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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1장 9~17절)
천국은 여전히 비밀에 싸인 세계이다. 그래서 천국은 오직 믿음으로만 실상을 볼 수 있다. 천국은 가치관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천국이 확실히 믿어져야 순교할 수 있고 핍박을 견딜 수 있다. 오늘의 주제는 거룩이다. 그렇다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성은 어떤 성인지?
1) 마지막 재앙이 끝나야 누리는 성이다.(계21:9)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어린 양의 아내를 보이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7장 1절에서는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음녀 바벨론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신다. 천사는 재앙과 회복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은 동시적이다. 즉, 재앙이 임하여야 어린 양의 신부 예수님의 아내가 된다. 예수님이 오셔서 심판이 이르러야 천국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세상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공의의 심판이 필요하다. 재앙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에스겔 43장 3절과 에스겔 1장 1절에서는 똑같이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런데 1장 1절에서는 에스겔이 사명이 무엇인지 모를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경고하시고 43장에서는 다시 회복하신다. 경고와 재앙의 말씀을 잘 들어야 회복의 말씀도 잘 듣는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다. 경고와 회복 모두 우리를 겸손케 하신다. 아브라함은 86세에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 너무 좋아서 1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고, 그래서 99세까지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 우리도 세상이 꽉 차서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릴 때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가 가장 힘들다. 말씀의 자리에 나와서 듣는 것이 최고이다. 말씀을 들어야 어린 양의 신부가 된다. 말씀을 통해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말씀하셔도 순종하고 적용하면 하나씩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 그래서 싫어도 말씀의 자리에 나와서 들어야 한다. 경고가 회복이 될 줄 믿는다.
2)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영광이 보이는 성이다.(계21:10~11)
요한계시록 17장 3절에서 주님은 요한을 데리고 광야에 가셔서 음녀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신다. 그러나 어린 양의 신부를 보이실 때는 크고 높은 산으로 데려 가신다. 주님은 인생의 길이 광야의 길이지만 광야에서 망하지 말고 크고 높은 산에 올라야 영광이 보인다고 말씀하신다. 어린 양의 인생은 거룩한 성과 같다. 어린 양의 아내로 살아가는 게 초라하고 부끄럽지만 결국 거룩한 성이 된다. 거룩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육이 무너진 만큼 영이 세워지면 거룩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많은 보석들은 그 자체가 발광하지 않는다. 즉,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을 바라게 된다. 자기의 본질, 주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톨스토이처럼 크고 높은 산으로 오르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육적으로 힘든 곳에 가면 크고 높은 산에 올라가 거룩하게 살 수 있다.
거룩하게 사는 것은 힘들다. 한 텔레비전 프로의 착한 떡 집처럼 프로 정신이 필요하다. 나를 보고 하나님의 형상을 봐야 한다. 결혼의 목적은 거룩이다. 하지만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는 행음하는 걸 능력이라 생각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렇게 예수가 없으면 죄의식도 없고 관심도 없다. 거룩하게 살기 힘들다. 음란이 끊어지고 중독이 끊어지려면 예배의 자리에 거룩하게 나와야 한다. 음란은 영적 연합이기 때문에 빠져 나오기 힘들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높은 산으로 데려가야 한다. 유럽에 하나님이 없으니 화려한 옛 모습은 사라졌다. 새 예루살렘 성은 늘 새롭지만 바벨론은 위대하나 낡았다. 내가 올라가기 힘들어도 성령께서 이끌어주셔야 한다. 유럽 그들의 우월주의를 깨뜨려야 한다. 누군가가 그들을 예배의 자리로 나오도록 인도해야 한다.
목사님께서도 여자 목사님이라는 고정관념과 반대에 놓여서 설교 준비가 힘드실 때가 있다. 주일 마다 눈물에 뼈가 마르신다. 일주일 내에 어떤 가정이 살아나야 한다는 크고 높은 산이 있으시다. 성령님의 인도로 오르기 싫은 높은 산을 올라간다. 그래서 각자의 삶에서 신실하게 예배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들 교회 창립 예배 때 주신 에스겔 43장 5절 말씀을 보면 15년의 큐티 모임을 시작으로 큐티엠을 거쳐 말씀의 공동체가 되었다. 성냥개비는 힘이 없지만 성냥 전체가 되니 힘이 있어 속삭이는 말이 세계에 나팔이 되었다. 우리들 교회를 통해 사명을 이끄시고 지경을 넓히신다. 크고 높은 산으로 띠 띠우고 데려가신다. 이 땅의 짧은 삶 안에서 누군가를 위해 쓰임 받아야 한다. 없어지지 아니할 천국 성전에 나를 데려 갈 하나님의 계획을 100% 신뢰해야 큰 높은 산으로 올라간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변하는 것이다.
3) 비천한 자들의 이름이 있는 성이다.(계21:12~14)
구약의 열두 지파 신약의 열두 사도는 훌륭하지 못했다. 이를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무리 약해도 성에 들어가지만 음녀들은 이름이 기록되지 않아서 열두 천사들이 문을 지켜서 성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진정 더럽고 추악한 자들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은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인정만 해도 즉시 사방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진심이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하다. 힘들고 연약한 사람이 나누고 가서 어린 양의 신부이다. 죄의 기록 하나 없는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는 비천함을 인정해야 한다.
4) 척량하는 성이다.(계21:15~17)
불변하는 금 갈대로 척량한다 하신다. 척량을 통해 들어갈 자와 못 들어갈 자를 구분하신다. 그래서 죄인은 고백해야 한다. 16절에 길이, 넓이, 높이가 같다고 하신다. 그리고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라는 수는 삼은 삼위일체의 수, 사는 땅의 수와 합쳐져서 십의 완전무결한 수가 세제곱이다. 이는 완전무결하고 완벽한 결과다. 그래서 이곳에 좁아서 못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17절에 보면 성보다 성곽이 더 작다. 이는 본체의 성이 중요함을 상징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세상 사람들이 실제로 이 성을 지을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척량으로는 한계가 있다. 본질이 중요하고 척량하는 게 중요하다. 즉, 구원이 중요하다. 천국은 신비에 싸인 세계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척량되어야 한다.
말씀으로 척량해서 지어온 우리들 교회의 내적 자랑은 구원을 위한 애통함의 눈물이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며 내 신분을 인식하고 거룩하게 살아갈 때 외적인 144규빗의 성곽도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될 줄 믿는다. 에스겔 43장에서 마무리하면서 천국 성전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끝없이 성전을 척량하고 성전을 지어간다. 이 땅에서의 삶은 척량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무형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성전은 늘 척량되어야 한다. 남들이 나를 척량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척량하는 것이 머리가 좋은 것이다. 항상 남들이 말하기 전에 내 자신을 먼저 척량해야 한다. 이것이 곧 거룩이고 큐티이다.
바울은 매우 훌륭한 전도자였지만 전도에 대한 말씀은 적게 했다. 전도를 하려면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 거룩하게 살아서 빛을 비춰야 한다. 믿는 자들은 서로 연합하여 사랑해야 한다. 항상 내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봐야 한다. 우리의 모습이 천국의 모습이다. 그래서 전도는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삶이 따라주는 성령 충만이 있는 삶, 확신이 있는 삶을 살면 저절로 전도가 된다.
재앙의 얘기로 회복의 말씀이 나온다. 솔직하게 자신의 비천함을 드러내는 나눔으로 천국의 말씀을 들어라. 천국의 가치관은 벽옥과 황금면류관이 있는 곳이 아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들의 나눔
은영 목자님 : 관계를 통해 언니의 과거를 보시고 사랑받고자하는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받고만 싶었던 언니의 죄성을 보고 감정을 잘 드러내고 적극적인 노력들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십니다.
은아 언니 : 건강의 문제로 하나님을 찾게 되셨는데, 회복되고 나니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기 힘들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큐티를 통해 작은 적용들을 실천하시려고 합니다. 늘 서두르고 앞서나가려는 모습이 있는데, 이번에 직장 문제에서도 판단을 번복하는 사건을 통해 조금 더 느긋하게 나아가려고 노력하십니다. 그리고 세상 것들이 보암직하고 먹음직도 해서 갈등이 될 때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세상 것들을 조금씩 끊어내는 적용하고 계십니다.
부목 미나 : 그 동안의 힘겨움을 드러내는 부분에 있어서 두려움이 있었는데, 닫혀 있던 마음을 깨고 나와 이야기하니 주님을 대신해서 주위에서 사람의 입을 통해 위로의 말을 듣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을 통해 치유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니와의 분리 문제를 진지하게 이끌어 가시는 주님께 믿고 맡기려고 합니다. 또 일을 그만두려고 계획하니 시간의 효율성도 높아지고 삶의 질이 한층 나아졌다고 합니다. 본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내면의 지친 상황들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부복 자영 : 관계를 통해 예민한 저에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늘 평안한 모습이지만 계획하심을 100%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고민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기 때문에 인내하지 못하는 저에 모습과 교만함을 깨고 계십니다. 세상으로 꽉 차서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었는데, 말씀을 바로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최고의 축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연락이 안 되는 진경 언니, 일이 바쁘신 승아 언니, 그리고 사정이 있어 함께 하지 못한 은숙이 다음 주에는 우리 모두 함께 나눠요^^
우리들의 기도 제목
은영 목자님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먼저 채워질 수 있도록
상대방을 향한 신뢰감이 생길 수 있도록
집안 일 잘 감당하고 어머님 잘 쉬시고 회복하셔서 돌아오시도록
피부과 치료(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은아 언니
위 아프지 않고 식탐 부리지 않도록
말씀의 착한 행실로 전도할 수 있도록
신교제의 만남 소망
부목 미나
필요와 욕구를 한 주 동안 잘 채울 수 있도록
가족 간의 진솔한 소통과 믿음 안에서 하나 되도록
부목 자영
양육 교사 성실하게 잘 받을 수 있도록
고등부 신방 가는 학생과의 교제 안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도록
배우자를 분별하는데 있어서 날마다 내 죄성을 이기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남동생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