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고 베임을 통해 남은 희망의 그루터기(이사야 6장 1~13절) 김회권 목사님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사는 것은 힘들다. 일자리가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둔화되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닫아버렸다. 그러나 주 예수그리스 안에서는 인습적이고 전통적인 직업뿐만 아니라 무인지경에서 새로운 광야를 개척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세태의 분석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주 안에서 용사가 되어서 새롭게 건축하는 이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이사야 6장 1절을 보고 웃시야 왕에 대해 아는 이들은 모두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의 구절에 놀랄 것이다. 역대하 26장 전체에 웃시야 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야훼는 나의 힘이다 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강력한 웃시야 왕의 죽음은 국가적으로 큰 애도와 슬픔과 상실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사야라는 선지자는 로마제국의 건설 당시 활동했던 사람인데, 웃시야 왕의 보좌관 쯤 되었다. 이사샤는 청화대 비서관의 위치에서 웃시야 왕의 번영과 세태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사6:1)그러나 이사야는 의지와 숭배의 대상인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 하나님이 보였다고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웃시야 왕은 부모님, 친구와의 튼튼한 인간관계, 재능과 지혜, 지위와 업적 등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들을 든든하게 만들어주지만 높으신 주님이 주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웃시야가 죽는 경험을 다른 환경에서 겪을 것이다. 그런데 차선인 웃시야 왕의 보좌는 누구에게나 최선의 적이 된다. 최선은 왕이신 여호와를 뵙는 것인데, 그 신앙의 경지까지 가지 못하게 하는 태양처럼 빛나는 웃시야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웃시야 왕 같은 존재가 죽던 해이어야만 하나님 보좌가 보인다.
(사6:4)여기서 “요동”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 된 삶을 흔드시면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하지 못한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진동하지 않는 성곽 안에 들어가 영혼이 쉴 때까지 계속 진동시키시고 요동시키신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진동하는 것과 요동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호세아 2장 6~7절을 보면 네 길을 가시로 막고 장애물이 크게 놓인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 들어오셔서 당신의 방법대로 다루셔서 가시 같은 방벽이 일어난다. 인간 방벽이 생길 수 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서 나의 가시와 방벽들을 봐야 한다.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의 삶의 사태를 되돌아보면 어떤 일도 안심하지 못한다. 정규직도 구원의 방주가 될 수 없다. 내려와야 하는 배이다. 57세 퇴직 이후 20년은 초월적인 하나님의 고상한 목표가 우리에게 있지 않으면 인생 설계 자체가 영구적으로 행복하게 진행될 수 없다.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방주이시며 피난처가 되신다.
과거 성실하면 문이 열린다고 믿었지만 시대의 환경 때문에 편하게 살지 못했다. 강한 기질의 소유자였지만 민주화의 고통 안에서 끊임없는 무한 책임감을 느껴서 주님 안에서 그들을 위해 쓰임받길 위해 신앙을 갖게 됐다. 그래서 본토 친척 혈과 육을 떠나 하나님의 속한 자가 되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할 때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흔들어 놓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다. 문제는 청년의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는 가운데 어수선한 삶이 재구성되는 창조적 혼란기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삶을 재창조하기 위해서 우리를 흩으시고 요동케 하시어 재구성이 일어나게 하신다. 그 시간을 지나 구원의 반석에 이른다. 하나님의 영이 가까이 오면 혼돈이 오고 삶이 진동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자기의 죄성을 인정하고 누추함을 인정하고 놀라는 것이 중요하다. 영적 직관력이 관통하면 삶이 누추해서 자복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의 거룩함 앞에서는 죄의 강약을 떠나 누구나 다 누추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친구들과의 시험을 위한 혹독한 경쟁에서 죄책감이 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이 있었다. 77년 갈등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는다는 고린도전서 말씀을 보고 딜레마의 실마리를 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후에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제로 게임으로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C학점을 받고 그리고 유학 가서 공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서 밑바닥의 사람들, 공부 못하는 사람들,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느린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느린 사람들, 평화로운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보호해줘야 한다. 느린 사람들은 치임을 당해도 평화를 유지한다. 느리게 가는 사람, 경쟁을 늦추는 사람들은 사회를 안정되게 한다. 국가적으로 공부 못하는 사람들도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줘야 한다. 등수에 밀린 느린 사람들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이바지하는 사람들이다. 느린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 아니다. 생각의 속도가 조금 느린 사람일 뿐이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하나님 나라에 근사치적 세상을 만드는데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우리의 삶이 재창조되고 재건축되는 가운데 자신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충족되지 않는 자존심 그리고 그 누추함 마저 재구성하고 재창조하는 긍정적 모티브로 쓰신다. (사 6:5)죽었다고 소리치는 이사야에게 희망의 죄사함, 소망의 죄 용서가 선포되었다. 우리의 내적 결핍이 하나님의 동정심을 자아내는 마음이다. 그 때 천사가 와서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사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사 6:6)주님은 망하게 된 그 사람에게 숯불을 든 천사를 보내어 우리를 재창조하신다. 망하게 된 사람, 죽게 된 사람, 부서진 사람, 요동하는 사람, 흔들리는 사람, 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전부 다 재구성, 재창조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사회적 거세를 경험하는 일종의 가난, 출세하지 못함성, 존재 없음성, 승진하지 못함성, 애인 없음성, 시련 당함성, 외모의 열등성 등으로 자존감이 사정없이 부서지는 한국 사회에서 상처받으며 살고 있다. 이런 한국 사회를 둘러싼 언동, 문학, 해학, 코믹, 익살 등 모든 것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하나님의 자혜로움 안에서 우리의 상처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주님은 내가 황폐하게 되었다는 무인지경의 광야에서 소망의 그루터기로 바꿔주신다. 거룩한 싱글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망의 그루터기를 키우는 시간이다. 하나님 나라의 대의명분, 소명과 직장이 합할 때 배우자가 나타날 것이다. 낙심하지 말고 배우자를 구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역사하신다. 황량하게 된 시간 속에서 황폐하고 잘리고 베이는 상처 안에서 그루터기가 남아 거룩한 씨가 영원하여 그 다음 하나님 나라까지 이월되도록 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던져지는 사건이 있다. 배우자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며 직장에서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동역자가 되어, 늦게 승진되더라도 의인의 길을 인정하고 감찰하며 가야 한다. 늦게 가지만 하나님은 모두에게 대 반전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들의 나눔
은영 목자님 : 웃시야 왕처럼 잘라지고 베어지는 사건 가운데 우리들 교회에 오셨지만 요동하고 재창조되어지는 것이 두려우셨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느리고 더딘 사람이지만 나와의 관계에 놓인 그 사람의 느림과 더딤을 인정하기 싫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모습 그대로를 주님의 마음으로 이해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인내하지 못하고 요동하는 가운데 관계 속에서 답을 찾았지만 그 안에서 두려움이 있으십니다. 결국 모든 관계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인데, 내가 결정하지 않고 미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고백하셨습니다.
은아 언니 : 어머니를 따라 집회에 참석하는 부분에 있어서 가기 싫은 마음과 은혜 안에 거하고 싶으신 마음 가운데 갈등이 있었지만 참석한 자리에서 은혜를 주셔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언니의 웃시야는 관계에서 관심 받고 인정받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늘 잘 들어주고 상담도 받아주면서 인내를 미덕으로 생각하며 지내셨지만 정작 언니의 내면에 황폐함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힘들 때가 있고, 관계에서 미운 마음도 생겨서 이제는 괜찮다 라는 말보다는 솔직히 힘듦을 드러내는 적용으로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기 원하십니다.
윤선 언니 : 지난 주 말씀에 베임이 커서 한 주간 묵상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담임 목사님처럼 늘 참고 인내는 일 등이라고 자부하며 지냈는데, 의로운 언니의 틀에 답답함을 느끼고 계십니다. 늘 감정을 참고 누르며 사셨던 언니는 언니 안에 주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언니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드러내기 보다는 좋은 모습으로 포장하여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보여 지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안에서도 관계에 부딪혀도 제 소리를 내지 못하시니 주님께 깊이 기도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현명하게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길 소망하십니다.
부목 미나 : 몸이 아파서 목장에 참석하지 못했었는데, 오랜만에 밀린 이야기들을 깊이 있게 나눠줬습니다. 학교 안에서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용서 되지 않는 권위에 대해 나눠 주면서 직장을 그만 두는 문제가 아닌 내면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사회적 거세를 통해 느끼는 감정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주님께 물어가길 원합니다. 인내하고 살면서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 때문에 관계에서도 손해를 보고 있는데, 주님께서 말할 때와 인봉할 때를 알게 하시어 직장 안에서의 관계를 통해 재창조되길 기도합니다.
부목 자영 : 지금은 관계를 통해 인내할 때인데, 인내하지 못하고 요동하는 모습을 통해 주님께서 재창조의 역사를 이뤄나가시는 중임을 고백했습니다. 내려놓지 못하는 내 안의 웃시야는 자존심의 문제이고 관계 안에서 손해 보기 싫어서 인내가 부족합니다. 때문에 목장의 나눔을 통해 많은 부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대의명분, 소명과 직장이 합할 때 배우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에 아멘이 되어 집니다. 지금은 베어짐의 환경이지만 느리게 가더라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일에 힘쓸 때 주님이 이끌어 주실 것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막내 은숙 : 늘 느리고 일처리가 더딘 언니를 보면서 답답해했었는데, 그런 언니가 하나님을 먼저 만났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다. 예전에는 일처리가 빠른 나와 다른 언니를 정죄했었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처리가 느린 직장 후배를 보면 답답한데, 느린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속도가 조금 느린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관계에서 화평을 이룰 것이다.
우리들의 기도 제목
은영 목자님
나와 다른 상대방을 하나님께 의미 있는 사람으로 바라고 나와 반대되는 부분 때문에 정죄하지 않도록
어머니 백내장 초기이신데 약물 치료 잘 받아서 속히 회복되도록
일하는 가운데 노예근성이 있는데,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큐티, 말씀의 시간 가지면서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은아 언니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시간 멈추지 않고 내 죄를 보고 하나님 더 알아갈 수 있도록
전도와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삶으로 보여주도록
배우자를 위해 나 자신이 변화되도록
어린이 집 상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하기
윤선 언니
직장에서 관계의 문제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회복되도록
규티,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민감하게 깨닫고 순종하도록
부목 미나
하나님과 가족과 진실한 소통하고 직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삶의 기복적인 것들을 잘 누릴 수 있도록(재충전의 시간)
언니가 비전을 찾아갈 수 있도록
부목 자영
내가 되지 않는 인내의 부분에 대해서 잘 베어져서 재창조될 수 있도록
배우자를 주시는 부분에 대해 하나님께 맡기고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전도자들의 마음을 준비시켜주시고 그 때를 알 수 있도록
남동생 부부가 하나님께 나와 엎드려지도록
양육 교사 은혜 안에서 받을 수 있도록
막내 은숙
일대일 양육 준비 기간 동안 하나님 만나는 시간 되기
하루에 TV 보는 시간 줄이기
결혼 전 하나님과 좀 더 친밀한 시간을 갖고 소중히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