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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증거 <계 11:7~11>
나를 최고로 증거 해 주는 말은 무엇인가? 나를 제대로 알고 증거 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행복하다. 주님도 주님을 이렇게 증거 해 주면 얼마나 행복해하실까? 마 16장에서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했을 때 얼마나 떨리셨을까? 그때 베드로는 믿음도 없으면서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이렇게라도 얘기하니 주님께서는 그 고백을 책임지시고 베드로를 수제자 반열에 올려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이 땅에서 증거함으로 우리는 최고의 인생이 되는 것이고, 최고의 인생을 위해서는 최고의 증거가 필요하다.
1. 죽기까지 증거 해야 한다. - 순교
7절 :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여기서 저희는 두 증인이다. 교회, 선지자, 선교를 의미한다. 둘이 같이 짝을 이뤄 전도하고, 초림과 재림의 예수님과 교회를 의미한다. 두 증인이 증거를 마치고 갈대로 척량하며 베옷입은 권세를 가지고 말씀의 등불을 꺼트리지 않으며 기적 같은 권세를 가졌는데, 여섯 째 나팔 후 일곱째 나팔 전에 재앙 전 말씀으로만 변한다는 걸 알려주셨다. 이들이 1260일 동안 열심히 증거했더니 증거를 마칠 때에 짐승이 올라와 전쟁이 일어나 두 증인을 죽였다고 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복음 전파가 되지 않으면 두 증인은 죽지 않는다. 그러나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에 마귀가 절대 두 증인의 사역을 막지 못하는데 사명 끝난 이 때 마침 교회가 부패했기 때문에 가장 악한 세력을 통해 교회를 징계하시는 것이다. 교회의 사명을 마치기 전에는 엘리야, 모세의 능력으로 교회를 보호하신다. 그러나 이 사명이 끝난 후 무저갱으로부터 짐승이 올라오게 된다. 무저갱으로 올라오는 짐승이 사슬에 묶인 사자처럼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초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삼일 반 동안 잠시 놓였다. 마지막 최후 재림 때 잠시 풀리는 때가 있다.(7년 반). 그러나 “이 때”가 언제인지를 계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종말점 관점에서 우리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고, 지금 시대가 내 최후의 종말임을 인식해야한다. (이 계시록 시기에 짐승은 로마를 상징한다.)
두 증인은 복음을 위해 순교한 사람이다. 증인이라는 헬라어 마르투스는 “순교자”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순교가 최고의 증거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인생은 복된 인생이고 하나님을 증거하다 죽으면 육신은 썩어져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등에 업고 보일 수 있기에 하나님을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바울과 제자들의 순교로 온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그럼 내가 고난의 상황에서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상황이란 무엇인가? 보통 죽도록 충성하라할 때의 충성의 의미는 “열심” 인데, 계시록의 충성은 “열심”이 아니라 “인내”이다. 주님은 버가모의 안디바를 “나의 충성된 나의 증인”이라고 표현하시며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였다. 사단의 훼가 강한 그 곳에서 사회적으로 격리되어가며 주님을 증인했기에 ‘충성된 증인’이라고 해주신 것이다. 충성된 증인은 열심히 아니라 변치않는 신실한 인내를 가진 자이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 1:9)
하나님 나라는 환란과 인내로 둘러 쌓여있다. 그래서 고난의 상황에서 성도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충성은 인내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 3:10)
목사님은 남편의 구원이 더디게 이루어졌으며 핍박도 받았다. 그러나 그 핍박을 받으며 주님의 인내를 알게되어 기도가 간절해졌다. 주님의 사랑과 연합이 되어 갈수록 구원받지 못한 가족을 위하여 그치지 않는 근심과 고통이 생기고 그 사명을 알게 되면서 이 모든 고난에서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 곁을 지킨 맏아들은 동생의 삶에 관심이 없었고 동생의 귀환도 기뻐하지 않았다. 즉 가족구원에 관심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3)” 라고 하였다. 그의 골육은 예수믿음을 핍박한 자들까지 포함한다. 핍박이 심해지면서 전 세계를 끌어안고 기도하게 되었다. 저주를 받고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급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구원을 구해야 하고 그것이 최고의 사랑이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2. 악한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는 증거
8절 :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니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 13:10)
소돔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고 했다. 이것을 롯도 알았다. 그러나 롯은 멸망 전 여호와의 동산 같았던 소돔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피했다가 큰일을 당할 뻔 하고 애굽을 멀리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롯은 자기 일이 아니었기에 몸과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 믿음이 없었던 상태에서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롯은 애굽과 닮은 소돔을 버리지 못하고 안목의 정욕을 따라, 화려함 속에 썩은 것을 보지 못한 채 소돔으로 갔다. 북부 그돌라오멜이 쳐들어와 사로잡혀 죽을 뻔 했을 때 삼촌의 도움을 받아 겨우 살아났음에도 삼촌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애쓰고 기도하고 생명을 보전해 주어도 여전히 ‘소돔’을 좋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끊임없이 자기 믿는 수준에서의 ‘소돔’이 있다. 믿으면서도 레벨업된 문화가 좋아서, 기근있는 가나안 보다는 애굽을 찾게 된다. 롯은 이기고 또 이기면서 소돔의 재판관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롯을 사랑하셔서 아브라함을 통해 소돔을 떠날 것을 전해주었으나 롯의 부인은 소금기둥이 되고 사위는 죽었으며, 겨우 빠져나간 롯과 딸은 근친상간을 하게 되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아는 것 만큼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가정의 요소는 자기 인식이다. 자기가치를 알게 해주는 것이 가정이다. 최고의 가정은 내가 죄인이며 하나님이 우리가정의 주인이라는 것이 선포되는 곳이다. 이렇게 되면 질서가 생기고 사회에 연결이 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 모든 이들을 도우라고 가정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각 가정마다 이기고 또 이기려는 롯과 같은 아버지와 소돔의 가치관이 있다.
소돔과 애굽의 가치관에서 두 증인 곧 성도는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해야 한다. 소돔 앞에서 소돔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부르짖는 것이 바로 십자가 적용이다. 소돔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했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심판을 예비하는 것이며 심판의 클라이막스는 십자가이다. 애굽과 같은 이 땅에서 십자가 질 일이 있는 것이 축복이며,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다는 것을 증거해야 한다. 망할 나라에서 증인된 삶을 사는 것이 성경이 알려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소돔 땅에서 어떻게 전쟁이 기근이 사랑이 식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에서 우뚝 서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은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렘 1: 10)
나를 세우기 위하여 먼저 하나님께서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시는 일이 있어야 건설하고 심게 된다 하신다. 이 모든 독이 빠져나갈 때 저절로 건설하고 심게 된다. 악하고 음란한 소돔 같은 이 세상에서 십자가 지며 미움을 받을 때 독이 없는 얼굴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최고의 증거가 된다. 하나님은 내가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독을 뿜지 않은 얼굴을 기억하신다.
3. 땅에 거한 자의 조롱을 받는다.
9절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절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고 증거 하는데 백성, 족속, 나라, 방언 중에 조롱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열왕기상 18장에서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것이 너냐?”라고 묻는다. 3년반 기근의 원인이 엘리야 탓이라는 것이다. 이에 엘리야는 18절에서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라고 한다. 사람들은 늘 억울함의 원인을 찾아 남을 탓한다. 그러나 내 문제는 누구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두 증인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은 회개할 생각 없는 이들에게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괴롭겠는가. 세상에 거부당하지 않는 성도는 세상에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 진짜가 아닌 이가 누구를 고치겠는가? 욕을 먹어도 진짜여야 내 옆 사람이 변한다. 진정한 성도의 사명을 받은 자라면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회개의 말씀을 증거 할 수 밖에 없다. 이 증거 때문에 고난을 받아도 사흘 반이라 한다.
나 자신도 빛 가운데 걸어가면 내 죄가 비추어지기에 애통할 수 밖에 없다. 선포할수록 갈등충만한 삶을 살지만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에 가장 악한 세상 권력 아래 두신다. 나를 훈련시킬 만한 세력아래에서 악한 세력을 막는 역할도 하신다. 이에 세상이 완전히 망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 한 사람이 중심 잡고 있기에 내 집안이 망하지 않는 것이다. 미움을 받아도 독을 뿜지 않는 역할을 하는 것 때문에 복음이 전파된다.
4. 반드시 부활이 있다.
11절 :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생기가 사흘 반 만에 들어간다. 성령이 들어가고 생기가 들어가면 결국 자기발로 일어서게 된다. 자기 발로 일어나게 해주는 것이 최고의 증거이다. 자기 발로 자립신앙을 갖도록 하는 것이 어렵지만 참 교회라면 삼일 반 만에 일어나게 되어 있다. 삼일 반은 42달, 1260일, 3년 반, 모두 같은 것을 상징하는데, 교회 시대를 가리키고 좁게는 우리 각자의 일생을 가리킨다.
여기서 여러 표현 중 성도가 당하는 고난을 표현할 때는 가장 짧게 느껴지는 사흘 반을 쓰신다. 똑같은 기간이지만, 베옷입고 왕 같은 제사장의 권세를 입고 예언할 때는, 우리에게 주신 권세가 많아서 1260일이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고난에 대한 설명과 위로이다. 즉 수치는 짧고 영광은 길어, 사흘 반의 수치와 1260일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교회만이 일반 정신과 심리치료에서 다루지 못한 영적인 부분을 케어 할 수 있다. 이것은 성경적 방식으로만 가능하며 상처를 별이 되게 하는 것이다. 교회만이 이 반전을 가능케 하는 기적의 성소가 된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와 같이 최고의 증거는 상처가 별이 되어 증거 하는 것이다.
나눔 질문
1. 나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들을 인내의 충성으로 하는가 열심으로 하는가?
2. 십자가 구원의 표정을 어떻게 적용할까?
3. 나는 언제 화가 나는가?
혜성
나는 내 열심으로 일해 왔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러다 작년 하반기에 바닥을 치게 되고 쉬기를 작정하는 순간까지 가게 되었다. 지금은 내 열심을 빼기위해서 계속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 담임을 하게 되었는데 11명 모두 신입생으로 그중 2/3이 작년 하반기에 입국한 학생들이다. 이들과 함께 QTin을 하려고 책을 사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 Qtin을 줄때 내가 만난 하나님 때문에 큐티하며 은혜받은 것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5/6월 달에 책을 또 사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았음 좋겠다. 사도 되고 사지 않아도 된다. 자유함을 가지고 맘에 평안한 대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큐티를 할 거라는 기대감보다는 한명만 하더라도 그 한 명을 보고 할 수 있는 마음이면 좋을 것 같다.
나의 노력이나 애씀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때 주로 화가 난다. 주로 가정에서 엄마와의 관계에서 많이 발생한다. 최대한 엄마의 외로움을 채워드리려 퇴근 이후에도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는데, 가끔씩 부딪칠 때마다 나의 노력 전체를 인정하지 않으실 때 ‘도대체 어쩌라구?’의 마음이 된다.
-> 부모님에게 ‘내가 이만큼은 해야 화를 내지 않으신다’의 마음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엄마의 생애’를 살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내가 먼저 변할 때 부모님이 달라지시더라. 가족은 구원 이상이하도 아니다. 우리에게 이타적인 삶을 살도록 가족을 붙이신 것이다. 어머님을 위해서 매일 기도를 하시면 좋겠다.
선경 (2주 만에 처음 나왔어요~)
어린이집 교사를 하고 있다. 5년동안 재직하던 어린이집을 이번주에 마지막으로 그만 두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었던 아이가 어떤 느낌이 있었는지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집에 가서도 계속 울었다고 하는 어머니의 문자를 받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진급시킨 아이들 중에 특별히 힘든 아이들이 몇 명이 있는데 그들이 모두 한 반으로 편성이 되어 그 반 선생님께 너무 미안한 마음이 있다. 다음 주부터 가정 어린이 집에 출근하게 된다. 기존 어린이 집은 180명의 규모여서 같이 나누어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모든 것을 총괄해야하는 것이 기대가 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 과도한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나눔의 내용 중 아이들에게 일관적이지 않았던 모습이 있다면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매일매일 QT를 통해서 내 모습을 비추어 볼 때 할 수 있다. 매일 QTin을 읽기라도 해야한다. 또한 작지만 계속된 사고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서 무엇을 이야기 하려 하시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영
예수님을 만나고 삶의 패턴을 바꾸고 나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전엔 외로움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이 혼자있는 시간을 가치관을 정립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나눔인봉)
-> 환경적으로 미영이를 하나님께서 불꽃같이 지키시는 것이 있다.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객관화가 필요하다.
기도제목
1. QT, 예배, 기도가 균형잡히는 한 주 되도록
2. 어머니를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보할 수 있도록
1. OT에서 공연을 해야하는데 잘 망가질 수 있도록
2. 우리반 11명을 잘 품고 갈 수 있도록
영화
1. 건강하여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소년부아이들 심방 3월 토요일에 갈 수 있도록)
2. 목장식구 은정이가 일대일 양육을 시작하는데 영육간에 강건하도록
3. 700명 규모의 학교인데 집단 상담, 개인 상담 업무 계획표를 잘 짜고 학교 일을 잘 배우도록
4. 오빠의 가정이 예배드리는 환경으로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새언니가 밤낮으로 아기를 돌보고 두 명의 조카(6살 찬미, 4살 주희)를 돌보느라 몸이 많이 피곤한데 도우미 잘 구해지고 건강지켜주시길
5. 큰 이모께서 신장암 수술 후 항암치료 하시는데 건강지켜주시고 동생과 함께 큐티인들고 찾아뵐 수 있도록
6. 이번주 금요일에 직장에서 신입직원 환영회를 한다는데 지혜롭게 술 안마시고 목자예배 늦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