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있으니 (계 22:13~15)
복이 있는 자들은
1. 주님만이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아는 자이다.
2. 두루마기를 빠는 자이다.
3. 마지막까지 성 밖에 있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
■ 김재동
오늘 복이 있는 자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첫째로, 복이 있는 사람은 주님만이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아는 자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는 것을 믿는 것이 복이 있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 안에 구원을 위해 시작하신 일들을 주님께서 끝내지 아니하시면 끝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아는 자이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나에게 닥친 불행과 고난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시작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돈을 잘 벌면 이 지긋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내가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아 하나님이 주신 이 환경에 묶여 있어야 말씀을 더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힘으로 그렇게 끝내려고만 하는 것을 끝낼 수 없다라는 것을 믿는 것이 복이다.
둘째로,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겉옷은 겉으로 드러난 자기 자신을 말한다. 겉옷이 더럽고 잘못되어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우리의 겉옷을 빨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보혈이라고 하셨다. 겉옷을 빠는 이유는 깨끗하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없고 주님 안에 있어야만 정결해 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빠는 자라고 현재 시재로 되어있다는 것은 끊임 없이 빨아야 하는 것이고 빤다는 것은 나의 죄를 내어 놓고 회개하는 것이 보혈을 의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나의 죄를 보고, 죄를 내어 놓고, 나누고, 회개하고, 돌이킨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읽고 듣고 지키는 자,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데 보통 복은 성공, 만족할 만한 가정생활 등 가시적인 행복을 생각하지만, 눈에 보이는 복과 성경이 말하는 복은 다르기에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복을 찾게 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복을 주시려 하시기에 그 사이에서 차이가 생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는 행복을 원하고 하나님은 거룩을 원하신다. 하지만 복중에 복은 자기 죄를 보는 자이다.
셋째로, 마지막까지 성 밖에서 죄를 짓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 복이 있는 자라고 하신다. 두루마기를 빠는 자와 빨지 않는 자를 대비시켜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결국 우상, 돈, 음행에서 벗어날 수 없어 중독으로 빠지기에 두루마기를 입으로만 빨고 마음으로 빨지 않는다 라고 하시면서 결국엔 보혈로 빨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목사님의 얘기를 하셨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가시적인 공동체 안에서 죄를 내어 놓고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 고동욱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죄를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인간은 완악한 죄인이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말씀을 듣고 두루마기를 빠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고 배운 것 같고 예배시간에 새신자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기 원하는 자는 일어나라고 하셨을 때 나는 많이 일어났으니 일어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기에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두루마기를 빨고 싶은 자는 일어나라고 해서 일어났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의 가장 큰 세 가지 고민은 첫째, 입사 과정에서의 양심문제, 둘째, 회사생활에서의 인간관계, 셋째, 연애 문제이다. 나의 문제들로 하루 종일 일이 안 되어서 아는 형이 금식을 한다길래 나도 금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지난 주 3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기도했다.
나의 아버지는 한국전력 계열사를 다니셨고 노조위원장이셨다. 전에는 원자력공사와 한국전력이 한 회사였는데 2000년도에 발전회사별로 분리가 되었다. 아버지가 노조에 계셨을 때 본부장님을 아셨고 또 본부장님은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 아는 사람이 계셨었다. 원자력공사에 서류전형을 합격 한 뒤 면접을 기다리고 있던 중 아버지는 아는 사람 있나 알아봐줄까 하셨지만 거절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본부장님한테 얘기 잘 해뒀다고 하시면서 내가 본부장님과 통화하기를 원하셨다. 본부장님은 아는 사람 있으니 잘 말씀해 주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붙으면 부끄럽지 않을까요 라고 답했고 장로님이셨던 본부장님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도와주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에 나의 욕심과 겹쳐 본부장님이 잘 봐주시겠다는 허용을 했고 1,2차 면접을 보게 되었다. 대학교 때부터 다니고 싶었던 회사여서 면접보기 전에 발표준비도 열심히 했지만 발표시간이 오버되어서 혼나기도 했고 유창한 영어 실력은 아니었지만 영어면접을 보았는데 면접자 중 내가 가장 스펙이 낮은 것 같아 위축되었다. 하지만 분위기상 면접을 못 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합격했고 아버지가 전화하셨다는 것을 잊고 내 스스로 면접을 잘 봤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입사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위탁기관과 일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숙련도에 내가 기가 죽고 힘들고 괴로웠다. 거기에서 한 달 동안 근무했지만 출장시기에 해 놓은 것이 없는 것 같았고 보고서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내가 별 자격이 없고 면접 때 그렇게 들어온 것이 생각나서 내 자신이 더 작게 느껴졌다. 그래서 죄책감이 들면서 다른 회사에 입사지원서도 썼었다. 죄책감으로 괴로워서 본부장님께 문자로 보내드렸는데 본부장님은 네 실력으로 들어간거니까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주셔서 위안이 되었지만 잠깐 뿐이었고 계속 죄책감과 정죄감이 들고 요즘도 그러하기에 고민이 된다.
나는 살아오면서 인간관계가 평탄치 못하고 혼자 생각하는 생활을 해왔다. 최근 금식하면서 내 마음의 원망, 불평, 음란들이 내 몸에 달라붙어 벗어나지 못하고 율법적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강도가 크기에 쉽게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
나는 여친에게 신뢰가 가지 않는 문제가 심각함을 느껴 수요일에 퇴근하고 머리가 아파 잠을 좀 자고 나서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친이 전화로 몸이 아프다며 울려고 하기에 나에게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있나 보다 했지만 나는 지금 너를 도와줄 수 없고 내 고민들로 힘들어서 괴롭다고 했더니 여친이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어진 전화 뒤에 내가 잘 못한거구나 생각해서 다시 전화했더니 여친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너무 머리가 아파서 잠을 잤는데 새벽 3시에 깨서 6시까지 뒤척거리다가 회사를 출근했고 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계속 금식하기로 했다. 괴로워서 일상 업무만 하고 있었는데 부장님이 물어보시는 질문에 잘 못 가르쳐드리게 되었고 죄송하다고 하자 부장님은 내가 얘기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나의 단점을 점잖게 말씀해 주셨다. 나와 일을 함께 하고 있는 차장님도 이상하고 나도 이상하다 소문이 났기에 일의 성과가 좋지 않아 그 책임을 부장님께서 지고 계시는데 나의 단점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고 내가 고치려고 마음먹었더니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차장님께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금요일에 금식을 끝냈는데 여친에게 전화가 왔고 서운한 감정들을 서로 얘기했다. 하지만 여친에게 신뢰가 가지 않는 문제가 계속 남아 있고 내가 여친을 깊이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금식 3일 동안 생각했다. 내가 죄라고 생각하는 것을 여친만 만나면 맞춰주다 보니 또 죄를 짓고 있고 반복되는 것이 괴롭다.
나는 3형제 중 둘째여서 조르지도 떼쓰지도 않았고 아버지와는 진지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었으며 아버지는 형을 신뢰하는 것 같고 어머니는 동생을 사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살았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수고하시는 분이시고 부모님 품에 어렸을 때 빼놓고는 안겨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동생과 항상 붙어있다고 생각했고 초등학교 이후부터는 엄마와의 친밀감이 없었다.
■ 목자님
본인이 차장님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동욱이는 처음부터 자세히 설명해서 오해 없이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타입이고 차장님은 결론 몇 가지만 듣고 싶어 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소통이 잘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꿀 수 있기에 동욱이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직급이 차장님이니 동욱이가 넘어설 수 없기에 차장님께 결론만 얘기해 주고 나머지를 간략히 설명해 드리면 좋아하실 것이다. 직급이 낮은 동욱이가 맞춰줄 수 밖에 없고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성경적인 방법이다.
여친 문제는 여친이 동욱이에게 죄책감을 안겨주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아버지가 무섭고 일방적이고 그에 반해 어머니가 수동적, 순응적이라면 그 자녀는 부모님 중 한 명을 닮게 되는데 만약 딸이 아버지가 싫으면 수동적이고 순응하는 것을 닮게 되고 나중에 커서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런 것이 집안 대대로 넘어 온 저주 같은 것이다. 원희 같은 경우 자기자신을 개발하기 보다는 자기보다 더 쎈 사람을 찾는데 자신이 나태해 진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이다. 태진이 형은 계획하고 주도하는 타입이기에 자신을 따라와 주는 여자가 필요하다. 그것은 태진이 형이 과거 어머니와의 문제에서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에 어머니 같은 여친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동욱이가 여친을 신뢰하지 못 하는 것은 엄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동욱이가 엄마에게 신뢰를 한다고 하는데 왜 어머니와 대화를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라. 동욱이가 어머니에게 떼쓰지 않았다는 것은 자식으로서 정상적이지 않았고 어머니 옆에 항상 동생이 있었기에 동욱이는 엄마와 올바른 애착관계가 없었고 올바른 사랑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랑에 대한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엄마에 대해 근본적으로 기대를 안 하게 되었고 엄마와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사랑 받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구김살 없이 사람을 대하는 자를 부러워하게 된다. 결국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해결되지 않는다. 동욱이는 편한 인간관계에 대한 열등감이 있기에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편한 느낌을 주는 우리들교회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성숙하지 않으면 결국 인간관계에서 힘이 든다. 여친이 무언가 이야기 하지 않는 부분을 동욱이는 알고 싶어 하지만 여친은 나눌 수 없기에 그 여친에게 끌리는 것이다. 어머니와의 풀리지 않은 문제, 섭섭해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고 여친이 뭔가 털어놓고 얘기 못하는 것에 대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한다. 신뢰의 문제는 하나님, 어머니, 여친에게서 나오는 모든 문제이다. 내가 내 힘으로 나의 고민들을 해결하려고 하니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다. 동욱이는 스스로 해결하면 좋아하고 그렇지 못하면 괴로워하는 타입이다. 내 문제인데 내가 해결 해야만 한다는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의 가장 큰 문제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어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있다. 동욱이가 해야 할 적용 중 첫째는 그 회사에 감사하며 다녀야 한다. 내가 받을 수 없는, 내 능력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경험을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 노력 없어도 받아야 그것이 은혜이다.
문제 해결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으려고 해야 한다. 오늘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과 깨닫게 된 것 두 개, 세 개만 마음에 간직하고 적용하고 살면 된다. 주님이 시작하고 끝이라고 하신 오늘 말씀을 가지고 나로 예를 들겠다. 난 최근에 너무 힘들고, 돈도 벌어야 하고, 사역도 해야 하고, 학교 공부도 해야 하니 계속 먹게 되고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없어 몸이 별로 안 좋고 우울해지고 혈당이 떨어져 힘들었다. 우리들교회에서 사역을 하나 내려놓든지, 과외를 안 하든지, 학교를 휴학하든지 못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 개중에 뭐 하나는 정리 안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 했는데, 오늘 말씀을 들으니 세 개중에 무언가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리들교회에 오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나가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기에 내가 있어야겠고, 돈 문제를 훈련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면 훈련이 끝날 때까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적용은 주님이 끝내실 때까지 말씀을 보고 견디고 증거하면서 살아야겠다이고 이것을 가지고 일주일을 사느냐의 문제지 내가 당장 오늘 어떻게 해야겠다의 문제는 아니다. 사이가 안 좋은 아버지를 붙여준 것도 하나님이시니 문제를 해결하려면 답이 없기에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 때문에 한 번 인내해보겠다, 적용해 보겠다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금식이 아니라, 회사 사직서 쓰는게 아니라, 여친과 단절하는게 아니다. 오늘 에스겔 큐티를 했는데 너는 양을 버렸지만 나는 양을 버리지 않겠다라고 하셨다. 말씀을 보고 나니 중등부 찬양팀과 스텝들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피곤해도 점심을 먹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줬더니 기쁨이 생겼다. 내가 그들의 목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회개를 하고 적용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사람이니 이 양들을 잘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나를 바꾸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 윤주희
에스겔 말씀을 보면서 벌하시겠다는 내용이 많으니 내가 어디에 어떤 적용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회사에 개발자 커플이 있는데 여친이 교통사고가 나서 그 프로젝트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다음달에 결혼하시려는 회계담당 과장님의 시아버지 될 분이 돌아가셨다. 죄의식인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잘 못하고 있으니 에스겔 말씀처럼 주변인을 치시는 느낌이다. 오늘 교문 앞에서 희정이를 기다리는데 양손에 지팡이를 짚으며 횡단보도를 건너오고 있는 한 장애인이 넘어졌다. R목자가 일으켜 세우면서 도와드렸는데 나는 그때 전화를 하고 있었던 터라 다시 해도 될 전화를 끊지 못하고 도와드리지 못했다. 그 장애인은 우리 교회에 처음 오시는 분 같았는데, 전도축제에 누구 하나 데리고 오지 못한 내가 스스로 찾아 오신 형제님도 도와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이 느껴졌다.
금요일날 말씀에 파수꾼이 제대로 역할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요즘 내 멋대로 살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텀에 양육교사 했던 기억이 나면서 그때 말씀 열심히 보았지만 요즘 나는 바쁘니까 피곤하니까로 합리화를 시켜버리고 전도축제날 데려올 대상이 있었는데 만나지도 못했다. 또한 유아부 참관을 했는데 10분을 늦어버렸고 유아부에 가서 잘할 수 있을까, 빨리 준비 못하고 계속 게으르고 꼼지락거려서 뭘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가관인건 금요일 아침에 정말 정신이 없었는지 팬티를 뒤집어 입은 채로 출근을 한 것이다. 한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그런거 보면서 내가 진짜 뭐하며 살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 어제도 기도도 못하고 자고 그냥 자버리는, 하나님의 시간으로 쓰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특별한 고난이 없으니 이 상태로 만족하고 지내다가 나태해 진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이 상태가 불안하다. 내가 즐거우면 이 즐거움이 언제 끝나버릴 것 같다는 그래서 그 즐거움을 확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사건을 주실 것만 같다.
주희는 밸런스가 무너졌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면서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사건을 통해서 구원하고 싶으신 것이고 구원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맞지만 친구처럼 친근한 분이시기도 하다. 나에게 사건으로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이지만 나를 과도하게 사랑해 주시는 분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심판도 사랑이시다. 두려워서 감정을 방어하여 즐거울 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방해 요소가 된다. 죄에서 벗어나 내가 하나님에게로 가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기에 하나님과의 밸런스를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도 받아야 한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다. 내 죄를 보는 것은 꼭 해야 하는 것이고 회개하면 평안함이지 두려움이 아니다.
■ 강원희
일하는 곳이 강북으로 바뀌면서 일대일 양육을 받는 장소로 가는데 차로 1시간 이상 걸리게 되고 차도 막히니 시간이 많이 걸려 힘이 든다. 양육자와도 시간이 맞지 않고 일도 오후 10시나 11시에 끝나다 보니 솔직히 훈련이라 버티고 있긴 하지만 하기 싫다.
여친은 털털한데 나는 그렇지 못해서 사소한 것에도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집을 옮겨보려고 부모님이 돈을 좀 주신다고 하긴 했는데 여친이 돈을 너무 생각한다.
어떻게 해서든 토요일 저녁이나 주일 저녁으로 맞추도록 해 보아라.
늦게 결혼하는 것은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기에 나중에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자유가 나중에 짐이 될 수 있다.
■ 박성아
지난 주 목장에서 얘기하지 않은 사건으로 계속 눈물이 났고 하나님께 다가가려고 기도하려고 하면 눈물이 났다. 내가 가을을 타서 눈물이 나는 건지 회개해서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수요예배 때 목사님이 내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그게 내 맘대로 안 되신다는 기도가 내 마음과 정말 똑같아서 눈물이 나면서도 속상했다. 한 주 동안 눈물이 울컥 나고 큐티할 때 도 눈물이 났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고 내가 내 마음을 자꾸 의심하는 것 같다.
세탁소에서 드라이를 맡겼는데 내 계산으로는 17,000원이 맞는데 아주머니가 16,000원 라고 하시길래 그 순간 1,000원 더 아꼈다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까 아주머니에게 ‘계산 잘못하셨어요’ 라는 말은 안하고 다시 ‘얼마라고요?’ 해서 다시 계산하고 1,000원을 드렸다. 천 원 가지고도 이러는데 백 만원, 일 억이면 정말 사기도 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이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난 아직 안 되는 것 같다. 나의 것을 내어 놓고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은데 내 이미지를 지키고 싶어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이 나의 얘기를 듣고 뭐라 할 거 같은 것에 대해 아직은 내 믿음이 안 되어서 못하겠고 목자가 처방을 어떻게 할 것인지 예상이 되어 적용을 하기 싫어서 그렇기도 하다. 나는 양육으로 변하고 싶은데 여전히 변한게 없어서 내가 최소한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큐티와 말씀, 기도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적용을 하는 것이고 원칙에 따라 무엇을 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도 못 끊는 것이 있는데 남에게 끊으라는 얘기는 못한다. 처방에 대한 것이라면 걱정 안 해도 된다.
■ 김지은
나는 나를 괴롭히는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졸음이다. 학원에서 심할 때는 몇 시간 자다 오는 경우도 있고 집에 와서 공부로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뉴스를 보는 데에 시간을 써버린다.
더러운 화장실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내가 지정해 놓은 곳의 화장실만 간다. 결혼하면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하지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것이 나에겐 큰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나에 대한 이해보다 몇 마디의 말로 나를 단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안 좋은 피드백으로 오니 사람들이 나에 대해 싫어하고 안 좋은 이미지로 생각하기에 타인과 단 둘이 있을 때 너무 힘들다. 지난 주에 목장식구들과 밥을 먹을 때 좋으면서도 불편했는데 내가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공무원 시험도 점수가 잘 나오지 않고 싫어하는 역사 과목을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짜증이 나지만 나와의 싸움인 것을 아니까 덕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학원에 다닐 때도 울면서 다녔는데 내가 왜 이 시기에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고 또 열심히 못하니 공부하려면 눈물이 나서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할 때가 있다. 사람과 관계가 안 되는 것과 심한 강박, 사람에 대한 분노의 문제가 힘들고 조금만 사람과의 관계가 있으면 어떤 계기로 더 친해졌다 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타인과 어울리는 방법을 못하는 것이 답답하고, 변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싫다.
누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얘기하겠다고 하시면서 잠, 꿈과 상상, 화장실, 인간관계를 말씀하고 나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결론은 싫어하는 나의 모습으로 끝내셨는데 외부의 것을 싫어하는 것이 결국 내 자신을 싫어하는 것으로 결론 지으신 것이다. 나의 상처는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찌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누나가 갖고 있는 의미 있는 대상에게 화를 내는데 결국 종착역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계속 죄를 짓지만 죄책감이 쌓여 화를 내게 되기에 누나 자신을 용서하는 길 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비난도 자신의 죄책감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누나의 부정적 감정들이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다. 공무원이 되지 않아도, 집에서 착한 딸이 되지 않더라도, 예쁜 여자가 되지 않더라도 누나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분이다. 지금은 죄인이지만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이 없으신 것인지… 권력도 10년 이상 가는 것이 없고 붉은 꽃도 한 철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능력 있는 목회자, 부모가 못 된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만났기에 나는 결코 이 땅에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은 결코 이룰 수 없다. 누나가 생각하는 누나는 본봉이고 타인이 생각하는 누나는 보너스이다. 보너스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중요하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진짜 원해서 하는 일과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하는 일의 동기부여의 차이는 클 수 밖에 없다. 타인이 생각하는 누나는 누나가 아니다. 김양재 목사님은 여성 목회자이지만 남자 목사님이 안 좋은 말을 해도 목사님은 하나님과 친하니까 괜찮으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와 하나님과의 친밀도이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 홍태진
감기가 걸려서 3일 앓아 눕게 되어 목보도 제대로 못쓴 것 같다. 목요일부터 괜찮아져서 쓰기 시작했다.
올 4월 결혼예정인 친구가 나에게 비데를 사달라고 하여 어떤 모델을 사달라는 요구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였는데, 난 기다리지 못하고 친구에게 모델명을 얘기해 주면 사주겠다고 했고 그래도 연락이 없어 그냥 사줬다. 결혼 전에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다른 친구는 비데를 사달라는 요구에 거절을 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재혼하는 거여서 내 생각에는 그냥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사줬다. 사회도 봐달라고 했는데 결혼식 전에 미리 알려주지도 않아서 결혼식 순서를 일일이 찾아가면서 해 주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 친구는 수고했다는 한 마디뿐이었고 신혼여행 후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길래 내가 연락했더니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무성의한 그 친구에게 만나서 서운한 감정들을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너무 화낼 것 같아 한 박자 쉬고 온 것이 지금의 시기까지 온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상담을 받아서 융화시키고 목장에 나누고 하니 이제서야 연락이 되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만나서 어떤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기회가 되면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나갔는데, 나보고 약속시간 전에 미리 오라는 것에 대해 기분이 나빴다. 친구가 준 초콜릿과 상품권을 받고 그 동안 어떤 식으로 바빴기에 만나지 못했는지 얘기를 들었더니 결혼 한 달 동안 양가에 인사 드리기 바빴고 와이프가 유산이 되어 우울증까지 와서 시간이 없었다는 거였다. 그런 상황을 듣고 예전에 비해 화가 나거나 그러진 않았다. 내가 착해 보이고 우월해 보인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비데를 사주려고 했던 것을 알았기에 이번 만남은 문제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음식값도 내가 먼저 내왔었는데 이번에는 더치페이 하자고 했고 이 의미는 더 이상 이런 것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표현의 적용을 했다.
언제나 기본적인 바운더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과도한 부담이 있는 자리에서 울타리를 치려면 싫은 것에 ‘No’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이해타산적이기에 그런 것이 맞지 않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유지되기가 힘들다. 근본적인 성향은 컨트롤 되는 것이기에 계속 컨트롤 하시고 기준을 정하시면 좋겠다.
■ 윤혜진
혜진아~ 이번주에 올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