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09월 16일 김재동 목장 - 우리들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
말씀 : “고린도전서 02:16”
제목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선포 : “한재성 선교사”
[말씀요약]
(02장16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선교는 헌신이 아니라 희생이다.”
91년에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어를 공용으로 쓰고 있다. 언어 못한다고 선교못하는 것은 핑계다. 선교모임때 헌신한다고 하지만 실제 하지는 않는다. 헌신은 하지만 희생은 하지 않는다. 헌신뿐아니라 자기를 내어 들여야 한다. 카자흐스탄에 갔을 때 그쪽 날씨는 영하 50도~영상 50도까지 왔다 갔다 한다. 스탄은 누구누구의 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 것도 아닌 다 하나님의 땅이다. 카자흐스탄은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함이 있었다. 처음91년에 선교사들이 왔을 때 돌봐준게 고려인들이다. 고려인들이 강제로 이주했을 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몰랐지만 91년 소련 붕괴로 인해 선교사들이 왔을 때 다 고려인들을 통해 디딤역할을 하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 인도하시고 우리를 이끄심을 알고 그렇게 우리를 나를 내어 들어야 한다.
“상함과 배신감의 예수그리스도의 마음”
제가 태권도를 하는데 운동을 통해 선교사로 쓰임을 받게 되었다. 여러분의 작은 달란트를 주께 드리면 주께서 크게 쓰임을 받게 된다. 내가 할려고 하기에 힘들지 하나님이 하시면 아주 쉽다. 제가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커플도 나오고 결혼도 했다. 잘된 것도 못 된 것도 있다. 한국말을 하는 꼴랴라는 청년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역시 태권도는 한국인을 위해 만든 운동인거 같았다. 꼴랴가 자기도 태권도를 통해 선교를 하겠다고 했다. 정말 기뻤다. 열심히 꼴랴를 훈련시키던중 IMF 사태로 환율이 너무 올라 선교비를 몇 달째 받지 못했다. 몇 달을 선교비 없이 견딜때 교회 교인들이 매일 저녁마다 음식을 접대해 줬다. 여러분이 물질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선교사들이 큰 힘을 얻는다. 선교비를 가지고 오던 청년이 기차에서 격투끝에 선교비를 잃어 버리고 배에 칼을 두번 찔려서 왔다. 나는 돈보다는 살아서 오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성도가 경찰에 신고해서 조사를 해보니 그 청년이 돈에 눈이 멀어 자해해서 돈을 훔친 것이다. 그 청년이 교회에 와서 저한테 죄송하다고 울면서 얘기하길래 용서해줬지만 교회에서 소문이 나서 결국 다른 곳으로 보내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내가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속이 상하고 배신당한 예수님의 마음을 가롯유다에게 상한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 선교는 순종이다.”
97년 12월 24일 성탄전야제를 마치고 보름달 가운데 영하 30도에 눈이 쌓여 있었다. 그날 집에 가던중 6명의 괴한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집에 왔을 때 아내에게 미안했고 당한 제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배에 가스가 차고 창이 꼬인것처럼 배가 아팠다. 주님께 원망과 항변을 하였다. 복음전하러 왔지 맞으러 온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런데 주께서는 스데반이 죽을때까지 천국을 보여주며 갔다고 했다. 그 후 천사들이 와서 나를 치료해 주었다. 주께서는 이런 저에게 깨닫게 하기위해 잠시 그런 고통을 주셨다. 그 뒤 비자문제로 나오면서 교회가 많은 걱정되었다. 필리핀 선교를 하면서 그쪽 교회에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선교는 순종하고 따르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내가 없으면 안될줄 알았는데 내 힘으로 되는게 아니다. 필리핀에서 선교할 때 안 자매가 다른 이들에게 공격을 받아서 생명이 위독했었지만 그 사건으로 주님께 영접하면서 아픈 상처가 다 나았고 식구들도 전도하였다.
“하나님의 마음! 우리가 해야 할일!”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많았는데 2004년에 가게 되었다. 거기 갔을때는 좋았지만 어느 날 집에 들어오자 한 괴한에게 쇠파이프로 머리를 맞았다. 정말 죽겠다는 생각을 할 때 내 아내가 생각났다. 아픈 몸으로 집에 들어가자 손발이 묶인채 피흘려 죽어 있는 아내를 보게 되었다. 정말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었다. 아내의 장사를 치루려 한국에 왔을 때 주께서는 나와 함께 하시며 주께서 나도 자기 아들이 죽었을 때 얼마나 아파하셨는지를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천국과 이땅은 중보 기도는 서로 끊임없이 통한다. 2년이 지나서 주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시길 순결한 자를 주시겠다 하셨지만 저는 나 몰라요라며 거부했다. 하지만 자리를 마련해서 만났다가 결국 결혼하게 되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이 아닌 우크라이나로 가게 되었다. 거기서 3명의 딸이 그리고 한국에서 1명의 딸이 생겨 저에게는 지금 6명의 딸이 있다.
여러분 삶가운데 선교사만 선교하는게 아니라 있는 곳에서 주의 말씀을 전하는게 선교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뭔가를 하시길 바란다.
[목장 나눔]
목자 #8211; “선교사님 설교 말씀 정리”
첫번째 배신당한 사건이 있었다.
자기의 첫열매인 꼴랴가 선교사비를 훔쳐서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 십자가를 볼 때 생각나는 것은 배신감이다. 3년동안 제자들을 위해 헌신했는데 한명은 팔고 한명은 도망갔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두번째 아내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죽게 해야만 했던 십자가에 내어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파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렇게 아파해보지 않고서는 내가 알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고통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저는 그 선교사님의 아내 잃은 부분에 많은 눈물이 났다.
사랑과 고통은 왜 같이 올까요?
내가 고양이를 사랑하지만 고양이는 나보다 먼저 죽는다. 사랑을 할 때는 애착이 있어야 한다. 나랑 공간과 시간의 애착이 없으면 사랑으로 발전할 수 없다. 애착은 내 소유 내 꺼 라는 것이다. 밀착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애착에는 상실을 수반한다. 선교사님도 말씀하시길 배우자와 얼만큼 가까워졌느냐에 따라 상실의 큼이 다르다고 하셨다. 상실은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다. 사랑을 하면 언제나 고통이 함께 온다. 왜냐하면 나랑 영원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는 그렇게 상실이 두려워서 눈물이 났다. 저분들은 목숨 걸고 선교하시는데 나는 뭘까? 하는 자기 연민 또한 있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죄지은 우리들에게 독생자를 내어 줄만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그런 고통을 감당하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해주기 위해 선교사님 아내를 데려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익숙한 말씀에 잘 듣지 않기에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다르게 하셔서 전해주신 것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죽음조차 익숙해진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지친 애들은 죽음에 익숙해 진다고 한다. 우리는 중요한것에 익숙해져서는 안된다.
같은 말을 다르게 말하는게 실력이다. 김양재 목사님은 같은 주제와 말을 다르게 설명하신다. 같은 말을 다르게 설명하는게 실력중에 실력이다. 외국에서 고소득 웨이터들의 특징은 자기만의 포인트와 손님들에게 뭔가 다르게 대하기에 차이는 보통사람들과 10배나 차이 난다. 제가 애들을 가르칠 때 똑 같은 방식과 얘기를 하면 재미가 없기에 하나만이라도 뭔가 다르게 설명하면 새롭게 느껴지게 된다. 이게 실력이게 이럴려면 열정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가장 힘든 것은 배신이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놓을 때 온 상실의 아픔이 가장 큰 것이다. 제가 얼마 전 친한 누나가 시집을 가서 얘를 낳았다. 얘를 데리고 왔는데 누나가 얘를 너무나 사랑하였다. 내가 둘째를 가질거냐 물어보면 임신과 해산의 고통 때문에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누나에게 자식을 만약에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있냐고 했더니 기겁을 하였다. 사랑의 품안에 있는 자식하고는 그 누구하고도 바꿀 수 없는거 같다. 그때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인용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십자가의 고통과 사랑을 느끼냐고 했더니 누나가 알꺼 같다고 했다. 이렇게 다른 것 같지만 같은 말씀을 새롭게 전해주면 좋다.
고동욱 #8211; “여자의 마음…?!”
여친하고 싸웠다. 여친은 저한테 편하게 의지하고 싶은데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오랫동안 느낀 결론이라고 했다. 제가 신뢰를 못 주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제가 자꾸 관찰하고 따지는게 있어서 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같은 문제인거 같다. 말하려니 창피하다. 제가 문제인거 같은데 고민해도 해결이 안되는거 같다. 저는 고민이 생기면 잊지 못해서 일도 안되는데 여친은 잊어버리고 일만 잘하는거 같다.
1월에 만나서 3월에 아무 이유 없이 만나지 말자는 말에 겨우 다시 만나서 여친이 저랑은 헤어지는게 좋다고 했지만 제가 계속 만나자고 설득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4월부터 다시 만나면서 스킨쉽이 슬슬 많아졌다. 스킨쉽이 많아지면서 저 스스로 깜짝 놀라면서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 그 후 6월경에 아가씨가 다시 헤어지자고 했지만 제가 헤어질 수 없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스킨쉽이 잦아지면서 나는 로맨스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여친은 낭만적인걸 좋아했는데 제가 센스가 없어서 맞춰준다고 한게 스킨쉽이 많아진 것이다. 나는 사람들하고 교류하는데 문제가 있어서 여자 친구와 만나면서 이제서야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아는 형이 곧 결혼하는데 전에 저보고 여자는 연애할때 연애 경험이 없는 남자를 아주 답답해 한다고 했는데 그제서야 그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면서 여친이 참 많이 답답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가씨도 저도 서로 싫어하는 마음은 없는거 같다.
여친이 피아노 전공인데 박사과정을 하고 싶다고 했다. 대전에서 연주회도 많이 한다. 얼만전에 제주도가서 연주회를 가졌다. 여친이 박사과정을 하는데 있어 예전에 결혼후에도 도와줄꺼냐고 했더니 결혼후에는 너내꺼 어디 있냐고 하라고 했는데 요근래 들어 결혼준비 때문에 돈 문제로 머리가 아픈데 그 말을 듣고 꼬치꼬치 캐묻게 되자 여친이 나보고 돈달라고 했냐고 내가 알아서 할꺼니까 신경끄라고 그러더니 다음날 만나서 나보고 쪼잔하다면서 불평 했다. 얼만전에 아가씨가 좋아하는 브랜드로 귀걸이를 사서 주러 갔다가 여친이 받으면 안될꺼 같다면서 훽하고 돌아갔다. 그래서 나도 화나서 돌아왔다. 박사과정 때문에 화난거에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로 좋아하지만 제맘속에 신뢰문제가 그리고 아가씨 맘속에는 나한테 의지할 수 없다는 불신이 있는거 같다. 내가 저를 보면서 참 이상하다는 것과 이런 나를 참고 만나준 여자친구가 고맙다. 저는 제안에 율법적인게 강해서 문제인 것이다. 저 스스로의 문제이다. 선교사님 말씀을 들어도 제가 어느 정도 기도와 말씀으로 도달해야 할 경지라고 생각한다. 설교를 들어도 그 말씀듣고 내안에 율법적인걸 세워놓게 된다. 이 율법은 저 스스로 자기죄를 노력과 수고로서 감추려는게 있다.
박성아 #8211;
여자가 말했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그 분위기 상황과 여자맘에 따라 다르다.
남자들 #8211; 어렵다. ㅜㅜ
목자 #8211; “진정성 없는 자기 방어”
나름대로 정리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의 얘기를 하면서 자기 문제와 답변, 성찰까지 말한다. 이건 자기 방어가 강하다는 것이다. 본인은 자기 방어가 정말 심하다. 질문을 하면 오랜 고민을 통해 해결 하고자 하고 또한 논리적으로 답변을 하지만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굉장히 준비된 답변이다. 사람이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사람은 직접적으로 알 수 없다. 하나님만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 외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30년 된 부부에게 부인을 아냐고 물어보면 서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항상 서로 곁에 있는데 왜 모르냐고 물어보면 정말 모르겠다는 것이다. 부모님보다 오래 그리고 아주 가깝게 지내는데 경험상으로 따지면 잘 알아야 하는데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른다는 것이다. 직접접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이 아는 것에 한계가 있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알 수 없기에 이 사람에게 알고자하면 딴 사람들에게 물어서 들어야 한다. 아니면 책이나 상담을 받거나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나한테 도그, 메리, 종이라는 개가 있는데 메리가 아픈데 왜 아픈지 몰라서 도그와 종을 관찰해서 메리를 알게 되었고 메리를 깊게 관찰하니까 도그와 종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개체 하나를 연구해서 보편을 알게 되고 보편을 통해서 개체 하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거외에는 아는 방법이 없다. 본인이 율법적으로 알려고 해서 공부했지만 알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는 알 수 가 없다. 내가 내 몸 등이나 엉덩이를 볼 수 없기에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다른 보편적인 것을 접하지 않고서는 나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알기 위한 보편적인게 필요하다. 본인이 이성적이고 자기가 합리적으로 도출해서 답을 찾지만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보편적인 즉 내 모습을 보는 거울이 있어야 한다. 목장에서 다른 사람을 통해 자기 모습을 봐야하는데 그게 부족한 상태에서 여친을 만나서 여친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보니까 혼란스러운 것이다. 여자의 마음을 알려면 여자랑 연애를 해봐야 안다.
내 신앙이 올바르게 서있는지는 탁류가 와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부분은 천천히 얘기하자. 여자의 심리 중 하나는 확인하고 싶어한다. 여자는 사랑받는 것을 확인 받고 싶어해서 이말 저말을 해서 확인하고자 하기에 그럴 때 남자가 해야 하는 말은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어라고 확인시켜주는 답만 해주면 된다. 이면의 뜻을 봐야 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외워도 그 뜻이 와닿지 않기에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앞으로 이 네마디만 하길 바란다. 정말? 진짜? 왠일이니! 헐! 여자친구가 무슨 말을 하면 예를 들어 비가 와서 우울하다면 정말? 진짜? 왠일이니! 헐! 이말만 해라. 여친은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걸 잘해주면 여자친구가 정말 잘 해준다. 이걸 못해서 여친과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여자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매직워드 우리 모두 다 같이 정말? 진짜? 왠일이니! 헐!
부활의 김태원이 말이 없는데 부인은 김태원을 정말 좋아 한다고 한다. 김태원은 부인이 무슨 말을 하면 추임새로 어? 음…. 이말만 한다는 것이다. 딱 이마디만 하는데로 부인한테 그렇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이면 뜻이 중요하다. 여자는 자존심이 있어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계속 사랑을 확인해 줬어야 한다. 얘들도 관심과 사랑을 가지지 않으면 돌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제 말이 뭐냐고 본인은 맥락을 파악하고 있다는데 이면의 뜻을 알지 못하면 맥락을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뇌를 비우기 바란다. 차주에 율법에 관한 것은 성경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겠다.
강원희 #8211; “직업의 선택”
컴퓨터 AS를 3주째 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콜받으면 고객을 찾아가는 서비스다. 하루에 3~4건 씩있는데 일이 없으면 공허하다. 콜이 없으면 정말 공허하다. 회사는 중랑구에 있고 콜이 없으면 길에서 차안에서 계속 대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일이 없으면 정말 어렵다. 이 일을 계속해야하는지 그만둬야하는지 여친이랑 살면서 전세금도 갚아가야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하면 잘해야 똔똔이가 될꺼 같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힘든 일이 있으면 교회다니기 전처럼 친구들과 같이 술,담배하면서 놀고 싶은 유혹이 강하다. 제가 장남인데 가족을 책임져야 하기에 좀더 돈을 많이 벌어서 좀더 가족들이 여유롭게 생활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크다. 결혼 상견례를 다음주에 하기로 했다. 저번에 하기로 했는데 싸워서 하지 못하고 이번에 하기로 했다. 다른 부분은 크게 걱정이 안되는데 예전일을 하면 돈은 적어도 꾸준히 나오는 일을 해야하는지 내가 잘하면 좀더 벌수 있는 이일을 해야하는지 고민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게 서비스업이라서 편법도 써야 하는게 맘에 걸린다. 일을 하다보니까 영업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고민이다.
목자 #8211; “합리적인 가격”
합리적이라는 가격은 없다. 가격은 수요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사회개념이나 통념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가격은 상황과 조건,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진다. 방문해서 차기름값과 회사 부품값을 사서 수리해줘야 하기에 너도 이윤을 내야 하기에 그 가격이 불합리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네 자신이다. 나 같으면 잘 할 수 있다. 양심에 구멍이 났기에 잘 할 것이다. 저도 고액과외를 해봤는데 부담되고 나한테는 안맞다는 생각에 안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원희는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있고 자동차 검사원도 해봤다. 부족하지만 먹고 사는 것은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돈을 잘 벌고 싶은 맘이 있다. 결국에는 돈을 잘 벌고 싶은 것이다. 공인중개사는 경기가 않좋고 자동차 검사원은 뻔한 월급이고 컴퓨터 AS 는 잘만하면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정된 고객과 거래처가 늘어날수록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고 남에서 있지 않고 프리하게 할 수 있고 자기 적성도 맞고 하지만 지금은 결혼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원희는 부조리와 양심적이지 않으면 무척 힘들어한다. 굉장히 정확하고 정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는 자기 양심 따위는 버린다. 책임질 여자와 대출금이 있기에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면 고민이 되는 것이다.
“결혼은 공감이 아니라 감당이다.”
결혼은 공감이 아니라 감당이다. 공감은 서로 비슷한명이 있고 서로 좋아하기에 결혼하는게 아니라 결혼은 충실히 수행할 과업인 것이다. 충실히 수행할 그 과업을 도중에 포기 할 수 없는 것이다. 결혼은 공감이 아니라 감당인데 뭘 감당해야하느냐? 저 사람의 약점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혼의 척도이다. 우리는 서로 약점 때문에 끌리는 것이다. 내가 없는 것을 이사람에게서 끌리는 것이다. 서로 약점 때문에 결혼 하면 그것 때문에 망한다. 결혼은 망망대해와 같다. 감당 할 수 있는지 보고 감당 못하겠다면 감당 할 수 있는 마음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람의 성향이 쉽게 변하기에는 어렵다. 원희는 인간다운 자존심이 너를 지탱하는거라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박성아 #8211; “허전한 내맘”
이번 한 주는 우울했다. 월요일 출근했는데 내가 돌보던 아이 네명중 한명이 엄마한테 가고 내가 너무나 예뻐했던 아이 갓난아이가 수요일에 입양을 가서 그 허전함에 정말 많이 힘들다. 이런 경험은 처음도 아니고 날짜도 알기에 준비를 했지만 저랑 같이 일하는 파트너는 처음이라서 정말 힘들어 했다. 얘기랑 나랑 스킨쉽이 많은데 없어지자 너무 허전하고 힘들다. 양육을 다음주부터 받으려 했지만 집에 가면 우울해서 힘들거 같아 이번주부터 하자고 했다. 양육을 하고 싶은 사모함이 컸는데 큰 만큼 실망도 크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일대일 양육이 힘들다고 했는데 가늠이 되지 않았다. 수요일에 얘를 보내느라 늦께 와서 쉬는날 양육숙제에 집중하는데 숙제를 막상하니 힘들었다. 간증문을 쓰면서 눈물이 참 많이 났다. 큐티도 보면 심판 심판이라 보기 싫었을뿐 다 내 얘기하는거 같았다. 전에는 자기연민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간증문을 쓰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눈물도 나고 좋았는데 금요일에 다시 출근했을 때 얘가 없자 정말 슬퍼졌다. 정말 우울해지면서 집에와서 내가 쓴 간증문도 내기 싫고 일대일양육도 받기 싫고 내가 우리들 교회를 왜 왔는지까지 생각하게 됐다. 계속 좀 우울하게 있다가 오늘 선교사 말씀에 여기 앉아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꽂아주신것이라는 말씀에 위로 받았다. 선교사님은 아내를 잃고도 원망도 기도로 원망하시는거 보며 내가 예전일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그렇게 까지 싫어하는게 내가 그 정도까지 해야 했는지 내가 너무 원망하고 내가 정말 악했구나 나쁜 애였던거 같다. 한 주는 많이 불안해 하고 힘든 한 주였다. 나는 예전보다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
복지관에서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처음으로 맡았던 아이와 헤어지자 정말 많이 힘들어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교회를 다니다가 안다닌다고 해서 선생님을 위해 나도 작년까지는 아이들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하나님을 만난뒤로는 괜찮아졌다면서 선생님을 위해 기도해준다고 했다.
목자 #8211; “사랑은 독립시켜주는 것이다.”
정을 준 대상이 나를 떠나는건 정말 힘든거 같다. 진정한 사랑은 독립시켜주는 것이다.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너 없이는 못 살아라는 정말 최악이다. 나에게 의존 하게 하고 내가 이사람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 아이에게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존재감을 통해 내 자신의 자기애를 표출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가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알기에 제자들에게 자기 죽음을 몇번이고 알려 주신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만에 부활한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하셨다. 이게 뭐냐하면 다 독립시키는 것이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다. 부부상담을 받을 때 상담 박사들은 정신적으로 서로 이혼하라고 한다. 같이도 혼자도 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이 사람을 언젠가 독립시키는 것이다. 얘가 혼자 독립하나? 어릴때는 의존과 통제해 주다가 시가가 되면 독립시켜줘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대하는게 중요하다. 저도 목장 바뀔때마다 힘들다. 여자들이 첫째 낳고 둘째를 가지고 싶을 때는 첫째가 자기 생각을 갖을 때다. 왜냐면 살아 있는 인형이었느데 얘가 자기 생각을 가지면서 싫어지는 것이다. 이게 사랑인가? 자기애인것이다. 사춘기때는 부모와 다른 생각을 가지는 시기가 필요하기에 반항을 하는 것이다. 부모와 분리가 되어야 한다. 만일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9개월을 있다가 나오지 않으면 180cm 까지 클 수 없다. 낳아야 한다. 엄마가 아이를 싸고 도는 마마보이로 키우다 사건이 오면 바로 죽는 것이다. 안아주시면서 얘한테 너는 믿음을 가지고 믿는 사람 만나고 믿는 가정으로 가길 기도해주길 바란다.
목자 #8211;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
내것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도 외모도 집도 빌려주셨는데 어느순간 다 내것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돈이 그렇다.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 하라고 주신것인데 이걸 내놓으라 하면 눈에 쌍심지로 치켜 든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아이가 말 잘 듣고 이쁜짓 하기 때문에 예쁜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다 차별한다.
윤혜진 #8211; “오빠의 구원”
오늘 선교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아내와의 이별이 하나님의 아픔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이 선교지라 했는데 오빠를 위해 구원기도도 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학원에서 애들한테 짜증 내는 것도 고민되고 오빠는 생각나지만 나도 내 시간을 갖고 편하게 지내고 싶어졌다. 매번 해줬다가 한 두번 안하다보니 방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빠가 걱정은 된다. 나는 걱정되는데 오빠는 나한테 연락도 안한다. 오빠는 내가 해주는게 당연히 여기는거 같다. 오빠가 다른곳에서는 내얘기를 하면서 걱정한다고 하는데 오빠나 나나 서로 표현 못하고 뒤에서만 도와주는 것이다. 서로 낯간지러워서 겉으로는 표현을 잘 못하는거 같다.
목자 #8211; “사랑의 방식”
적용은 잘하신 것이다. 오빠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해야 한다. 사랑은 독립이다. 그러나 잘못한 것은 오빠 집가서 빨래해주고 옷사주고 그런 것은 안되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오빠한테 문자나 전화로 서로 격려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서로 제대로된 소통법을 모르는 것이다. 손가락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사랑의 다른 말은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오빠를 사랑하면 교회에 나오게 해서 좋은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해야 한다. 그 표현을 말로 못하고 집 청소 해주고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가족은 오직 구원을 위한 공동체다.”
가족은 당연히 사랑할 존재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 묶인 공동체다. 세상은 가족 신화를 내세워 사랑하란 것이다. 가족은 구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할 것은 챙겨주는게 아니라 오빠의 구원이 중요하다.
“벽에 갇힌 나”
창세기에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제일 먼저 한 것은 성을 쌓은 것이다. 하나님은 가인을 지켜준다고 했지만 그 말을 무시하고 성을 쌓아 문명을 발전시켰다. 내가 내 스스로 지키는게 그게 곧 죄이다. 내가 벽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과 행복해 질 수 없다. 오빠한테 표현이 힘들지만 밥 먹었어? 그냥 걱정 되서! 이런식으로 얘기해 보자. 오빠의 대답보다 본인의 벽을 허무는 것이먼저다. 사랑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맘먹고 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집에서 나 같은 얘가 낳은 것은 우리 엄마가 십자가를 지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도 뭔가를 사랑하고 자기를 희생해서 상대방에게 이 사랑을 전하려는 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줘도 그건 사랑이 아니다. 이게 내 결혼생활, 내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그 친한 친구한테도 내 안에 벽이 있으면 힘들다. 난 살려고 벽을 쌓았는데 그 벽에 갇힌 것이다. 탑위해 갇힌 공주처럼 왕자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게 뭐냐구! 삶이 동화야? 그러니까 그런 동화가 히트치는 것이다.
윤혜진 #8211; “사랑의 표현”
되게 쉬운거 같은데 알면서도 하지 못한다. 엄마한테도 표현하지 못한다. 엄마는 사랑이 풍부하시다. 엄마가 나한테 편지를 쓸때도 엄마는 사랑하는 딸! 축복의 딸! 이라고 하시고 전화할 때도 혜진아 사랑해! 하시는데 저는 어! 알았다고만 한다. 엄마는 내 딸이 사랑한다는 말을 했으면 하지만 나는 알면서도 표현을 하지 못한다.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정말 못한다.
목자 #8211; “하나님의 사랑”
나에게 살빼는게 쉽다는 사람은 내가 정말 때려주고 싶다. 처음부터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라는 것은 아니다. 자기 성품 때문에 하는게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자주는 듣는데 사랑은 감정이냐? 행동이냐?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디자인 하셨다. 기뻐서 웃느냐? 웃어서 기쁘냐? 인간의 신체는 우리가 눈으로 웃으면 뇌에 중추를 자극해서 기뻐하는 것이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셨다. 거룩을 위해서 적용하면 행복과 웃음이 따라 온다. 사랑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치가 없는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하고 친한 부부가 얘를 데리고 왔는데 이쁘지 않지만 부부가 예쁘다하니 나중에 그 얘가 자기가 예쁜줄 안다. 사랑은 있어도 없어도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고 자격이 없는데 가치를 부여해 주는게 사랑이다. 맘속에서 울어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포스트 모던이즘”
감정으로 느끼는데로 하는게 포스트모던이즘이다. 네가 감정으로 느끼는게 다야 너의 행복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전에는 절대적인것에 살았다. 계몽주의 합리주의 이성주의 성리학 유교에 따라 살았다. 모든 철학은 신본주의 반동으로 나온 것이다. 감정이 따라와서 하는 건 아니다. 내가 후에 결혼해서 남편하고 잘해야 하는게 부부간에 싸우고 난뒤다. 싸운뒤 화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가족과 싸운뒤 어떻게 화해를 해야 할까요? 사는게 어렵다. 엄마가 되는거 엄마답게 되는거 정말 어렵다. 이래저래 살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면서 사는 것이다.
김지은 #8211; “나에게 주신 말씀”
저도 아빠하고 문제다. 아빠한테 식사하였어요? 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아빠 밥도 잘 챙기지 못한다. 동생 결혼하고 미국에 가는데 엄마가 미국에 몇 달동안 계실텐데 나하고 아빠랑 같이 있어야 해서 두렵다. 그래서 두렵다는 표현을 딴말로 표현한다. 말씀보고 은혜를 받았다. 내가 뭔가 하나에 꽂히면 강박감이 심하다. 공무원 시험도 마찬가지다. 공무원 시험도 조용히 있다가 합격 후 알려주고 싶지만 미리 알려준게 개나소나 다 공무원한다고 말할까봐 미리 말했다. 사람들과 관계를 너무 못한다. 내가 변하지 않으니 나와의 인간관계가 힘들다. 나한테는 오직 예수님 뿐인거 같다. 내가 않좋은 성격은 막다른 골목에 가야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남자 우상이 있었는데 극복한 요즘은 자유함을 얻었다.
목자 #8211; "하나님의 약속"
이 말씀을 좋아서 찾은게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이 혼미함을 더 이상 부정 할 수 없고 원망을 더 이상 않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열등감 시선 때문에 혼미한 것이다. 이런 혼미함이 원망으로 하나님을 대했는데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나에게 교훈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기에 내 상처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그걸 자기자신한테 찾으려는 것은 율법이다. 믿음이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보이지 않은 사실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걸어 가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이룬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우연은 없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절대 우연이 없다. 우주에 우연이 있으면 다 무너진다. 우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절대 우연이 없다. 하나님이 배제하고 설명하려니 안되기에 우연을 대입하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 설명이 안되기에 우연이라 하는 것이다. 누나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간섭이다. 성경 자체가 틀이 되어야 한다. 내가 혼미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면 된다. 내 안에 근거가 있는게 아니라 약속에 근거가 있고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이게 곧 가치관이다. 천국은 가치관의 변화지 환경의 변화가 아니다. 내가 가치관이 바뀌기 위해서는 말씀으로만 바뀌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데 이루어지지 않는데 됐다고 믿고 가는게 믿음이다.
우리 목원들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삶이 계속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