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설교 요약>
제목 : 작은 책의 권세 (요한계시록 10장 1절 ~ 7절)
유명한 소설에 당신의 이름을 넣어준다면 얼마를 지불하시겠습니까? 한 비영리 단체가 인터넷 경매를 통해서
제시했던 질문입니다. 그래서 총 76명이 입찰에 응했고 최종 낙찰자가 2만5천백 달러를 스티븐 킹의 다음번 소설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이름을 딴 등장인물은 살해되는 역할이지만 사람들은
유명한 이야기에 자신의 이름을 실으려고 이렇게 거금을 들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큐티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권세하면 이 땅에서 사람으로부터 얻는 권세를 말하는데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이 절대적이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권세는 허무한데 하나님은 권세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계속 계시록에
재앙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 재앙 얘기는 회개를 유도하기 위한 것인데, 재앙 중간중간에 중간 계시,
복음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결국 인간은 재앙과 심판으로는 절대 회개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일곱째 인,
나팔 재앙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택한 백성이 되어서 오늘 바로 이 작은 책, 복음 때문에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책의 권세는 이 세상에서 따라올 권세가 없어서 재앙보다 더 큰 작은 책의 권세를 통해서 회개하고 진정한 권세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작은 책, 성경책의 권세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① 작은 책을 힘센 천사가 떠받들고 있습니다. (계 10:1~3)
“내가 보니” 우리는 날마다 성경책을 봐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보니까 힘센 천사가 보이는 것입니다. 힘센 천사가
구름을 이고 하늘위에서 내려오는데 무지개가 있는 것입니다. 무지개 하면 노아 언약인데, 물로 심판 안하시겠다는
약속으로 자비의 표시이고 믿는 사람을 절대로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앙이 이렇게 혹독하게 오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늘 우리를 사랑하셔서 힘센 천사를 보내주셔서 영광과 권세를 입혀서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일을 무책임하게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 이제 두루마기 책을 예수님이 하늘에서 가지고 내려오신게
아니고 힘센 천사가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것을 떠받들고 있다면 성경책이 위인지 예수님이 위인지
헷갈리기 때문에, 성경책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힘센 천사가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센 천사가
내려와서 오대양 육대주를 밟고 있는 천사가 작은 성경책을 들고 있으니까, 이 성경만 보면 우주의 신비가 다 풀리고
고부간의 관계, 부부관계, 자녀관계, 나의 구속사,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일곱 우뢰는 완전수인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완전한 말씀으로 외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뢰 소리와 비슷한 다른 소리에 너무 현혹이
되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는 자꾸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나의 용모 구세주, 배우자 구세주가 있다고 하면
다니는데 그러시면 안되고 작은 책의 권세를 올바른 구원의 소식으로 분별해내야 할 것입니다. 재앙으로 깨지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통해서 말씀으로 깨지는 것입니다. 반드시 복음으로 깨지는 것입니다. 내가 시련 당해서 변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문제로 와서 말씀으로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바람 피다가 돌아오겠지, 속썩이다가 돌아오겠지가 아니라 빨리
교회에 오도록 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는 두려웠지만 정말 사랑의 책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창세기하고 똑같은 책인데
마지막이라 센 소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② 인봉이 된 것이 있기 때문에 권세가 있습니다. (계 10:4)
1장 19절에는 기록하라고 했지만 여기는 또 기록하지 말고 인봉하라고 하십니다. 요한은 사자의 부르짖는 큰 소리로
‘저것은 나한테 하는 소리야’ 하고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나 가르쳐주고 싶지만 인봉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들 회사에서도 큰 회사 사장은 말하지 못할 게 많고 기밀이 많습니다. 믿음의 분량에 따라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요한은 반모섬에 갇혀서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도 많이 받았고 고난도 많이 받았지만,
고난 가운데 받은 이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는 안들려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호기심으로 읽는 책이 아니고,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 복음의 핵심인데, 너무나 단계가 많아서 조금씩 조금씩 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남자들은 잘 안 들릴 수가 있는 짐승 구조입니다. 복음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아무리 일곱 우뢰로 말씀을
외쳐도 잠이 오고 안들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께 자기 얘기했다고 화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조는
사람보다는 듣고 화내는 사람이 조금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주일 예배에는 안 그래도 불신자들이 많기 때문에
인봉하는 것이 많고 힘이 더 듭니다. 예배에 대통령이 왔는데 어찌 가려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사람들에게는 인봉이
되어야 할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을 주님이 주신 음성으로 듣지 아니했다면 격이 떨어지는 책이고
유치하고 신화로 가득찬 책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영국의 청교도들이 성경에 손을 얹고 처음 세운
대학이 하버드 대학인데 지금은 하버드 대학에서 성경이 신화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년, 월, 일, 시를 점지해주는
것은 정말 이단이고 아주 조심을 해야 합니다. 성도는 드러나지 않으면서 인봉된 삶을 살고 나만 보면 기뻐지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나 자체가 복음이 되어서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잔느경 부인은
사무치는 억울함에 대해 함구하고 갖가지 고난들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찬란한 지성을 오물로 여기고 외양의
누추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여인으로 너무도 거대한 작은 책의 권세를 보여줬습니다. 누가 그녀의 입을
이렇게 함구하게 만들겠습니까. 성경의 권세가 이렇게 큽니다. 때가 되면 모두 열립니다. 나의 모든 억울한 일에
함구하면서 자신을 비우는 연습을 하고 그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고 가는 인봉의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③ 지체하지 않고 이루어집니다. (계 10:5~6)
알아들어도 못알아들어도 심판은 홀연히 지체하지 아니하고 일어납니다. 우리의 모든 사건은 심판이 아니고 구원으로
임해야겠는데, 하나님의 선지자들로부터 전하여 준 복음을 듣고 늘 예비한 사람은 지금 수능시험이 끝나고 붙거나
떨어져도 모두가 구원의 사건으로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예비하지 않은 사람은 붙거나 떨어져도 다 심판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우리의 종말이기 때문에 안타깝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년, 월, 일, 시는 정확하게
하나님의 시각에 이루어지고 지체치 아니한다고 했기 때문에 핍박받고 있던 그 당시의 성도들에게 너무나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벧 3:8~10)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우리의 모든 사건은 도적같이 옵니다.
우리는 내일을 모르는 안개와 같이 없어지는 인생이기 때문에 오늘 내가 준비하지 않으면 주님은 도적같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작은 책의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고난에서도 지체하지 아니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큐티를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그때 말씀을 읽고 너무나 준비를 하고 기도를 하고 결정을 했기
때문에 붙어도 떨어져도 구원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④ 여전한 방식으로 읽는 것이 가장 권세가 옵니다. (계 10:7)
천사가 자기 입으로 심판을 선포해도 되는데 이 작은 책으로 선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여섯째 재앙까지 줬는데도
안 돌아온다고 화나서 분노로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만세전부터,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선지자들로부터 계속 선포 해온 계시를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도 억울하다고 할 것이 없는 것이
명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이고 초법적이지만 이 땅을 구속하시면서 이 땅의 법을 지키시고자 독생자를
죽는데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불신자들이 아무리 악해도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심판과 구원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복음 작은 책인 것입니다. 여기에 심판과 구원 얘기가 다 있고 오늘 새롭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센 천사도 신적 권위를 가지고 그 작은 책 성경을 떠 받들었다는 것은
환상과 이상한 방법으로 심판을 전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전하여 준 복음에 그 내용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장 12절에 “내가 내 말에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순종하고 믿으면 어떤 것도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잘 살아온 사람은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 인봉을 하는 것도 말을 안 듣는 사람들한테만 인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 잘 듣고
가는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인봉할 것이 없습니다. 환란이 주제가 되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면서 성령이 스승이 되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하나님의 비밀을 알리신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지고 심판 받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장차 당할 고난인데, 아까 집사님처럼 모두 완벽할 때도 허무해가지고 아무리 잘 살아도 허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비결은 그나마 이 고난이 왔기 때문에, 그런데 이 고난이 와도,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재앙까지 받아도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만과 시기와 탐욕과
게으름과 탐식과 분노와 음란, 이 치명적인 죄들은 우리가 떠날 수도 없고 그 위험에서 피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죄들과 같이 가야 되는데, 그것들에 맞서서 하루하루 깨어있어야 되고 평생 부지런히 애써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돕기를 원하시는데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주된 수단은 우리가 수용하고 실천하는 훈련들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개인 예배, 공동체 예배, 공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겸손과 관용의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보잘 것 없어 보여도 하나님이 취해서 기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목장에서 나누는 것, 내가 정욕에
넘어졌다고 나누고, 내가 교만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목장에 나가서 수치와 고난을 나누는 것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권세를 가져다 줄 줄로 믿습니다.
<기도 제목>
1. 임정현 형제님
- 지금 하는 공부 잘 마무리 해서 알맞은 직장으로 인도될 수 있도록
- 가족 건강 (어머니 위염 등)
- 동생 유학생활 잘 하도록
- 모든 만남과 관계에서 축복 주시도록
2. 박승호 형제님
- 인사 이동으로 일이 많아졌는데 지혜롭게 잘 처리할 수 있도록
- 체중이 많이 불었는데 운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 여동생과 여자친구의 언니가 교제를 시작할 수 있도록
3. 김철주 형제님
- 큐티를 정석적으로 잘 할 수 있도록
- 회사 업무 복귀해서 지혜롭게 잘 할 수 있도록
- 신교제 할 수 있도록
4. 천대근 형제님
- 생활 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 업무에 필요한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할 교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 인간 관계에서의 두려움과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5. 이계휘 형제님
- 건강 회복될 수 있도록
6. 엄상준 형제님
- 검사 연수원 생활 잘 할 수 있도록
7. 강원휘 형제님
- 목장 예배에 나올 수 있도록
8. 김민철 형제님
- 건강 회복할 수 있도록
9. 조철우 형제님
- 다음주 목장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