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09월02일 김재동 목장 - 우리들 이야기]
새로 목장이 편성되어 새목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새목원들의 진솔한 나눔으로 풍성한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
말씀 : “요한계시록 21:5~8”
제목 : “새롭게 하시는 나라”
[말씀요약]
목자 #8211;
오늘 목사님께서 새롭게 하시는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 저도 늘 새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늘한다. 신대원을 그만두고 직장에 들어가고 싶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기도 하고 내가 받은 상처로부터 떠나서 좀더 건강하게 기쁘고 행복해지고 싶기도 하다. 우리는 날마다 여러 가지 질병이나 상처로부터 새로워 지고 싶어한다. 문제는 우리가 뭔가를 하지만 그것으로는 새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가 새롭게 해주시는 것이지 우리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첫번째 신실하고 참된 말씀으로 새롭게 하신다.
내가 운동하는거, 새직업을 갖는게 새롭게 되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하면 참된 삶을 찾을 거라 하지만 목사님께서는 말씀만이 새롭게 된다고 하셨다. 말씀으로 해석이 될 때 내가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직업과 외모와 배우자를 통해 바꾸려 하지만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만 변화되는 것이다.
두번째 처음과 나중되는 하나님이시다.
알파요 오메가이신 하나님이시다. 내가 우리 아버지를 보면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힘들었다. 내가 신대원에 가기 싫어서 아빠가 교회 오셔서 세례 받고 목장에 참석하면 신대원 가겠다 했는데 그것은 불가능할꺼라 생각해서 한건데 정말로 다 돼서 내가 신대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 환경을 내가 내 맘대로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끝내시지 않으시면 끝나지 않는다. 내가 끊으려 하니까 안되서 무기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수 같은 아버지를 붙이신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러니 참되고 신실한 말씀으로 해석될 때 다른 사람들을 살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거처럼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영이 바로 서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되는 것은 하나님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환경이 변하지 않는 것을 탓하지 말고 내 죄를 보고 회개 할 때 주께서 끝을 내주신다.
세번째 날마다 죄성을 이기는 것이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시요 너는 나의 아들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내 맘대로 하면서 사는게 우리들이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 하신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직업, 외모, 돈이라 생각하지만 하나님 외는 없음을 알려주신다. 아들이 된다는 것은 아버지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내 하나님이 되면 우리는 얻는 것이 훨씬 많다. 아들은 아버지것을 다 누리게 된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고 좋은 것을 우상으로 여긴다. 하나님이 그것을 딱치시면 우리는 원망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죄성을 보고 회개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힘들기에 공동체에 보내셔서 말씀을 함께 보게 하신 것이다. 내 인생의 모든 사건은 “나는 너의 하나님이시요 너는 나의 아들”이 되기 위한 사건들이다. 뭐가 두려우신가요? 학벌, 돈, 외모, 결혼 등 무엇이 무서운가요? 새로운 것은 내가 노력해서 얻는게 아니라 사건이 왔을 때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날 때 새롭게 되는 것이다.
* 우리 인간이 속는 거짓말은 3가지가 있다. 이것은 꼭 기억하길 바란다.
첫번째는 내가 가진 것이 나다 이게 사단의 거짓말이다. 나의 학벌, 나의 연봉, 나의 환경이 나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내가 하고 있는 행동, 노력이 나자신이다. 내가 행위를 옳게 하면 나고 나쁘게 하면 내가 아닌가? 사단이 주는 거짓말이다. 도로 주행시에 조명이 가장 필요한 곳은 분기점이다. 조명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세번째 나는 남들이 보는 시선에 의해서 결정된다. 남들의 인정과 시선에 의해서 내가 결정된다.
진정한 참된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의 결론은 거짓말에 속은 내 탓이다. 내가 새롭게 되려면 오직 말씀만으로 내가 변화되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묶인 공동체에서 우리의 죄성들을 나눴으면 한다.
[목장나눔]
김재동(79) #8211; “목자”
2003년 초 엄마의 권유로 오게 되었다. 강남 세곡동 보금자리주택에서 살고 있고 총신대 2학년에 재학중이며 청년부 4부 간사와 중등부 간사를 맡고 있다. 저는 뿌리깊은 불교집안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보살까지 하셔서 전국의 거의 모든 절에는 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 할머니는 일찍이 할아버지를 여으시고 명동에서 고리대금업을 하시면서 혼자 3형제를 키우셨다. 할머니는 남편과 아들이 일찍 죽어서 아들 둘에게 신경을 많이 쓰셨다. 우리 아버지가 큰아들인데 마마보이로 놀기 좋아했다. 우리 엄마는 좋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새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탈출구가 결혼이었다. 우리 아버지를 중매로 만나서 바로 결혼하게 되었다. 엄마는 늘 공부하고 싶어했지만 집안에서 못하게 하니 결국 결혼밖에 탈출구가 없었다. 아버지의 무능으로 엄마의 결혼생활은 혹독했다. 아버지는 도박에 손대면서 가정이 파탄나는 결손가정이 되었다.
* 결손가정의 3대조건은 도박하는 아버지, 우울한 어머니, 엄한 할머니 이다.
우리 엄마는 이를 계기로 교회를 가게 되었고 나도 유치원때부터 엄마손에 이끌리어 교회를 오게 되었다. 엄마는 자살하려고 했지만 형과 엄마 뱃속에 있던 내가 발길질을 해서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나는 초,중,고를 강남에서 다녔다. 할머니가 주신 아파트와 차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도박과 무능력으로 생활은 빈곤했다. 강남에서 과외가 아니라 학원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때 부터 엄마를 위해 착한 아들이 되었다. 초,중,고를 사춘기 없이 지내다가 대학때 지랄총량의법칙대로 뻥터지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집에 있는 것도 학교도 맘에 안들고 공부도하기 싫어서 망노동으로 돈 벌어서 주구장창 해외로 여행을 다녔다. 졸업때 학점이 3.0이 안되서 조금만한 회사에 1년정도 들어갔다가 대치동에서 고액과외 선생의 길로 들어섰다. 집빚갚고 4여년동안 내가 생활비를 감당했다. 그 후 총신대가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알바를 참 많이 했다. 알바하면서 여행하면서 학사경고를 몇번 맞으면서 대학생활만 10년을 했다. 우리들 교회에와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말씀들으면서 바뀌게 되었다. 아버지가 싫었는데 내가 그 모습
을 제일 많이 닮아 있었다. 세계 여행가면서 집이 싫어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산것이 꼭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나에게 제일 힘든것은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이다. 연애실패 후 1년을 폐인처럼 지냈었다. 대학마치고 직장에 가야되는데 사회에서 나를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다. 이렇게 살았다.
홍태진(77) -
2년전 고난속에서 이모의 권유로 우리들 교회에 오게되었다. IT 전산쟁이로 서울대 입구에서 살고 있다. 내가 우리들 교회 오게 된 것은 결혼문제 직장상사문제 그리고 이직문제로 하루하루 힘들고 짜증과 원망과 분노가 많았다. 전에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다니던 나는 술과 담배와 음란에 빠져 지냈었다. 심적으로 힘들때 이모의 권유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다. 창세기 말씀가운데 야곱에 대해 설교하실 때 “내 삶의 결론” 을 듣고 꼬꾸라져서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은 내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학교 때 부모님의 이혼사건으로 착한 동생으로 지내다가 사회나와서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윗상사에 대한 반항과 내 안의 분노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또 술과 담배와 음란과 일중독에 빠져 살았다. 이런내가 세상여자와 결혼을 하려했지만 돈이 없다고 핀잔도 받았었다. 이런 생황을 하다가 우리들 교회에 와서 회개하고 하나씩 하나씩 말씀에 순종하며 적용하고 있다.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절박한 심정으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예전에 내가 몸을 함부로 굴려서 이제서야 회복하려하니 여기저기 아픈곳이 있다.
강원희(79) -
교회온지는 한 2년 됐고 여자친구따라 왔다. 오로지 교회에 붙어만 있는 적용을 하고 상태다. 현재는 컴퓨터 AS 기사를 하고 있다. 전 교회를 싫어해서 교회 친구들을 보면 욕했다. 여자친구 때문에 교회에 오게 되면서 예전 친구들이 말한 것에 공감이 되었다. 지금도 아직 확실하게 믿음이 서지 못한거 같다. 전 목장의 목자와 목원들의 도움으로 많이 알게 되었다. 청년부는 올해로 마지막이고 곧 결혼한다. 예전에는 자동차 정비 AS 를 했다가 지금은 컴퓨터 AS 기사를 하는데 이거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많이 느끼게 되어 요즘 고민이 많다.
고동욱(79) -
대전에 살고 있다. 2010년 12월 큰어머니의 권유로 오게 되었다. 한국수자원공사 대전 사업소에 근무중이다.(원자력발전소) 만2년을 다니고 있으며 죄가 많아서 쑥스러움이 많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두어시간 정도 걸린다. 토요일밤에 서울 부모님 집에 온다. 저는 99년 대학 2학년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예배 결석은 10번도 안된다. 대학때 모든 교회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훈련받았지만, 구원의 확신과 예수님을 안다는 것도 잘 모르겠다. 이런 문제로 회개와 구원의 문제를 해결 하기위해 스스로 신앙서적을 찾아 공부하게 되었다. 나에게 반복되는 죄때문에 내가 정말 기독교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학 때 유다 같은 사람처럼 간사한 사람이 나였기에 유다를 통해 많은 은헤를 받았다. 유다 모습이 곧 내 모습인거 같이 보였다. 그 후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천국은? 부활은? 잘몰랐는데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통해 많이 깨닫게 되었다. 창세기의 12지파를 통해 내자신도 가능하다는 것과 음란과 찌질하고 죄많은 저들도 주께서 쓰시고 구원해 주시는 걸보고 나또한 가능함을 보게 되었다. 아직도 구원의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기도하고 하나님께 대놓고 묻기도 한다. 나에게 신경증이 좀 있다. 강박증, 과대망상증, 우울증이 있어서 상담을 받으면서 스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었다. 정신증일지 걱정이 되서 두군데의 병원에 가서 진찰받고 다른 이상이 없고 단지 신경증이라는 결론을 받았다.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지시면서 교회를 오게 되었다. 내가 어머니와 같이 교회 다니면서 어머니가 신앙생활을 잘하시길 바랬다. 내가 은혜는 몰라도 율법적인 것은 잘한다. 여자친구가 이런 나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길 제가 믿음도 약한 저이기에 주께서 저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 드렸다.
윤혜진(80) -
이번에 4부로 오게 되었다. 재작년 11월쯤 엄마의 권유로 오게 되었다. 인천에서 수학학원(초등부) 선생님을 하고 있다. 중3때 아버지가 암말기로 돌아가셨다. 어렸을때는 잘살다가 부도와 사업의 실패로 어렵고 힘들게 살았다. 아버지가 무능력하고 창피한 아버지로 여겼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슬프지 않았다. 아빠가 많이 아플때 엄마랑 같이 기도원에 가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빠가 없다는게 나에게 창파한거지 돌아가신게 슬픈 것은 아니었다. 내가 대학때 엄마는 미국 목사님하고 재혼하셨다. 30넘은 다 큰 딸이지만 오빠와 나는 엄마에게 너무나 어려 보이는거 같다. 엄마가 간경화로 힘들게 지낼때 나는 대학생으로 밖에서 술마시고 돌아다녔다. 엄마가 여기서는 잘 돌 볼 수 없어서 미국으로 가게 됐지만 현지 미국 의사들도 손 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지내다가 2004년에 엄마가 계신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엘라마바가 엄마한테는 좋은 환경이지만 나에게는 무척 답답했다. 플로리다로 가서 일하면서 영주권을 얻으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미국에서 3년간 있는 동안 엄마는 몇번 쓰러지게 되었고 아플때마다 피를 쏟는 엄마였지만 확신을 가지고 주께서 치료해 줄때니 걱정말라고 하셨다. 나에게 그때가 제일 힘들었고 그때는 하나님께 많이 기도했다. 그 후로 차츰 차츰 나아지시면서 현재는 많이 건강해 지셨다. 내가 습관처럼 다닌 모태신앙이지만 미국에서 엄마를 보고 3년을 있으면서 믿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이라는 복음성가를 들으면서 많이 깨닫게 되었다. 오빠는 내 고민덩어리이다. 오빠는 엄마와 나에게 항상 부정적이고 힘든 존재였다. 나의 고난덩어리인 오빠가 백혈병이라는 소식을 듣고 엄마랑 나는 급히 한국에 와서 병원에서 오빠를 보게 되었다. 깜짝 놀랐지만 의사가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 백혈병이라는 오진을 내렸음이 알게 되었다. 백혈구 수치가 좀 낮아지자 퇴원했다. 집에 와서 집안을 보니 술병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지저분함에 내가 힘들게 보낸 돈으로 술먹었음에 화가 났지만 오빠가 한국에서 외롭고 힘들었을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기독교에 비판적이었지만 그후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랑 같이 교회를 다니는게 이게 행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에 교회에서 한 6개월 정도 열심히 다니다가 주일설교가 십입조 설교를 하셔서 그날로 바로 돌아섰다. 덩달아 나도 빠지게 되었다. 이래저래 방황하며 지냈다. 한국에 와서 오빠와 많이 싸웠다. 내 돈으로 생활비 쓰는 것도 싫어서 오빠를 무시하다가 오빠하고 크게 싸우게 되었다. 엄마가 “가정아 살아나라”라는 책을 소개해줘서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고 눈물이 난게 처음인거 같다. 우리들 교회는 자꾸 미루다가 그해 12월에 오게 되었다. 내 얘기를 잘 않하는데 새신자 모임에서 스스로 하게 되었고 가해자와 피해자 말씀을 들으며 회개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만 뒤치닥거리 하는거 같아 내가 처음으로 독립해서 원룸에서 살고 있다. 요즘 큰 고난 없는 것이 고민이다.
김지은(77) -
우리들 교회 온지는 6년이 넘는다. 아빠가 군인이라서 전방에 오랫동안 있었다. 2002년 서울에 오게 되었다. 지금은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제가 잘하는게 목자말 잘 않들어도 잘 참석하고 딴지걸지는 않는다. 제가 좀 이중적인게 있다. 현재 강서구 목동 근처 염창동에 있다. 어제 동생 결혼식이 있었다. 내 얼굴 때문에 못간거반, 간거반이었다. 제 입이 방정이다. 입 때문에 망친 케이스다. 저한테 제일 힘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거 같다. 내가 노력에 대한 변화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정말 큰 것을 주시는데 난 그에 반해 잘 못따르는거 같다. 나에게 배푸는 것은 빚처럼 느껴진다. 먼저 내 판단이 앞서면 안되는돼 이리저리 숨기면서 말하게 된다. 저는 남자가 우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선생님께서 내가 질물에 우물쭈물하자 내뺨을 쎄게 때렸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엄마에게 얘기를 해야하는데 그냥 옆에서 이해해 주기만을 바랬다. 내가 좀 특이하다.
윤주희(79) #8211;
2010년 4월께 오게 되었다. 제가 온 이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구의 권유로 오게 되었다. 현재 송파 방이동에서 살고 있고 IT 회사 총무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초등학교때 아빠가 가계를 하시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가계 앞에 교회가 있어서 잠깐 잠깐 가게 되었고 엄마도 크리스마스때마다 교회에 오셨었다. 아빠가 술을 좋아하셔서 술 드시고 집에 오시는 날에는 소리지르고 물건를 부셔서 집안이 시끄러웠다. 오빠가 사춘기때 술드시고 들어오신 아빠를 죽여버리겠다고 해서 이웃집에 가서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내가 아빠와 오빠의 모습때문에 항상 불안함을 느꼈다. 아빠의 술로 집안생활이 싫을 때 작은 아버지가 공무원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혼자 살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3년을 더 공부해도 떨어지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회사에 들어갔으나 거기서 인정받으면서 빠른 진급을 하게 되었다. 회사가 어려워서 그만둘쯤 아빠가 림프종 암진단을 받게 되었고 오히려 내가 그런 모습을 인정 못하고 나를 쉬지 못하게 하는 것만 같아 무척 싫었다. 내가 집에 백수로 있을 때 아빠가 암이 재발해서 내가 간병을 하게 되었지만 내가 사랑해서 한게 아니라 의무로 한거 같았다. 호전되서 퇴원했다가 재발이 되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회사에 다시 취직하였다. 내가 미워했던 아빠지만 후에 교회와서 그 짧은 시간 아빠와 같이 보낼 수 있게 주신 시간에 감사하게 되었다. 친구의 권유로 우리들 교회 와서 할아버지 집사님의 주식 간증에 많이 놀랬다. 말씀이 삶에 녹아나는 적용들이 정말 좋았다. 일대일 양육 받고 회사에서 짤리는 바람에 일대일 양육 교사 훈련을 받게 되었다. 끝난 뒤 일자리도 주셔서 지금 잘다니고 있다. 지금은 처음 은혜받은 뜨거움이 많이 사라지고 열정이 많이 식은거 같다. 아직도 내안에는 두려움이 많다.
우리 목원들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삶이 계속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