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65279;#65279;#65279; - 허락 받은 심판 -
요한 계시록 6 : 1~ 8
로마의 전무 후무한 핍박을 받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서 1장에서는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려 주시며 이 전쟁은 알파되신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끝내지 않으면 도무지 끝낼 자가 없다고 하신다.
환경이 변하는 것보다도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며 이러한 하나님의 판단은 신자와 불신자 모두 그 기준에 미치지 않는 자들에게 다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도 어김없이 판단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도 핍박을 받고 있는 너희들의 상태는 로마보다 더하다고 하시며 지상 교회의 대표인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실상을 보여 주신다.
이런 너희들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같은 모습 때문에 이렇게 로마가 너희들을 힘들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심판하실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하늘 보좌를 보여 주시고 사람의 본분을 알려 주시며 지침서인 성경을 통해서 기도로 쌓고 구원의 새노래를 부르면 심판에서 구원으로 옮겨 주시겠다고 하시며 앞으로 올 재앙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마치 엄마처럼 우리를 계속해서 설득해 가신다.
첫번째로 드디어 심판의 재앙이 시작되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있듯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하신다고 하신다.일곱 재앙 중 드디어 네번째 재앙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이 재앙을 통해서 우리가 돌아오길 원한다. 첫째로 이기고 또 이기고 하는 일이 벌어진다. 첫째 인의 재앙은 정복자의 출현이다. 능력도 실력도 있고 거룩해 보여서 마치 예수님 같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늘 이기기만 하는 사람한테 우린 모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인생은 100% 죄인이다. 우리가 죄인임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것이 유다이다. 우리는 이기고 또 이기는 것을 되게 좋아한다. 부러우니깐 너무도 두렵고 떨린다. 자족함이 없이 늘 이기는 것만 생각하니깐 얼마나 고통인지 모른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이 인간의 욕심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고통스럽게 만든다. 정말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것 너무도 고통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고통이 모두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 이 땅에선 유다처럼 하나님을 겪지 않으면 하나님을 도무지 만날 자가 없다. 내가 이기고 싶은 욕심을 안 버리면 늘 재앙이다. 늘 이기고자 하기에 전쟁과 살인을 만들고 살육과 피를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하나님은 전쟁을 통해서 나를 훈련시킨다. 내가 이겨야 하니깐 서로 죽인다.한 집안에 복음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화평이 깨지는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 본질적인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께져야 하는 일이 반드시 있다. 일시적인 화평이 깨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죽이고 싶을 정도의 미운 대상이 바로 자기 집안에 있다. 내가 기대한 만큼 분노하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한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으로 부모와 자식을 말한다. 자식에게 집착하고 성공만 부축이다가 지옥만 사는 집이 너무도 많다. 이기려고만 하니깐 자꾸만 화평이 재해진다. 속으로는 이기고 또 이기려는 속만 가지고 있으니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날마다 자기와 싸우고 자기 부인이 없는 사람은 결국 이렇게 본색이 드러난다. 세상은 결국 내부분쟁으로 다 자멸할 것이다.
여러분은 일시적인 화평을 제함으로 영원한 화평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세번째는 화평이 재해지면 결국 기근이 딱 온다. 이번 셋째 인을 뗄 떼에는 사람 같은 생물이 온다. 첫째 둘째는 활을 가졌는데 이번엔 저울을 가지고 있다. 이는 기근의 심각성을 나타낸다. 한 쪽에서 이기려고만 하면 화평이 재해져 자꾸 기근이 온다. 견딜만한 고난으로 너희들이 이제 주님 앞으로 빨리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주님 앞으로 나오려지 않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렇게 계속 이기려고만 하니깐 주님 앞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로마가 안 들리는 것처럼 안 믿기로 작정하면 내가 믿고 싶은 대로만 믿게 된다. 그러기에 지도자는 항상 최선보다는 차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얘레미야 1장 10절을 보면 먼저 이 네가지로 뽑으며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는 것이 주님께서 제발 지금이라도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네번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오직 진정한 해결책은 어린양뿐이라고 하신다. 주인공이 어린양이다. 끝낼 자도 어린양이다.어린 양은 교회를 절대적으로 보호하신다.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재앙 속에서도 담대한 이유는 바로 이 어린양 때문이다라고 하신다. 일시적인 화평이 없어지는 것 때문에 구원이 이루어진다. 일곱인 일곱나팔 일곱재앙이 아무리 두려울지라도 어린양을 만나면 산다.
모두가 어린 양을 따라야 하고 그것만이 우리가 갈 길이다.
오늘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심판은 바로 일시적인 화평을 제하는 것이다.
이번주 목장 모임은 목자 언니가 일하시는 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 체험을 해서 그 곳에서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중창단의 음악도 듣고 시각 장애인 체험도 하고 즐거웠습니다.
특히 중창단분들의 목소리란 짱이었습니다.
듣는 내내 울었다는...............
목자 언니께서 실력이 다들 좋으신 분들이라 하더니 역쉬 목자 언니의 말씀대로 듣는 내내 감동을 받았습니다.
중도에 제가 나와야 될 일이 있어 나눔을 끝까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많은 걸 느끼고 감동을 받을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 강은혜 A -
직장에서 얼마전에 부원장님이 나를 불러 자기가 오해했다며 뜬금없이 소정의 돈을 넣어 준 일이 있었다. 그러더니 학원을 맡아서 원장님이랑 잘 운영해 달라며 갑자기 뭔가 대단히 신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에 그래도 내가 지금 잘하고 있구나라는 약간의 안심은 되면서도 분명히 감정의 폭이 좀 심한 사람이겠다 싶어 그다지 썩 내키지는 않았는데 딱히 뭐라고 할 수는 없어 그냥 네라고만 대답했다. 그러다 주중에 자기 맘에 뭔가 안 드는 게 있었는지 예상대로 정말 극렬하게 반응하는데 그게 2주째 넘어가니 어느 정도 이해는 하면서도 점점 같이 있기 힘들고 지쳐갔다. 그래도 목사님의 설교 말씀으로 죽은 자처럼 있는 적용을 하고 있는 중이라 불안으로 많이 요동되거나 욱하는 건 없었는데 그래도 감정적으로는 에너지 소모가 많이 돼 계속 기운이 빠져 결국 마음도 감정도 완전 바닥으로 내려갔다. 시간이 갈수록 하기로 한 적용을 계속해 나갈 자신이 없어 수요 예배 때에는 마음이 아주 곤고할 대로 곤고해져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고 싶은 마음 반 하나님께 따지고 싶은 마음 반으로 교회에 정말 간신히 최대한 올 수 있는데로 빠른 걸음으로 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주 하찮게 여기는 사소한 일들의 부재와 작은 일에 대해 충성하지 않은 너의 가증함 때문에 이 일이 왔다라고 목사님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니 정말 맞는 말씀이기에 가슴이 순간 딱 막혀 할 말이 없어졌다. 결국 이게 나의 가증함 때문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어떤 토도 달 수 없어 집으로 가는 내내 속으로는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 마음으로 하나님 전 언제까지 내 악으로 인한 괴로움 속에 있어야만 되나요라는 내 속의 깊은 탄식과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시린 절망감으로 인해 집에 와서도 그저 계속 눈물만 나왔다. 주일이 되고 오늘은 또 어떤 말씀으로 나에게 말씀하실 건가요라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설교로 목사님께서 본질적인 화평을 위해서 일시적인 화평을 깬다고 말씀하시기에 설교를 들으면서 지금 현재 이 사건이 비록 아프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계획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하나님께서 이것도 구원의 사건으로 바꿔주실 것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을 수 없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죄로 인해 너무도 칠흙같이 어둡고 깜깜해진 나 자신의 마음을 보면서 그저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 여기까지만 나누어서 제 것만 적었습니다.행여나 다른 식구 분들의 나눔이 없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 기도제목 >
1. 이 사건이 새 노래인 구원의 사건이 되도록
2. 아이들을 인간적인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도록
3. 하나님께 순종하는 적용 계속할 수 있도록
4. 예배중수를 끝까지 온전하게 하도록
*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힘든 수치와 뼈아픈 절망감에서
하나님은 절 다시 일으켜 세우셨고.......
늘 안 하겠다고.....
무조건 싫다고만 하는 완전 고집불통인 저를.....
보이지 않게 지금까지 아주 조금씩 달라지게 인도해 내셨습니다.......
(비록 아직도 고쳐야 할 점들이 물론 여전히 많이 남았습니다만......)
누군가는 여기에 이걸 왜 쓰냐고.......
절 많이 이상하다고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찬송과 영광을 받아 너무 마땅하고 모든 것에 당연한 분이시기에........
이 글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고백하고 싶습니다.......
한없이 늘 부족하고.........
언제나 계속 연약한 것 밖엔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