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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6:1~13절 소명의 사람
직장 생활을 하던 중 겪은 일. 세일즈 하는 분들을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 대화는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둘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자기 개발, 혹은 출세의 도구로 여기는 사람들 "빨리 승진하고 출세해서 내장사 해야지"
셋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맡기셨다고 하는 사람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고객을 행복케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싶다"
세 번째 부류의 삶을 보며 많은 도전과 감동을 받았다. 고객입장에서 고객의 고충을 해결하고, 인생의 상담사 역할까지 하곤 한다. 이들의 일을 보면 생기가 있고 감동이 있다. 실적도 다르다.
취업포털에서 조사한 결과 진자 이직을 원하냐? 90%가 넘는 이들이 "이직을 원한다“고 하였다. 기업의 비전이 나와 달라서, 일이 많아서, 연봉이 맘에 안 들어서, 상사나 동료와 문제가 있어서 라고 함. 나의 포지션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내가 속한 자리에서 소명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며 사는 삶이 중요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이사야 6장은 이사야야가 소명을 받는 모습이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소명을 받는다. 이 소명의 어원은 보이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음성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소명은 내가 듣는 것이다. 부르심의 소리를 내가 듣는 것이다. 이 소명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하신 부르심의 소리를 듣는 것이 소명이다. 흔히 우리는 소명과 사명을 혼돈한다.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성취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소명은 성취가 아니라 듣는 것이다. 사명은 내가 소명의 소리를 듣고 내게 주시는 일. 미션이 사명이다.
소명의 문제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 나아가야 할 지와 중요한 관계가 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부르신다.
소명받은 사람은
1. 거룩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다.
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사야 활동 당시에 웃시야 왕이 죽었다. 웃시야는 52년 동안 통치하였던 선한 왕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정치경제적으로 강하게 만들었다. 이런 웃시야가 죽었다는 것은 중요한 위기라는 것이다. 이사야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어려웠을 것이다. 웃시야는 죽었고 백성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방민족으로 부터 침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이사야는 성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았다.
삶의 위기가 다가왔을 때 무엇을 바라보는가? 하나님 or 환경?
삶의 위기와 고난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진정 내가 의지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들이 국가적인 위기 속에서 이웃나라의 왕을 바라보고 선지자들이 경고한다. 이들이 위기 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주변을 바라보고 요청한 것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비단 우상 숭배 뿐 아니라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한다.
내가 바라볼 대상이 주님 밖에 없는 것이 복이다. 이사야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본 선지자였다.
그래서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어도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소명의 사람은 사명 이전에도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비전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리고 스랍들을 보게 된다.
스랍들도 하나님의 거룩함에 압도되어 선포하고 찬양하고 있다. 이사야는 순간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었다. 그들이 외친 세 번의 거룩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의 결정체를 노래한 것이다.
우리가 바라본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그 분의 성품, 그 분의 본성은 거룩 그 자체이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거룩의 부르심이다. 웃시야는 솔로몬 이후 번성기를 구가한 왕이다. 그는 제사장의 분향을 자신이 하겠다고 분향을 하고 결국 나병에 걸렸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부인했다. 나라를 축복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신데 자기 능력인줄 알고 부정을 행했던 것이다.
바라봄의 법칙이 있다. 사람은 바라보는 대상을 닮아간다.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내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닮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될 때 내가 거룩해질 뿐 아니라 남도 거룩케 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다.
레위기 19장 - 내가 거룩하듯 너희도 거룩하라.
우리 삶의 끊어지지 않는 죄의 문제와 중독이 있는가? 자신의 소명을 모르는가?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는가? 내 삶의 총체적 위기상황 앞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 보좌로 나아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보고 만나길 바란다. 닮아가길 바란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은 나에게 소명을 허락하신다.
2. 자신의 죄를 먼저 보는 사람이다.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거룩하신 하나님 바라본 이사야는 "화로다" 망했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목도하게 되면 죽을 수 밖에 없다. 요한도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바라보고 마치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했다. 이사야는 선지자였으나 하나님을 만나고 뼛속까지 자신이 죄인임을 처절하게 개달았다. 그는 doing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존재인가 하는 being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이사야가 소명을 받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의 교만의 악함을 통해 "니네 이제 망한다"고 강하게 경고. 그러니 이제 그가 하나님이 거룩하심을 만나면서 백성을 향한 손가락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손가락으로 "난 이제 망했다"가 된 것이다. 인간은 죄의 공장이다.
이전 교회에서 예레미야서 묵상하는데 자꾸 회개하라 하시니 뭘 자꾸 매일 회개시키실까? 맘이 힘드셨다. 오늘은 좋은 말씀을 주시길 바랬었는데... 그 당시 새벽기도 인도하시던 부목사님도 나도 설교하기 힘들다. 매일마다 죄고백과 죄에 대한 회개를 요구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셨었다. 왜 그럴까? 자기 죄에 대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이 우리들 교회에서 큐티를 다시하고 죄를 다시 보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에스겔도 죄에 대한 경고와 회개가 있는데... 어느 날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서 뼛 속까지 죄의 디엔에이가 있는 것이 눈물이 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소명의 사람은 자기 자신이 죄인인 것을 먼저 보는 사람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구체적인 부정함을 고백하게 된다. 우리가 대표적으로 짓는 죄가 입술의 죄이다. 우리가 입으로 짓는 죄가 크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한 것이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우리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할 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은 그 죄를 씻어주시고 정결케 해주신다. 성령의 불로 우리를 소멸케 해주신다. 하나님은 나를 부르시기 전에 나에게 사명을 주시기 이전에 내가 죄인인줄을 먼저 바라보고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내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고백하면 용서해주신다. 죄 고백과 죄 사함이 있어야 소명도 사명도 따라오는 것이다. 내가 내 죄도 모르면서 어떻게 소명 사명을 운운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데는 이유가 있으시다. 하나님도 하나님 나름대로 쓰시고자 하는 필요요구조건이 있으시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 이전에 우리의 정결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촉구하신다. 관계에서의 문제 또한 나의 죄를 먼저 보는 사람에게 관계 해결의 열쇠를 맡기신다. 내 죄를 먼저보고 내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사단은 틈탈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이들에게는 사단이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간다.
나는 날마다 무엇을 회개하는가? 소명의 사람은 내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이다. 나의 죄를 먼저 보는 사람이다. 하나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라고 입술을 회개하고 나아갈 때 주님은 그분의 보혈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적인 회복을 약속하시고 은혜를 주신다. 그럴 때 우리는 소명과 사명을 받을 수 있다.
3.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보는 사람이다.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드디어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것이 소명이다. 부르심을 듣는 것이 소명이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르셨을 때 즉각적으로 순종하였다. 주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순종했다. 다행히 즉각적으로 순종치 않았던 사람도 있다. 모세와 기드온이 그랬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는 순종으로 반응하라.
하나님이 나를 어떤 위치나 자리로 부르실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회피하지 않고 나니 그에게 드디어 사명을 허락하신다.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나님이 부르시는 이유는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분의 일을 그분과 함께 우리가 감당하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신 것 처럼 내게도 부르신 자리에서 사명을 주신다.
근데 이 받은 사명이 예상한 것과 다르다. 이사야는 6장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을 경험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죄를 고백하니 용서해주시고 회복 시켜주셨다. 그런데 사명은 용서와 회복의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뉘앙스의 말씀을 하신다. 이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라!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심판과 정죄를 선포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들이 극으로 치닫고 회개치 않은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돌아오라고, 용서해준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들이 5장까지 전혀 돌아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두고 보실 수 없어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시작코자 하신다. 이사야에게 주어진 이 사명은 가서 전하긴 전하되 마음이 막히고 귀가 막히라고 하는 사역을 맡기신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사야가 심각한 상태에 봉착하였다. 첨에는 나를 보내소서~! 했으나 막상 사명이 주어지고 나니, 그래서 묻는다.
"주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이사야에게 맡겨진 사명은 회개나 용서가 아니라 심판과 정죄의 메세지를 선포해야한다. 어떤이가 이러한 선지자를 좋아하겠는가? 그렇기에 사명이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기 원하시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명은 나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교차되는 지점에 있다고 했다. 사명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은사와 내가 속한 공동체의 필요가 교차되는 지점에 호흡하고 있다. 하나님은 소명을 감당케 하기 위해 죄사함과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시기 위해 은사와 힘을 주신다. 내 개인에게 주신 사명이라도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명을 갖는 이들은 모두 다 사명이 있다. 사명은 나를 부르신 자리에서 사명을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발견하기 보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남과 나를 비교한다.
이사야는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부르심 받았고 민족을 위한 사명을 받았다. 하나님은 내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나를 부르시고 나에게 사명을 주신다. 이 사명이 성취되면 하나님은 또다른 사명으로 나를 이끄실 것이다. 내 사명이 내 뜻과 다르기에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사명받은 내게 필요한 것은 끝까지 나를 부인하고 실시하는 것이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면 서 끝까지 걸어야한다.
이사야는 자신의 사명이 부담스러웠지만 왜! 라고 묻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다시 구원하실 것을 알았기에 왜! 라고 하기보다 언제까지냐고 물었다. 내게 맡겨진 사명이 내 뜻과 달라도 감사하며 사명 감당하라. 직장에서 윗사람이 시키는 복사,커피 심부름... 교회에서 바닥에 카펫 깔고 의자 나르는 것도 나의 사명이 될 수 있다. 이 사명을 우리가 감당할 때 두 마음을 품지 말고 헌신하라. 소명에겐 순종이 , 사명에게는 헌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명 감당 위해 부름 받은 존재들이다.
4. 소명의 사람은 구원의 사명을 보는 사람이다.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나님은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씨를 그루터기로 남겨 그분의 구원을 계속적으로 이루어 가신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나를 그분의 그루터기로 씨앗으로 삼았다. 내게 주신 사명은 구원을 외치는 사명이다. 내 가족이 직장동료가, 가족이....그렇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의 카이로스 시간에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다.
이사야는 아마도 예정된 심판 앞에서 망할 수 밖에 없는 백성들과 이스라엘을 보면서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소망을 본다. 남아있는 그루터기가 거룩한 씨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가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그는 그들의 민족에게 심판을 외치는 사명을 감당했다. 그래서 죽음까지 그는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았다.
누군가에게 사명은 성장이 더딘 가족의 구원 위한 섬김이다, 누군가에게는 직장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영적 구원과 봉사와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선교일 수 있다, 저마다 자신이 감당할 사명의 몫이 있다. 내가 부름받은 소명의 자리에서 내가 감당할 사명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책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자 권리이다.
히틀러가 전 세계를 장악했다. 독일 교회조차도 자기 손으로 휘어잡고 흔들었다. 이때 본회퍼 목사님은 자기가 누릴 수 있는 특혜와 권리를 내버리고, 그분의 신앙 양심을 따라 행동했다. 그는 십자가 없는 은혜, 순종 없는 은혜가 값싼 은혜라 했다. 그리고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고 39세에 순교하였다. 그가 남긴 말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부르실 때 당신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 와서 죽으라고 부르신다.”
내가 있는 가정, 학교, 교회, 그 곳에서 주님은 나에게 와서 죽으라 말씀하신다. 우리는 죽으라 했는데 죽은척한다. 관 뚜껑 열고 튀어나와서 돌아다닌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왜 죽지 못하냐. 그러니 내가 일을 할 수 없지 않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야 썩어져야 주님은 나를 통해 남은 구원을 이루어가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영화
ㅡ 조직검사가 어떠하더라도 요동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ㅡ 가능하면 수술을 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도록, 수술한다면 예배가 끊어지지 않도록
ㅡ 쉼의 시간에 우울과 무기력으로 쓰러지지 않고 잘 누리고 진로 인도해 주시도록
김은실
ㅡ 영육간의 온전한 회복
ㅡ 영적으로 깨어있을 수 있도록
ㅡ 이 상황이 왜 있는지 잘 물으며 가도록
ㅡ 예민한 관계 속에서 내 죄를 보며 갈 수 있도록
ㅡ 마음에 평안함이 더하도록
ㅡ 응답을 구하는 기도에 끝까지 기도할 수 있도록
김은정
ㅡ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안할 수 있도록 (큐티, 운동, 밥)
ㅡ 부모님 구원과 사랑과 평화가 있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ㅡ 인문고전 독서 잘 읽을 수 있도록
ㅡ 믿음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도록, 먼저 내가 돕는 배필로 준비되도록
ㅡ 다음 주 예배드릴 수 있도록
이미영
ㅡ 기쁨이 없는 요즘의 삶, 예배에 대한 기쁨과 생활예배가 회복되도록
ㅡ 나에게 주어진 마땅히 해야 할 일, 집 직장 학원 등에 게으르지 않도록
ㅡ 핑계 회피 변명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솔직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행할 수 있도록
채혜성
ㅡ 가족의 구원에 대해 애통함으로 기도하도록
ㅡ 주님을 우선 순위에 놓고 대답하고 결정하도록
ㅡ 고등부 새로 오는 학생이 잘 융화되고 제거 잘 섬길 수 있도록
ㅡ 다음 주 출근해서 일하는데 집중력 있게 잘 하도록__________________
영화 목자가 오늘 조직검사를 했어요. 다음 주에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어떤 결과든 순종하면서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