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청년국의 예배와 영상 콘텐츠를 만납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계 21:9~17)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1. 마지막 재앙이 끝나야 누리는 성이다.2.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영광이 보이는 성이다.3. 거룩한 산에는 비천한 자들의 이름이 있는 곳이다.4. 척량하는 성이다.
■ 김재동
오늘 말씀에 목사님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이야기 하시면서 우리가 가야 할 천국의 모델을 말씀하셨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나의 비천한 환경과 사건 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어린양의 신부가 될 수 있는지 그 성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는 마지막 재앙을 겪는 것이고 이것이 결국 심판이다라는 것이다. 심판과 구원은 같이 온다. 그것이 오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경고의 말씀과 그것을 잘 듣는 사람이 회복이 잘 되어 결국 천국시민이 된다. 그러려면 크고 높은 산에 오르는 영광이 보이는 성에 올라야 하는데 좁은 길을 가고 구별된 삶을 살 때에 크고 높은 산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천한 자가 있다는 것이 무시되고 남을 척량하는데, 사실 나를 척량하지 못하니 남을 척량하게 된다. 내 자신을 먼저 척량하고 형편없는 나임을 인정하고 가야 한다. 포인트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다라는 것인데 이것을 누리려면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씀으로 이를 수 있다. 말씀을 들으면 말씀의 가치관을 형성해서 나의 환경을 해석하여 내 주변을 초월 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더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좋은 스펙, 내가 원하는 합격, 더 많은 돈을 원하는 것 같은 환경을 추구하는 삶 밖에 살 수 없으며 이것을 쫓다 보니 슬퍼하고 우울해 하다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그래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이 마지막 재앙에서 말씀이 들릴 경우에 가치관의 변화 일어나 마지막 재앙 때 그 말씀이 들리면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데 이것을 적용이라 한다. 삶에서 전혀 해 보지 않았던 내 적용을 하나 둘씩 하다 보면 비천한 자들이 있는 산이 부끄럽지 않고 내가 나를 척량할 수 있고 어느새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속해 있는 것이다.
천국은 오직 믿음으로 볼 수 있고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순교나 고난을 받고 비천한 사람들이 천국을 누리는 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지만 거룩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된다는 것이다. 거룩의 기준이 홀리하다 말씀을 잘 본다가 아니라 세상과 다른 것, 구별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과 다른가? 우리는 같지만 다르기도 하다. 세상사람은 물질을 하나님께 내놓지 않지만 우리는 헌금을 드리고 또 예배도 드린다. 완전한 거룩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거룩하려고는 한다.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만큼 세상을 내려놓을 수 있다. 내 가치관이 아직 변하지 않아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거룩함이 보이는 만큼 세상을 내려놓을 수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무 아름답기에 세상적인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도 이와 같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고통이 왔을 때 직면할 수 없다. 어려운 문제가 왔을 때 도망치려고 한다. 성공, 일, 돈, 중독으로 도망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먹는 것과 미드, 야동, 나를 만족시켜주는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 도망쳤다. 사랑을 받은 자는 가장 좋은 것을 받았기에 안 좋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받기에 고통도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들이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고통은 부모와 분리의 고통이 가장 큰 두려움인데 부모는 말 안 듣는 아이에게 ‘너 자꾸 이러면 다리 밑에 두고 온다’ ‘너 내 자식 아니다’ 라면서 자신의 말을 듣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느낀다. 하지만 대다수의 부모는 이 방식을 쓴다. 그래서 아이들은 고통에 직면하는 능력이 없어져 게임, 인정중독 등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거룩도 이와 같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것이 너무 아름답기에 내가 이 세상적인 것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셨기에 덜 좋은 것을 참을 수 있다. 내 힘으로 내려놓는 것은 없다. 하나님이 좋아지면 다른 덜 좋은 것을 참을 수 있다. 내가 믿음이 좋아서 내려 놓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정말로 좋아서 중독이 끊어지는 것이지 내가 교회다니니까 오늘부터 중독을 끊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 홍태진
오늘 큐티 말씀에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포악한자로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신다고 하신다. 나에게는 포악한게 세상에서 내 멋대로 사는 것, 열등감을 갖고 인정받고자 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는 거였다. 내가 이렇게 살았지만 삶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꺾으셔서 우리들교회에 와서 회복시켜주시는구나 생각했다. 오늘 말씀에서도 비천한 자는 악하지만 예수 믿지 않는 것도 비천한자이기에 나의 예전 생활을 오늘 말씀과 연결을 했다. 예전에 술과 담배를 했었는데 담배는 12년간 피워 왔었고 양육을 받으면서 적용차 담배를 끊기로 했지만 적용에 자신이 없었고 몇 번 실패했었다. 그래서 휴대폰에 오늘 하루만 잘 넘기자고 써놓고 한 달, 두 달 버텨가며 끊어갔는데 금단현상도 없었고 생활하는데 지장도 없었기에 이것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천한 자도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나에게는 담배 적용의 힘을 주셨고 삶이 힘들 때 담배 끊은 것을 생각하면서 기념하니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독주도 좋아했었는데 술을 끊는 적용도 하게 되었다. 술 끊는 적용을 하기 위해 그 자리를 도망 다니며 수요예배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 큐티 또한 하나님께서 하게 해주셨고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적용 가능케 하시니 상사와의 갈등도 참을 수 있게 하신 것 같다. 비천한 삶을 살았던 나를 하나님은 구원해 주셨던 것이다.
회사 구조조정은 진행 중이다. 회사가 구조조정이 시작되었고 내년에 구체적으로 될 것이기에 신용카드도 다 없애고 지하철 정기권도 샀다. 미리 대비를 해 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보험도 해지해 버릴까 하고 어머니께 전화했더니 어머니께서는 내가 너무 앞서간다며 말씀 보며 매일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고 꾸중하셨다. 어머니의 꾸중을 예전엔 듣기 싫었는데 어머니와의 30분 통화를 끝까지 들으면서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요즘에는 운동하면서 지내고 있다. 운동하면서 블랙 앤 레드의 유혹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 윤혜진
예배시간에 졸았는데 기억나는게 없다. 세상에 나와야 공의의 심판이 있다고 하셨는데 예전에 하나님에 대한 뜨거움이 없고 거룩의 아름다움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만 든다. 세상적인 것이 즐거운 것인데 거룩의 기쁨이 정말 좋은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어머니도 은혜 속에 사는 것이 정말 기쁘다고 하시는데 그것이 나에겐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잘 모르겠다.
2개월 전 불신교제의 유혹을 뿌리쳤다. 남자친구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어서 거절을 했다. 작년 일대일 양육 때에도 불신교제의 거절을 했었다. 거절한 당시에는 마음이 편하고 좋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 사람과 지냈던 것이 너무 좋았던게 생각이 나면서 2개월을 심심하고 지루하게 보냈다. 봉사활동을 하는 곳에서 그 분과 두 달 만에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편한 마음으로 만났지만 그 즐거움이 다시 그리워졌고 오늘 말씀에 세상적인 것을 끊어내라고 말씀하셨기에 괴로웠다. 결혼의 목적은 거룩이라고 하셨는데 행복하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거룩이라는 것을 잘 모르겠다.
■ 목자님
사람은 어떤 것을 결정할 때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대로 결정한다. 내가 결정을 할 때 예측을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봤기 때문에 그 예측이 틀리는 것이다. 이 사람하고 재밌게 살 수 있다라는 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 내 눈을 모두 가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 안 믿는 작가 중에 알랭드 보통은 결혼이란 영혼한 사랑의 맹세이기 보다는 당신한테만 실망하겠어요 라는 맹세에 가깝다라고 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지만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딴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결혼은 한 명의 죄인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는 것이라고 한다. 혜진이는 거룩을 모르겠다고 하지만 어머니가 아프셨기에 마지막 재앙을 받으셨고 그래서 어머니가 크고 좁은 길을 가는 것을 기쁘시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혜진이는 그것이 나랑 상관 없다고 어머니와 혜진이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이다. 군대에 다녀와서 나는 야동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 때 야동을 끊기가 너무 싫었다. 남자들은 잘 참다가 거리에 짧은 치마 입은 사람을 보면 그날 꼭 야동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야동이 나의 일탈이었고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죽음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 유쾌하지 않았고 기분이 더러웠으며 내가 이상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의 모든 쾌락은 깨끗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거룩은 정결케 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야동을 끊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우리 집에 사건이 와서 끊어지게 되는 것이지 내 힘으로 되는 것은 없고 재앙의 사건이 와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재앙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하나님께 좀 더 좋은 것을 달라고 구해야 한다. 어머니가 나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고통을 주는 존재여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혜진이는 즐겁게 살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혜진이와 어머니는 애증의 관계였다고 본다. 엄마를 사랑하는 미움도 있지만 엄마에 대해 조금은 풀지 못하는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이 내 안에 없으면 이런 갈등 자체가 없다. 갈등충만이 성령충만이기에 나는 혜진이가 희망적이라고 본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불신교제에 대해 갈등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저주 중에 로마서에 그냥 내어버려 둔다라는 말씀이 있다. 내 삶에 하나님이 오셔서 사건, 환경을 통해서 간섭하시는 것이 은혜이다. 적어도 지옥행 급행열차가 아니기에 은혜는 죄 사함이다. 인간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죄사함이다.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그것을 해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자격을 부여해 주시고 가치가 없는데 가치를 주는 아가페 적인 사랑이다.
■ 고동욱
나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배려와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지난 주 여친이 역까지 마중 나와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대전에 혼자 2년 동안 살다가 올 해부터 이성교제를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퇴근 후 갈 곳이 없어서 회사에 남아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자친구 덕에 마음이 꽉 찬 것 같아 좋다. 나는 여자들이 스킨쉽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이성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아직 초등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여친이 스킨쉽을 좋아하는 반면 나는 율법적이기에 야동을 보는 것 등의 행위를 절제해 왔다. 금욕주의적인 나에게 여친이 야한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이 그렇지 라는 결론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스킨쉽에 대해 죄의식이 들었고 여친은 그런 것이 없어 보여서 순간 내가 여친으로부터 유혹을 받았다며 여친을 탓하고 한 주간 만나지 않기로 했는데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런 인간이기에 여친을 용서를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이 되면서 여친이 두려워하는 것 같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면 스킨쉽은 당연한 것인데 금욕주의적인 내 생각과의 갈등에서 고민을 계속 하게 되었다. 결혼은 빨리 하고 싶지만 여친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여친은 행동과 말이 단순한 편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지금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약간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남녀간에 신뢰가 쌓이면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의 큰 근본에는 상대방이 나 없어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여자가 결혼 전에 신뢰를 주지 않으면 평생 남자에게 무시 당한다. 결혼을 빨리 하고 싶지만 서로의 신뢰가 되지 않기 때문에 결혼이 안 되는 것이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며 자기 자신을 척량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에 합한 자였지만 한 번에 무너졌다. 동욱이 인생에 이것은 있어야만 하는 사건이고 사건이 왔을 때 그것이 내 수준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여지껏 성경을 보아온 동욱이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모습이 내 모습인 것이다. 참된 회개는 애통함을 동반한다. 애통할 때는 행동이 따라와야 하니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여친을 안심시키고 서로 죄를 나누기를 바란다.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관계 개선이 아니라 복구전을 가져야 한다. 여친에게 더 잘해주고 상대방이 수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며 여친이 했던 스쳐 지나가는 말들을 적어보고 그녀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큰 것 말고 작은 것부터 부담되지 않는 것으로 해 주어라. 최선을 다해서 잘 해주되, 마음을 다 주지는 말아라. 그것이 우상이 되기 때문이다. 항상 마음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 김지은
지은 자매님은 반응이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 본인은 두서 없이 이야기 했다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공통된 주제로 말씀하셨다. 반응이 중요하다는 것은 공감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줌을 필요로 하며 따뜻함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만 자매님의 공무원 점수나 수치감이 그것을 가로 막는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반대편에서 똑같이 움직이는 거울과 같이 부모님이 내가 울 때 터치해 주고 반응해 주어야 자존감이 형성된다. 자매님은 인정받고 사랑 받는 욕구가 타인보다 조금 더 있어 보인다. 나눔을 솔직하게 하고 싶지만 나눔을 통해서 돌아올 반응을 신경 쓰는 것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의 인물들은 거의 수치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살던 시절에는 명예를 중요시 하던 시대였는데 그와 반대되는 것이 수치였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면서 수치스러움을 가졌는데 이런 수치의 사건 없이 예수님이 오지 않는다. 유다는 며느리와 동침하면서 수치를 당하였고 아브라함도 이스마엘을 낳으면서 믿음의 조상인 그가 믿음이 없었다. 이런 것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수치로 예수님이 오신 다는 것인데 수치스러움을 느낀다라는 것은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신다는 것을 막는 것이다. 김양재 목사님도 샴푸 사건의 수치를 겪으셨다. 내 수치를 오픈하면서 위로 받게 된다. 찌질한 것들을 얘기 하면서 이것이 예수님의 통로였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장 귀한 것을 얻게 되면 수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람에게 너무 기대를 갖지 말아라. 훌륭한 사람은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 박성아
작년 여름 우연히 CTS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보게 되었는데 들으면서 화가 나서 듣기 싫었지만 텔레비전을 틀면 또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가 보여져서 호기심으로 계속 보게 되었다. 목사님이 눈물의 기도를 보고 과연 진짜로 흘리시는 눈물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제자훈련(양평)에서 훈련을 받은 후 목사님 설교를 들으니 위로가 되었다. 전에도 지인을 통해 우리들 교회 얘기를 들었지만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었다. 목장 나눔을 봤을 때 충격이었고 나는 나누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적응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교회 홈페이지까지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상하기만 생각되던 나눔이 점점 은혜가 되었는데 타 교회는 그런 것이 없기에 은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힘든 얘기를 못 하는 성격이지만 어딘가에서 내 얘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목회를 하시고 나는 4대째 신앙이다. 아버지가 교회 개척이 안 되어서 그것이 고난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를 보면 한결같이 섬기시는데 하나님은 왜 경제적으로 우리집을 어렵게 하시는가에 대해 10년 넘게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러나 우리들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이 좋으면 무엇인가를 해결 받는다는 것 보다 고난이 축복이다라는 말씀에 위로가 되었고 요즘 계시록도 위로가 된다. 이제는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시며 기도하실 때 나도 모르게 같이 울게 되었다.
우리들 교회에 올 해 5월에 등록했다. 79년생이고 수원에 있는 사회복지 생활시설에 2교대로 근무하고 있으며 7세까지 있는 영아원에서 3살 아이를 돌보고 있고 7년째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집은 상도동에 살고 있다.
이번 텀에 혼성목장인 것과 목장보고서를 보고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정화언니 목장에 처음 등반하면서 잘 나누었기에 이번 목장에서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드러내야 끊어지는 죄가 있다고 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믿는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면서 살아온 나였기에 오늘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아버지가 있는데 나를 왜 혼자 두시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후 청소년기에 죄를 많이 짓고 살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로 내 상황이 좋아지면 하나님을 찾고, 상황이 안 좋아지면 하나님 계속 그렇게 해보세요, 하나님은 원래 그런 분이셨죠 하며 신앙 생활을 해왔다. 하나님에 하시는 일에 대해 이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생각하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깨달았다.
인생에 해석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삶에 있어서 하나님이 왜 그런 일을 나에게 주시는지 믿겨지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서 인생이 해석되지 않는다. 나는 김양재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왜 아버지 밑에 있는 것인지 해석 된 부분이 있게 되었다.
( 중략할 부분이 있어 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우리 인생의 목적이 거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내 인생에 행복, 안정감을 누리는 것들을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 윤주희
회계 담당 과장님이 새로 오시면서 총괄 이사님과 매일 회의를 한다. 이사님은 개발자 출신이고 처음 우리회사에 총괄이사를 맡다 보니 회계 지식이 없는 반면 과장님은 회계학과 출신이고 경력이 되는 분이어서 회의를 하다 보면 서로 답답해 하신다. 이사님은 매출과 이익 면에서의 관리만 자꾸 생각하시니까 회계를 쉽게만 생각하시는 이사님이 무시가 되었다. 우리 회사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편하니까 사원들이 예를 갖추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나도 그 편한 분위기에 젖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아빠가 술 드시고 오면 뒷날에 엄마가 하루 종일 가게에 있어야만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집에 돈을 버는 사람은 엄마이다라는 생각을 했고 커가면서 그런 아빠를 무시했다. 아빠는 미안하셨는지 물질적으로 잘 해 주셨고 내가 다니고 싶은 학원은 다 지원해 주셨으며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셨다. 그 편안함이 있어서 아버지를 무시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사님과 아빠를 생각하면서 요즘 내가 큰 고민거리가 없고 편안하게 잘 지내니 말씀을 잘 안보게 되고 기도도 피곤하다며 안 하게 되는 지금 내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교만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도 아버지가 아버지 답지 않다고 여겼지만 아버지는 나의 윗질서였고, 교회에 와서 윗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힘들고 교만해서 전도사가 되지 못했다. 우리가 그 사람의 인격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신뢰받을 사람이면 누가 순종을 못하겠는가. 내 아버지가 개차반 같아도 윗질서에 순종해야 한다. 요즘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와서 엄마에게 진상을 부리시고 생활비 주시는 것을 삭감하겠다고 해서 내가 며칠 아버지에게 인사를 안 했더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뭐라고 하셨다. 적용차 아버지에게 점심 드셨어요 라는 말을 건넸지만 무척 힘든 적용이었다. 이것이 할만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윗질서니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불의한 이 사람한테도 순종하면 하나님한테도 당연히 하게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잘 못하면 하나님께도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창세기 1장에 보면 아무 것도 없을 때 빛과 어둠을, 물과 뭍을 나누고 계속 세부적으로 나누어 가시면서 질서를 잡아가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화가 되면 질서가 잡힐 수 밖에 없다. 물론 죽을 때 까지 잡아가야 할 질서가 있다. 민수기에도 지경을 넘지 말라고 한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 정해 주신 질서 안에서 자유를 누리라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가면 죄이다. 내가 전세집에 살지만 집주인인지 세입자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등기부등본을 보는 방법 밖엔 없다. 선악과도 마찬가지이다. 선악과를 안 먹는 것을 지키는 것이 나는 창조자이고 지키지 못하는 자가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신이 되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죽음밖에 없다. 내가 만든 우상이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데 내 자신을 우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 라고 한다. 절대로 질서를 넘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 강원희
나눔 잘 듣고 있다가 전화 받고 바로 목장을 탈출하셨습니다. 이번 주에 나눔 시작의 첫 기회에 당첨되셨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