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짜자자안!
제목 보고 “뭐야?” 싶으셨죠? ^^;;;;
뭐.. 저희 입으로 이러긴 민망하지만
윤현중 목사님이 저희를 섬기시느라 오버는 하셨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으시며 말씀하신
우리들 최고의 미녀 목장, 윤혜정 목장입니다!
(아하하하 ^^;;; 축복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사실 목사님은 지난 주일(12/18) 함께 하셨지만,
저... 부목의 게으름으로 이제야 목보를 올립니다.
무엇보다 목사님이 함께 목장 모임을 해 주셔서
마음으로도 무척 반가웠고,
목사님의 구체적인 처방을 들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특히, 각자의 상황이 달랐음에도
가정, 이성교제, 결혼에 대해
주옥과 같은 처방을 내려 주셔서
저희 모두가 각자를 더욱 돌아보게 되었어요.
특히 올바른 기도 제목을 갖게 하신 점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은 목보의 내용이 많고, 길지만
청년부 지체들도 이성교제나 결혼에 대한 목사님의 처방을
함께 나누면 너무 도움이 될 것 같아 자세히 나눕니다.
<혜정언니>
수요예배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어떤 점에서 '오호라'를 외치고 있는가를 돌아보았더니, 나는 “내가 말씀대로 살려고, 공동체에 붙어 있는데 왜 매일 내려 놓는 적용만 해야 하는가?”라고 계속 외치고 있었던 것 같다.
근래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계속해서 사건만 묵상하면서, 문제가 무엇이며, 상대방에게 상처받지 않으려면 다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동업자 언니와의 관계에서도 "내가 아프기 때문에"라는 자기 연민으로 언니에게 이해 받고, 특별대우를 받고 싶어 했던 내 마음을 솔직하게 보게 되었다. 지난 주 중에 TV 댜큐 프로그램에서 암에 걸린 제니의 이야기를 보며, 내가 얼마나 내 건강에 묻혀 있었는가를 돌아 보게 되었다. 제니의 모습을 보며 나도 이제는 내 건강에 대한 염려에 눌려 있기 보다는 이겨내고, 이 문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제의 관계에서 건강에서 오는 나의 불안함을 오히려 상대방을 통해 확신 받고 싶어 했다. 그로 인해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는 마음의 확신, 상황의 확신을 요구하는 것으로 다가 갔을 것 같다. 결국, 하나님 아닌 상대방에게 확신과 안정을 구했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방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결국은 관계를 풀기 위해서 문제를 묵상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문제를 직면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목사님>
동업자 언니와의 관계에서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점이 있지 않을까? 언니에게 내가 깨달은 것, 내가 이런 마음이 있어서 언니가 이렇게 반응했을 때 나는 이런 마음이 느껴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언니에게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혜정이가 "언니의 마음을 나도 읽어 주었어야 한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네가 진정성 있게 이야기 하면, 상대방과의 관계 뿐 아니라 동업 정리도 풀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언니에게 먼저 다가가서 부드럽게 대화를 시도해 보자. 돈 뿐만 아니라,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관계가 다시 쌓아져야 할 것 같다. 각자 자신의 길을 가더라도, 처음 동업할 때의 마음, 관계가 회복되어야 할 것 같다. 사업의 길이 달라지더라도 관계는 남아 있기 때문에 언니를 이해하고, 사과하는 시도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언니한테 ‘미안해’ 보다, ‘내가 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라고, I message 로 전달하면 된다. 결국 미안해라는 말이지만, 진정성 있게 나를 보게 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된다. 언니의 마음을 읽어 주고, 알아주자.
이 때 사단은 "굳이 내가 왜? 내가 뭐가 아쉬워서, 미안해서 먼저 그래?"라고 할 것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관계의 공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언니에게 공을 넘겨줘라. 나를 본 깨달음의 끝은 '관계에 끝'까지 들어가야 한다. 깨달음만 계속 반복되면, 흘러가지 않으면 은혜롭지만 곤고하다. 이렇게 관계를 풀어갈 때 세상적으로 보면 '굳이, 내가, 먼저' 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사랑할 때가 그리스도의 빛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상대방에게 i'm sorry 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이 문제는 돈 문제보다, 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이런 관계의 문제는 결국 가정에서 이어진다.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누구보다 원수 같은 사람. 우리가 이 적용을 할 때 우리가 손해를 받는 것 같지만, 사실 누구 보다 우리를 위한 '이기적' 적용이다. 돈은 꼭 받자. 그 사람이 주게끔 만들자.
교제에 있어서의 문제도 결국은 나 자신과의 문제다. 너 자신과의 문제 속에는 너의 ‘건강’이 들어가 있다. 결국 하나님 안에서 안정감을 가져야 한다. 너의 건강과 관련해서 관계에 서 네가 필요로 하는, 요구하는 ‘신뢰감’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이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믿는 부분이 있다.
사실 교제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내 건강에 대한 염려, 어느 누구도 나를 품어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대해 하나님과 해결해야 한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아들을 갖지 못하는 한나의 울음 기도를 살펴 보면, 아무리 남편이 한나를 사랑해도 그 남편의 위로가 한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한나의 문제는 결국,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시지 않는다는 고통이었다. 더 완벽한 상대가 생기고 더 좋아지더라도 오히려 확신 받고 싶어 하는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결국 ‘나를 알아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라는 고백! 말씀에 보면 한나가 하나님이 돌아보실 거라는 확신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한나가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곤 결국 아들을 얻고, 하나님께 아들을 드렸다. 그러니까 결국 문제는 아들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 문제를 풀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말 많은 고민을 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문제해결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을 보는 고통을 갖고 기도를 해야 한다. 혜정이의 건강, 그 환경은 원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돈 주고 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이 상황이 힘들지만, 보아야 하는 나의 모습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세요"라는 기도를 해야 함. 관계 자체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를 갖고 있으면 정신을 못 차리게 된다. 정신을 잘 차리고,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실 여러 통로를 잘 찾아보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에게 말씀하실 때가 있다.
<비나언니>
지난 한 주 동안 고통스럽게 기도를 했다. 일대일 양육자 중 기도의 배우자를 써 봤을 때 거의 육적인 기도더라. 배우자에 대한 기도 제목을 보니, 나는 물질에 대해서 자유하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내가 가정과 관련해서 물질에 대한 불안이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누구보다 내가 하나님이 내 인생을 끌어갈 것이라는 신뢰가 없다는 걸 알아서 많이 슬펐다. 내가 자라면서 엄마가 혼자서도 치열하게 돈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오히려 가난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가난이 두렵다. 물질에 대한 걱정이 두렵다. 게다가 나도 결국은 엄마처럼 앞으로 만날 배우자에게 모든 걸 헌신해 버리는 연약함이 있을 거란 생각에 두렵다. 게다가 혼자 있는 엄마를 돌보아줄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배우자의 기도가 육적으로 되는 것 같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나의 연약함을 보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남자의 스펙을 보는 것 당연하다. 우리가 한 사람을 볼 때는 그 사람의 가정, 스펙, 헤어스타일, 나온 학교 등을 보는 건 당연하다. 그것이 어쨌든 모두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스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왜 나는 그 스펙을 보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내가 스펙을 보더라도, 그것 아니면 절대 안돼 라고 하는 나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 언젠가는 깨트릴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스펙을 보는 것에 대해 눌려 있지 말자.
또 하나, 비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 '돈'이다. 사실 사람들은 의식주 문제로 인해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사실상 의식주의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믿음이 떨어 질 수 있다. 비나는 “내가 결혼하면 우리 엄마는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자동적이다. 배우자의 기도에서 엄마에게 돈을 줄 수 있을까 까지 아주 멀리 생각하게 된다.
비나의 그런 아픔과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된다. 내 스토리를 보게 될 때 더욱 근본적인 것에 가까이 가야 한다. 비나는 결국 엄마와의 관계가 핵심이다. "그 부모를 떠나"라는 말씀은 비나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나를 통해 엄마의 마음이 치유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과소평가 하는 것이다. 비나가 배우자에 대한 기도를 하며 "엄마를 품어주고 이해해주고 잘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은 사실 비나의 많은 눈물이 담겨 있는 것이다. 비나가 배우자를 기다리며 엄마에게 잘 할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램은 당연하다.
그러나 결국, 비나의 이 마음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 대한,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기도의 제목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에 부가 있더라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가난한 사람이 있다. 엄마와 하나님을 함께 의지할 것을 하더라도, 결혼준비는 현실적으로 꼼꼼히 해야 한다. 나이가 먹어도 우리가 해결되지 않은 부분, 'adult child' 이다. 비나가 물질, 엄마와의 관계에서 멈춰져 있는 그 부분을 직면해야 한다. 비나가 떨어져도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라는 '객관적인 분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배우자를 두고 기도하며 ‘믿음을 보겠다’고 하지만, 믿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믿음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다. 형제의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주일 성수, 봉사 등의 외적인 모습을 보고는 형제의 믿음을 알 수 없다. 관계에 대한 신뢰는 단번에 볼 수 없다. 결국 형제와 '대화'를 하다 보면 꾸밈인지 진실인지를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취향을 떠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형제의 믿음은 곧 관계성, 그런데 이런 관계성은 시간을 가지고 볼 수 있다. 결국 내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연스러우면, 앞으로 자연스럽게 이성과의 관계도 맺을 수 있게 된다. 자신감을 갖고 형제를 만나게 되고 관계에서 오는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지는 나에게도 지속적으로 자문해 보야 한다. 믿음은 관계고,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결국은 ‘관계’이다. 결혼에 대한 기도는 "하나님 제가 믿음 안에서 결혼하고 싶습니다. 제가 상대방의 연약함을 보듬어 주고, 함께 거룩해 지도록 걸어갈 준비가 제가 되어 있습니까? 제가 먼저 준비되도록 해 주십시오." 여야 한다. 어떤 사람도 내게 완벽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상대와 함께 낮아지고, 열등감 극복하기. 믿음을 보는 시각, 내 자신의 모습을, 자기의 가증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가증을 보게 되면 사람을 보는 방법과 기준이 변할 것이다.
그리고 비나가 남자가 없을 때에 바로 그 때에 잘 가다듬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51922;는다고 했다. 가장 본질적인 결혼 준비는 사람이 없을 때다. 가치관의 준비. 멋진 싱글. 하나님 앞에서 나의 가증을 보고 돌아보는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누구든지 만날 수 있다. “
“나는 누구든지 만날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누구든지 만날 수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사람을 주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이다. 우리는 모든 관계에 대해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이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희가 악할 지라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결국 이것은 믿음의 문제다.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줄을 믿고, 하나님이 가장 좋게 주신 그 남자를 알아볼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세상의 일반적인 현상, 기준을 알고 있어라. 그러나 내가 보는 관점이 믿음으로 차별화를 두어야 한다.
<지혜언니>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다. 주위에서 항상 문제가 있는 가정을 보면서 스펙, 돈이 다가 아니다. 몇 번의 교제를 해 보다가 '결혼'이란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헤어지게 된다. 결혼에 대해서 굳이 생각이 없다. 주위에 결혼해서 사는 커플을 보면서, 남자 만나지 않으면서 혼자서 잘 사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 아빠, 엄마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번 엄마가 목장에 가서 가정이 불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것을 알게 되고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남들이 봤을 때 우리 가정은 아주 행복하게 보였고, 나도 느낄 때 이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주위의 안 좋은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더 좋은 가정을 갖고 싶다고 바램이 생길 수 있었는데, 지혜는 오히려 역으로 가정을 부인하는 모습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혜 안에 의도하지 않게 받은 상처가 있다. 가족들도 모르는, 스스로도 모르는 지혜의 모습이 있을 수 있다. 지혜 속에 오히려 가정에 대해 더 갈구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지혜가 원치 않게 가정에 대해 습득된 이미지가 있을 수 있다. 지혜 안에 정상적인 소리가 아닌, 틀어져 있는 소리에 노출이 되어 있다보니 본의아니게 습득된 부정적인 이미지가 이 있을 것이다.
지혜가 지금은 싱글로 지는 편이 더 좋다라는 생각이 있지만, 더 좋다는 것 보다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더 맞을 것이다. 결국 지혜는 결혼을 하게 될 사람이다. 지혜가 엄마가 불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이었던 것을 보면 엄마에 대한 애정이 지혜 안에 있고, 누구의 잘못은 아니나 의도하지 않은 상처가 있다.
엄마의 사랑은 절대로 논리적인 사랑이 아니다. 엄마도 자식이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을 때가 있다. 지혜에게도 엄마를 잘 떠나는 순간이 필요하다. 엄마처럼 결혼해서 살지는 못하더라도,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인정하고 고맙다고 고백해 보자. 다음에는 엄마가 울 때 함께 같이 울어 보라.
사실 우리는 싸우려고 결혼하는 게 아니다. 지혜가 처음 가졌던 가정에대한 아름다운 그림이 사실이다. 그러나, 또 현실은 현실이다. 결혼은 결혼이다. 둘 사이에 신뢰, 주님 안의 관계 안에서의 신뢰가 결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가 지금은 혼자 지내도 좋을 것 같지만, 결혼에 대한 올바른 이미지를 회복하면 좋을 것 같다.
<신아언니>
결혼 준비하면서 다투는 일이 너무 많았다. 사소한 문제라도 예민하게 되어 부딪히게 되는 게 너무 많다. 평소에도 내가 남 탓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더 내가 정말 남 탓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오히려 결혼 준비 전에 힘들지만, 나를 돌아보고, 나의 성품을 보게 된 것 같다. 결혼이 정말 쉬운 게 아니다. 나는 50을 주면, 50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않은 남자친구에게 생색이 많이 났었다.
결혼과 연애는 다르다. 우리는 어떤 때는 연애의 감정, 어떤 때는 결혼의 감정(현실)을 원한다. 사실 결혼하면 연애 때와는 별개로 새롭게 쌓아가야 할 것이 있다. 십년 연애하면 십년 연애의 토대 위에 결혼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연애의 쌓음이 사라지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그러나 아무리 결혼이 힘들어도, 결혼의 가치와 행복감은 연애와 비교할 수 없다. 결혼이 치열하다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결혼 안에 행복도 있다. 우리가 의로운 게 아니라, 의롭다 여겨주셨듯이 결혼이란 관계 속에서 우리의 죄가 덮어지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투는 것이다. 치열하게 싸우며 하나씩 걸어가면서, 깊이 있는 사랑을 느껴진다. 결혼은 미리 두려워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내가 이 사람의 연약함을 잘 품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유진언니>
요즘 편하게 만나고 있는 친구가 있다. 만나면 서도 “교회 안 올 거면, 앞으로 너 안 만날 거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교회에 왜 나가냐, 가면 어떤 이야기를 하시냐 등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사실 그동안 나의 주제가는 “나는 왜 맨날 나쁜 남자를 만날까?” 였다. 내가 그 동안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은 막 대했고, 나쁜 남자가 나를 힘들게 하다가도 나에게 조금 잘 해주면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 남자 친구는 나의 진심을 1%로라도 받아 주지 않으려 해서 내가 많이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가 바로 이전 남자 친구의 후배이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나에게 지속적으로 잘해주는 지금 이 사람을 보며 “어디가 아픈 거 아냐?”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나에게 한결같은 그런 사람을 보며 “이 사람 이상하지?”라고 말하는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와 편하게 만나고 있는데, 나에게는 '불신'이란 말 자체가 너무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만나고 있고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 이전에 비해서 바뀐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랄 때가 있고, 나를 만날 때 마다 내가 자기에게 잘못한 것을 이야기하는 그 사람을 보며 나를 다시 보게 되는 것 같다.
진주가 너에게 자연스럽게 구별되는 가치관으로 이야기를 해 주어서, 네가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고, 전도 되었듯이 지금 만나는 남자애를 잘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교회에 와 봐라”가 전도라고 생각한다. 사실 상 우리가 하는 전도는 교회에 오라는 말을 하는 것이 다다. 사실 전도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너희 말씀 가치관을 드러내며 그 형제가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도우면 좋을 것 같다.
<성은>
몸이 계속 안 좋고 피곤이 풀리지 않는데 계속 피부까지 엉망이라, 정신적으로 다운되고 위축되는 한 주였다. 연말에 세상적으로 많은 모임과 가족 모임 속에서 많이 피곤해 지고, 여러 모로 나에 대한 자존감이 낮음을 느낀다. 특히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없음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갖는 낮은 자존감이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는 계속 느끼고 있다. 연말 모임에서 많은 사람과 만남은 좋지만 스스로가 모임 속에서 눌림을 괜찮다고 계속 다독거린다. 모임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 노동이 심하며 내가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보기에 내 눈에 차지 않는 내 모습을 해결하려고, 화장품을 사거나 마사지를 끊는 등의 임시적인 방법으로 마음을 풀려고 했다. 이런 방법으로 내 마음이 결국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 잘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회복이 중요함은 알지만, 또 다시 해소되지 않는 열등감이나 자존감이 있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다.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라는 책이 있다. 위기는 왜 반복될까 대처하는 방식이 늘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위기도 익숙하고 대처하고 있는 나도 익숙하다. 사람은 변화보다 오래된 익숙함에 편안함을 느낀다. 성은이는 성은이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 이면에는 내가 나를 스스로 너무 잘 안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사실 성은이는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 방법을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이다. 아는 것이 제대로 알지 못함, 부분적으로 앎 일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접근하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그 알고 있음부터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내 자신과의 관계에 직면해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서 있는지부터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 하나님 내가 아는데... 다 아는데 그러니까... 어떻게 할까요?" 라고 손을 쥐고 있는 기도를 하기 보다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 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습니다."라는 매우 솔직한 기도, 손을 펼치는 기도를 해 보자. 그리고 성은이는 자신이 느끼는 자존감이 자신의 상황보다 매우 과하게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기대 수준이 높을 수 있다.
고난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종류는 각자 마다 다를 수 있다. 성은이의 감사한 환경을 감사로 제대로 누리고, 하나님이 성은이에게 준 사랑을 잘 느끼면서 성은이의 자존감을 회복해 보자. 하나님이 분명히 성은이의 모습의 장점을 사용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