점 이해 하게 되었다.
나는 급한 사람이다.
질주하는 사람인데 나쁜 성적 받아보면서 유학 가서 영어가 먼가 전혀 안들리는 의사소통 불가능 한 지점에 떨어져 보니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것. 아이큐 20씩 떨어져 보니 느린 사람 공부 못하는 사람 말수 적은 사람, 우울증에 빠져 홀로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모두가 하나님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위대한 작가들은 대부분이 간질 또는 우울증 기질이 대부분이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집안에 그런 사람이 나오면 위대한 작가가 나오려나 보다 해야지 왜 너는 사회성이 없어? 너는 왜 시집안가? 라고 핏박하면 안된다. 시집 안가는거 시집 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세상인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의 일괄적 관점에서 우리가 하는 경험들을 해석하면 우리 모두가 너무 상상력이 빈곤해 진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시고, 창조주 이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고 만유를 이름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 한사람도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인생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으신다.
★우리 모두를 잘리고 베이고 제거당하고 박탈당하고 강금 당하고 좌천당하고 배신당하는 이런 모든 쓰라린 경험들을 다 종합해서 그루터기를 남겨두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한국교회 때문에 상처 받은 사람들이죠? 갑자기 이렇게 2000명이 모일수가 없잖아요? 여러분도 어디선가 제도권교회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성가대가 없어도 전혀 문제의식을 안 느끼는 것을 보니까 여러분 어딘가 먼가 있는 것이다.
잘리고 베임을 당하고 상실과 좌천을 당하고 이런 부정적인 경험들 모두가 하나님나라 까지 이월될 수 있는 거룩한 내 생명을 재창조하시고 재구성하고 재건축하는 그일 이라면은 우린 용납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인생되기 바란다.
나는 숭실대 채플을 하면 “교목실장님. 우리 전도하려고 해요? 아무리 애써 봤자 채플은 채플이잖아요?”같은 편지들이 날라 온다. 이메일 보는 게 두렵고 만천명의 학생들을 눈을 감는다.
나는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서 이 순간이 아주 중요하다. 복음을 전하는 마음, 눈 뜬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마음, 제가 상실과 박탈과 푸대접 모두가 주안에서 견딜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허락 하신 거라 믿는다. 모두가 을지로와 충무로와 테헤란로에서 잘리고 베이고 해고당하고 배신당하고 따돌림 당하고 모든 참으로 부정적 경험들을 우리하나님께서 소망의 그루터기로 삼으시려는 거대한 사랑의 섭리 속에 있어서 영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도제목>
천영진
1.부정적 경험이 거룩한 씨로 살아난 은혜를 매일 감사하도록
2.목장식구들과 유아부반 아이들을 위해 중보기도 쉬지 않기를
3.미운 감정 직면하도록
4.신교제 신결혼을 위해 관심 갖고 기도하도록
박윤선
1.다중이인 나를 직면하여 다중 인격을 말씀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해결해 나가기
2.QT 꾸준히 하기
3.작은언니와의 관계회복 내가 먼저 손 내밀수 있도록
4.가족 섬김, 가족 구원과 건강을 위해
윤신애
1. 수요예배 빠지지 않도록
2.감기에서 회복
3.일대일 양육을 위해
4. 신교제 신결혼
장은실
1.가족건강
2.모든 생활 말씀안에서 중심잡고 가기
김지헌
1. 내 여호와를 알고 언약을 믿고 두려워 하지 않기를
2. 스스로에게 최후 통첩적 발언을 하지 않도록
3. 비젼과 사명을 찾고 은사를 쓰임 받을수 있도록
4. 예배회복과 공동체를 사랑할수 있도록
5. 가족구원과 집안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